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06
제206화. 황궁친위대
“아으.”
바르사베는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쥐어 잡으며 신음했다. 땀과 피 그리고 사정없이 내리는 빗물로 인해 모든 것이 끈적하고 습했다.
그녀는 상체를 흠뻑 적신 핏물을 짜냈다. 마력으로 응급처치를 하려 해도,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분신술을 너무 오래 썼다. 남아있는 힘이 하나 없으니, 이는 범인(凡人)의 신체와 다를 바가 없다.
바르사베는 고통을 삭이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멍청이가 잘 해냈나 몰라. 아, 이거 진짜 너무 아프다.’
그녀가 숨어 들어있는 곳은 폐창고의 구석이었다. 타닥타닥,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유독 크다. 바르사베는 그것이 마치, 몇 시간 전 저가 내던 발소리처럼 들렸다.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여 내딛던 그 한 걸음.
타닥타닥!
네 기의 갑옷을 유인하여 외곽까지 도망쳤다. 그녀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분신을 반대쪽으로 보내 넓은 범위로 혼란을 주었을 터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바르사베와 분신 그리고 갑옷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추격과 도망을 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뭔가 이상했다. 살상을 위한 추격이라기보다, 유인하여 몰아친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마치 그녀가 다른 길로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으로.
‘실수라 여기지는 않는다.’
황궁이 어찌 되었는지 모를 상황. 도망쳐 몸을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녀석들이 꺼리는 그 길로 들어설 것인지, 바르사베는 갈림길에서 선택했다. 적의 급소를 노리려면 그만큼 가까이 붙어야 하는 법이라. 대가는 거동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몸이었지만 말이다.
스윽.
그녀는 힘이 안 들어가는 왼손을 내려다봤다. 아버지, 페트레이오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저를 두고 자결한 아버지의 각오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기도 했다. 투쟁을 위해 죽음을 가까이 두는 삶. 그것이 기사의 삶이라.
그녀는 반지에 입술을 맞추며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만 버티자. 해가 뜨면 사람들이 온다. 시체가 발견되었다면 친위대 식구들 또한 올 것이니. 괜찮다.’
체투르. 수작업용 공장이 즐비하여, 중앙으로 유통되는 것들이 적재되는 지역이다. 대형 제조 길드, 상단, 대장간 따위의 굵직한 거래처가 즐비하였으나, 구역 특성에 맞게 자잘한 단체들 역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개중 하나가 하이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곳에는 하이만 은행이 없어. 그런데도 3구역 사람들은 검은 갑옷을 보고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필시 이곳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고, 지역 특성상 검은 갑옷 제조와 관련이 있다는 거겠지.’
아마 재료를 보관하는 곳일 가능성이 크다. 검은 갑옷이 아니라면, 더더욱 좋다. 하이만이 숨기고 있는 다른 변수를 밝혀내는 것이니까.
바르사베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연신 되뇌었다.
그녀로 위장한 시체가 서둘러 발견되고, 황궁에서 이를 이용하여 인근에 조사를 진행하는 것. 하여, 근거지 파악 및 물량 압수. 그것이 모두 진행되고 공식적으로 그녀의 생존이 확인되는 것.
“이봐, 여기도 살펴봤어?”
“아니. 그쪽은 아직일세.”
“자네가 먼저 오른쪽으로 돌아. 내가 가지.”
“이쪽으로! 이쪽으로 움직여!”
찰박찰박!
그때, 멀리서 희미하게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녀를 추격하는 자들의 소리다. 아직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나 보다.
그녀는 몸을 더더욱 세게 말고서 숨을 죽였다. 밤이 깊어질수록 날이 차다. 입김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자, 바르사베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젠장.’
끼이익.
지나쳐라, 지나쳐라, 주문 외우듯 기도하였으나 소용없었다. 창고 문이 무심하게 열리며 빛이 들어왔다. 추격자들이 지닌 랜턴의 빛이다. 그들은 사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적재된 물건을 대충 흩트렸다.
쿵! 쿠웅!
“조심해. 깨지는 거면 귀찮아진다고.”
“아아. 그러지.”
바르사베는 울렁거릴 정도로 긴장했다. 모든 감각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기 위함이리라. 다행히 추격자들은 별 소득 없이 등을 돌리려고 했다.
“여기에는 없는 것 같은데.”
“근데 진짜 있긴 있는 거 맞아?”
“몰라. 기사들 말로는 인근에서 흔적을 놓쳤고, 저기, 애니가 돌아오질 않으니까.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지.”
