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05
제205화. D-6
히이잉!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안 그래도 어두운 밤중, 빗줄기가 심하게 쏟아지니, 말의 달음박질이 불안한 탓이었다. 로만드로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창밖을 보며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바르사베가, 정말 죽었으려나?”
“모르지요.”
“거참.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닌데 마음에 안 좋구려. 비비안나를 구해준 게 마지막이라 그런 것이겠지. 베릭 저놈도 일어나면 착잡할 터. 당분간은 비밀에 부치는 것이 좋겠어. 에휴, 쯧쯧. 젊고 창창한 인재가 이리 또 가는구먼.”
“…가족이 없을 것입니다.”
“아아. 그래. 페트레이오가 죽고 나서 혼자 산다고.”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곳은 도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외곽이었다. 경로를 짐작해 보자면, 건물에서 황궁 쪽으로 빠지지 못하고 우회로 튼 것 같다. 아마 무고한 제국민들이 휘말리는 걸 방지하고자 골목길로만 도망쳐서 그런 것이겠지.
이안은 턱을 괸 채 주르륵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응시했다. 제국을 위해 죽은 자였다. 그런 자에게 바치는 마지막 밤치고는 상당히 음울하지 않나.
촤아악!
바퀴가 물웅덩이를 가르며 굴렀다. 평소라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하고도 남을 거리였으나, 여러 악조건으로 삼십 분이나 지체되었다. 저 멀리, 흐린 빛이 보였다.
“여깁니다!”
“조심하십시오! 빗길이라 미끄럽습니다!”
경비대들이 들고 있는 랜턴 빛이었다. 마부는 천천히 고삐를 그러쥐었고, 이내 로만드로가 먼저 내려 우산을 펼쳐주었다. 비 막는 것이 무색하게 머리칼과 어깨가 순식간에 젖어버렸지만.
“안녕하십니까. 체투르 2구역 치안담당자입니다.”
“마법부 이안 히엘로일세.”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경비는 깍듯하게 인사한 후 우산을 들고 앞서 걸었다. 간이 천막 아래 익숙한 모습들이 보였다. 황궁친위대 소속의 기사들과 제이럿이다. 몇몇은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며, 몇몇은 시체 옆에 엎드려 있었다. 제이럿은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
“제이럿 대장.”
“…….”
침묵은 무겁고 잔인했으며, 쏟아지는 비보다 더 차가웠다. 제이럿은 홀딱 젖은 모습으로 이안을 맞이했다. 친우와 그의 딸까지 떠나보내고 말았다는 자책감. 그 자책감이 그를 무너트리는 듯 보였다.
“천을 걷어라.”
“그것이, 음, 보기 힘드실 것입니다.”
“…걷어.”
이안의 단호한 명령에 경비가 젖은 천을 걷었다. 로만드로는 차마 못 보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고, 이안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끔찍하다. 썩어버린 고깃덩이처럼 짓뭉개진 곳곳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어찌 신원을 알 수 없겠다 한 것인지 알겠다. 얼굴의 형체가 없다.
“보시다시피 신원 확인이 어렵습니다. 대충 여자라는 것과 나이대가 이십 대 초반이라는 것만 알 정도지요. 황궁친위대 정복을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무연고자 사체로 처리되었을 것입니다.”
투둑, 투두둑.
경비대의 말 중 빈 곳을 빗소리가 채웠다. 빗소리는 너무도 거세서, 누군가의 울음조차 지울 정도였다.
“베릭도 이리 뭉개져서 왔지.”
제이럿은 사체의 외상이 베릭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그가 결국 얼굴을 가리며 등을 돌렸다. 로만드로는 애도의 뜻으로 금화 한 닢을 꺼내어 사체에 올려주었다.
“로만드로 님.”
“흐윽, 응?”
어느새 찔찔 울고 있는 로만드로. 그가 코를 훌쩍거리며 이안을 돌아봤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뭐를?”
“히엘로 령에서 페트레이오를 심문했을 때요.”
“나는 못 봤지. 그때 자네랑 베릭이 둘이서 하지 않았나. 크흡! 기사여, 그대의 희생이 바리엘을 받치고 있네. 고마우이. 잘 가시오!”
페트레이오라는 이름이 거론되자, 제이럿이 반응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얼굴이 짓눌려있긴 하다만, 그보다…….’
녹아내렸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이라. 페트레이오가 독 반지를 썼을 때처럼. 이안은 경비에게 고갯짓했다.
