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01
제201화. 황제 마법사
“…어머니?”
필리아가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머리칼이 땀과 눈물에 젖어 볼에 붙었고, 손바닥은 피로 흥건하다.
뒤에서 따라 들어온 네르사른이 놀라 달려갔다.
“필리아!”
전사들이 침입자를 발견하고 제압하는 과정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 짧은 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필리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안을 올려다봤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이로 인해 이안에게 어떤 영향이 갈지 짐작할 수 없어 두려운 것이라.
“이안아, 나는-”
“괜찮으십니까?”
이안은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안색을 자세히 살펴보니, 입가가 터져있는 게 아닌가. 게일 혹은 아르센, 둘 중 한 놈이 필리아의 볼을 갈긴 것이라.
그걸 알아챈 네르사른이 살벌한 기운을 숨기지 않았다. 각졌던 턱이 더더욱 도드라지며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다. 그는 두 황자를 노려보며 몸을 일으켰다. 들꽃이라, 바람 한 점에도 날아갈까 전전긍긍 아끼는 연인이거늘, 어디서 감히…….
“잠깐, 잠깐만요.”
필리아는 두 손으로 이안과 네르사른을 붙잡았다. 방금 일어난 일이 너무 충격적인지라, 상처의 아픔 따위 느낄 새가 없었다.
“이해, 이해할 수는 없으나 아르센 저하가 자신의 얼굴을 그으라 명하였습니다. 진 저하의 상처와 같이요.”
네르사른은 꺼림칙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안은 재빨리 아르센을 살폈다. 그것은 평범한 상처가 아니었다. 차기 황제임을 증표 하는 흔적이지 않은가? 아이는 탁상을 부여잡고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없다.’
다행히, 얼굴이 깨끗했다. 방금 게일의 공격으로 인해 귓불이 조금 찢기긴 했다만, 말간 얼굴은 그대로다.
“아, 안 그러려고 했는데 머릿속이 희게 변하면서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모르겠어요. 이안아. 이안아, 미안해.”
필리아가 몸을 달달달 떨며 이안의 팔을 붙잡았다. 제발 이것이 너에게 문제가 되지 않길 바란다는 시선이 형형하였다.
“미안하다는 말씀은 마십시오. 잘못하신 것 하나 없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은 대제국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입니다. 황자라고 한들,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고개를 드세요.”
머릿속이 희게 변하며 거부할 수 없었다라. 이안은 필리아의 말을 곱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르센이 게일의 처소에 침입했던 것은 조력자의 도움이라 여겼다. 하지만 필리아의 증언은 마치, 아르센이 어떠한 능력을 썼다는 것 같지 않나.
‘아르센은 이미 방에 들어와 있었다. 경비가 서 있는 곳을 통하지 않으면 처소로 들어올 수 없음에도.’
짜악!
그때, 마찰음이 터지며 이안의 생각이 뚝 멈추었다. 게일이 아르센의 뺨을 내려친 것이다.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서던 아이가 다시금 뒤로 나뒹굴었다.
“헉! 저, 저하!”
“게일 저하! 아니 되옵니다!”
보다 못한 경비들이 놀라 달려왔으나, 게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르센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죄인의 신분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꽈아악.
“평소에도 오만하여 방자하다 여기긴 했으나, 분수는 아는 놈이라 여겼거늘.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니구나. 네놈 속에는 구정물이 썩다 못해 넘치고 있어.”
“저하! 놓으십시오!”
“마지막 경고입니다! 아니 됩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제발!”
게일의 거칠 손길에 아르센의 몸이 흔들렸다. 경비들은 어쩔 수 없이 검을 빼 들고 소리쳤다. 시시비비를 떠나, 아르센은 차기 후계자에 제일 가까운 자였다. 반역자인 게일에게 저리 맞도록 둘 수는 없는 노릇.
머리채가 붙잡힌 아르센은 키득키득거리며 눈을 홉떴다.
“분수는 형님이나 아세요. 평생 마리브의 그림자에서 살던 주제에! 그것도 못 벗어나 곧 뒤질 거면서! 누구한테 훈계랍니까!”
짜악!
채앵!
게일이 다시 볼을 후려치자, 경비들이 검을 들이밀었다. 거기까지였다. 게일은 아르센의 머리채를 놓아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갑자기 움직인 탓에 목덜미와 허리춤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키킥, 킥…….”