“귀찮게 하네, 진짜. 자자. 다음 창고로 가보자고.”
“사지 멀쩡한 곳 없다 하니까 어디 박혀 있을 거다.”
애니. 바르사베가 처리했던 여인의 이름인가 보다. 3구역에서 맞닥트리자마자 저를 공격하던 자였다.
그녀는 입술를 꾹 깨문 채 귀를 기울였다. 발걸음이 밖으로 가고 있다. 그들이 창고의 처마를 나서려는 순간.
“잠깐.”
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슬쩍, 제 발과 함께 뒤쪽을 돌아봤다. 희미하게 섞인 붉은 색. 혹여 랜턴에 반사된 색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발 들어봐.”
“발? 왜?”
“상처 난 곳 없어?”
“없지. 갑자기 왜 그래?”
“…….”
사내는 대답 대신 검을 빼 들었다. 상처를 입고 숨어든 자의 얼룩을 밟은 것이라. 그의 대처에 동료들 역시 놀라서 공격 태세를 취했다.
스릉.
수백, 수천 번씩 들었던 소리다. 검이 검집에서 나오며 스산하게 울어대는, 그것.
바르사베는 직감적으로 들통났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며 눈을 떴다. 이제 정말 끝이다. 저들이 자신을 죽이기 전, 마지막으로 검사의 긍지를 보여줄 시간이 왔다. 웅크려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제 죽음은 저가 결정할 것이니.
“보자, 여기에 있나?”
콰앙! 챙!
“아니네. 그러면 여기?”
큰 상자를 단번에 부수며 검을 휘두르는 추격자들. 이내 천으로 감긴 것을 베고, 찌르며, 바르사베가 은신할 만한 곳을 죄다 훑었다.
스윽.
파앗! 콰아악!
“으아아악!”
바르사베는 저를 향해 등 돌리고 있는 사내에게 단검을 내던졌다. 목덜미를 노렸으나, 몸이 불편하여 빗나가고 말았다. 단검은 사내의 귀를 잘라내고 벽에 박혔다.
바르사베는 그 틈을 타서 재빨리 창고 밖으로 뛰어갔다. 아니, 뛰어가고 싶었다. 한쪽 발을 심하게 절뚝거려, 거의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하!”
추격자들이 놀라서 뛰쳐나가려다,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저런 꼬락서니면 독 안에 갇힌 쥐새끼만도 못하지 않나.
“피! 피!”
“새끼야, 안 죽어. 지혈이나 하고 있어라.”
“야! 단발! 차라리 굴러가. 그게 더 빠르겠다.”
그들은 검으로 땅을 긁으며 바르사베를 천천히 따라갔다. 빗소리 외, 젖은 흙 밟는 소리와 웃음 그리고 그녀의 거친 신음만 들려왔다.
무의미한 도망이었지만 바르사베는 계속 걸었다. 내부보다 외부에서 저항하다 보면, 혹시 누군가 볼 수도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은, 궂은 날씨 탓에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지만.
찰박! 찰박!
“허억, 허억…….”
“너무 빠르다. 천천히 좀 가자!”
저 멀리 아른거리는 인영이 보인다. 사람들이다. 다들 우산을 들고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바르사베는 순간, 희망에 차서 눈이 크게 떠졌다. 사람들 사이로 우뚝 서 있는 검은 갑옷을 보기 전까지.
촤아악!
농락하듯 그녀를 뒤에서 베어버리는 추격대. 바르사베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고통을 참기 위해 꽉 움켜쥐는 손아귀. 흙이 잔뜩 잡혔다.
“얼굴은 내버려 둬. 머리통 가져가면 금화 1닢이라니까. 신원 확인은 해야 한다잖아.”
“이. X발 새끼들이…….”
“안 들리는데? 뭐라고?”
챙! 채앵!
추격자의 검이 바르사베의 목덜미를 노리며 직각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옆으로 구르며 겨우 받아 쳐냈고, 그와 동시에 귀 뜯긴 사내가 달려와 발길질을 해댔다.
“이게, 감히!”
“…….”
“내 귀를!”
퍼억! 퍽!
바르사베는 이를 꽉 깨물며 신음을 참았다. 이런 놈들에게 맞으면서 고통을 흘린 순 없다. 베릭 개새끼. 어금니가 없으니까 이 깨무는 게 쉽지 않다.
“죽어! 죽어!”
