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7
제197화. 성문을 열다
바람은 더더욱 멀리, 높은 곳까지 치솟았다.
모든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꽃잎처럼 휘날리고, 첫눈처럼 떨어지는 저 흰 종이에, 그간의 의문이 모두 담겨 있다는 걸 짐작했으니. 성문이 천천히 열렸으나, 제각각 호외를 읽어내림에 정신이 없었다.
끼이익.
“비비안나!”
“이안 님!”
굳게 닫혀있던 성문이 어느새 활짝 열려있었다. 그녀는 지금껏 살아오며 바람의 시작점을 느껴본 적 없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 바람은, 정통으로 마차를 꿰었던 이 바람은 황궁에서 시작된 것이라. 정확히는 이안과 그의 마법부에서.
“성문이 열렸다!”
“마리브 저하와 게일 저하가 난을?”
“이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뭘 어떻게 돼? 두 황자 다 참수지. 쯧쯧.”
“사리가 밝으신 분들 아닌가. 어쩌다가…….”
“그러고 보니, 폐쇄 전날 중앙 귀족들이 들었잖아. 격돌에 참여한 것이라면, 그들도 무사하지 못하겠어.”
“잠깐, 우리 거래처 가문도 전날 궁에 들었는데!”
“성문이 열렸다니까? 다들 줄 서시오!”
이안은 흐트러진 광경을 보며 문지기에게 눈짓했다. 마차를 먼저 들이라는 뜻이었다. 오후 다섯 시.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혼자인 비비안나는 계획 밖이었지만.
“비켜라! 마차를 들일 것이다!”
채앵! 챙!
문지기들은 창을 들어 길을 텄다. 그 틈을 겨우 비집고 황궁으로 들어선 마차. 이안은 내리는 비비안나를 부축하며 물었다.
“비비안나, 무사한가?”
“예, 예예. 저는 다친 곳 하나 없습니다. 이안 님은 괜찮으십니까? 남편은요? 베릭 님이 무사하다고는 하였는데, 걱정이 되어…….”
“로만드로 역시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하다. 2황궁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곧 만날 것이라.”
“하아. 다행, 다행입니다.”
그녀는 가슴 부근을 짓누르며 안도의 숨을 토해냈다. 이안은 마차 바퀴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보고서 인상을 찡그렸다.
“어찌 된 일이지?”
“아! 베릭 님!”
비비안나는 턱으로 떨어지는 땀을 닦아내다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참담하였다. 마검사가 아니었다면 진즉 죽었을 몰골이라, 그녀는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이안의 소매를 붙잡았다.
“를 중심으로 하여 호외를 찍어내는데, 검은 갑옷의 괴한들이 습격하였습니다. 바, 바르사베라 하였던가요? 그때 저택으로 반지 유품을 가지러 온 기사님이요. 그분께서 도와주시었지만, 생, 생사는 모르겠습니다. 베릭 님도, 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비비안나는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검은 갑옷의 괴한이라. 이안은 그것이 하이만 가의 잔당임을 바로 알아챘다.
‘갑옷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데.’
사리 판단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작당한 게일이 아직 살아있고, 공작은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그런데 갑옷을 전면으로 끌고 와 이안의 부하를 노린다? 이는 제 살 갉아먹는 패착이라, 절대 하이만 공작의 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성문 폐쇄로 하이만 공작의 지시가 따로 들어갔을 리 없다. 미리 내려놓았던 명령이 상황을 읽지 못하고 이행됐을 가능성이 있군.’
잔챙이 좀 붙어봤자 베릭 혼자서 충분히 저지 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게 실수다. 이안은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비비안나.”
고마움과 미안함이 잔뜩 담겨 있는 인사였다. 다친 곳 하나 없다던 말이 무색하게, 긴 생채기가 나 있었다. 이안은 비비안나를 안아주며 다독였다.
“잘 해내었네.”
“도움이 되어 다행입니다. 저 역시 바리엘의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언젠가 다시 황궁을 위해 일할 사람입니다.”
비비안나는 방긋 웃으며 머리칼을 정돈했다. 로만드로가 본다면 걱정할 게 분명했으니.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저기, 이안 히엘로 장관님? 맞으십니까?”
“그렇네만.”
“호외를 찍어낸 의 사장입니다! 제가 명함이, 이게 너무 정신이 없어서요. 아하핫! 저기, 부인?”
자신을 소개해 달라는 사내의 눈짓에 비비안나가 잘게 탄성을 터트렸다. 오는 게 있으니 이제는 갈 차례다.
