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03
제203화. D-7
“아르센!”
딜라이나는 아연실색하여 아르센을 껴안았다. 정신 잃은 아이의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각혈로 엉망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훔치며 연신 훌쩍거렸다. 곧 죽을 자처럼 온몸이 차고 딱딱했다.
“어찌, 어찌 이래? 아르센이 어찌 이래? 응?”
어미의 울부짖음에 의사가 식은땀을 닦아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르센이 게일을 찾아갔고 그로 인해 해를 입은 것이리라. 경비들은 게일이 아르센을 잡아 던졌노라고 전했다.
“게일이?”
“딜라이나 님, 잠시만 비켜주십시오.”
“이, 으아아! 게일이, 이놈이!”
“뭣들 하나? 어서 딜라이나 님을 모셔!”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십시오. 딜라이나 님.”
시종들은 겨우 딜라이나를 부축하여 아르센에게서 떨어트려 놓았다. 궁에 들어오고 나서 계속, 장성한 황자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그녀다. 아들을 지키기 위하여, 황제의 곁에서 목숨을 부지했던 나날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도 결국, 마리브와 게일은 자신의 아들들을 해치는구나. 게일은 아르센을, 마리브는 진을…….
그때였다.
콰앙!
“아르센 저하!”
“저하는 좀 괜찮으신가?”
“딜라이나 님, 소식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아이고, 저저, 저 작은 몸에 무에 그리 흠낼 게 있어서. 쯧쯧. 게일 저하도 참 잔인하시지.”
관료들이 들이닥치며 소란을 피워댔다. 그들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르센과 바닥에 주저앉은 딜라이나를 보며 사태를 파악했다.
“딜라이나 님. 그, 사실 맞습니까?”
“…그래. 맞네.”
게일이 아르센을 해하였다, 딜라이나는 그것에 관한 긍정을 한 것이었지만, 관료들은 아니었다. 아르센이 마력운용자가 맞노라고, 그것에 종지부를 찍는 답으로 이해한 것이다.
“경사입니다. 경사. 이제 살았어요!”
“…무어라?”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이참에 게일 저하를 즉결로 처분합시다. 반역자의 신분으로 마력운용자이자 유력 후계자인 아르센 저하를 공격하였으니, 이는 두 번의 난과 같지 않겠습니까?”
“옳지요! 바리엘에 두 번이나 반기를 든 것입니다!”
“찬성합니다. 바로 죽입시다.”
“듣자 하니, 이안 경이 야만족을 주둔시켜 두었다고 합니다. 무력으로 뚫기는 힘들 것이니 명분으로 들이밀어야 합니다. 이안 경도 쉬이 물리지는 못할 터.”
“아니, 잠깐만. 지금 다들…….”
딜라이나는 혼란스러워 멈칫거렸다. 아르센이 마력운용자라니? 항상 곁에 있어 함께였으나 그런 낌새는 전혀 알지 못했다. 누군가 정확히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관료들은 저들끼리 고양되어 게일의 목을 칠 계획만 늘어놓았다.
“그나저나, 마법부에서는 치유 마법사도 안 보내주더이까? 아르센 저하가 저리 실신을 하셨거늘, 이는 도리가 아니지요.”
“제 개새끼 감싸느라 정신이 없어 보이더군요. 그, 뭐라더라. 베릭인가 하는 마검사가 반죽음으로 와서 치유 마법사를 다 몰아주지 않았습니까.”
“그거, 밖에서 하이만 가와 붙었다는 말이 있어요.”
“맞습니다. 수배령도 내렸다 들었습니다.”
끼이익.
“마법부의 이안 히엘로 장관님 드십니다!”
“히익!”
이안에 대해 이리저리 떠들어대던 관료들이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혹여 들은 것은 아닐까? 시종이 인기척을 내주긴 하였으나, 그는 마법사였다. 앉은 자리에서 바리엘 전역에 목소리를 내는 자였으니,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이, 이안 경.”
“어찌 여기 다들 모여계십니까?”
“아니, 그게, 아르센 저하가 쓰러지셨다 하니 걱정이 되어서 말일세. 큼큼.”
곳곳에 익숙한 자들이 섞여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입으로, 지금은 아르센의 안위를 걱정한다라. 이안은 피식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의사가 이안을 알아채고 일어서서 인사했다.
“아, 이안 님.”
“저하의 상태는?”
“제 소견으로 큰 문제는 없습니다. 각혈하시긴 했지만, 음, 글쎄요. 아무래도 시일을 두며 검사를 계속하는 게 좋겠습니다. 조금 피로하신 듯합니다.”
