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9
제199화. 피의 종족, 아탄
바리엘에는 수많은 나이테가 그려져 있다. 어느 것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지만, 어느 것은 눈에 띄게 짙은 색을 보였다. 아탄족과 연관된 바리엘의 역사는 후자에 속했다.
‘대 마물의 습격.’
신의 축복을 받았노라고, 타국과 비견하여 마물의 공격에서 안전지대를 자처하던 바리엘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북방에서 일어난 격변으로 인하여 아탄족이 득세하였고, 당시 친위대를 비롯한 제국의 병사들이 토벌한 것을 배운 적 있다.
“아탄족, 알고 있지.”
이안은 제이럿과 함께 복도 끝으로 이동하여 목소리를 낮췄다.
시종들이 연신 더러워진 천을 갈아댔으며, 호출받은 의료진이 베릭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이안은 그걸 보며 덤덤히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찌 아탄족을 언급하시는가? 베릭은 가족을 여의었지만, 변방에서 태어난 바리엘의 사람. 혹여 흑검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오해이네. 중앙으로 올라오는 길에 우연히 얻은 것이다.”
카렌나의 시장이 보낸 서신을 갖고 있다. 도적 두목을 심문한 결과서나 마찬가지이니, 흑검이 애초부터 베릭의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리라. 이안은 서신에 적혀있던 글자를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우선 보고받은 대로 전언하는 것임을 알아주십시오. 아탄족은 마물의 피를 마시며 영위하는 자들이라, 실로 인간인지는 의문입니다.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자들이 대격변에서 두각을 나타낸 연유가 바로 저것이다. 마물을 잡아먹는 자들이니, 아탄은 더 많은 혼란을 원하였고, 제국군은 저지하여 척결하고자 했다.
역사의 기록대로라면 그 승리는 제국이 가져왔다. 대격변의 원인이 아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나이테에 새겨진 굵직한 흔적임은 자명했다.
“장관님.”
제이럿은 조심스레 마른 침을 삼켰다.
“아탄족은 발현(發現) 종족이라 합니다. 번식으로 대를 잇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각성하여 정체성을 깨닫는다고 하지요.”
“……!”
“아탄의 습성을 지니고 있다면, 베릭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부모가 누구인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종족까지도.”
“…습성이 뭔지 나열해 보라.”
“호전 이상의 광기를 보이며, 승패에 집착이 심하고, 생명을 해하는데 거리낌이 하나 없는, 날것의 도덕성. 상식을 넘어서는 회복력과 경이로운 생명력 따위가 대표적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베릭이 아닌가. 이안은 잠시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피 냄새를 가시게 하는 것 같다.
‘각성이라. 그렇다면, 대격변으로 바리엘에 마물이 나타났을 때, 아탄족이 득세한 또 다른 연유가 되리라. 마물과 접한 게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지.’
“확신은 아닙니다만, 상당히 의심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유념하시어 주시하십시오.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이지 않습니까. 언제고 각성하여 돌변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른 시일 내로 내치시는 것을 권고드립니다.”
“제이럿 대장, 섣부른 말이오.”
“장관님.”
“나의 수하이니 내가 알아서 할 것이라.”
제이럿은 대격변이 일어날 것을 모르고 있다. 마물이 범람하고, 아탄족이 득세할 게 분명하거늘, 그때 베릭이 제국의 곁을 지킨다면?
‘베릭이 아탄족에 흡수되면 곤란하다. 제이럿 대장을 난감하게 했을 정도로 강한 자 아닌가. 차라리 제국의 편에서 홀로 마물을 독점하게끔 회유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안은 저도 모르게 베릭의 방을 돌아봤다. 희미한 신음이 들려왔다. 정신을 잃은 녀석이 저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였다.
자신의 명으로 형체를 잃은 자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내가 두고 보겠네.”
“저는 황궁의 안전을 지키는 자입니다.”
“나 역시 그대 못지않게 황궁을 위하는 자다.”
오만하게 까불지 말라. 이안의 가벼운 일갈에 제이럿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황궁 밖에서 영문도 모른 채 서성이는 동안, 이안은 황제를 구했고, 반란을 제압했다. 수습을 지휘하여 일전의 일상을 찾는 데 제일 앞장서는 자였다.
제이럿은 실언하였음을 빠르게 인정했다.
