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77
제177화. 검은 달
호박색의 화살촉은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법 보호막에 금을 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하찮게, 툭.
마법사들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마력을 채가는 것이라니, 이는 듣도 보도 못한 터다.
“방금, 방금 나만 느낀 거 아니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뭐야, 봉인석이야? 봉인석이랑은 느낌이 다른데?”
“다들 무사해? 응? 마력, 마력 확인해 봐!”
누군가의 외침에 마법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마력을 발동시켰다. 다행히 그들은 내면의 힘에 문제가 없다는 걸 깨달았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헤일이 담배를 퉤, 뱉으며 호박색 화살촉에 검을 가져다 댔다.
“마력봉인석이랑은 좀 다른 것 같군.”
“헤일! 안 돼! 건들지 마!”
“원석 덩어리가 되었다. 발광하지 않아. 아코렐라가 보면 좋아서 기절할 것이라.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이안은 한쪽 무릎을 꿇고 화살촉을 내려다봤다. 아무리 뜯어 봐도, 이안이 차고 있는 목걸이와 같은 원석이다. 처음 날아와 눈앞에서 가로막혔을 때는 평범한 쇳덩어리였거늘.
“마리브 저하. 이것이 무엇입니까?”
대체 무엇이기에, 마력봉인석도 아니면서 마력을 흩뜨리고, 서자 이안의 화분에 들어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리엔 부인도 갖고 있었지. 그녀는 이것이 연금술사의 실패작이라 하였다. 분명히.
“웨슬리 그리고 자네처럼, 황궁과 대제국 바리엘을 어지럽히는 마법사를 저지하기 위한 인간의 산물일세. 마음에 드나?”
마리브는 대답하면서 다시 화살을 하나 더 꺼냈다. 자세히 보니, 황실에서 쓰는 것과 깃의 형태가 확연히 다르다. 아마 마리브가 따로 구분하기 위해 깃을 깎은 듯하다.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자, 이안이 소리쳤다.
“마력을 다시 유지하라!”
지이잉. 지잉.
그의 명령에 마법사들은 반사적으로 보호막에 힘을 불어넣었다. 이미 금이 가 있는 상태인지라, 두 번 연속으로 저 괴상한 공격을 맞으면 박살 날 것이다. 마법사들이 이를 악물며 마력을 최대치로 불어넣었다.
“버텨! 마력을 계속, 계속 넣어!”
“이거 진짜 괜찮, 괜찮은 거 맞습니까!? 이안 님!”
“닥쳐! 이안 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 마력 넣어!”
“으아아악! 으악!”
마리브는 손끝으로 유려한 궤를 그리며 활시위를 놓았다. 이번 공격이 목표하는 곳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보호막의 틈.
콰지지직! 콰직!
번개무늬로 스파크가 터졌다. 그 빛에 이안의 금안이 더더욱 밝게 물들었다. 보호막을 유지하려는 마법사와 그 힘을 앗아가려는 화살의 힘이 거세게 맞물리며 돌풍을 만들어냈다.
그와 동시에 이안은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거구나. 역사에 기록되었던 게일의 반란 실패 원인!’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
원 역사에서, 게일은 웨슬리와 함께 마법부를 등에 업고 반역을 꾀했다. 그 당시의 정세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마법사 대부분이 제압당했다는 걸 의아하게 여겼어야 했다. 황실에서 관리하는 마력봉인석으로는 모두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마리브가 게일을 견제하기 위해 연구한 게 분명하다.’
게일을 견제한다는 것은 곧 마법부를 견제한다는 것. 하여, 사달이 났을 때 마법사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터라.
지금도 그때와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게일의 마법부인지, 아니면 이안의 마법부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
콰지지직! 쾅!
화살이 다시금 마력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마리브는 틈을 주지 않고 세 번째 화살을 들었다.
“젠장!”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다. 분노로 인한 게 아니라, 제어 없이 마력을 개방하여 그런 것이다.
호박색 원석은 연금술사를 데리고 있는 상단에서 나온 것이니, 이를 연구하여 보급한 것도 그 상단이겠지. 하지만 의아한 게, 어찌하여 후대에 호박색 원석이 전해지지 않았는가였다.
‘황실이 마법사를 제어하는 수단은 오로지 마력봉인석밖에 없었다. 유일무이하여 다른 건 전혀 없었다고. 그런 게 있었다면 내가 알았겠지.’