각혈까지 했으나 신체적인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확실히 이상 반응이다.
이안이 고갯짓하자, 치유 마법사들이 좌우로 갈라져 아르센을 살폈다. 그들은 손끝으로 맥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마력을 신체가 버티지 못하면 피를 내기도 합니다. 일전에, 이안 님도 그러셨지요.”
마리브와 대적하고 난 뒤, 이안도 피를 쏟아냈다. 아르센이 보여준 것은 그저 ‘개방’에 불과하였으나, 아이의 여린 몸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마력을 몸으로 넣어 좀 더 자세히 보고자 합니다. 딜라이나 님. 허락해 주십시오.”
“치, 치유 마법사들이오?”
뒤에서 지켜보던 관료들의 물음에 이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허튼소리 덧붙이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아무리 아르센과 대적하고 있다 한들, 마법부 장관으로서 할 일은 해야 했으니.
“허, 허락하마.”
딜라이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치유 마법사들이 이안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안의 명령을 이행하겠다는 뜻이었다.
‘마력을 넣어서,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라.’
마력을 지닌 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마법사가 아니라 마검사도 그러했다. 이안이 베릭의 정체를 가려내기 위해 마력을 흘려보냈듯이, 이번에는 치유 마법사들이 그러할 것이라.
지이잉. 지잉.
두 사람이 아르센에게 마력을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타앗!
아르센이 눈을 감은 채 마법사의 손목을 낚아챘다. 잠꼬대와 같은 몸놀림이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신체 반응이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는 것.
“…어머니.”
“아르센, 아르센! 정신이 드는가?”
아이가 목소리를 쥐어짜며 제 어미를 불렀다. 딜라이나가 마법사를 밀치고 아르센을 껴안았다. 생기가 쏙 빠진 것 같은 시선. 아르센은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게일 형님이 나를 해칠 때 이안 경이 동조하였습니다. 저자를 물려주세요. 무섭습니다, 어머니.”
“…이안 경!”
그 말을 듣자마자, 딜라이나가 눈을 치켜세우며 이안을 돌아봤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가 상당했으나, 이안은 무심하게 받아쳤다.
“게일 저하가 작심하시어 덤벼드시니, 애먹긴 했습니다. 그러니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린 것 아닙니까? 대체 무슨 연유로 출입하신 것인지 모르겠으니, 답을 주시면 저 또한 드릴 말씀이 있겠는데요.”
게일을 죽이려고 처소에 든 것 아닌가? 게일의 처지에서는 저를 죽이려는 자를 죽이려 했을 뿐이니, 전혀 문제 될 것 없다. 그리고 안전 지침을 위반한 것은 아르센이라, 이안 역시 이번 사달에 관한 책임이 없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게일 저하께서 과하였다! 이는 넘어갈 수 없으니, 당장 즉결 처분할 것을 요청하오!”
“그, 그렇습니다. 흉포한 성정이 황실의 수치입니다!”
“이안 경, 주둔한 야만족, 아니, 그 천려족을 물리시고 당장 게일을 처단하십시오.”
관료들은 이때다 싶어 이안을 압박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들로 덤벼대니, 꼴이 가관이다. 앞뒤 재지 않고 다수의 힘이라면 관철될 것이라 여기는, 아둔한 자들. 그들을 깨우치는 것은 아주 작은 거절이었다.
“불허합니다.”
“예? 어째서요?”
“설마, 게일 저하를 두둔하시는 겝니까?”
이안은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겨우 성문이 열린 지 서너 시간째였다. 베릭이 너절하게 찢기고, 그 틈을 아르센이 스며드는 동안, 성문을 오가는 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폐쇄되었던 성문이 막 열렸습니다. 혹여 황궁에, 그리고 바리엘에 무슨 일이 날까 노심초사했던 제국민들이 겨우 안심하여 안으로 들어서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와중, 게일 저하를 처단하자? 말이 된다고 여기십니까?”
“아니, 그,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모든 절차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리브 저하의 재판이 나흘 후 잡혀 있지 않습니까? 그와 동시에 처형이 이루어질 것인데, 게일 저하를 먼저 처단하자? 졸속도 그런 졸속이 없지요.”
그래도 정 하고 싶다면 그리하라. 대신에 자신은 반대할 것이며 이것이 언젠가는 그대들의 행정력에 흠이 될 것이라. 이안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간단한 마력확인식을 열 것입니다. 딜라이나 님. 그리 아시고 아르센 저하를 잘 보살펴 주십시오.”