“송구합니다.”
“내 깊게 생각할 것이니, 그대는 너무 염려 말고 계시오. 당장은 바르사베를 찾는 게 우선 아니던가.”
아탄족이든 아니든, 베릭은 찢겨 누워있고 바르사베는 행방불명이다. 일의 우선순위가 확실하니, 제이럿은 경례하며 인사했다.
처억!
“풍설을 덧붙이자면, 아탄족은 근거지로 회귀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곳곳에 흩어져 있으니 당연한 본능일지도 모르지요. 그리하여 언제고 아탄의 흔적과 만나게 된다고 하니, 변방에 있던 베릭이 황궁까지 올라오고 아탄의 흑검까지 쥐게 된 게 과연 우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베릭이 아탄임을 거의 확신하는 말이었다. 이안은 대답 대신 마주 경례하며 그를 보냈고, 이내 베릭의 방으로 돌아왔다.
마법사들의 열기로 공기가 후끈했다. 이안은 침대 가까이 다가가 인기척을 냈다.
“아, 이안 님.”
“고생했다. 교대하지.”
“괜찮습니다. 어제 잠을 많이 자서요.”
“나 또한 괜찮다.”
지이잉. 지잉.
이안은 베릭에게 마력을 주입하고 있는 마법사를 물리고, 대신 자리에 앉았다. 벌어진 살갗이 대충 꿰어져 있었다. 금안으로 물든 눈동자가 베릭에게서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아탄이라.’
베릭, 너는 원 역사에서 대체 어찌하였느냐? 데르가 브라츠의 사병단에서 구르다 죽었느냐? 아니면 아탄의 운명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가다 죽었느냐?
‘어느 것이든, 바리엘의 나이테를 그리다 죽었겠구나.’
이안이 그의 손등을 토닥여 주었으나, 베릭은 의식 없이 계속 앓기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법사들이 다 나가떨어지고, 의사들 역시 꿸 것 없어 바늘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안 님, 잠시 보고서를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로만드로가 서류를 가져왔다. 두 눈이 퉁퉁 부은 것은 베릭의 처참한 꼴을 보고 연신 울어댄 탓이다.
“마리브 저하의 재판일이 잡혔습니다. 앞으로 나흘 후라고 합니다. 사법부에서 연락이 오길, 관련 증거물을 모두 제출해 달라고 하네요. 심문결과지를 올려도 되겠습니까?”
마리브의 헛소리가 생생하게 담겨있기에, 조심스러웠다. 자꾸 이안이 시켰다, 배후에 이안이 있다 따위의 애먼 대답을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요한 부분만 자를 수는 없는 노릇.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나흘 후라. 빠르면 일주일이겠군.”
재판이 끝나고 마리브가 처형되기까지, 빠르면 일주일. 그 말인즉, 그의 수명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는 뜻이었다.
“법률에 따르면 공개 처형이다. 당일을 대비하여 황궁 채비를 단단히 하라. 모두 몇 명이지?”
“저하까지 포함, 주요 인물 여섯 명입니다. 마리브 저하는 참수일 것이고, 다른 자들은 교수이겠지요. 아무리 황가의 성을 박탈당했다고 한들, 황제 폐하의 아들이시니.”
‘데르가도 교수형에 처했었지.’
구경꾼들이 보는 앞에서 매달려 버둥대는 꼴 만큼 불명예스러운 게 없다. 존엄을 위하여 단박에 끊어내는 것. 참수는 황궁에서 마리브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게일 황자에 관해서는?”
“연기를 요청하였습니다. 두 황자를 동시에 회부하는 건 선례에 없어서요. 게일 저하 몸 상태도 엉망인지라, 재판에 세워둔다 한들 대답이나 제대로 하겠습니까? 그리고 뭐, 그, 여러 가지 이해관계도 얽혀있으니. 허허. 크흠.”
로만드로가 뒷말을 삼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주위에 사람이라고는 곤죽이 된 마법사들뿐이었으나, 혹여나 싶어 조심하는 행색이었다.
게일이 살아있으면 하이만 가를 잡아내는 게 쉬우니, 하이만을 견제하는 세력들이 합심하여 게일의 재판을 뒤로 미룬 것이라.
“그래. 알겠다.”
