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1
제191화. 친권 제한
“세상에나, 제가 방금 제대로 들은 것 맞습니까?”
“딜라이나 님이 마리브 저하께 진 저하를 넘기셨다고요? 목숨을 구걸하는 대가로요?”
“수치입니다. 이럴 수는 없어요.”
“상처는요? 마리브 저하가 직접 내신 겁니까?”
“미치겠군. 이거,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길어진 회의로 수그러들었던 분위기가 단박에 달아올랐다. 아무리 서열이 낮고, 어리다고 한들 진은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였다. 게다가 사달의 주모자가 마리브와 게일 아니던가. 그들 다음으로 바리엘을 책임질 자가 쌍둥이 황자이거늘.
“진정들 하세요. 딜라이나 님의 입장도 들어보고 판단을 합시다. 아무래도 신탁을 염려하신 듯한데.”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아르센 저하께는 황가의 존폐와 관련된 신탁이 걸려있다는 것을요.”
딜라이나에게 우호적인 자들이 넌지시 거들었다. 목숨을 저울질할 수는 없으나, 신탁의 무게는 저울질할 수 있었다. 둘 중 하나만 살리라면 당연지사 아르센을 선택할 것이라고, 몇몇 관료들은 속으로 딜라이나를 두둔했다. 진의 옆에 버티고 있는 이안 때문에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오? 그렇다면 진 저하를 내놓는 대신 스스로를 내놓았어야지요. 그것이 보호자의 의무 아닙니까.”
퀸타나는 같잖은 소리 집어치우라는 듯 거칠게 일갈했다. 회의장이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자, 진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세게 쥐었다.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오만이었나 보다. 저를 두고 날아드는 수군덕거림이 망치처럼 심장을 때려댔다.
“딜라이나 님이 진 저하를 저버리셨다고?”
“그래서 아르센 저하만 데리고…….”
“이제 좀 알겠군. 이안 경이 진 저하를…….”
관료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의문을 해소했다. 어째서 딜라이나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르센을 후계자로 지지했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안은 대립각을 세웠는지 말이다. 딜라이나와 진 사이가 나뉘었으니, 이안이 그 틈을 파고든 것이라.
스윽.
진은 저도 모르게 이안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언제든지 옆에서 도와주겠다 하였으니, 지금도 저를 도와달라고.
이안은 진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걸 보고 안쓰럽게 웃었다. 이안이 진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아프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게, 완전히.
“압니다. 하지만 버티십시오.”
진에게 속삭이는 순간, 이안은 나움의 기억을 떠올렸다. 마법사에서 황제로 넘어가는 그날 밤. 친우로서는 마지막이었던 밤이었다. 나움은 이안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아이야, 황제가 될 아이야. 이것은 네가 한 번쯤 앓고 갈 홍역이니, 버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억하렴. 지금은 아프지만,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온다 한들, 너는 지지 않을 것이라.’
나움의 위로는 시간을 넘어 계속 전해졌다. 이안을 통하여 진에게, 그리고 언젠가 진도 자신의 아이에게 같은 말을 해주겠지.
“버티고 넘기면, 다시 오지 않을 일입니다. 온다 한들, 저하는 이기실 것입니다.”
꽈악, 이안을 붙든 진의 손아귀가 세졌다.
사실 알고 있다. 어미와 다른 길을 가기로 한 그 순간부터 알 수밖에 없었다. 관료들이 세차게 떠들어댈수록 딜라이나의 입지는 난감해질 것이고, 그것은 곧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걸.
“정숙하시오!”
쾅쾅쾅!
보다 못한 수상이 봉을 내려치며 소란을 잠재웠다.
“이안 히엘로 경. 방금 발언의 무게가 상당합니다.”
차마 책임질 수 있냐는 말은 하지 못했다. 황자인 진이 자신이 그 증거요, 증인이라 거들었으니까 말이다.
혹시 정신 지배 마법으로 수작을 부린 건 아닐까 싶었지만, 황가의 축복이 있는 이상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진 저하의 아픔보다는 가볍겠지요.”
이안의 대꾸에 수상은 한숨을 삼켰다. 그래. 다른 누구보다 지금 제일 힘든 것은 당사자일 터. 수상은 서둘러 회의를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저하, 여쭙습니다. 이안 히엘로 경과 함께 하시는 건 오로지 저하의 의지입니까? 황자께서는 황제 폐하 다음으로 이곳의 주인이시라, 원하신다면 마법부가 아닌 다른 곳에 거처를 삼으셔도 됩니다.”