“자네.”
“네?”
“시체 입에 손가락을 넣어보아라.”
갑작스러운 명령에 경비대가 질색하며 굳어버렸다. 온전한 시체도 꺼려지는데, 이리 흉측한 시체에? 하지만 이안이 명을 물리지 않았고, 점차 황궁친위대원들 역시 눈빛으로 압박하자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장갑을 단단히 끼며 내적 비명을 질러댔다.
“이, 이렇게 넣으면 됩니까?”
“이안 님. 대체 무엇을 하시려고요? 바르사베를 더 이상 욕보이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명예와 관련된 것입니다.”
친위대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부탁했으나, 이안은 단호하게 쳐냈다.
“더, 더 넣어라.”
“으으으. 이, 이케요?”
“이가 모두 온전한가?”
“으음. 자, 잠시만요.”
경비는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으며 손끝으로 시체의 치아를 확인했다. 앞니, 아랫니, 송곳니, 그리고 어금니까지.
“예. 다 멀쩡합니다.”
“어금니가 멀쩡해?”
눈물을 찍어 누르던 로만드로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 유별난 반응에, 제이럿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까닭은 알지 못했다. 바르사베가 베릭에게 얻어터져서 어금니가 없다는 걸 그는 몰랐으니.
그녀의 룸메이트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자는 황제 처소 당번을 서느라 이곳에 없었다.
“어금니가 무슨 상관입니까?”
친위대원의 질문에 로만드로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모, 모르시오? 하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만한 게 아니긴 하지! 이, 일전에 베릭이 바르사베 어금니를 뽑아버렸소! 아니지. 말이 좀 이상한데, 그, 박살 내버렸소! 그래서 베릭이 바르사베를 ‘어금니’라 부르곤 했다오.”
“사, 사실입니까?”
“신께 맹세하여 증명하지! 바르사베를 마지막으로 봤던 내 아내도 그 어금니에 관해 들었을 것이오.”
“그, 그렇다면 이 시체는 대체…….”
“바르사베가 아니다.”
이안이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동료들은 저도 모르게 환희의 탄성을 잘게 질러댔다.
바르사베는 아직, 아직 죽지 않았다!
이 시체는 바르사베가 아니다!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작은 안도를 나누는 모습이, 한순간에 죽다 살아온 자들과 같다.
옆에서 듣던 경비들이 천을 제대로 걷으며 되물었다.
“그러면 이건 누구일까요?”
“내 생각에는 얼굴을 이렇게 만든 것이 바르사베인 것 같네. 페트레이오가 자결했을 때 썼던 반지의 독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지. 게다가 정복 자체는 그녀의 것이 맞지 않나?”
“맞습니다. 바르사베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녀가 시체를 훼손하고 옷을 입혔다.”
하나씩, 바르사베의 행적이 윤곽을 보였다. 가만히 고민하던 제이럿이 의문을 중얼거렸다.
“어째서?”
“추격을 끝내기 위해.”
이안은 주위를 둘러봤다. 외곽인지라 수작업용 공장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곳이다. 인가는 드물고, 물건을 적재하기에는 적합한 장소. 이안의 시선을 따라 황궁친위대의 시선 역시 움직였다.
“검은 갑옷이 네 기였다. 바르사베는 그들과 맞설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속 도망쳤을 것이라. 추격을 멈추기 위해서는 그녀의 죽음이 필요하지. 시체가 발견된 위치는?”
“예. 저쪽 쓰레기 더미에 묻혀있었습니다.”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바로 들통날 수 있는 위치로군. 적이 죽였다면 은신하여 시체조차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쿠구궁! 쿠웅!
번쩍!
빗줄기가 더더욱 거세졌다. 이내 천둥과 번개까지 쳐대니, 어두웠던 사위가 일순 밝아졌다. 이안의 말간 외모가 젖어서 더욱 반들거렸다.
“한데 시체는 하루가 가기 전에 발견되었고, 우리가 이리 와 있군.”
“바르사베가 우리를 부른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여기에 무엇이 있다고…….”
바르사베의 신호다. 그녀가 쉬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위급 상황의 의미를 내포한 신호. 이안은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건 지금부터 찾아볼 일. 그대들은 바르사베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시체로 만들었다 보는가?”
“그럴 리가요!”