그는 황제였으니까. 그리고 마법사였으니까.
이안이 각혈하며 소리쳤다. 화살이 몇 개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로 막아서기만 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헤일! 나키나!”
“명하십시오!”
이안은 금안을 부라리며 마리브를 똑바로 노려봤다. 이어서, 공격 마법에 능한 마법사들을 호명했다.
“로프, 아티온, 칸나, 살베라!”
“네! 이안 님!”
“명하세요!”
마리브는 담담하게 계속 화살을 쏘았다. 깊은 못에 돌이 던져지는 것처럼, 화살은 계속해서 보호막에 균열을 일으켰다.
콰지지직!
‘아쉽군.’
마법사들은 당황했으나, 마리브는 아쉬웠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보다 완성도 있는 것으로 저자들의 숨통을 끊었을 터인데. 마리브의 보좌관 파알이 손을 들었다. 공격 태세를 갖추라는 듯이.
“-이상,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의 이름으로 명한다!”
콰아앙! 쾅!
“마리브 저하를 처단하라.”
“처단하라!”
이름 불린 마법사들이 일제히 창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들의 힘이 빠져나간 보호막은 화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파훼되었으나, 이안이 침착하게 대열을 지시했다.
“깨져도 좋다! 계속 만들어내면 되니까! 선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고 정신을 집중해!”
“마법사들을 죽여라! 간사한 배신자들!”
“신의 탈을 쓴 악마들이라!”
“죽여라! 죽여!”
“진 황자를 끌어내라!”
보호막을 완전히 부수겠노라, 병사들이 기합을 넣으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모습이 마치 개미 떼와 같다. 마법사들이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치자, 나키나가 병사들 앞을 막아섰다.
쉬이이익!
「돌풍(突風)」
마력으로 인해 휘감아지던 바람이 점점 좁고 세차게 병사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갑옷 위로 드러난 목덜미와 손목, 아킬레스건 따위를 베어내며 피 냄새를 가득 담아내는 바람이다.
촤악!
“으아아악!”
“밀어붙여! 더! 앞으로 가!”
“커, 커억!”
“입을 가리고 말하라! 혀가 잘린다!”
“칼바람이다! 눈 감고 달려!”
하지만 밀물처럼 밀려드는 인원수가 너무 많다. 전우의 몸통을 방패 삼아 앞으로 다가온 병사들이, 하나둘씩 보호막에 검을 휘둘렀다.
투웅! 투!
콰아아앙!
그때, 헤일이 아래로 빠르게 뛰어들며 한 병사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처박았다. 안 그래도 두꺼운 주먹이 담금질한 쇳덩이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으니. 병사의 머리통은 비명 지를 새 없이, 산산이 으깨지며 형체를 잃었다.
쉬이익!
그런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화살. 마리브다. 헤일은 병사의 머리채를 계단 아래로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네놈들이 하는 행태의 의미를 아는가?”
“몰라도 됩니다. 이안 님이 알고 계시기에.”
“어리석군. 누가 그대들을 지혜의 산물이라 할까.”
피잉! 쉬이익!
마리브뿐만 아니라, 그의 보좌관을 비롯하여 옆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모두 호박색 원석을 지닌 듯했다. 마른하늘에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쉬이익! 퍽! 퍼억!
채앵!
“이안 님!”
“이, 이거 어찌합니까?!”
“아악!”
보호막이 깨졌을 때 새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화살이 박히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공격을 명 받은 마법사들이 병사들 틈을 가르며 마리브에게 달려들었으나…….
푸욱!
감당할 수 없는 수의 화살이 날아들어 개개인의 보호막을 깨버렸다. 나키나 또한 눈먼 누군가의 공격에 왼팔이 뚫렸다.
“아악!”
고통에 찬 욕설과 함께, 나키나가 화살촉을 거칠게 뽑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분노에 찬 공격 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
“……?!”
숨이 턱, 하고 막히듯 마력이 막혔다. 나키나가 멈칫거리는 사이, 한 병사가 검으로 그녀의 심장을 베려고 했다.
“죽어라아아!”
“나키나!”
콰앙!
“정신 차려! 새끼야!”
“헤, 헤일. 나 마력이 안 나와.”
“뭐?”
동떨어진 세상에 떨어진 것처럼 멍하니 서 있는 나키나. 헤일은 병사들의 머리를 터트리며 일갈했다.
“나키나! 집중!”