마지막 일격, 하나만 날리자. 딱 한 놈만 더 데리고 가자. 바르사베가 그리 다짐하며 검 손잡이를 꽉 잡는 순간이었다.
솨아아.
갑자기 랜턴의 빛이 모두 꺼졌다.
비구름으로 인해 달도 숨어버린 밤이었다. 순식간에 세상이 어둠으로 물드는 것처럼 보였다.
추격자들이 멈칫거리며 랜턴을 들여다봤다. 유리 덮개가 단단히 덮혀 있건만, 어찌 꺼졌는지 모르겠다.
“불 있는 사람?”
“이게 갑자기 왜…….”
콰아앙!
그때, 굉음이 터지며 한 사내가 사정없이 뭉개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그대로 맞은 듯이.
바르사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시야가 흐려서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뭐, 뭐야!”
“이봐! 여기 도와줘!”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콰앙!
젖은 망토가 하염없이 휘날렸다. 바르사베는 저도 모르게 엎드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과 함께 눈물이 흘렀으나, 빗물이라 치부할 것이다.
“바르사베.”
“아…….”
“괜찮나?”
그녀의 동료들이다. 마력을 한껏 개방하여 흩날리는 빗방울조차 궤를 휘게 하였다. 귀가 잘린 자는 일격에 죽었다. 엄청난 폭우조차 그의 피를 한번에 씻기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으, 윽! 이봐!”
타앗! 타앗!
한 명, 한 명, 어디선가 황궁친위대들이 빗줄기를 뚫고 나타났다. 어두워서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바르사베의 생존에 안도하였다. 동료 한 명이 로브를 벗어 바르사베에게 던졌다.
“바르사베. 너를 찾아다녔다.”
“아, 다들. 진짜…….”
“우리는 전장에서 함께 죽을 것이다. 너 역시.”
바르사베는 붉은 천을 끌어안으며 다시 엎드렸다. 이제는 힘이 없어서 허리를 세울 수조차 없었다. 갑작스러운 적들의 등장에, 추격대들이 크게 소리쳤다.
“여기!”
검은 갑옷을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그의 마지막 단말마가 되었고, 저의 동료처럼 사지가 찢겨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솨아아아.
처억.
황궁친위대들은 바르사베를 뒤로하고, 검은 갑옷과 맞섰다. 사태 파악을 한 자들이 증원 요청을 하기 위해 이리저리 퍼지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 체투르에서 꽤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이리라.
지이잉. 지잉.
리아마를 꺾은 마력 갑옷이다. 바르사베와 베릭이 합심하여도 이기지 못했던, 상대의 중심 전력.
황궁친위대들은 마력을 끝없이 개방하여 공격 태세를 취했다. 그들이 내는 빛이 빗줄기 속에서 뿌옇게 빛났다.
“우리는 황궁친위대원이다. 그대는 하이만 가 소속의 기사가 맞는가? 그리고 그대가 우리의 바르사베를 이리 만들었는가?”
누군가 소리쳤으나, 갑옷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주먹을 크게 휘두르며 덤벼댈 뿐.
콰아앙! 촤악!
그의 주먹이 땅에 꽂히자, 물줄기가 시원하게 치솟았다. 대원 한 명이 바르사베의 팔을 잡고 피했으며, 다른 자들은 일제히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
채앵! 챙! 챙!
황궁친위대 다섯 명이 동시에 갑옷을 내려쳤다. 앞뒤 좌우, 정수리까지. 힘이 동시에 들어왔으나, 갑옷은 쓰러지는 대신 휘청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친위대원들은 말문이 막혀서 뒤로 물러섰다.
“대체-”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갑옷에 금이 가긴 했으나, 안쪽의 기사에게는 타격이 없는 듯하다. 다들 자세를 다잡으며 공격을 다시 퍼부으려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쿵쿵대며 달려오는 검은 갑옷들이 보였다.
도합 세 기. 바르사베를 쫓았던 그것들이다.
“일동!!”
번쩍-!
쿠우우웅!
몰아치는 번개와 천둥. 동시에 우렁찬 제이럿의 명령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는 폐창고의 지붕에 서서 검 끝을 갑옷에게 겨누고 있었다.
“대장님!”
“지금부터 작전의 목표를 변경한다.”
지이잉. 지잉.
마물을 대적할 때나 개방한다는, 제이럿의 힘. 그의 주위로 스산하게 어두운 기운이 감돌았다.
“몰살. 적들을 남김없이 몰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