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3
제193화. 마리브 심문
황궁의 안과 밖을 가르는 거대한 출입문.
“이보시오!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시오!”
“오늘까지 세금 내야 하는데, 못 들어가게 하면 나보고 어쩌라고? 책임질 것인가? 나중은 모르겠고, 우선 들여보내 주시게! 아, 중간에 들어간 자들이 있다며!”
“제발요! 아버지가 들어가셔서는 안 나옵니다!”
“폐하가 돌아가셨다는데 사실인가?”
“폐쇄 직전, 게일 저하가 습격을 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아마 그것과 관련된 일 같은데, 흐음.”
“들어갔던 중앙 귀족들도 안 나오는 걸 보면 이거 심상치가 않아.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크게 걱정하지 마시게. 어제 관료들이랑 황궁 납품자, 몇몇 귀족들이 들어갔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진행이 되고 있는 것 아니겠나.”
문지기들은 발치에 몰린 군중을 애써 무시하며 정면만 바라봤다. 안쪽에서 일어난 일은 절대 함구라, 혹여 누설한다면 허공의 마력 빛이 머리통을 터트릴 것이다.
“왼쪽 걸쇠를 풀어라.”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상관의 명령. 왼쪽 걸쇠라 하면 출궁하는 자가 있다는 말이로다. 문지기들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신속하게 걸쇠를 풀고 빗장을 내렸다.
끼이익.
고작 며칠 닫혔거늘, 성문은 오랜 시간 잠겨있었던 것처럼 요란한 쇳소리를 내었다. 인기척에 주위가 일순 조용해졌고, 틈이 점점 벌어질수록 사람들의 입 역시 벌어졌다.
“누, 누가 나온다!”
“나온다! 황궁에서 사람이 나와!”
역사상 유례없던 황궁의 폐쇄였다. 그걸 깨고 밖으로 나선 자가 대체 누구인가? 긴장감과 기대가 솟구치는 순간, 말 한 마리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그 등에는 붉은 머리칼의 소년이 타고 있었다.
“엥? 뭐여? 다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대?”
“누, 누구인지 아는 사람 있나?”
“어려 보이는데, 거, 검사?”
“비켜비켜, 바빠! 말에 치여도 난 몰라. 알 바 아님!”
“이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알려줘!”
“다들 무사하시나? 바리엘은 어떻게 되는 건가?”
“어어? 비키라니까? 뒤지고 싶냐?”
히이잉!
말이 놀라서 앞발을 들었으나, 군중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보다 못한 문지기들이 창으로 막아서서 길을 터주었고, 베릭과 길잡이 경비는 말 옆구리를 세차게 차서 혼란을 빠져나왔다.
타닥타닥!
‘다들 왜 저래? 여긴 또 왜 이러고?’
군중들은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베릭의 뒤를 쫓았다.
고작 사흘이 지나는 시간. 황궁 인근은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나라가 어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영업을 중단한 가게들이 다수였고, 길가에는 쓰레기와 오물 따위가 잔뜩이었다.
영문 모르게 피를 흘리고 쓰러진 자들도 간간이 보였다. 명령 주체를 잃은 경비대가 제 역할을 못 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베릭 님, 이쪽입니다!”
“어? 여기 아니라?”
“거기는 돌아가는 길입니다!”
앞서 달리던 베릭은 길잡이의 외침에 말고삐를 반대로 당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얼마 안 가 로만드로의 자택이 보이는 게 아닌가! 이쯤 하니 베릭은 자신의 방향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서서히 인정해야만 했다.
“비비안나! 미니!”
마당에 인기척이 느껴지자마자, 두 사람이 달려 나왔다. 계속해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비안나는 부푼 배를 감싸며 울먹였다.
“베릭 님! 어찌 된 것입니까? 남편은요?”
“걱정하지 마. 이안이랑 일하느라 바빠. 그것보다 이거, 이안이 전해주래.”
로만드로가 무사하다는 말을 들은 비비안나는 저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다. 미니가 부축하는 걸 뒤로 한 채 다급히 쪽지를 열어봤다. 글자를 훑는 여인의 눈매가 당혹스럽게 휘었다.
“이게, 이게 진실입니까?”