“여러 사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와중, 에서 호외를 아주 신속하게 찍어주었습니다. 그 치하로 황궁에서 있었던 사흘간의 내막 보도를 독점 발행하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비비안나가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여러 사정이라는 말 속에서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이안은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에 다른 언론사와 접하지 말라는 권고를 내리지. 당장은 수습할 일이 많으니, 대기하라.”
“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비비안나! 비비!”
타닥타닥!
사내가 허리를 꾸벅 숙이자, 뒤에서 로만드로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는 짤막한 다리로 허겁지겁 달려와 아내를 꽉 껴안았다.
“아이구, 비비. 보고 싶었네!”
“무사하십니까? 안색이 안 좋아요.”
“밤낮없이 일해서 그래. 비비는? 우리 아가는?”
“무탈합니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부부는 코를 비비며 서로 간의 사랑과 숨결을 확인했다.
이안은 그런 두 사람을 뒤로한 채 돌아섰다. 황궁 경비대가 절도있게 경례하며 이안의 명령을 기다렸다.
“마도구 앞으로.”
“마도구 앞으로!”
“게일 저하 처소에 있는 치유 마법사들을 부르고, 말을 내와라. 밖으로 나갈 것이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안이 마법부에서 상황 종료를 알릴 때 썼던 확성용 마도구다. 활짝 열린 성문 밖, 구름떼처럼 몰려든 군중이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그러면 이제 들어갈 수 있나? 안에 있던 사람들도 나오나? 마리브와 게일이 격돌했다는데, 그게 진짜인가? 웅성대는 소리는 뭉개졌으나, 각기 의구심은 또렷했다.
“최대한 멀리까지 들을 수 있도록 설정하라.”
“예, 알겠습니다.”
마도구를 들고 온 마법사가 수십 개의 다이얼을 세심하게 조정했다. 중앙 곳곳에 닿지는 못하더라도, 인근의 모든 귀에까진 무리 없이 울리리라.
그들 중에는 죽어가는 마검사도 있을 것이요, 검은 갑옷을 입고 도망친 자들도 있을 터.
위이이잉.
이안은 마도구에 천천히 속삭였다.
[나는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다.]맑고 우아한 목소리가 마도구를 통하여 사위로 퍼졌다. 이리저리 떠들던 자들이 일순 동작을 멈추고 침묵했다. 귓가에다 직접 말하는 것 같은 생소한 느낌에 당황한 것이다.
“마, 마법인가?”
“쉿! 조용히 해봐, 뭐라 한다!”
“이게, 고막 안에서 울리는 것 같은데?”
파리 날리는 가판대를 지키던 자들도, 텅 빈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술에 취해 널브러진 자들도, 가정집에서 일상을 보내던 자들도 모두. 황궁과 인접한 자들은 이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흘 전, 마리브 1황자와 게일 2황자가 격돌하여 황궁을 어지럽혔다. 이에 가담한 관료와 중앙 귀족의 명단이 짧지 않으니, 황제 폐하께서 심히 안타까워하셨다. 황궁은 바리엘의 중심이요, 곧 세상의 중심이니. 이를 혼란케 하는 자, 결코 평온하게 죽지 못하리라.]“맞네, 맞아. 대가리 큰 황자들이 아주 큰일 했어.”
“조용히 좀 해봐!”
[이에 마법부는 황제 폐하와 진 저하의 명으로 두 황자를 제압하여 황궁의 안전을 지켜냈다.]“진 저하가 누구지?”
“쌍둥이 저하 중 한 분 아니신가? 아직 어린 걸로 아는데. 어허.”
[황궁 출입을 금한 것은 이를 효과적으로 수습하기 위함이었으니, 폐하의 제국민들은 안심하고 일상을 찾아라. 현 시간부로 황궁의 출입을 허락한다. 입궁하는 자들은 질서를 지키도록 하라. 그리고-]이안은 잠시 침묵했다. 다음 말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는 자들 역시 입을 다물었다. 이내 들려오는, 차갑고 서늘한 음성.
[황궁의 뜻에 반하는 자들은 들어라.]바리엘을 해하려는 자, 지옥의 밑바닥에서 결코 기어 나오지 못하리라.
[스스로 목을 내놓아 용서를 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말살할 것이니, 진정한 죽음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다. 숨을 수 있다면 숨어도 좋다. 그리하여 바리엘에 폐하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걸 증명하라.]대제국의 돈줄을 쥐고 있는 귀족이든, 고귀한 황실의 핏줄이든, 그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권위에 맞서는 자, 죽을 것이다. 그것은 곧 제국민의 안위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이안은 내전으로 무너진 나라를 수없이 알고 있다.