“저, 저하, 괜찮으십니까?”
“의사를 불러오라! 의사를!”
게일이 탁상을 뒤적거리며 궐련을 찾자, 전사 한 명이 다가가 구룻잎 만 것을 건네주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진정제였으나,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다. 입가에 피 묻힌 아르센이 괴성을 내지른 탓이라.
“어린 게 미쳤네. 저게 황제면 나는 황제 할애비다.”
“입 좀 다물어.”
“뭐 어때? 어차피 쟤들 천려어 모르잖아.”
“저저, 봐라. 대가리 맛 간 듯. 계속 처웃는다.”
“어린 게 필리아 님 때린 거지? 콱, 씨, 정수리 깡 해주고 싶네. 못된 것만 처 배워서는.”
전사들이 천려어로 앞 담화를 늘어놓았다. 그 위대하신 대제국 바리엘의 황자라는 작자들이 죄다 저 꼬라지이니, 솔직히 실망스러운 참이다.
네르사른은 눈짓으로 자중을 명하였으나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그 역시 필리아의 상처로 인해 심기가 불편했다.
“아르센 저하.”
“…….”
이안은 구룻잎 연기를 물리며 아르센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눈만 끔뻑이며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제 어머니께 손을 댄 것이 사실입니까?”
“그래. 천민 주제에 건방진 말을 하여서, 내 그리하였다.”
무슨 문제라도? 아르센이 싱긋 웃었으나, 이안의 눈길은 냉랭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 뒤에 숨어 있는 악랄함을 몇 차례나 보았으니까.
‘아르센에게 능력이 있다. 지금까지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에게 마냥 이득인 패는 아니다. 하지만 두면 귀찮아질 게 분명하니, 없애자.’
“천지에 홀로 서는 자는 없다지요. 아르센 저하. 저하는 지금 실수하신 겁니다.”
스윽.
이안은 몸을 돌려 게일을 바라봤다. 침대에 걸터앉아 구룻잎을 말아 피던 그가 연기를 내뱉었다. 맞물리는 두 사람의 시선. 이안은 미세하게 왼쪽 눈썹을 까딱거리며 신호했다.
“하.”
게일이 웃음을 낮게 흘렸다. 이안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챈 것이라. 아르센을 죽이라고, 지금 이 자리에서 뒤탈 없이 아르센을 처리할 수 있는 자는 게일, 당신밖에 없다고.
“…이안 경. 그대가 내 처소에 외부인 출입 금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나?”
“그러하옵니다.”
“내가 살아있어 죽는 자들이 있으니. 황궁의 혼란을 수습하는 책임자로서 그 작당들을 모조리 소탕하기 위함이라. 그런데 어째서 아르센이 여기 있는지, 나는 당최 모르겠다.”
게일은 능숙하게 명분을 짚어냈다. 저쪽에서 먼저 시작한 잘못이라. 앞으로 닥칠 비극의 책임은 전적으로 아르센에게 있는 것으로 넘기는 작태였다.
이안은 맞장구를 쳐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채앵!
게일은 옆에 서 있는 경비의 검을 빼앗았다. 전사들은 속으로 휘파람을 불며 관망하였고, 경비들은 우물쭈물 눈치만 보며 뒷걸음질 쳤다. 의도가 명확하다.
“아르센, 여기서 네가 죽어도 연유를 아는 자는 자가 없겠구나.”
스윽.
게일이 검을 겨누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지만, 어린애 하나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날 끝이 아이의 턱을 따라 목덜미로 내려갔다.
“이안 경.”
게일은 문득 이안을 부르며 멈추었다. 여기서 아르센을 죽이면, 자신에게 무엇이 돌아오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황가의 성(姓) 박탈 유예라. 황궁에서 지낼 수는 없다 한들, 밖에서라도 사는 게 중요했다. 살다 보면, 다시 기회가 오니까.
“게일 베로시온 2황자 저하. 하문하십시오.”
이안은 그의 의중을 알아채어, 성명을 완전하게 불러주었다. 눈치 하나는 기분 나쁠 정도로 빠른 자라. 게일은 짜증스럽게 웃으며 검을 바로 잡았다.