“난 몰라. 글자 못 읽어서.”
“미니, 신분증과 외투를 가져와. 언론사로 가야겠다.”
“아, 네네! 잠시, 잠시만요!”
“그리고!”
비비안나가 새되게 소리쳤다. 바들대는 목소리와 달리, 눈빛에는 결연함이 가득했다.
“…호신용품도.”
“아, 알겠습니다.”
뜻밖의 말이라, 미니가 움찔거렸으나 되묻지 않았다. 상황이 급박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비비안나는 잔뜩 구겨진 쪽지를 다시금 읽어내렸다.
-비비안나, 로만드로는 무사하니 걱정하지 마시게. 황궁에서 마리브와 게일 황자가 패권을 잡기 위해 격돌했으나 마법부의 주도로 문제없이 제압하였네. 오후 다섯 시, 성문이 개방될 것인데 그 전에 언론사를 통하여 진실을 알려주시게. 혼란을 틈타 날조하려는 자들이 판을 치니, 분명히 하여야 하네.
오후 다섯 시. 그 전에 바리엘 전역에 호외가 쏟아져야 한다. 비비안나는 시계를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언론사 위치를 떠올렸다. 동선이 복잡하여 시간이 촉박하다.
-또한, 정세로 보아 마법부에 반하는 자들과 다시금 격돌할 듯한데, 로만드로는 나의 측근이요, 그대는 로만드로의 소중한 연인이니, 내게도 소중하다. 위험이 있음을 반드시 명심하고 조심하시라. 사태가 진정되는 즉시 경호를 붙여주겠네. 아래는 보도에 반드시 첨부할 문장이네.
마리브와 게일의 충돌에서, 이안은 옆에 비켜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역시 상대 세력과 정면으로 충돌할 때라, 비비안나는 두 손을 간절히 모은 채 기도를 올렸다.
-‘마리브와 게일 황자가 황궁을 혼란스럽게 하였으나, 마법부의 중재 아래 신병을 무사 확보했다.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대립 세력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마리브와 게일 황자를 노리고 있는 대립 세력이 있음을 알리는 문장이었다. 그것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각자의 잔병일 수도 있고, 혹은 제삼의 가짓수를 뜻할 수도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훗날을 대비하여 포석을 깔아두는 것이다. 마법부는 황가를 보호하는 존재요,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 한들 반대 세력의 짓이라고.
“마님! 여기요, 다 챙겼습니다!”
“갑시다, 베릭 님!”
“말 탈 수 있겠어?”
“물론이지요. 서두릅시다!”
베릭은 비비안나를 말 위로 끌어 올린 다음, 고삐를 쥐었다. 그리고 힘차게 발길질하며 소리쳤다. 비비안나는 기겁하며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이랴! 가자!”
“베릭 님, 반대쪽!”
“반대반대, 반대로 가자!”
히이잉!
비비안나를 태운 말이 서둘러서 저택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한 기사.
가슴팍 와펜에는 하이만 가의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황궁으로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며, 성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작의 수하였다.
타닥타닥!
그의 말 역시 재빠르게 베릭과 비비안나가 사라진 곳으로 따라붙었다.
* * *
아침의 햇살이 점점 익어가는 점심.
진은 겨우 눈을 뜨며 베개에 이마를 비볐다. 시아오시가 인기척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와 이불을 정돈해 주었다.
“기침하셨습니까.”
“…이안 경은?”
“집무실에 계십니다.”
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꿈 같은 어젯밤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터라. 난생처음 대회의에 참석하였고, 자신을 걱정하는 관료들을 만났다. 친권에 관한 자신의 의지 역시…….
“어머니는?”
“예?”
분명 친권 제한이 이루어진다는 걸 전언 받으셨을 것이라. 어머니가 상처받지는 않으셨을까. 아니면 진노하여 저를 원망하지는 않으셨을까, 반응이 걱정되어 잠이 달아나는 기분이다.
“어머니는 어쩌셨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나나 이안 경을 만나러 오지 않았는가?”
“…송구하옵니다.”
시아오시는 시선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들 하지. 이제는 어미와 자식 간의 인연이 끊어져도, 그저 받아들이시는 건가.