“아, 그, 이안 님!”
나키나는 움찔거리며 눈물을 툭 떨구었다.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이성과 감성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키나가 소리쳤다.
“화살을 맞으면 안 됩니다! 마력이 안 나와요!”
“뭐? 나키나, 지금 뭐라 했어?”
“마, 마력이 안 나온대.”
“나키나! 나키나!”
충격에 잠겨있는 것보다, 동료에게 사실을 알리는 게 우선이다. 그리하여, 우선은 이기고 사는 게 중요하다. 나키나가 다시 우렁차게 내질렀다.
“화살 맞으면, 마력을 못 낸다! 얘들아아아!”
“젠장! 이안 님!”
콰아앙!
보호막을 구축하던 마법사들이 사색이 되어 이안을 돌아봤다. 이안은 입술을 꾹 깨문 다음, 뒷걸음질 쳤다.
“…모두 모여라.”
“퇴각해! 이쪽으로 와!”
“포탈을 발동한다.”
마력봉인석보다 더 난감한 것이다. 봉인석은 그저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효과가 없어지건만, 저것은 상처를 입힘으로 마력 자체를 앗아가나 보다.
‘이것만은 쓰지 않길 바랐건만.’
“이안 님!”
“포탈을 가동하고 있어! 위치는 전에 말했던 그곳이다! 진 저하를 모셔오마.”
전에 말했던 그곳, 히엘로 령. 바리엘의 땅에서 이안이 유일하게 믿고 숨어들 수 있는 곳.
타닥타닥!
이안이 의무실 문을 열어젖혔으나, 인기척이 없다. 숨을 거칠게 고르던 이안이 넌지시 아이를 불렀다.
“진 저하. 이안입니다. 급히 피해야 하니 나오세요.”
스윽.
그러자 침상 아래, 의사와 함께 숨어있던 진이 고개를 내밀었다. 오들오들 떠는 의사와 달리, 진은 굳은 표정으로 침상을 빠져나왔다.
“어쩐 일인가?”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히엘로 령으로 갈 것입니다. 그곳이 제일 안전하여.”
이안이 손을 뻗자, 진은 잠시 망설였다. 히엘로라 하면 변방 중의 변방인데, 그곳으로? 혼자?
“…그대도 같이 가나?”
“물론입니다.”
“의사, 자네도 같이 가지.”
“…예, 예예!”
진은 서둘러 이안의 손을 붙잡았다.
바깥은 전세가 급격히 기울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무수한 호박색 화살과 병사들을 막고 있는 투명한 벽. 마법사들의 마력이 거의 소진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포탈을 열 것이다!”
“지원하겠습니다!”
“지원, 으앗! 으아아악!”
진이 고개를 바짝 올린 채 검은 초승달을 쳐다봤다. 마법사들이 낯선 언어로 주문을 외우자, 이안의 발치로 수십 개의 동심원이 생겨났다. 마치 물 위에 서 있는 듯이.
‘와아.’
동심원이 아름답게 발하였다. 이안의 금빛 머리칼보다 더더욱 화사하여, 진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이안이 손을 뻗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었지만, 적어도 검은 초승달은 가릴 수 있었다.
사아악.
커져라, 커져라, 주문을 외우고 있는 걸까? 이안이 우아하게 손짓할 때마다 달이 차오르더니, 이내 완연한 보름달로 변하였다. 금방이라도 황궁에 뚝 떨어질 듯 크고 무겁게 달려있다.
“저하. 무서우시다면 제 손을 꽉 잡으십시오.”
무섭지 않노라고, 그리 생각하면서도 손을 잡는 힘이 세졌다. 이안이 그를 안아 들고 포탈로 오르려는 순간.
파앗!
“어? 이안 님! 잠시만요!”
“안에서 뭔가가 떨어집니다!”
검은 공간에 유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안은 인상을 찡그리며 그것을 올려다봤다.
대체, 저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히엘로와 연결된 게 확실한가?”
“화, 확실합니다.”
유성이 점점 커진다. 검은 달을 벗어나 황궁의 창공을 수놓으며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다. 이안은 그걸 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이아아안!”
“싸가지 없는 베릭도 여기 있나?!”
“으하하하앗!”
거칠고 투박하며, 사막의 열기를 그대로 품은 웃음소리였으니. 하늘에서 전사들이 쏟아졌다.
콰아앙! 쾅!
“데모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