죽이면, 산다.
살고자 한다면, 죽이자.
스윽.
“이안 경.”
그 순간이었다. 손끝으로 가볍게 검날을 물리는 아르센. 아이의 검지와 중지에서 피가 송송 솟았다.
“지금 반역자가 4황자인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어찌 보호하는 태세가 하나도 없는가? 나는 바리엘에 없어서는 아니 될 몸이라.”
“저하께서요?”
이안이 차마 몰랐다는 듯 반문하였다. 어딜 보아서? 저놈 하나 없다 한들 바리엘의 수백 년 영광에는 문제없다. 오히려 진이 나아갈 미래가 더더욱 빛날 터.
지이잉. 지잉.
“……!”
“……!”
아르센이 한숨을 내쉬자, 그의 벽안이 금안으로 물들었다. 필리아도, 네르사른도, 심지어는 일개 경비조차 저 눈빛의 변화를 알고 있었다.
“나는 최초의 마법사 황제가 될 몸이라.”
놀라움을 넘어서는 경악.
게일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필리아를 껴안은 네르사른의 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지금 이게,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나를 죽인다면 바리엘 제국을 죽이는 것이다. 이안, 그대는 알고 있지? 마법사 한 명이 가져오는 무궁한 영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다마다. 변방의 천출 서자가 마법사라는 연유만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오르지 않았나. 그런데 후계 순위에 있는 황자가 마법사라니. 거두절미하고 황좌에 오를 만한 자격이었다.
이안이 생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걸 능가하는 신의 능력.
아르센은 연신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안 경, 나보고 실수하였다고 하였지? 글쎄. 실수는 그대가 한 것 같아. 이런 나를 두고 아둔한 진의 편에 서다니. 쯧쯧.”
다들 이안을 돌아봤다. 심지어는 게일조차 당황한 낯빛을 숨기지 못했다. 아르센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봐온 그였으나, 마법사의 기질을 갖고 있다는 건 전혀 짐작하지 못한 것이라.
“…환각인가?”
“게일 형님, 황가의 축복을 잊으셨나 봅니다. 정신 지배 마법 따위는 통하지 않아요. 형님이 저를 죽이시려 한다면, 저 또한… 커헉!”
말을 잘 잇던 아르센이 각혈하였다. 울컥울컥 뱉어내는 핏덩이가 순식간에 바닥을 적셨다. 고통스러운지, 아르센은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괴성을 질러댔다.
달칵!
“저하! 괜찮, 헉! 괜찮으십니까?”
“아르센 저하! 저하!”
경비의 호출을 받고 달려온 의료진들이 들이닥쳤다.
게일이 검을 들고 있고, 아르센은 피를 쏟아내며 쓰러진 터라, 상황을 알지 못하는 호위병들이 게일을 제압하며 침대에 짓눌렀다.
채앵!
게일의 검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키며 아르센이 나간 문을 허망하게 쳐다보았다. 아르센이 진정 마법사라면, 그는, 그리고 마리브는 어떤 짓을 했어도 황좌를 따낼 수 없지 않았나. 운명이란 게 대체 무엇이기에 이리도 가혹한지, 게일은 호위병이 누르는 대로 얼굴을 침대에 파묻었다.
“이안 경.”
네르사른이 조심스레 이안을 불렀다. 이제 어떡하면 좋을지를 묻는 것이다.
“…최초의 황제 마법사.”
“이안 경?”
“하하! 하하하!”
네르사른이 움찔거렸다. 이안이 웃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진솔된 웃음이었다.
“…미치겠네.”
진정한 최초의 황제 마법사 앞에서, 감히 그 자리를 거론하다니.
전사 몇몇이 문틈을 잡고 다급하게 되물었다.
“쫓아갈까요? 저리 나가면, 진짜 문제 되는 것 아닙니까?”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황제 마법사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로 하였다면, 측근 역시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르센의 신병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안에게 패착이다. 오히려 게일의 손에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황실에서 나온 첫 마법사라. 둘 다 명제가 안 맞아. 역사가 내게 알려주었다. 그 최초가 나였거늘.’
이안이 아는 역사를 바탕으로 짐작하자면, 그럴 수가 없다. 방금 아르센이 보여준 게 여러 의미로 마력(魔力)이라면…….
‘황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