진이 다시금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저하.”
“괜찮다. 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을 깨려는 것이네.”
깨어나자. 꿈 같은 미련을 깨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이자. 꿈은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지대로, 움직이자!
벌떡!
진은 씩씩하게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안과 옷 단장 등, 본궁에 비하면 시종이 부족하여 불편할 터지만 불평하나 없이 해냈다.
밖으로 나가자, 바쁘게 오가는 마법사들이 웃으며 진을 맞아주었다.
“저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대회의에 가셨다지요?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저희 안건이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고 다들 감사해하고 있답니다.”
물론, 예의 차린 인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진은 기꺼이 받아주었고 마법사들은 더더욱 찬사를 보내며 아이를 보듬어주었다.
“아닐세. 다들 오늘 하루 고생하시오.”
“감사합니다. 아, 저하! 이안 님은 지금 집무실에 안 계십니다만.”
진과 시아오시가 이안의 집무실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아챈 마법사가 몸을 빙글 돌려 저지했다.
“그러면?”
“그, 마리브 황자께서 정신 차리셔서요. 심문 나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별탑이니 그리 멀지는 않아요. 금방 오실 것입니다.”
별탑. 진은 마법사가 가리킨 서쪽 작은 탑을 쳐다봤다. 걸어서 가면 십 분 내로 당도하는 곳이다. 아이는 시아오시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고갯짓했다.
“별탑으로 가지.”
“저하.”
“이안 경이 아니라 마리브 형님을 보려는 것이다.”
궁금했다. 어미는 다르지만 마리브와 저는 황제의 자식으로 한 피가 흐르는 혈육이지 않나. 그런 저를 죽이려 하였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혔으니 이에 관한 일말의 태도를 직접 보고 싶었다. 또한…….
“지금이 아니면 재판에서나 형님을 보게 되겠지.”
황실의 명예와 존엄을 위하여, 그는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새로 재판장에 설 것이라.
“내 기억 속에는 어디까지나 완벽한 형님으로 남을 터인데, 나는 그것이 싫다.”
노쇠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바리엘을 책임졌던 1황자. 누구도 섣불리 거스를 수 없었던 맏형 중의 맏형. 찬란한 금발과 우아한 몸짓이 황실의 모범이라 여겨졌던 마리브였다. 그런 형제가 이토록 참담한 사달을 일으켰으니, 진은 기억 속 마리브의 온전한 이미지를 지워내고 싶었다.
타앗!
진이 망설임 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자, 시아오시도 그 뒤를 따랐다.
곧 있으면 성문이 열린다. 하여, 모두 최대한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어린 황자가 그들 틈에 스며들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바쁘게.
끼이익.
“진 저하이십니다.”
시아오시의 전언에, 별탑 경비가 꾸벅 인사하며 몸을 틀어주었다. 눈에 익은 마법사들이 몇몇 보인다. 진은 낯선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이안과 마리브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아, 상단?”
“…호박색 원석은 어디서…….”
마리브와 이안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마법사를 위협했던 의문의 원석에 관해 심문이 이어지고 있나 보다. 진이 가까이 다가가자, 문득 마리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이안, 네가 왜 아르센이 아니라 진에게 붙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다른 건 다 이해가 되어도 그것 하나만큼은 모르겠어.”
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마법사들이 인기척을 내려고 했으나, 황자가 다급히 옷자락을 쥐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알 것 없습니다.”
“알 것 없는 게 아니라 이유가 없는 건 아니고?”
“…다음 질문입니다. 제시한 상단에서 유통되는 자금이 마리브 저하와 관련 있습니까?”
“진을 지지하는 게 겉으로만 그런 것이라면, 그래. 이유가 없을 수도 있겠군. 나와 게일 사이를 농락했던 자이니, 그런 애 하나 구슬리는 것쯤은 문제될 것 없지. 내가 네놈 속을 모를 줄 아는가?”
타악.
“마리브 저하.”
마리브가 낮게 웃자, 이안은 서류철을 소리 나게 덮었다. 마법사의 옷자락을 쥔 아이의 손이 조금씩 떨렸다. 이안의 대답을 기다리는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좀, 닥쳐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