[반면, 황궁에 영광을 바치는 자, 삶에도 영광이 깃들 것이니. 스스로의 운명을 빛나게 하라. 이상,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였다.]이안이 연결을 끊으라 손짓하자, 마도구의 불빛이 사그라들었다. 문지기들은 질서정연하게 사람들을 정리했으며, 출입을 허가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안은 주위를 둘러보며 로브를 뒤집어 썼다. 말은 준비가 됐는데, 어찌 치유 마법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치유 마법사들은?”
“오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럼 먼저 나가지. 로 오라 전해.”
그를 따라 마법사 몇몇과 경비들도 말고삐를 붙잡았다. 로만드로는 비비안나의 손을 꼭 잡은 채 물었다.
“이안 님! 저는요?”
“그대는 여기서 비비안나와 함께 일을 보라. 베릭을 데리러 가는 것인데, 마력이 없는 자들은 별로 도움이 못 돼. 치유 마법사들을 서둘러서 내보내게.”
“아,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베릭이, 그놈, 그거, 죽으면 저한테 죽는다고 꼭 전해주시고요!”
히이잉!
이안은 대답 대신 말의 옆구리를 힘차게 쳐댔고, 이내 성문을 빠져나갔다. 폐쇄가 풀려서 그런지, 베릭이 나섰을 때와 다르게 시선이 집중되지 않았다. 이안은 호위들의 안내를 받으며 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타닥타닥!
“이쪽입니다!”
“비켜라! 길을 비켜!”
“아이구, 뭔 말을 저리 몰아?”
얼마나 달렸을까.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피비린내가 훅 풍겨왔다. 말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또각대는 말발굽 소리 외, 그 어떤 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저기, 헉!”
건물 앞을 가득 채운 피 웅덩이. 이리저리 박살 난 건물들이 즐비하였건만, 인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안은 말에서 내려 쓰러진 베릭에게 다가갔다.
“베릭.”
“…….”
처참하다는 표현조차 너무 온건하다. 형체가 뭉그러진 왼팔과 관절의 범위를 벗어나게 꺾인 다리. 살갗이 모두 쓸려 있고, 핏물에 절여져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상처인지도 알아볼 수 없었다.
참혹한 광경에 경비가 입을 가리며 베릭의 코 아래에 손가락을 대었다.
“수, 숨 안 쉬는 것 같은데요.”
“비켜.”
이안은 그를 쳐내고 가슴팍에 귀를 눌렀다. 꼭 감긴 베릭의 눈두덩이가 찢겨있었다.
“이, 이안 님.”
“다들 다물라. 숨소리도 내지 마.”
바깥의 소음으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심장 소리가 들릴 것이다. 분명히, 분명히 들릴 것이라.
이안은 마력을 개방하여 그에게 쏟아넣었다. 쿵쿵, 뭔가가 울린다. 이안은 그것이 저의 심장 소리임을 알아챘다.
“베릭.”
“…….”
“베릭.”
지이잉. 지잉.
지잉.
이안은 베릭의 턱을 가볍게 쥐고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한계 없는 마력을 주었다. 사막에서 내장이 뒤집혀도 살아난 놈이다. 이리 죽지는 않는다.
“베릭.”
이안의 콧잔등을 따라 땀이 뚝뚝 흘렀다. 현기증이 올라왔으나, 멈추지 않았다. 땀방울이 떨어진 베릭의 목덜미에 희미한 자국이 남았다.
“베릭.”
“…….”
움찔, 그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였다. 이안은 놀라서 다시금 가슴팍에 신경을 집중했다. 쿵쿵, 쿵. 박자가 다른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려 보아라.”
“…힘들어.”
“그래. 말도 해보고, 눈도 떠보아라.”
“이안아, 아, 진짜 아프다.”
“괜찮다. 기다려.”
지이잉.
다른 마법사들도 합심하여 베릭에게 마력을 불어넣었다. 베릭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짜증 나. 졌어.”
“살았으니 되었어. 천려들의 말을 기억하나? 죽지 않으면 지지 않은 것이라고. 살았으니 언제고 이길 것이다.”
“그치? 아, 근데 나 배고파.”
“수고했다.”
“…소고기.”
“그래.”
드디어 소고기 먹을 자격이 생겼다고, 베릭은 피식 웃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기절하여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