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85
제185화. 로버사이드 일대기
이안은 마법부 본관 옆, 안쪽 당직실로 향했다.
로비 소파 곳곳에는 밤새 시체와 씨름한 마법사들이 새우등을 만 채 잠들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끙끙 앓는 소리와 코고는 소리, 이가는 소리 따위가 끊이질 않았다.
이안이 조심스럽게 당직실 문을 열자, 시아오시가 고개를 들었다.
“오셨습니까.”
“아르센 저하는?”
“막 잠드셨습니다. 계속 패악을 부리며 우시는지라.”
시아오시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희미하게 웃었다. 벽을 내려치며 어미를 불러와라, 진을 보여달라, 어찌나 난리를 부리던지. 이안은 어둠 속에서도 시아오시의 볼에 생채기가 났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시아오시, 그대는 좀 쉬게. 내가 들어가겠네.”
로만드로는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아르센이 있는 당직실로 들어갔다. 이안은 건너편, 진이 있는 곳 문을 열었다.
끼이익.
“딜라이나가 아르센을 찾아올 것이다. 함께할 수 있으면 그리하되, 무리하지는 말 거라.”
“네. 알겠습니다.”
당장은 혼란을 빙자하여 만남을 막았으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천륜 아니던가. 수습이 조금만 진행되어도 딜라이나는 시아오시를 내치고 아르센을 데려갈 수 있으리라.
어둑한 실내에 차가운 새벽 햇살이 한 줌 내려앉고 있었다.
“크허어억.”
“…….”
소파에서 반쯤 떨어져 머리를 박고 있는 베릭과 침대에 단정히 누워있는 진. 어찌나 깊게 자고 있는지, 이안이 들어와 걸어올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진 저하는 그렇다 쳐도, 베릭 이놈은 기척을 느껴야 할 것 아닌가. 침실을 지키라 했더니, 아주 잘 자는구나.”
이안이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리자, 시아오시가 슬쩍 다가가 베릭의 코를 잡아당겼다. 베릭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해댔다.
“으으, 윽, 이안아, 돼, 돼지가 내 코 물었다아…….”
“…일어나질 않습니다.”
“내버려 두어라. 오후에 바쁠 터이니.”
시아오시가 코를 놓자마자 다시금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쩝쩝댔다. 참으로 단순하여,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눈에 훤하다.
스윽.
이안은 침대에 걸터앉아 진의 상처를 들여다봤다. 피는 멎었으나, 조금만 잘못 만져도 다시금 번질 것 같다. 초상화로 봤을 때는 태어날 적부터 지닌 듯 자연스러워 보였는데. 이리도 깊고, 아픈 상처였구나.
“…이안?”
“송구하옵니다. 깨셨습니까?”
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비몽사몽 하여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지만, 이안을 바로 알아봤다.
“날이 지났는가?”
“예. 지났습니다. 새로운 하루입니다.”
이안은 아이의 이불을 정리해 주며 대답했다. 토닥토닥, 다정한 손길을 따라 진의 눈이 다시금 감겼다. 그대로 잠들게 하고 싶으나, 이안은 전할 말이 있었다.
“저하. 딜라이나 님이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진은 몸을 반쯤 일으키며 이안을 바라봤다. 차마 형용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듯하다. 안도감과 난색 그리고 두려움과 슬픔. 진은 더듬거리며, 이안에게 물었다.
“어찌해야 하지?”
“저하.”
“나는, 나는 모르겠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 어미에게 버려진 자식은, 다시 어미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안은 등을 토닥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할 게 없습니다. 저하가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전에, 저하께서 딜라이나 님을 뵙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제가 막아설 것입니다.”
“나, 나, 어머니를 만나지 않아도 되오?”
“그럼요. 물론입니다. 저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저하께서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스스로 납득하실 때까지.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진은 다시 스스륵 눕더니, 이불을 눈 밑까지 끌어올렸다. 잘못한 것이 없다, 딜라이나와 아르센의 잘못이라. 위로가 자장가처럼 맴돌아 나른하게 하였다.
“이안 경. 부탁이 있네.”
“하명하십시오.”
