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6
제196화. 호외요
바르사베의 손바닥 아래로 푸른빛 단검이 일렁였다.
마력으로 만들어 낸 무기라. 그녀는 베릭을 제 쪽으로 끌어당김과 동시에 온 힘을 담아 갑옷 위로 단검을 내려쳤다.
채앵!
솨아아아!
정확히 쇄골이 있는 자리였다. 일반인이었다면 바로 즉사했을 정도로 강력하고 군더더기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바르사베의 마력검은 갑옷에 부딪히며 모래처럼 파훼되었다. 사그라지는 빛줄기가 몹시도 놀라워, 바르사베는 저도 모르게 몸을 낮췄다.
“…저것들 뭐야.”
일격에도 흠집만 새겨졌다. 마검사의 공격을 받아내는 갑옷이라니. 마력석으로 만든 것인가?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이만, 아오, 쳐 죽일 새끼들. 졸라 아프네, 진짜.”
베릭은 숨쉬기 어려운지 조금 껄떡이며 제 옆구리를 문질렀다. 그의 중얼거림에 바르사베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은행을 지키는 경비와 비슷한 디자인의 갑옷이긴 하다. 그런데 그들이 어째서 이러고 있지? 그것도 베릭을, 정확히는 를 위협하며?
“어금니, 너 어디서 튀어나왔어?”
“네놈이 성문을 나올 때부터 따라왔다.”
“미행하는 취향이 있나 보네. 질 낮게.”
“하.”
이 멍청이가 지금 누구보고 질 낮다는 것인가? 바르사베는 이를 바득거리며 베릭의 멱살을 붙잡았다. 저들과 대치 중인 갑옷 무리는 이미 신경 밖으로 나간 지 오래다.
“미친놈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놈한테 그런 소리 들을 수는 없지. 터지고 있는 걸 구해줬더니, 뭐?”
“아하. 그건 감사감사. 근데 너 전적 있잖아. 저번에도 이안이랑 나 미행하다가 어금니 나갔으면서?”
“닥쳐! 제이럿 님의 명으로 대기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온 게 네놈이라 따라온 거라고!”
중간에 성문이 열렸을 때, 제이럿은 입궁하면서 몇몇 부하에게 지시를 내려놓았다. 혹시 모르니 밖에서 대기하여 치안을 유지하고 상황을 파악하며, 혹여 연락이 끊어진다면 도모하여 재결집하라는 뜻으로.
“넌 왜, 어떻게 나왔어?”
“이안이 심부름.”
“다들 무사해?”
“네 친구들? 글쎄다? 아마 그러지 않을까? 아아, 리아마라고, 같은 소속이지? 그 여자는 죽었어. 저것들이 죽인 거로 알고 있다.”
베릭이 고갯짓하자, 바르사베는 제가 잘못 들었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이놈이 지금 뭐라 하는 것인가? 리아마 님이 돌아가셨다니? 삼대장 중 한 분이신 리아마 님이? 저 갑옷들에게?
“황궁에서 저 새끼들이 개판 오지게 쳐놨거든. 이안이 그거 수습한다고 피똥 싼다, 진짜. 퉤!”
단서가 단편적이지만 확실했다. 베릭이 흑검을 바로 잡았고, 다시금 날아오는 주먹을 흘려보내듯 쳐내며 돌진했다. 바르사베는 멍하니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리아마가 당했다.’
“안 돼!”
“으앗!”
촤아아악!
서늘함이 번뜩이자, 바르사베는 재빨리 베릭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중심축이 무너진 베릭은 술에 취한 것처럼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다리를 탈탈 털어댔다.
“뭔데?! 방해하지 마!”
“등신아, 리아마 님이 당했다며? 우리가 동시에 덤벼도 절대 못 이겨.”
삼대장이라는 칭호가 괜히 내려지는 게 아니었다. 세상의 존엄이라 불리는 황제를 바로 옆에서 보필하고, 호위하는 최강의 기사에게만 내려지는 명예로운 것이었으니.
