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8
제198화. 소란을 틈타
달그락.
딜라이나는 찻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성문을 여는 이안의 음성이 귓가에서 막 사그라든 순간이었다.
하인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딜라이나와 아르센의 눈치를 보았다. 황궁을 수습하는 데 있어, 아르센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골적이로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이만 공작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중얼거리자, 딜라이나는 꽉 깨문 잇새로 분에 찬 대답을 내놓았다. 이것은 후계의 자리를 차치하고, 명예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진이 저리 언급된다면, 그 시각 아르센은 무얼 하고 있었는지 반문하게 되리라.
아르센은 차를 홀짝이며 제 어미를 달랬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안 경의 권한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예상 못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만 늦게 열렸더라도, 각기의 언론사에서 마법부 반동 의문을 제기했을 터인데요. 아쉽습니다.”
입장 표명이 명확하고 이어서 바로 황궁 출입을 허락하였다. 직접 눈으로 보고 듣는 게 있으니 날조된 소문 따위는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
하이만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쓰게 웃자, 아르센이 따라 웃었다.
“늦지 않았습니다. 계속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저하, 인근의 모두가 이안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자중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음해가 음해임이 두드러지는 상황인지라, 되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제국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명목으로, 이안에게 꼬투리가 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아르센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하이만에서 지원하는 언론사가 여럿 있지 않습니까? 당장은 말고요, 시기를 좀 보았다가 뒷골목을 중심으로 말을 흘리십시오.”
날조된 소문은 그 자체만으로 힘이 없다. 그것을 이용하여, 선동하고 세뇌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
“아무리 허무맹랑한 말일지라도, 되풀이하면 믿게 되어 있습니다. 우선은 부정하겠지요. 하지만 그다음에는 의심이라, 의심은 어느 정도의 믿음을 기반으로 한답니다. 이안에게 반심을 품은 자가 하나라도 더 늘어나면 저희에게 이롭지 않습니까?”
뒷골목의 소문 따위는 출처를 알아내기 어렵다. 감수할 만한 위험이었고, 그걸로 얻을 수 있는 나비의 날갯짓은 무궁하지 않나. 선동을 멈추지 않는 게 이득이었다.
‘반복하면, 믿게 된다.’
아르센은 문장이 가진 힘을 알고 있었다. 가녀린 자신의 형제가 한평생 결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아르센은 싱긋 웃으며 하이만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상기하세요. 생각보다 저희에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마리브가 심문실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들은 참이다. 심문에서 재판까지 과정은 어디까지나 관계자들에게 달려있었다. 졸속으로 진행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심판대에 마리브를 올릴 수도 있을 터.
그리되면 게일의 처단도 금방이다. 게일과 엮인 하이만의 차례란 말이다.
“예. 저하, 명심하고 있습니다.”
하이만은 흰자 없는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대회의의 명을 받으러 나갔다가 들어오자, 딜라이나와 아르센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연신 떠들어대던 그녀는 침묵을 선택했고, 주로 아르센이 지시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뭐, 오히려 이것이 좋긴 하다. 밀어줄 황자가 아둔하지는 않다는 거니까.’
그들은 시계를 힐끔거렸다. 지금쯤 성문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을 것이라. 출궁하기 위해서는 한가해지길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말입니다. 환기가 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저지만은, 특히나 하이만 공작께서 숨쉬기 편하실 것 같은데요.”
“흐음.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게일을 죽이자.
하이만은 아르센의 말뜻을 바로 알아챘다. 살아있는 결탁의 증거이자, 이안이 그를 보호하고 있다 자처하였으니, 죽임으로 숨통을 트여보자는 의도였다.
하이만은 긍정하되, 길이 보이지 않아 인상을 찡그렸다.
“하나, 게일 저하의 옆에는 마법사 둘이 항시 대기 중이라 들었습니다. 경비도 삼엄하고요. 자결의 상처가 깊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니. 아무래도 이안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마법사 둘을 저지하고 게일을 죽이려면 상당한 공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도 어수선하여 보는 눈 많은 황궁에서 어찌 길을 만든단 말인가?
아르센 역시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마법사 둘만 아니면 일이 좀 쉬울지도 모르는데.”
“생각해 둔 방도가 있으십니까?”
“예, 뭐. 뭐든지요.”