“나, 책을 읽어주시오.”
빼꼼, 진이 눈을 굴리며 부탁했다. 마법사들은 모두 바쁘고, 곁에 가까이 있는 베릭과 시아오시는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이안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기꺼이요. 무엇을 읽어드릴까요?”
“거기, 제일 가까이에 있는 것.”
마법사들이 진의 부탁으로 궁에서 몇 권 들고 왔나 보다. 이안은 테이블에 놓인 책 중 맨 위의 것을 집어 들었다.
로버사이드 카르보. 신전에서 갈라져 나온, 카르보 가문의 초대 가주 일대기다. 이안은 손때가 많이 묻어있는 것을 보고 가볍게 책장을 넘겼다.
“즐겨 읽으십니까?”
“아주, 아주 재미있어. 아르센은 재미없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그걸 읽으면 항상 로버사이드 님이 꿈에 나와서 놀아준다네.”
영락없는 어린아이로다.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자리를 바로잡았다. 그러곤 명징한 목소리로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신관이 되지 않겠다고?” 로버사이드는 형제자매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형제자매들아, 너희는 나를 대신해 순수한 마음으로 신을 받들어라. 나는 밖으로 나가 저 마물들을 처단하여 신께 사랑을 맹세할 것이라.” 그는 그 누구보다 신을 따르는 자였으나, 당장 마물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시아오시 역시 의자에 기대앉아 눈을 감았다. 높고 낮음이 일정한 이안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사락, 하고 책장 넘어가는 소리까지 더하여.
[로버사이드는 굉장했습니다. 검을 한 번 휘두르면 마물 백 마리의 사체가 쌓였고, 두 번 휘두르면 핏물로 강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로버사이드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동화치고는 내용이 좀 잔인한데.’
특히 삽화가 너무 노골적으로 마물의 사체를 그려내고 있었다.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는 걸까? 로버사이드와 맞선 마물들의 생김새가 상세했다.
[“살려줘!” 로버사이드는 마침내 마물 한 마리만을 앞뒀습니다. 작은 아이의 모습을 한 악마는 손을 싹싹 빌며 구걸했습니다. 로버사이드가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 하는 놈인가?” 악마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인간의 사악함을 빌어먹는 자다.” 죽어 마땅하다고, 로버사이드가 검을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악마는 간사하게 속삭였습니다. “나를 살려 보내면, 숨어 살겠다. 하지만 나를 죽이면, 나의 형제가 복수할 것이다. 네가 얻은 모든 걸 파괴하리라.” 악마가 협박하였으나, 로버사이드는 용감했습니다.]“…촤악. 로버사이드가 악마를 죽이자, 바리엘 제국에는 마물이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로버사이드 님, 수많은 피를 묻히고 두렵지 않으신가요?’ 로버사이드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대 대신 내가 두려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타악.
뒷면에는 로버사이드의 전신상이 그려져 있었다. 은색의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검을 휘두르는 사내. 개국 당시의 일이라, 이 모든 게 허구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악마의 복수라.’
결과론적이긴 해도, 악마의 저주는 내려진 듯 보였다. 개국 당시의 카르보 가문과 현재를 비교하면, 참담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권세가 떨어졌으니까. 모두가 인식은 하되, 그것에 그치는 존재감.
“주인님.”
시아오시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이안은 잠든 진의 이마에 손을 올린 채 돌아봤고, 이내 어깨에 담요가 덮이는 걸 느꼈다.
“주인님도 좀 주무십시오.”
“괜찮다.”
“전혀 괜찮지 않아 보입니다.”
끼이익.
그때, 로만드로가 살금살금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봤다. 부족한 건 없는지 살피는 눈길이다. 그는 소파에서 흘러내린 베릭을 보며 쪼그려 앉았다.
“제일 팔자 좋게 자는구먼. 쯧쯧.”
“크허어억. 컥! 고기가, 아, 고기는-”
“허구한 날 고기 타령이니 뱃속에 그지가 든 게 틀림없도다. 이안, 아르센 저하도 푹 잠드셨네. 그러지 말고 눈을 마저 붙이게나. 나중에 한창 바쁠 때 쓰러지면 곤란허이. 아르센 저하는 경비를 붙여두었네.”