그중 한 명인 리아마가 당했다면 두 사람에게 승산은 없다.
“못 이겨? 그걸 누가 정하는데?”
“정하고 말 것도 없어. 이미 정해졌어.”
“어금니 빠진 주제에 말 잘하네.”
“야!”
“나는 이겨!”
“죽는다니까?!”
“비비안나 못 지키면 이안이 혼낸다고!”
타닥타닥! 콰앙!
촤아악!
베릭의 머릿속에는 강함과 약함의 우열 따위는 없는 듯했다. 그저 이긴다, 죽인다, 꺾는다. 그것만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안광을 번득이며 덤벼들었다.
베릭은 한꺼번에 쏟아지는 공격의 틈을 파고들며 놈들 안으로 스며들었다.
“등신아!”
까득, 바르사베는 이를 갈며 함께 뛰어들었다. 그러곤 베릭의 뒷목을 노리는 주먹을 겨우 쳐냈다.
채앵!
“나는 이겨!”
“아, 진짜!”
“X발, 나는, 이기는 것밖에 몰라!”
콰아아앙! 쾅!
퍼어엉!
베릭이 허공으로 날아들어 상대의 투구를 내려치는 순간, 흑검이 보랏빛으로 발광하여 엄청난 충격을 터트렸다.
인근의 건물 유리창이 순차적으로 깨졌고, 바닥에는 균열이 갈 정도였다. 정통으로 맞은 자가 휘청이며 겨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위험해.’
쩌어억.
투구에 실금이 갔다. 갑옷을 입은 수하는 그 틈으로 베릭의 번뜩이는 눈과 마주쳤다.
저게 사람 새끼 눈인가?
붉게 타오르는 것이 홍염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안에 사람 새끼 있는 거 맞네. 히.”
“이, 이런 미친…….”
“나 생각 바꿨다. 한 놈만 팬다.”
콰앙! 쾅!
퍼어억!
땅을 딛고 날아들 때마다 공격 서너 개가 빗발쳤다. 베릭은 크게 웃으며 한 지점만 노려댔다. 금이 가 상대를 확인할 수 있는 그곳.
“이거 죽이면 내가 리아마보다 센 거겠지? 앙?”
“미친개도 이리 까불지는 않는다.”
촤아악!
쿵!
다른 자가 베릭의 머리통을 잡고서 그대로 벽에 내던졌다. 십수 미터를 날아가 담벼락에 꼬라박힌 베릭은, 목이 움직이지 않는 걸 깨달았다.
“아. 아아. 씨, 뒤질, 아오.”
“소란이 크다. 경비대 오기 전에 서둘러 정리하자.”
“안 올 것 같은데. 황궁 폐쇄된 이후로 경비대 얼굴 본 지 꽤 됐어.”
우드득. 아득.
베릭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뼈가 조각났는지를 가늠했다. 다행히 조금씩 움직인다.
그가 핑핑 도는 눈앞을 겨우 털어냈을 때. 바르사베가 베릭과 갑옷들 사이를 가로막으며 검을 겨누었다.
처억!
“네놈들 주인은 알고 있는가?”
“비켜라. 먼저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주인은 내가 이러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네놈 주인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바르사베의 일갈에 다가오던 자들이 멈칫거렸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생각과 판단이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여과를 거칠 것 없이 내뱉어졌다. 일분일초가 다급하니, 이는 당연했다. 제발 얼추 맞아떨어지길 바랄 뿐이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황궁이 폐쇄되었으니, 저들 역시 하이만에게 직접 명을 받은 것은 아닐 터. 그저 주인의 계획을 알고 있고, 그에 반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이리 나선 것이라.
“베릭, 당장 말해! 너, 누구의 명을 받고 왔지?”
“나, 이안이라니까?”
