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82
제182화. 하루가 끝나다
“폐하께서 승하하셨습니까?”
이안은 서신을 내려다보며 당황스레 중얼거렸다.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마리브가 황제의 시체가 아니라 직인을 보인 것, 그리고 원 역사에서 그가 장수했던 것 따위를 복합적으로 짐작하여 당연히 살아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살아계십니다.”
베올스는 뒤에 놓인 그림을 턱으로 힐끗거리며 대답했다. 살아있다 말하는 그의 시선이 어둡다.
“하지만 산 것이 아니지요.”
“상세히 설명해 주시오.”
“어젯밤, 마리브 황자가 폐하의 처소에 들어 위해를 가함과 동시에 직인을 찬탈하였습니다. 제가 옆에 있었으나, 순식간에 일어나 막지 못했어요. 친위대의 대장으로 수치스럽습니다.”
배신한 리아마. 늙은 황제. 사방이 막힌 침실. 그리고 아비의 숨통을 노리는 마리브. 이안은 어렵지 않게 그날 밤 상황을 그릴 수 있었다.
“비밀 통로 안에서 작성하신 것입니다. 경우의 수를 헤아려 수많은 상황을 짐작하셨고, 개중 하나가 도래하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폐하의 명에 따라 이걸 이안 경에게 전합니다.”
이안은 서신을 받았다. 꽉 묶인 줄에 피가 진득하게 묻어있었다. 아마 노쇠한 자의 흔적이리라.
“황제께서는-”
“동결(凍結)하셨습니다.”
“……!”
“원체 몸 상태가 안 좋으셨고, 출혈이 깊었습니다. 황제께서 스스로 선택하신 결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베올스의 옷 또한 피로 얼룩덜룩하다. 노인이 저만한 피를 흘렸으니, 그 상태가 눈에 훤하다. 한 줌의 숨이 육신을 떠나기 전, 황제는 스스로를 영원의 시간에 가뒀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의미를 가진 자였으니까.
“오늘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걸 우려하셨어요. 황제께서 승하하시면, 진정한 전복이 될 테니.”
“동의하오. 황좌가 비었다는 걸 알면, 어중이떠중이 놈들도 혼란을 틈타 탐욕을 보일 것이라. 진화 가능한 불씨조차 바리엘을 완전히 집어삼킬 염려가 있지.”
“…언제고 폐하의 죽음이 바리엘을 위협하지 않는 순간, 그때 동결을 풀어달라 하였습니다.”
“치유 마법을 쓰는 자들이 있소.”
“장담할 수 없습니다. 동결을 푸는 즉시, 어찌 되실지 모를 정도라.”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마를 짚었다. 우선은 황제의 서신을 읽어보는 게 먼저일 것 같다.
“그런데 그걸, 나에게 맡기셨단 말인가?”
“정확히는 ‘그 어느 황자의 편에 서지 않은 제삼의 세력’에게 말이지요.”
황제가 장수했다고 하더니, 원 역사의 이면도 이러할까? 죽음이 죽음으로 받들어지는 순간까지, 황제는 죽지 않는다. 그것이 황제가 짊어지는 마지막 의무였다.
‘그래. 어쩐지, 신년회에 봤을 때도 곧 쓰러질 것 같은 몰골이었는데 오래 살았다 하여 의문스러웠다.’
베올스는 서둘러 서신을 열어보라는 듯 손짓했다.
“저 또한 무엇이 적혀있는지 모릅니다.”
“아까 나와 대화한 것은 그대였는가?”
“그렇습니다. 의도치 않게 시험하였으니, 이는 송구합니다. 폐하의 뜻이니 양해해 주십시오. 특히 아르센과 진 저하가 혼란에 휘말리는 걸 극도로 염려하셔서.”
스윽.
양피지가 두껍게 돌돌 말린 것과 달리, 내용은 간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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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브와 게일은 재판에서 잘잘못을 상세히 밝혀라. 특히, 마리브는 추가로 황가의 성(姓)을 영구 박탈한다.
-진과 아르센, 둘을 잘 지켜보라. 둘 중 하나는 빛이요, 하나는 어둠이다. 성인이 되는 해, 갈라 신관을 다시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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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과 다를 바가 없다. 황자들에 대한 처분이 대부분이었고, 그가 진행했던 각종 국가적인 사업의 마무리 지시 사항이 짧게 들어있다.