이안은 보고서에 서명하고 로만드로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종이를 받는 순간. 뭔가 생각난 이안이 단단히 물었다.
“게일 황자의 처소 경비는?”
“네? 일러주신 대로 단단히 하였는데요.”
“마법사 둘이 이쪽으로 오지 않았나.”
예기치 않게 베릭을 치유한다고 마법사가 빠졌다. 앞에 경비를 세우긴 했으나, 상대는 아르센과 하이만. 특히 시아오시의 경험대로라면, 아르센이 특히 경계할 대상이었다.
‘밤사이 게일의 처소에 쉬이 들어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아직 몰라. 분명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마법? 아니, 그렇다면 이안이 먼저 알았을 것이다.
이전 생에서 이안은 ‘최초의 귀족 마법사’라는 호칭을 받았다. 그것은 황족 내에서도 마력을 지닌 자가 없다는 걸 내포했으니.
‘마법일 리는 없고.’
지이잉.
마력을 쏟아낸 탓인지, 걱정 탓인지. 이안의 고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자 로만드로는 재빨리 서류를 가슴팍에 안은 다음 장담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게일의 안전이 곧 자신들의 안전이라! 호언장담하는 모습이 꽤나 자신 있어 보였다.
그의 외침에 베릭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아, 시끄러…….”
“헉! 미안, 미안하다. 베릭. 근데 너 정신이 든 거냐?”
로만드로가 손을 붙잡자, 베릭이 꼬물거리며 빼냈다.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건만, 로만드로는 조금 상처받았는지 다시금 눈물을 글썽였다.
이안은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내며 일어섰다.
“어디, 한번 보러 가지. 얼마나 든든한 경호인지 궁금하구나.”
* * *
게일의 처소 앞에는 경비들이 서 있었으나, 그와 조금만 떨어지더라도 인기척을 찾기 어려웠다. 황궁 수습에 정신이 없다 보니, 최소한의 인력만 배치해 둔 탓이다.
스윽.
아르센은 건장한 부하 서넛을 데리고 궁에 들어섰다. 그 발걸음이 당당하고 망설임이 없는 터라, 마치 몇 번이고 익숙하게 드나들었던 곳 같다. 아르센은 은발을 휘날리며 뒤따라오는 심복들에게 지시했다.
“내가 형님의 침실 안에 들어가 있을 때, 그 누구도 들어오게 해서는 아니 된다.”
“네. 저하. 그런데 이안 경이 게일 저하의 처소 접근을 모두 금하였습니다. 들어가시는 것부터가 좀…….”
부하의 첨언에 아르센이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조그마한 아이의 눈빛이 저리도 매서울 수 있는가. 부하는 어색하게 침묵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묻는 것 외, 쓸데없는 소리는 삼가라.”
“소, 송구하옵니다.”
타닥타닥!
복도를 꺾어 들어가자, 대리석 바닥으로 인해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조금씩 처소에 가까워질수록 부하들은 긴장하여 몸을 낮췄으나, 아르센은 변함없이 꼿꼿하였다.
희한하게, 아이가 가는 길마다 사람이 없었다. 이제 슬슬 만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대기하라.”
“예. 저하.”
스윽.
아르센은 부하들에게 눈짓하며 먼저 나아갔다. 모퉁이를 꺾자마자 게일의 처소이거늘,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부하 한 명이 의구심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으나, 문 앞을 지키는 경비 두 명은 평온하게 정면만 바라보고 있다.
타앗.
의아하고 놀랍다. 부하들이 몸을 숨긴 채 아르센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래서 내가 이렇게 들었다니까?”
“응. 그거 하나도 안 무거웠어.”
“해볼래? 한번 제대로 해?”
“들어와. 아, 해보자고!”
거적때기를 걸친 야만의 전사들, 천려였으니. 그들은 더더욱 숨을 죽이며 인기척을 낮췄다. 저들이 어째서 게일의 처소에 있는지 모르겠다.
“배고프다. 다들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그나저나 베릭은 어디 갔어? 보이질 않아, 이놈이. 빠져가지고.”
“아, 잠깐.”
천려의 전사들이 제각각 떠들어대다가, 갑자기 일순 멈추었다. 짐승 같은 감각으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것이라.
그들은 고갯짓을 나누며 조용히, 몸을 낮췄다.
“…쥐새끼 냄새가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