느닷없이 그건 왜 물을까 싶다. 베릭은 흙먼지를 툴툴 털어대며 몸을 일으켰고, 이내 뒷짐 진 바르사베가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오른쪽? 왼쪽?
하나? 주먹? 땅?
뭔데?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의 명으로 업무 수행 중이다. 계속 방해한다면 이를 황궁에 알릴 것이요, 그대들의 주인에게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겠어.”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그런데 나는 살아있지. 마법부에서 조사할 때 실담물약 먹이는 거 알고 있나? 아무리 모르는 일이었다고 한들, 네놈 주인도 책임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아, 무례했군. ‘하이만 공작’님이라 할 걸 그랬나?”
타앗!
바르사베는 일부러 마력을 흩뿌려 놈들의 시야를 차단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빛줄기 사이로 흐트러지는 인영. 분명 바르사베는 한 명이건만, 두 명의 그림자가 좌우로 갈라져 사라졌다.
“쫓아! 황궁으로 가는 게 분명하다.”
“마검사 아니랄까 봐 수작질 하나 하고는.”
“오른쪽 두 명, 왼쪽 두 명! 잡아서 죽여라.”
“외부와 접촉하기 전에 잡아.”
“한 명이 여길 정리해!”
다섯 기의 갑옷 중, 네 기가 좌우로 갈라지며 바르사베의 뒤를 쫓았다. 는 한 귀퉁이에 딱 붙어있고 바르사베는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내달리니 추격대가 많이 붙는 게 당연하다.
타닥타닥!
쿵! 쿵!
사라지는 갑옷들을 보며, 베릭은 이제 좀 알겠다는 듯 웃었다.
‘오른쪽, 왼쪽, 하나, 주먹, 땅.’
오른쪽 왼쪽 갈라져서 유인할 터이니, 너는 한 놈을 맡아 싸워라. 아니면 뒈지든지.
“아하하! 미친. 어금니 저거, 앞니까지 털리겠네.”
“곧 죽을 놈이 웃어?”
“당연히 웃기지 등신아. 지금 쟤가 네 명 맡고 내가 한 명 맡았는데. 아, 얼탱방탱. 뒈지긴 누가 뒈져? 크크.”
퉤!
베릭은 피가 잔뜩 섞인 침을 내뱉으며 흑검을 다잡았다. 씨익 웃으니 치아가 훤히 보였다. 모조리 피에 젖어 시뻘겋다.
상대는 침을 꼴깍 삼키며 주먹을 다잡았다.
갑옷을 뚫고 느껴지는 미친 자의 기백. 힘의 우위에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상대의 에너지가 뜨겁다.
“이안이가! 통돼지-”
“닥쳐라!”
“사준다고! 했는데에에에!!”
콰아앙! 쾅!
격돌하는 굉음.
비비안나는 단도를 두 주먹으로 단단히 쥐며 어깨를 떨어댔다. 건물 안에서는 소리만 들릴 뿐,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철컥철컥, 위잉.
탁! 타닥! 지익!
인쇄기가 돌아가는 와중, 직원들은 쉬지 않고 타자기를 두들겨댔다. 똑같은 문장을 계속해서 찍어내고, 또 찍어내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호외를 만들기 위해.
콰앙! 퍼엉!
철컥철걱! 탁탁!
“으아아악! X발아!”
“종이 넘겨서 뒤집어!”
“잉크가 모자랍니다! 안쪽 창고에서 가져와요!”
“뒤져! 뒤져! 으아아악!”
“복사하는 동안 손으로도 찍어내! 계속!”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일정하고 단조로운 소음과 바깥에서 들려오는 폭력적이고 간헐적인 굉음이 조화로운 부조화를 만들어 냈다. 비비안나는 계속해서 신께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부인!”
“아!”
모두 상기된 얼굴이었다. 흥분과 긴장으로 점철되어, 땀까지 흘려대는 모습이다. 직원이 시계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제 곧 있으면 다섯 시였으니.
“되었습니다. 이제 나갑시다!”