“아니. 내 의지다.”
단호한 확신이었다. 수상은 마른 침을 삼켰고, 관료들은 잘게 탄성을 내지르며 눈치를 살폈다.
이쯤 하니, 돌아가는 판의 윤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터라. 회의장을 나서면 앞날을 도모하기 위해 선택해야 했다. 딜라이나와 아르센, 그리고 이안과 진 사이에서.
“수상님.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딜라이나 님의 친권 일부를 제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진 저하의 안위를 위한 것입니다.”
이안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수상에게 요구했다. 보호 및 신분에 관한 권리 일부, 재산 관리, 명령대리권 등등이 대표적이었다. 황제가 동결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수상은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주는 것보다 뺏는 것이 어려운 법이라.’
제한했다가, 문제가 생긴다면? 수상이 과연 마법부의 장관이자, 현 황궁의 실세를 꺾고 다시 권한을 가져올 수 있을까?
황제가 직접 나선다면 상관없으리라. 그의 명령은 어떤 상황에서든 하늘이고 땅이었으니. 하지만 대리인인 수상은 말 그대로 대리인일 뿐이었다.
“수상님?”
수상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술렁임이 다시 커졌다. 황제의 동결을 모르는 자들이 내는 소리였다.
“어찌 고민하십니까? 반역자에게 황자를 넘겼어요. 친권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고, 황제 폐하께서 일어나시면 그때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맞습니다.”
“맞습니다. 우선 안전을 위해 제한해 주십시오.”
“폐하가 저하의 안위를 정하기 전까지, 그것이 맞을 듯합니다. 진 저하도 이안 경을 깊게 따르는 듯하고요.”
“크흠! 누가 보면 딜라이나 님이 진 저하를 죽이려는 줄 알겠어요. 민망하여 듣기 괴롭습니다.”
“따지고 보면 영 다르지 않은데요?”
“자네, 방금 무엇이라 했는가? 경망하네!”
“두둔할 것을 두둔하십시오! 페하께서 알게 되면 기함하실 일입니다!”
동결을 모르는 자들이 저도 모르는 새 수상을 압박했다. 건강에 문제가 없다 하였으니, 곧 일어나겠지. 그러면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조용, 조용!”
쾅쾅! 콰앙!
수상은 신경질적으로 봉을 내려쳤다. 이안은 그들의 외침을 가만히 지켜보았고, 수상은 희끄무레한 수염을 매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거참, 상황을 어찌 이리 만드시나.’
난감하다. 거절하기에는 명분이 확실하고, 지켜보는 자들이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고 수락하기에는 이미 마법부로 권력이 치우쳤고, 이안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우려되었다.
“이리 결정할 사안이 아닌 것 같네만.”
“회의장을 나서면, 누군가 딜라이나 님에게 조르르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친권 제한 시도를 일러주겠지요.”
이안은 딜라이나를 두둔했던 자들을 하나씩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녹안과 마주친 관료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했다.
“저 역시 진 저하를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수상은 이안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나같이 그럴듯하게 맞는 말만 해대니, 결정권은 저에게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진은 다시금 진심을 담아 수상에게 일렀다.
“수상. 아버지인 황제 폐하께 맹세하여, 모든 것은 내가 직접 내린 결정일세. 나를 존중한다면, 나 역시 황궁에서 소중한 존재라면, 이안 경을 따라 나를 지켜주시오.”
“저하.”
“제발.”
마지막은 수상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였다. 잇새로 겨우 나온 애원이 수상에게 닿았다. 그는 봉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쉬이 떨어지지 않는 결정. 보다 못한 퀸타나가 첨언했다.
“수상님. 수상님은 누구보다 중립을 지키셔야 합니다. 사달이 난 지 이제 겨우 이틀째라, 혼란을 가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퀸타나, 그 말은 어폐가 있네!”
“지금 친권을 제한할 이유는 있지만, 제한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있다면 누구든지 말씀해 보시오!”
명분이 확실한데 이를 거절한다면, 수상이 딜라이나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안을 지지하는, 그리고 상황을 가엽게 여기는 자들이 입 모아 소리쳤다.
타탕! 탕탕!
결국, 봉이 울렸다.
가볍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조금의 체념을 담아서.