이안은 양피지를 다시 만 다음, 베올스를 쳐다봤다.
“이것이 폐하의 서신이라는 걸 증명할 방도는?”
“직인입니다.”
“직인은 마리브가 찬탈하였네.”
“폐하께서 타국의 왕에게 서신 보낼 때 쓰던 개인 인장이 있습니다. 대조하면 확인 가능합니다.”
“딜라이나 님에게는? 알릴 것인가? 폐하가 안 계시면 당분간 수상과 딜라이나 님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터.”
“후계자에 관한 판단은 딜라이나 님과 제삼자의 세력이 논의하여 정하라 하셨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베올스가 지키고, 지켜볼 것이로군.’
이안은 서신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다음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는 진과 아르센, 즉 이안과 딜라이나의 대립이 황궁을 나눌 것이라.
현재로서는 그들의 목숨을 구한 이안에게 좀 더 권력과 권한이 넘어와 있는 상태다.
똑똑.
그때, 바깥에서 노크가 들려왔다. 이안은 서신을 품에 숨기며 베올스에게 눈짓했다.
“우선, 하루 간의 악몽을 끝내는 것으로.”
“예. 수습만 하여도 큰일입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지요. 궁이 정리되면, 동결된 폐하를 옮기겠습니다.”
달칵!
이안이 문을 열자, 로만드로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안에서 분명 말소리가 들렸거늘 어찌 나오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단 말인가?
이안은 로브를 둘러쓰며 그를 지나쳤다.
“황제 폐하의 서신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황궁을 수습할 것이니, 준비하시게.”
“네? 폐하의 서신이요? 지금 어디 계시답니까?”
“로만드로. 그전에 하나 물어볼 것이 있는데.”
“예예. 하문하십시오.”
로만드로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존대했다. 이전부터 의아하긴 했으나 딱히 중요한 건 아니라 넘겼던 부분이 있다.
“딜라이나의 친정이 어디지?”
마리브와 게일, 둘 다 딜라이나의 친정을 한 번씩 언급했다. 후궁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그 위세가 심상치 않을 것이란 짐작은 들지만, 오늘은 중앙의 모든 귀족이 갈라선 날 아니던가. 하지만 딜라이나를 추종하는 세력은 언급도 안 들려왔다.
“딜라이나 님이요? 카르보 가문의 따님이십니다만.”
“카르보? 카르보 신전 말하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카르보 신전. 바리엘 건국 당시, 황제에게 신의 뜻을 전해주었다는 유서 깊은 곳이다. 황가에 축복을 내려준 고로로 지금도 신성(神聖)의 대명사로 전해지곤 했다.
“아, 전쟁고아들을 입양해서 카르보라는 성(姓)을 준 게 시작이었습니다. 개중 성직자의 길을 가지 않았던 로버사이드라는 자가 마물 전투에서 승리해 작위를 받았고, 여태까지 이어졌죠.”
로만드로는 변경에서 나고 자란 이안이 잘 모를 것이라 여겨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유서 깊고, 상징성 역시 뚜렷한 핏줄이로다. 마리브가 친정을 생각하여 목숨을 살려주겠노라 했던 게 이해 갈 정도로.
“카르보 가문은 신전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세대가 거듭될수록 정체성이 옅어지고 있습니다.”
“진과 아르센 저하의 신탁도 카르보에서 나왔겠군.”
“아무래도요. 친정 좋다는 게 뭐겠습니까. 받고 나니 저주라 문제였지만. 그나저나, 황제 폐하의 전언이라니요?”
딜라이나의 친정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지금 상황에서!
“그리고 듣자 하니, 게일 저하가 마력봉인석을 넘긴다는 말도 있던데요. 어쩌실 생각입니까?”
로비로 나가던 이안의 발걸음이 멈췄다.
마력봉인석, 마법사들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그걸 가져오면 마법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장 안전은 하겠지. 하지만 그것이 이상적이지는 않아.’
견제는 균형을 이루고, 균형은 평화를 이룬다. 이안은 마법사였지만, 그와 동시에 황제였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힘이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
‘분배하자-’
우선은 모두 모은 다음, 적절히 나누는 게 좋겠다.
‘특히 진에게.’
“다들 주목.”
이안은 마법사들을 불렀다. 각자의 일을 하던 자들이 모두 멈추고 이안을 돌아봤다.