로만드로의 강권에 이안은 어쩔 수 없이 소파에 몸을 뉘었다. 쌕쌕거리는 아이의 숨결 덕분인지, 바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로만드로가 바닥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사락.
“이건 뭐지?”
“아까, 진 저하께서 그린 그림입니다.”
“오, 멋지군. 바나나와 토마토인가?”
“…주인님과 베릭이라고 하시던데요.”
“…….”
피식, 이안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로만드로는 진의 눈치를 보며 그림을 한쪽에 밀어 넣었다.
“예술은 예술가에게 맡기는 게 제일이지. 암.”
“그래도 바나나와 토마토는 좀 그렇습니다.”
“이안, 그런데 말일세. 아까 딜라이나 님 관련해서 했던 말.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면 안 되겠나?”
황궁에서 실권을 잡은 이안과 대적할 만한 방도.
이안은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피곤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것으로 보아, 곧 잠들 게 분명하다.
“아까, 회의장에서 반역자를 모두 처리할 수 없다 했던 자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글쎄. 좀 많았지.”
“대체재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요. 쉽게 도려낼 수 없음은 어느 사안에서도 중추라, 현재 바리엘에서 그런 독보적인 입지를 가진 자가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황제? 아니다. 황제는 저리 누워있지만, 바리엘이 돌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이안? 마법부 장관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로만드로는 고심하더니, 문득 그 이름을 떠올렸다.
“하이만?”
명백히 반역 행위에 가담했으나, 관료 그 누구도 쉬이 처단하겠노라 나서지 못했던 세력. 수백 년 가까이 제국의 자금 흐름을 담당하는 귀족 중의 귀족.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면 하이만에게 제안할 것입니다. 아르센에게 힘을 실어주면, 그가 황좌에 올랐을 때 과오를 눈 감아주겠노라고요.”
“하지만 하이만은 명백히 처단의 대상이지 않나.”
“바깥의 시체처럼 하루아침에 목을 베어낼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이만 가가 막내딸의 독단적인 일이라 변명하고 사죄한다면, 봐주자는 관료들이 여럿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진 황자는 이안의 지지를 우선으로 업을 터인데, 이안은 마리브와 게일을 직접 제압한 자였다. 반역자 처단에 뜻이 확고하니, 하이만 가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 반면 딜라이나에게는 이안을 대적하니 힘이 될 세력이었다.
‘결탁 후, 아르센을 밀어내면 자연스레 하이만 가도 밀어낼 수 있다. 이렇게 조금씩 틈을 노릴 수밖에 없어.’
한마디로 압박할 명분을 계속 늘려가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자금력을 견제하고 바리엘 전역의 금융 권력을 분산시키면, 언제고 그들이 없어도 문제없는 날이 올 것이라. 그때가 진정한 하이만 가의 처단일이다.
“그런데 이안, 나도 곧 아비가 되니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알겠거든.”
로만드로는 턱을 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식을 버리는 것도 그러하지만, 선택적인 사랑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로만드로가 고개를 휙, 돌리며 물었다.
“한데, 딜라이나 님 좀 너무하신 것 같지 않나?!”
“…….”
“자는가?”
“주무십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천사처럼 잠든 이안. 로만드로는 벌러덩 누우며 기지개를 쭉 켰고, 시아오시는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한참 후, 제일 먼저 잠에서 깬 베릭은 눈앞에 놓인 그림을 보며 웅얼거렸다.
“…바나나, 토마토?”
똑똑-!
달깍!
“이안 님, 아코렐라 대장이 호박빛 원석 중간보고로 전할 말이 있다 합니다. 마력봉인석 확보는 어떻게 되어가는지 확인해 달라고 해서요.”
“아이고, 기절하듯 주무시네. 깨울까?”
“어, 어쩔 수 없다. 이거는.”
“저기, 이안 님. 잠시 보고를 들으시겠어요?”
“게일 저하도 발견했다고 하는데요. 이안 님? 이안 님? 잠깐, 일어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