“이안 히엘로 경과 진 저하의 뜻을 따라, 딜라이나 님의 친권을 일부 제한한다. 하지만 이는 언제든지 번복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시오, 히엘로 경.”
주도권을 한번 넘겼으니 쉽지는 않겠다만, 언제든지 허튼짓을 했다간 견제당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이안은 가볍게 웃으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마음 깊이 전하는 감사의 인사였다.
“물론입니다. 성심을 다하여 진 저하를 모실 것입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맹세하지요.”
“이안 히엘로 경. 진 저하의 안위 확인을 위해 주기적으로 공식 석상에 동석하길 요청하오.”
누군가의 제안에 이안은 당연하다는 듯 그쪽으로 몸을 틀었다. 안 그래도 바라던 바. 대회의를 비롯하여 영향력을 내세울 수 있는 모든 곳에 진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저하, 언제든지 전언할 것이 있다면 편히 하십시오. 저는 행정부의 퀸타나입니다.”
“퀸타나, 고맙네.”
“저는 행정부의 그리피스입니다.”
“사법부 매팅글리, 시릴 폴슨, 하비 보드킨입니다.”
저마다 진을 향하여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진을 걱정하는 것이었고, 누군가는 보란 듯이 정치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을 보내온 것이다. 정확히는 진 뒤의 이안에게 알리는 중이었지만. 사실상 이쯤 하면 이안과 진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 그리고 황궁의 시체 수습이 끝났습니다. 내일 중으로 성문이 개방될 것입니다. 심하게 반파된 곳은 접근 금지하겠지만, 나머지는 제국민들에게 일상을 보이도록 하십시오. 이상입니다.”
“…일어나도록 하지.”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회의 때 뵙지요.”
“예에. 모두 고생하였소. 벌써 해가 뜨려 하는군.”
이안의 마지막 전달을 끝으로, 회의가 완전히 마무리됐다. 수상은 이안에게 다시금 눈초리를 쏘아댔고, 이안은 방긋 웃으며 응수했다.
“히엘로 경, 이러면 곤란해.”
황제의 동결은 베올스와 딜라이나, 수상 그리고 이안만 알고 있는 극비리 사안 아니던가. 그걸 이용하여 여론을 이리 몰다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 저하를 잘 모시어. 내 지켜보겠네.”
수상은 관료들에게 둘러싸인 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상처가 유독 도드라지게 보였다. 마지막까지 결정하지 못했던 그가, 봉을 내려치게 만든 원인이었다.
“들어가십시오.”
이안은 꾸벅 인사하며 수상을 배웅했고, 이내 진에게 다가갔다. 퀸타나가 연신 진의 손을 맞잡으며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혹여 이안 경이 못된 말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진 저하의 심기를 거스르면 바로 행정부로 오십시오. 제 집무실은 5층 오른쪽 복도에 있습니다.”
“퀸타나 님.”
“…….”
이안의 부름에 퀸타나가 대꾸 없이 고개를 돌렸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으나, 시선이 물러나지는 않았다. 퀸타나가 격식 있게 인사를 남기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럼 이만.”
“잘 가시오, 퀸타나!”
“예. 저하. 이안 경도 쉬십시오.”
끼이익.
회의실이 한산해지자, 로만드로가 냉큼 달려와 진에게 외투를 걸쳐주었다. 이안은 손수 단추를 잠그며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저하. 첫 의지가 모두에게 닿았습니다. 그리고 대회의에서도 아주 잘 하셨어요.”
“고맙네.”
배시시 웃던 진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이가 환히 보일 정도로.
“다들 생각보다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더군. 이런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네.”
진이 그동안 황궁에서 만났던 자들이라고는 황가 일원, 가정교사 그리고 시종들뿐이었다. 관료들은 그저 다른 나라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이안은 마지막까지 옷매무시를 다듬어주며 대꾸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하는 귀하신 분이라고요.”
저 멀리, 마차 옆에 서 있는 베릭과 시아오시. 진은 손을 크게 흔들며 둘을 불렀다. 계단을 먼저 내려가는 진의 발돋움이 유독 활기찼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며 로만드로에게 물었다.
“딜라이나 쪽은?”
“하이만 가와 아직 대면 중입니다.”
“관료들 회의보다 할 말이 많은가? 대단하시군.”
이제 곧 딜라이나에게 친권 제한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이안은 마차에 올라탄 진이 손짓하는 걸 보며 방긋 웃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