아르센의 말이 의미심장하였으나, 그 누구도 반문하지 않았다. 딜라이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중이었고, 하이만 공작은 그것보다 우선시 되는 게 있었기에.
스윽.
하이만은 보좌관이 가져온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딜라이나가 아닌 아르센의 앞이었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 익숙하게 종이를 넘겨댔다.
“황궁 업무가 정상화되면 하이만 가를 견제하기 위한 법안이 본격적으로 발의될 것입니다. 이는 저희 쪽에서 예상하여 작성한 목록입니다. 제일 유력시 되는 게 다중과세고, 그다음으로는 외국거래제한입니다.”
돈줄을 쥐고 있는 하이만이니, 당장 엎어트리진 못할 터였다. 대신에 천천히 한쪽 발을 걸고, 등을 밀며, 이내 팔을 꺾어서 땅에 짓누르리라. 이 서류 더미는 하이만이 예상한 공격의 궤였다.
차락.
“지금도 공작께서는 타 귀족보다 세금을 두 배로 내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알고 계시는군요.”
귀족이라는 작위로 한 번, 금융업을 하고 있으니 거기에 관하여 또 한 번. 아르센은 참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댔다.
“공작의 세금으로 황궁을 갈고 닦으니, 당연히 알지요. 흐음. 알겠습니다. 이 부분은 저와 어머니, 그리고 믿을 만한 공신들과 함께 의논해 보겠습니다.”
하이만에게 쏟아질 온갖 규제를 막아내는 것이, 아르센의 역할이었다. 그들은 이미 한배를 타고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참, 어머니.”
“응?”
아르센의 부름에 딜라이나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껏 멍하니 있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릿빠릿한 반응이었다.
“친정에도 도움을 청해보지요.”
“카르보에?”
“예, 거기서 저와 진의 신탁이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이번 일에 관해서도 분명, 무언가 말이 전해질 거라 여겨집니다만.”
“아아. 그래. 연락해 보마.”
똑똑.
아르센이 만족스럽게 어미의 손등을 잡는 순간이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이내 하이만의 부하가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저기, 공작님. 밖에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공작의 귓가에 뭔가를 속닥거렸다. 덤덤하게 듣고 있던 하이만의 눈썹이 찌푸려졌고,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부하를 쳐다보았으며, 끓어오르는 열로 인해 목이 시뻘게졌다.
짜악!
“어머.”
그는 망설임 없이 부하의 뺨을 갈겼다.
딜라이나는 입가를 살짝 가리며 놀란 기색을 보였으나, 그뿐이었다. 주인이 부하를 손찌검하는 게 무에 그리 큰일 날 일이겠나. 오히려 딜라이나와 아르센을 앞에 두고 체통을 지키지 않았다는 게 더 의아했다.
“대체 아랫것들 관리를 어찌 한 겐가!”
“송구합니다.”
흰자 없이 거대한 동공이 더더욱 커진 것 같다. 아르센은 과자를 집어 먹으며 하이만에게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결례를 범하였군요, 실례했습니다.”
“공작, 말씀을 하셔야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 같은 편이지 않습니까? 저희는 다 말씀드렸는데요. 이리 나오시면 조금 서운합니다.”
딜라이나가 진의 친권을 박탈당했다는 것도 공유하였다. 어차피 공공연히 알려질 일이었으나, 사소한 것도 성실히 나누는 게 진정한 동맹의 초석이라.
하이만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서 창가 앞을 서성였다.
“공작.”
“…밖에서, 부하가 사고를 쳤습니다.”
“사고라 하시면?”
“이안이 호외를 찍어내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 같은데, 저지하는 과정에서 부하들이 마력석 갑옷을 이용했다고 하네요.”
그 자리에서 뺨을 올려친 게 이해 가는 처사였다. 사고 한번 거나하게 쳤다고, 아르센이 속으로 휘파람을 불어댔다.
“상대가 마법사였답니까? 일반인에게 그걸 썼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요. 판단이 아쉽기는 하다만, 뭐,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여기는 게 낫겠습니다.”
“마검사라고 합니다.”
“마검사? 붉은 머리의?”
“아시는 자입니까?”
“이안 경이 데리고 다니는 최측근입니다. 마검사라, 어찌 되었나요? 죽었나요?”
