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0
제190화. 대회의
똑똑.
“수상님. 이안 히엘로 장관이 들었습니다.”
“어서 들라 하시게. 퀸타나. 아까 낮에 준 세율 조정 제안서 말일세. 일전에 비슷하게 진행했던 사례가 있었던 것 같은데. 5년 전이었나? 그때와 비교하여 계산하면 좋을 듯하네만.”
“진 저하도 함께입니다.”
먼저 모여 보고서를 나누던 수상과 고위 관료들이 멈칫거렸다.
진 저하라니?
물론 황자가 대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황궁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앞장서서 나선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모범적인 자세라.
하지만 진은 너무 어렸고, 무엇보다 후계 문제를 앞두고 있었다.
‘이안 경이 제대로 칼을 빼 들었구먼.’
그런 진을 대회의에 데리고 오다니. 5황자를 지지한다는 걸 알림과 동시에 그의 정계 존재감을 서서히 내세우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퀸타나는 수군거리는 관료들을 무시하며 도장을 쾅, 찍었다.
“오늘 담배는 다 피웠군. 무엇하고 서 있나? 안 모실 것인가?”
시종은 허리를 굽히며 뒤돌아 나갔고, 이내 거대한 문이 옆으로 천천히 젖혔다. 이안이 진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수상을 비롯한 다른 관료들이 진에게 인사하기 위해 일어섰다.
끼이익.
“진 저하. 무사하셨군요.”
“얼굴에 상처가 깊어 참으로 비통하옵니다.”
“이쪽으로 오르십시오, 저하.”
피부가 워낙 희어서 그런 것일까. 왼쪽 이마부터 오른쪽 턱까지 흉흉한 상처가 도드라졌다. 눈을 다치지 않은 게 신의 가호라 느껴질 정도로, 상처는 짙고 깊게 아이의 얼굴을 반으로 갈랐다.
퀸타나는 담배 케이스를 주머니에 넣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마리브와 게일 저하도 참 대단하시다. 어린 저하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리 만드셨단 말인가.’
하지만 상처와 별개로 안색이 좋아 보여 다행이다. 오히려 사달 전과 비교하면 눈동자에 생기가 깃든 듯했으니. 가끔 지나가다 보면 아르센과 달리 움직이는 인형처럼 느껴지곤 했었는데.
“다들 노고가 많소. 어수선한 황궁을 받치고 있는 게 그대들이니, 황제 폐하께서 깊이 기뻐할 것이리라.”
“과찬이시옵니다, 저하. 마땅히 할 일인걸요.”
“맞습니다. 저희의 의무이옵니다.”
“마음이 든든하군. 하여, 내 미력하지마는 힘을 보태고자 이리 왔네. 부디 수상과 장관들의 혜안을 배울 수 있게 해주시오.”
진의 부탁에 다들 고개를 숙였다. 진이 원래 저리 말을 잘하는 아이였던가? 아니지. 사실 목소리를 들은 적도 거의 없었다.
기억과 전혀 다른 모습에 모두 놀란 것도 잠시. 이안은 의자를 빼주며 진을 안내했다. 수상과 제일 가까운 자리, 자신의 자리였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저하.”
“고맙네.”
진은 다부지게 대답하며 의자에 앉았다. 근엄하게 덤덤한 표정이었으나, 테이블 아래에 놓인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안이 일러준 대로 잘 해냈으나, 진은 너무 떨려서 자신이 무슨 말을 뱉은 건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저와 저하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입니까?”
“그렇소. 회의를 시작하지.”
이안은 그런 아이의 손을 힐끔거리며 수상에게 물었다. 진의 등장이 가져온 파장은 확실했으나, 이내 곧 그쳐 들었다. 황자를 의식하기에는 의논할 거리가 산더미였고, 처리할 사안이 무수했으니까.
차락.
각 부서의 부하들은 회의장을 돌아다니며 보고서를 분배했다. 로만드로 역시 그들 사이에 섞여 마법부 대장들의 의견을 전달했다.
“먼저 행정부, 퀸타나.”
수상의 지목에 퀸타나가 손을 들었다.
“국가 예산 확보 대책 보고서입니다. 각 황궁의 건물 피해가 생각보다 심각하여 올 한 해 책정했던 예산의 절반 정도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3황궁 인근에 불 난 게 컸어. 그쪽 별관은 아예 갈아엎어야 하겠더구먼. 다행히 소종부만 들어서 있는 곳이라 업무에 지장은 없지만.”