“황제 폐하의 전언이 도착했다.”
“네? 폐하의 전언이요?”
“무탈하시답니까? 지금 어디 계신데요?”
“…생명에 지장은 없다. 이것은 직인이 아닌 다른 인장으로 증명한 폐하의 서신이니.”
차락.
이안은 피 묻은 곳을 손으로 잡아 가린 채 서신을 들어 보였다. 마법사들의 기류를 눈치채고 다른 관료들도 하나둘씩 모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마법부는 중립 구역임을 철회하고, 황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마리브의 세력을 정리할 것이다. 확성 마법을 준비하라.”
“네, 알겠습니다!”
이안의 명령에 마법도구제작부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확성기 역할을 하는 마도구를 가져오기 위함이다.
그러는 동안, 이안은 계속해서 전달 사항을 말했다.
“게일 역시 생포하여 재판을 치르게 할 것이라. 마법부는 저항하는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마라.”
“이안 님. 여기 가져왔습니다!”
기다란 스탠드에 달린 둥근 원판. 조그맣게 뚫린 구멍에 응축된 마력이 일렁이고 있었다.
지이잉. 지잉.
“바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외부, 황궁과 가까운 인가에는 들리지 않게 하라.”
“네. 문제없습니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나는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다.]위이이잉-
그의 목소리는 마력을 타고 황궁 곳곳으로 울렸다. 쓰러진 병사들, 숨어있던 관료들, 도망치던 사람들, 심지어는 고삐 풀린 짐승까지 귓가에 울리는 낯선 소리에 멈칫거렸다.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집중하라. 황제 폐하의 전언을 받아 이를 알리고자 하니.]베릭은 이안이 말할 때마다 귀를 후볐다. 앞에서 한 번 말하고, 달팽이관 속에서 또 한 번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기 때문이다.
[1황자 마리브는 현 시간부로 황가에서 퇴출한다. 이자를 따르던 자들은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역모로 판단하여 엄하게 다스릴 것이니. 그대들이 믿고 따르던 마리브는 마법부에 생포되어 그대들이 보는 앞에서 죽을 것이라.]담담하게 죽음을 말한다. 마리브가 정신을 차렸으면, 아마 그도 지금 이 안내를 듣고 있을 터.
[그리고 2황자 게일.]이안은 게일을 마주 보는 것처럼 정면을 똑바로 봤다.
[나 이안 히엘로는 마법부 장관의 명예로 그대의 저주를 풀었다. 바리엘의 명운은 그대와 상관없다. 그대도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선언했다. 웨슬리가 남겼던 저주는 사라졌노라고. 그래서 더 이상 게일이 그걸 빌미로 목숨을 연명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재판의 결과가 무엇이든, 그는 감내해야 할 거라고.
“투항이 아니면 죽음뿐!”
“투항이 아니면 죽음뿐!”
마법사들이 선창하여 외치자, 점점 소리가 퍼졌다.
중립 구역에서 안전을 도모했던 황궁의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이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정상화를 위해 움직일 시간이다.
“움직여라. 그리고 게일을 데려와.”
“네. 알겠습니다.”
“시체 처리는 마법사들에게 맡겨라. 로만드로, 부서진 건물을 파악하여 재건에 관한 계획서를 내일 중으로 올리시게. 병사들의 무장해제가 우선이다. 하여, 바깥에서 입궁하지 못한 고위 관료들을 긴급히 들이시게.”
깨기는 쉽지만, 새로 쌓아 올리기에는 어려운 것이 평화다. 이안은 참모들과 현 황궁의 평화를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이라.
[혼란은 끝났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기뻐하고, 현재를 과거로 흘려 버려라. 오늘의 밤은 어제의 밤과 다를 것이니.]이안은 잠시 숨을 들이쉬며 핏물에 절여진 시체들을 바라봤다. 하루, 시아오시가 게일의 처소에 들어서 신호탄을 터트린 후 가쁘게 달려온 하루.
[하루의 악몽이 끝났음을 모두 축하하라.]“데모샤!”
“데모샤아!”
뭔지 모르겠으나, 축하할 일이라면 응당 신의 축복을 나눠야지. 전사들의 우렁찬 외침을 시작으로, 마법사들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반파된 황궁에 노을빛이 내려앉을 때, 황궁의 문이 열렸다. 새로운 역사가 열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