“반송장으로 살아왔답니다. 죽일 거면 제대로나 죽일 것이지. 쯧! 지금 마법사들이 다 달라붙어 살리는 중이라 하는군요. 다른 마검사도 있다고는 하는데-”
“잠깐, 마법사들이 다 달라붙었다고요?”
아르센이 하이만의 말을 자르며 되물었다.
마법사들이 달라붙었다, 그렇다면 치유 마법사들 역시 그쪽에 가 있다는 뜻이로다.
“……!”
“공작, 서둘러 출궁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게일의 처소가 비어 있다. 아르센은 그걸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제 어미를 부축하며 인사했다. 곧 다시 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찢어졌다.
치익.
하이만은 궐련에 불을 붙이며 제 부하를 돌아봤다. 반지에 찢긴 볼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푸른 머리칼의 검사는 어찌 되었다고?”
“그것이…….”
방 안에는 하이만 가의 사람밖에 없었으나, 부하는 다시금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황궁에서는 초상화에 달린 귀도 제 역할을 하는 법이라. 말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읊는 것이 퍽 조심스러웠다.
* * *
“세상에, 세상에! 베릭아! 베릭 이놈아!”
“이쪽으로 뉘시오! 따뜻한 물과 깨끗한 천을!”
“마법사들은 교대로 마력을 불어넣는다! 치유 마법을 도와 힘을 실어라! 의사를 모두 불러와! 찢긴 상처를 꿰맬 것이다!”
“뼈가, 뼈가 이게 맞습니까?”
“젠장, 미치겠네. 손가락 붙어 있는지 확인해!”
“베릭아, 아이고, 베릭아…….”
“로만드로 님. 비켜주십시오. 방해됩니다.”
“흐윽, 그, 살려주시오. 우리 베릭이 저거, 어째.”
마법사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력을 계속 주입했다. 처음에는 이안이 찢긴 시체를 가져왔나 싶었다. 너절하여 살아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성한 곳이 하나 없다.
로만드로는 눈물 콧물을 찍어내며 연신 뜨신 물그릇을 옮겨댔다. 비비안나는 충격받을까 봐 접근 금지 명을 받았다.
“하아, 살아있는 거 맞죠?”
“대화도 하였다.”
“미친, 이러고 살았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얘 사람 아니에요. 이게 사람일 수는 없어요.”
지이잉. 지잉.
치유 마법사들이 땀을 뚝뚝 흘리며 전체적인 상해를 훑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베릭의 몸 안쪽. 장기가 다 망가져 있다.
“헉! 이게 대체-”
“상처를 봉합해 주시오! 이게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선 지혈을 할 것이라. 아코렐라! 아코렐라에게 마취 효과 있는 물약을 모두 내어달라고 전해!”
이안은 피가 잔뜩 묻은 제 손을 바라보며 베릭을 돌아봤다. 죽지 않아서 다행인데,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저만하면 당장 흙 파서 묻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어찌 베릭은 살아있을까?
“이안 님.”
똑똑.
삼대장 중 한 명인 제이럿이었다. 그는 열린 문을 두드리며 이안을 불렀다. 엉망이 된 베릭을 잠시 힐끗거리더니, 이내 난감하게 물었다.
“혹시 바르사베의 행방을 아십니까?”
“…들은 바가 없네. 비비안나의 말로는 갑옷 입은 자들을 유인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황궁친위대에 수배령을 내렸어. 검은 갑옷과 푸른 머리칼의 검사가 보이면 신고가 들어올 것이네.”
사라졌다. 갑옷도 그렇고, 바르사베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제이럿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깊은 미간 주름을 눌러댔다.
“하아.”
죽은 친우의 딸이자, 신뢰하는 부하였다.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베릭이 저 상태로 실려 오지 않았나.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안 님. 제가 저번에 베릭 저놈에 대해 알아본다고 했던 것 기억하십니까?”
베릭과 제이럿이 처음으로 훈련장에서 맞붙었을 때, 둘 다 베릭의 정체에 관하여 의구심을 품었었다. 단순한 마검사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몇 가지 들려온 게 있어서 추려보았는데, 확신이 드는 건 없었거든요. 저 꼴을 보아하니, 개중 그나마 의심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안은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내며 그를 쳐다봤다. 어서 말해보라는 듯이.
“혹, 아탄족이라고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