“이참에 축소하여 재건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산도 빠듯한데, 굳이 원래 있던 그대로 지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담당 업무 대비 건물이 크긴 했지요.”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효율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불미스러운 일로 파괴된 건물이니까요. 그 전의 모습을 온전히 찾는 게 의미 있습니다.”
소종부? 관료들이 열을 내며 한마디씩 덧붙일 때, 진은 덤덤한 척 지켜보기만 했다. 처음 듣는 부서인지라, 저들이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윽.
-소수종족외교지원부입니다. 바리엘에 정식으로 입국한 소수종족들을 담당하지요. 하지만 바리엘에서 규정하는 기준치가 워낙에 낮아, 어지간하면 대부분 일반외교부로 넘어갑니다. 있다 한들, 대부분 불법 입국인지라 또 소관이 달라집니다. 사장(死藏)되고 있는 부서라서 이미 한번 건물을 옮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안은 보고서 귀퉁이에 글을 쓰고서 툭툭 두드렸다. 다들 워낙 익숙한 터라 간편하게 줄임말을 쓰곤 했지만, 회의에 처음 들어온 자는 알아채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들 말하지.
“아.”
진은 하나 깨우쳤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당황했던 낯빛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관료들의 의견을 따라 짚을 수 있게 된 탓이다.
“이안 경의 의견은 어떠시오?”
“축소하는 게 좋다 여겨집니다. 정통성을 떠나서, 그쪽은 3황궁 본관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요. 중간 정원을 없애고 거기에 짓는 걸 제안합니다. 그러면 2황궁과 이어지는 새로운 길을 틀 수 있습니다.”
질문이 갑작스럽게 날아왔으나, 이안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색다른 의견에 여기저기서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궁 지도를 살피며 이안의 말이 얼마나 타당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일리 있습니다. 2황궁 중앙 별관에서 3황궁 좌측 별관까지 가려면 건물 세 개를 지나쳐야 했으니까요.”
‘아, 여기서 저기까지 가려면 이렇게 갈 수밖에 없구나.’
진은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으며 끄덕였다. 갈 일도 별로 없었지만, 매일 마차를 타고 다녀 업무 보는 관리들의 고충을 알 수 없었다. 이들이 말하는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워서, 진은 심장이 쿵쿵 뛰는 기분이었다.
사락.
이안은 보고서를 넘기더니, 가볍게 손을 들었다. 수상이 눈짓으로 발언을 허락했다.
“마법부 보수에 관하여 묻습니다.”
“…보호막 덕분에 훼손된 부분은 없으나, 피해를 확인하긴 했습니다. 경미하여 제일 마지막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퀸타나는 의심하는 눈초리로 대답했다. 어째서 그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마법부 보수 공사와 함께 별관 건설도 진행하려 합니다.”
제안이 아니라 통보였다.
이안의 발언에 퀸타나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생전 웨슬리가 그토록 추진하려 했던 일 아니던가. 마리브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계속 무산되었지만.
“별관 건설이라니요?”
이미 황궁에서 마법부의 위상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증축까지 해버리면 권세가 더욱 세지지 않겠는가? 황궁에서 저들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다른 부서가 심적으로 짓눌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퀸타나는 단칼에 반박했다.
“반대합니다. 타 부서와 비교했을 때, 마법부는 인원 대비 충분한 업무 공간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는 예산을 낼 수 없습니다.”
“음, 저도 동의합니다. 이안 히엘로 경, 이번에 마법부가 크게 활약한 것은 인정합니다만, 별관 건설은 다른 문제입니다.”
몇몇 관료들 역시 단박에 아니 될 일이라며 들고 일어섰다. 그 기세가 생각보다 맹렬하여, 진은 저도 모르게 옆에 앉은 이안을 힐끔거렸다.
모두가 반대하는 화두를 던졌을 때, 이안은 무슨 생각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퀸타나 부장관.”
이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주 앉은 자들이 모두 입매를 딱딱히 굳히는 동안에도, 이안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예산을 책정할 때 그해의 것 외 5년 치를 따로 잡아둔다 들었는데, 맞습니까?”
“대략적으로요.”
전쟁, 자연재해, 혹은 이처럼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예산이 추가로 필요할 경우, 미래의 것을 끌어와서 쓰기 때문이다. 이안은 종이를 휙휙 넘기며 물었다.