“그, 아, 주세요! 거들게요!”
“뒷문으로 나가면 저희 짐마차가 있습니다. 거기에 호외지를 실어서 큰 도로로 나가요! 최대한 황궁 가까이로 가며 뿌립시다!”
“가자! 여기 문 잠그고 나와! 위험해!”
“어허, 서두르자!”
한 시간 동안 찍어낸 종이가 상자로 열 상자였다. 비비안나는 팔을 걷어붙이며 그것들을 마차로 옮겼고, 이내 마부석 옆에 자리했다.
“마차에 못 타는 자들은 우선 몸을 피하세요! 다섯 시, 황궁 문이 열립니다! 안전해지면 다시 봐요!”
“부디, 부디.”
“네. 부디.”
길게 말을 나누진 않았으나, 그들은 눈빛으로 안녕을 빌었다. 미니와 직원 한 명이 짐마차 뒤에 타서 상자 묶은 것을 단단히 쥐었다.
히이잉!
타닥!
“이럇!”
소란으로 불안해하던 말은 이때다 싶어 힘차게 달렸다.
곧 건물을 돌아나온 비비안나는, 건물 입구 쪽을 보며 경악스럽게 입을 가렸다. 핏물에 절여져 너절해진 베릭이 두 손으로 입구 틀을 잡고서 꺾여있는 게 아닌가.
“베릭 님!”
“아, 씨…….”
“베릭 님!”
“젠장!”
갑옷 한 기가 아차 싶어 마차를 따라가려 했으나, 이내 발이 묶여 버렸다. 몸을 돌돌 말아 딱 잡아대는 베릭 탓이었다.
“…어딜 가.”
“비켜라!”
“…응, 까지 마세요.”
타닥타닥!
비비안나는 고개를 뒤로 틀어 베릭을 쳐다봤다. 동공 외 모든 것이 붉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소리쳤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이안이, 데려와.”
“살아 계십시오! 살아 계십시오!”
마차는 익숙하게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변을 달렸다.
최근 사흘 동안 거리로 나오는 자들이 거의 없었다. 미니는 저 멀리서 사람이 보이자, 울며 종이를 뿌렸다.
“호외요! 호외입니다!”
“호외요! 황궁에서 마리브와 게일이 격돌하였다!”
“마법부가 중재하여 수습하였다!”
“호외요! 호외!”
타닥타닥!
마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작은 종이들이 휘날렸다. 길가에 붙어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집어들어 읽어내렸고, 이내 황궁 쪽을 바라봤다.
“호외다. 드디어 뭐가 들려오는구만!”
“나도 좀 주시오!”
“마리브 저하랑 게일 저하가?”
“폐하는? 이런, 미친! 황자들이 대체 뭐하는 거야?”
“호외요! 호외!”
데엥-! 뎅!
저 멀리 들리는 종소리.
다섯 시를 알리는 소리였다.
비비안나는 흩날리는 머리칼을 하나로 잡으며 내질렀다.
“호외요! 곧 있으면 황궁 문이 열립니다!”
데엥! 뎅!
그와 동시에 굳게 잠겼던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앞에서 기다리던 군중들이 술렁이며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다.
“호외요!”
촤아악!
그 틈을 빠르게 통과하는 날카로운 바람.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비안나가 타고 있는 마차로 향했다.
“마법부에서 황궁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어? 어어?”
마차 고삐를 쥔 사내가 가까이 다가오는 찬 기운에 더듬거리며 멈칫거렸다.
바람이었다.
베일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주 날카롭고 거대한 바람.
“호외요!”
파다다닥! 파닥!
촤아악!
바람이 마차를 관통했다.
흐트러지게 쌓여있던 종이가 일순 허공으로 치솟았고, 이내 기류를 타고 사방으로 번졌다.
마치 신년회를 앞두고 마법부에서 보여주었던 꽃가루처럼, 호외가 온 바리엘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