“일주일 후라니?”
“스스로를 마력운용자라 칭하시니, 마법부에서 응당 할 일입니다. 신탁의 빛을 요청하였습니다. 도착하는 대로 간소하게 진행하지요.”
신탁의 빛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르센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제 어미에게 파고들며 울음 섞인 투정을 늘어놓았다.
“어머니. 저는 하기 싫습니다.”
“아르센?”
“마력을 쓰면 몸이 아파요. 그래서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까 저 마법사도 그리 말하였잖아요. 신체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피를 토한다고. 분명 저는 다시 각혈할 것이고, 창피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 봐라? 이안은 눈썹을 슬며시 들며 아르센을 내려다봤다. 당장이라도 마력운용자임을 증명받아 제 입지를 세우는 게 이득이거늘, 어찌 저리 나온단 말인가?
“신년회와 달리 소수만 참석할 것입니다. 아주 자그마한 힘으로도 신탁의 빛은 반응하니, 무리라 여길 것도 없습니다.”
잘 걸렸다. 아르센이 피하면 피할수록 이안은 밀어붙일 것이리라. 신탁의 빛과 함께 신관이 도착하면 뭔가 어긋난 진의 운명도 다잡게 될 터.
이안은 아르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단단히 못 박았다.
“아니면 저하, 혹여 거짓말로 술수를 쓰셨습니까?”
“경망하고, 발칙하오! 이안 경!”
“말을 조심해요! 마력운용자이신 저하입니다!”
“마력운용자 사칭은 신성모독에 관한 중죄이며, 사기이고, 저하의 신분 특성상 바리엘에 대한 기만입니다. 저하, 늦지 않았으니 말씀하실 것이 있다면 하십시오. 제가 친히 들어드리겠습니다.”
친절을 가장한 농락이라, 아르센은 입을 딱 다물며 이안을 노려보았다. 딜라이나 역시 모욕적이라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저하?”
마력이 아니라는 확신. 마력이라 한들, 아르센은 역사에서 사라질 인물이니 두려워할 것도 없다. 이로 보나 저로 보나 이안에게는 거리낄 게 없다
아르센은 대답 대신 어미 품으로 숨어들었고, 딜라이나가 나서서 이안을 물렸다.
“우선 돌아가시게. 아르센의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으니, 안정을 취하는 것이 먼저다. 그대의 마법사 역시 데리고 가시게나.”
이안의 속내가 불투명하니, 치유 마법사들조차 믿을 수 없다는 명령이었다. 단호한 축객령에 마법사들이 허리를 굽히고서 문을 나섰다. 이안도 마찬가지. 그는 다시금 관료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경고했다.
“일주일 후입니다. 저하.”
그러니 몸조리 잘하시라. 이안은 그리 인사하고 사라졌다. 관료들 역시 대책을 모의하고자, 옆 응접실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침실. 아르센은 딜라이나의 품에 안긴 채로 물었다.
“어머니. 놀라셨지요?”
“조금.”
“사실 저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숨기려고 한 것이 아니어요. 혹여 이것이 어머니께 부담이 될까 봐 걱정했답니다.”
마력운용자라 하면 단박에 정세를 뒤집는 것이거늘, 어찌 그리 생각했을까? 딜라이나가 의아하게 아이의 뒤통수를 쓰다듬어주자, 아르센이 덧붙였다.
“보세요. 제가 마력운용자라 하니 이안 경의 태도가 훨씬 날카롭지 않습니까? 게일 형님도 저를 죽이려 하였고요. 어머니. 저는 무서워요.”
“괜찮다. 아르센. 내가 지켜줄게.”
“게일 형님이, 저를 죽이려고 찾아오시면 어쩌지요?”
어쩌지요? 이리로 온다면 어쩌지요? 아르센의 목소리가 딜라이나의 머릿속을 강하게 울렸다. 그녀는 연민이 솟구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괜찮아. 어미가, 어미가 해결하마. 게일이 너를 해치지 못하게, 어미가 해결할게.”
딜라이나는 아르센을 껴안은 채 그리 속삭였다. 애틋한 어미의 표정과 달리, 아르센의 눈빛에는 빛이 없었다. 이안이 경고한 일주일을 가늠하느라 그런 것이다.
‘일주일…….’
제일 가까운 신전이라면 그 정도는 안 걸릴 것 같은데, 어째서 일주일이라 한 것일까. 아르센은 손톱을 탁탁 튕기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대로 간다면 일이 조금, 곤란하게 흘러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