그녀는 기사였다. 황궁과 신념을 위해 검에게 맹세를 바친 기사. 차라리 적에게 짓밟히면 짓밟혔지, 무고한 자를 죽이고 난도하여 기회를 도모하지는 않았으리라. 그것은 지금 자리에 모인 모두가 자신할 수 있었다.
“바르사베는 그럴 녀석이 아닙니다!”
“그래? 그러면 답 나왔군. 이 시체는 바르사베의 기준으로 죽어 마땅한 자라는 뜻이다.”
죽어 마땅한 자. 그것은 대적 중인 하이만의 수하라는 거겠지. 더 집요하게 파고들자면, 검은 갑옷 안에 있던 수하라 볼 수 있다. 대원 중 한 명이 혼란스러워하며 연신 빗물을 훔쳐냈다.
“모, 모르겠습니다. 당최 지금 이것이 어찌 된…….”
“나 역시 알 수 없다. 어찌 된 것인지, 바르사베에게 직접 듣기 전까지는. 대충 정리하자면-”
로만드로는 헛기침하며 시체 위에 올려두었던 금화를 슬쩍 회수하였고, 흠뻑 젖은 손수건을 쥐어짰다. 이제는 우산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솨아아아.
“바르사베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고 이곳, 체투르 2구역에 뭔가가 있다.”
난감하게 침을 꿀꺽 삼키는 경비들과 달리, 황궁친위대의 표정이 일순 사납게 굳었다. 아직 그들의 동료가 살아있음을 이해한 것이다.
고개 숙이고 있던 제이럿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동.”
“일동!”
처억!
홀딱 젖은 친위대들은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황궁의 예를 취했다. 다들 제 손바닥 아래에서 심장이 쿵쿵 울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바르사베가 살아있다는 희망의 고동이다.
“지금부터 체투르 1번 구역부터 4번 구역까지 수색을 시행한다. 우선순위는 바르사베의 신병 확보 및 구출.”
처억!
촤아아악!
그들의 절도 있는 발짓에 물이 치솟았다. 경비들은 창을 든 채 뒤로 물러섰고, 이내 기함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저들은, 일개 황궁 호위대가 아니다. 황제 폐하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며 제국의 수호를 담당하는 신의 전사들.
지이잉. 지잉.
능력치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마검사들이다. 제이럿은 검은 갑옷이 하이만과 연관되어 있음을 비공식으로 인정하여 명령을 덧붙였다.
“하이만 가와 연관되어 있다면 사소한 것이라도 보고하고, 혹여 앞길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주저 없이 제압하라. 명심하길 바란다. 우리가 바리엘의 심장이다.”
황제를 지키는 만큼, 존엄에 존엄을 더하는 황궁친위대다. 감히 저들의 식구인 바르사베를 건드리고 쉬이 넘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면, 오만 중의 오만. 심장을 찌른 자, 그 심장으로 갚게 하리라.
처억!
타닥타닥! 촤아아악!
마지막 경례 후, 그들은 빛과 같이 빠르게 흩어졌다. 길가에 그어지는 물줄기만 그 흔적을 증명할 뿐. 사위가 삽시간에 적막으로 감돌았다.
경비들은 어색하게 이안을 불렀다.
“자, 장관님. 저희도 지원 요청을 할까요?”
“…아니. 그대들은 여기서 시체를 지켜라.”
혹여 하이만에서 이쪽을 갑옷의 은신처로 삼고 있다면, 치안 경비대들 역시 믿을 수 없다. 저자들의 반응으로 보아, 아닌 것 같긴 하다만… 어쨌거나 최대한 은밀히 움직이는 게 최선 아니겠는가.
이안은 젖은 머리칼을 넘기며 제이럿을 돌아봤다.
“황궁으로 지원 요청을 보내겠다.”
“부탁드립니다.”
삼대장 중 한 명인 리아마도 당했다. 물론 죽으면서 십수 기에 달하는 갑옷을 박살 내긴 했지만, 아무튼 그만큼 상대의 전력이 강하다는 걸 뜻했다. 베올스까지 합류하는 것이 안전할 듯하다.
스릉.
제이럿은 검을 뽑아 들며 천천히 어두운 골목길로 걸어갔다. 빗소리로 인해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스산한 유령의 뒷모습을 보는 듯하다.
데엥- 데에엥-
타닥타닥!
그때, 멀리서 조용히 시계탑이 울어댔다. 자정을 넘기는 알람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밤. 황궁친위대는 빗줄기를 뚫고 내달렸다.
저들의 동료, 바르사베를 구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