“그렇다면 여기 적힌 예산에는 마법부가 미리 잡아두었던 루론석 분할금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겠네요.”
이안이 마법부에 루론석을 매각했을 때, 그 금액이 워낙 막대하여 한번에 값을 치르지 못했다. 대신 수년에 걸쳐 분할로 지급될 예정이었는데, 지금 그걸 말하는 것이다.
퀸타나가 말문이 막힌 채 이안을 쳐다봤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서.
“루론석 대금을 별채 건설로 돌리겠습니다. 저희 계산으로는 건설비보다 대금이 더 큰 것으로 나오는데요.”
차락.
다시금 서류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잡혀있는 대금 값이 사라지면 예산이 오히려 조금 남는다. 건물이 하루 아침에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건설비도 어차피 값을 나누어서 내기 때문에 국고를 따진다면 이안의 제안이 이득이다.
“그, 그렇게 되면 2년 치 예산을 당길 것도 없습니다. 1년 치만 미리 당기면 됩니다.”
“루론석 대금이 마법부의 몇 년 치 예산을 훌쩍 넘깁니다. 건설 진행해도 무리 없을 듯 합니다만.”
“허어. 이거 참, 크흠.”
안 그래도 황궁에서 황실 다음으로 예산을 제일 많이 떼가는 곳이 마법부였다. 퀸타나는 펜을 빠르게 놀리며 간단하게 숫자를 계산했다. 확실히, 예산을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루론석 대금만 없어진다면…….
“물론, 모든 것은 황궁이 안정되고 난 이후의 일입니다. 다만 재건에 관한 말이 나와서 이리 일러두는 것입니다.”
나 미리 말했으니까 나중에 가서 반대할 생각일랑 말라는 뜻이다. 저들 돈 저들이 알아서 쓴다고 하니 반대할 명분도 딱히 없지만. 사실상 마리브의 세력이 와해되어 총대 메고 나설 자들도 없었다.
“그리고 실담물약을 비롯하여 마법부에서 상용화를 준비 중인 마법 관련 물건이 꽤 있습니다. 이에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귀속한다면, 좀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퀸타나 부장관.”
이안이 싱긋 웃으며 마무리하자, 그녀는 펜만 핑그르르 돌리며 한숨을 삼켰다. 돈 내줄 것이 없으니 할 말도 없는 것이라. 퀸타나는 견제를 위한 맹목적인 반대를 할 입장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저희 쪽에서 따로,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시지요.”
한발 물러섰다. 예산을 쥐고 있는 퀸타나가 저리 나오니 다른 관료들도 쓴 한숨을 삼켰다.
탕탕!
“다음 안건입니다.”
수상이 봉을 내려치며 3황궁 별관 축소와 함께, 마법부 별관 건축 고려를 결정지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비슷한 상황이 흘러갔다. 관료들은 저들의 입장에서 최선의 의견을 내놓았으며, 조율하는 과정에서 답이 나왔다.
새벽이 왔으나, 진은 알아채지 못한 채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보고서 귀퉁이에는 이안이 적어준 설명이 늘어갔다.
“그러면 이만 마무리해도 되겠습니까?”
“아, 하나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발언하시오, 히엘로 경.”
끝마무리가 될 때 쯤. 이안은 진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진 저하의 거취에 관한 것입니다.”
“처소가 박살 났으니, 당분간은 2황궁 별관에서 지내는 것 아니십니까? 딜라이나 님도 그리 옮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진은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밝혀진다, 자신이 버림받은 아이라는 것이.
“당분간 딜라이나 님이 아니라 제가 모셨으면 합니다. 거취도 마법부와 가까운 곳으로 배정하고요.”
“어째서지요?”
“마리브 황자가 처소에 들이닥쳤을 때, 딜라이나 님이 목숨을 구걸하며 진 저하의 신병을 넘기는 걸 봤습니다. 저하의 상처가 그때 생긴 것입니다.”
이안의 말에 관료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무어라 하는 겐가?
“딜라이나 님에게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기대를 할 수 없다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저하, 저 말이 사실입니까?”
수상은 허리를 바로 세우며 진에게 물었다. 회의장의 모두가 진을 바라봤다. 연민과 동정, 경악, 황당함. 그 모든 시선이 뒤섞여 있었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