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07
제207화. 흑갑옷을 부수다
콰앙!
굉음이 들려오자, 이안과 로만드로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시체 옆에 마차를 세워두고, 그 안에서 황궁의 지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임시 천막은 경비대와 함께 쓰기에 너무 좁고, 뭣보다 로만드로가 시체를 질색하는 터라 옆에 있을 수 없었다.
이안이 소리 난 쪽 창문 커튼을 걷었다. 사위가 여전히 어둡다.
“서쪽에서 난 것 같습니다.”
“바르사베를 찾은 것일까?”
“그녀를 찾았든, 아니면 검은 갑옷을 찾았든.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제이럿 대장의 마력이 강하게 느껴져요. 베릭을 대했을 때와 깊이가 다른 강함입니다.”
이안은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대고서 중얼거렸다.
제이럿 뿐만 아니었다. 사방에서 희미하게,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던 마력들이 한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저들끼리 신호를 주고받아 결집하고 있는 듯했다.
로만드로는 안색이 파리한 이안을 살펴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역시 자네는 황궁으로 먼저 돌아가는 게 좋겠어. 피로가 누적되었는데, 비까지 맞았으니 건강이 염려되네.”
“모두가 비를 맞았습니다. 제가 힘들다 싶으면 말씀드릴 터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이안은 웃으며 다시 창밖을 쳐다봤다. 경비대 두 사람이 시체 머리맡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입김인지, 연기인지 모를 것들이 그들의 표정을 가려댔다.
이안은 그걸 보며 조용히 로만드로를 불렀다.
“…체투르에 인가가 많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긴 합니다만, 보통 이렇게 인적이 드뭅니까?”
크고 작은 공장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낮에 일하는 노동자가 있으니 당연지사 밤에 일하는 자도 있을 터. 하지만 이안은 도착하고 나서 몇 시간 동안 겨우 두어 명만을 보았을 뿐이다.
로만드로는 회중시계를 짤깍거리며 의아하게 대답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닌 듯싶은데, 날씨가 험하지 않나. 재수 없으면 지하실이 잠기고 천장이 샐 수도 있지. 이곳은 계약에 따라서 매번 창고를 뜯었다가 세웠다 난리거든.”
계절마다 창고에 적재되는 게 수시로 바뀌었다. 건물 자체가 쉽게 올리고 부술 수 있도록 지어졌으니, 그 누가 궂은 날씨에 남아서 잔업을 하겠는가. 다음날 되면 건물 곳곳에서 보수한다고 난리인 것이 체투르의 흔한 광경이었다.
“참으로 비효율적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네. 구역 세밀화가 되어있는 데다, 사실상 중앙의 상업 근간이라, 매년 창고에 세 넣는 자들이 정신없이 바뀌니까.”
톡톡, 이안은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잠시 침묵했다. 그래서 이리 조용한 것인가? 굉음이 들려왔음에도 사위에 불 켜지는 건물이 하나 없다. 다들 천둥으로 오인한 것인가?
달깍.
마차 문이 열리자,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쳤다. 로만드로는 옷깃으로 얼굴을 가리며 이안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안?”
“로만드로 님은 여기서 황궁친위대를 기다렸다가, 서쪽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자네는?”
“굉음을 확인해 보려 합니다.”
“같이! 같이 가면 안 되나?”
“…저 경비들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천막 아래에 서 있던 경비들이 이안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하여 마차 밖으로 나오는지 의문스럽다는 듯이. 로만드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되물었다. 어차피 비바람 소리에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정확히는 저자들이 아니라, 저자들의 상관이겠지요. 로만드로 님은 남아서 자리를 지켜주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타앗!
로만드로가 이안의 말을 곰곰이 되씹는 동안, 이안은 우산 없이 마차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굉음이 터진 곳으로 몸을 돌렸다. 마력이 강하게 느껴지니, 길 찾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타닥타닥!
솨아아-
빗줄기 사이로 사라지는 이안의 뒷모습을 보면서, 로만드로는 천천히 마차 문을 닫았다. 그러곤 창문 커튼 틈으로 경비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비라도 좀 그쳤으면 좋겠건만,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무지막지하게 폭우를 쏟아내고 있었다.
* * *
하나, 둘, 셋…….
제이럿은 눈대중으로 검은 갑옷의 수를 세었다. 어림잡아 대충 열 기 정도 되는 듯했다. 더 이상의 상대편 지원이 없다면 말이다.
한차례 타격했던 황궁친위대원들은 대장의 명령을 기다리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쿵쿵!
‘대원 다섯 명을 견디는 견고함이다. 전력이 분산되면 승산이 없어. 리아마 혼자서 열 기를 상대하다 죽었다고 했었나? 그렇다면…….’
지이잉. 지잉.
제이럿을 중심으로 마력이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빗줄기가 그에게 닿지 못하고 부딪히며 흩어졌다. 주위에 깊은 고요만이 감돈다. 홀로 다른 세상에 서 있는 듯한 이질감에, 적들은 멈칫거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제이럿이 하늘로 손을 뻗었다.
쿠구구궁!
콰앙!
천둥이 하늘을 찢어버릴 듯이 울렸다. 제이럿의 손끝에서 환한 빛줄기가 감돌았고, 그것이 검의 형태로 변하는 순간.
번쩍!
번개가 내려 찍혔다.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손아귀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둠 속에서 얼핏 보이는 제이럿의 눈빛. 결연과 투지가 깃들어 뜨거운 김이 펄펄 솟아났다.
“코펜트.”
약속된 전술명이다. 각개전투로는 승산이 없으니, 제이럿 대장을 중심으로 목표 대상을 동시에 파괴하는 것.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정리하여 허공으로 발돋움했다.
촤아악!
순식간이었다. 그들이 내달린 흔적을 따라 물줄기가 갈라졌다.
제이럿은 거대한 검을 있는 힘껏 휘두르며 갑옷의 목덜미를 내려쳤다. 중심되는 공격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대원들은 같은 방향으로 마력을 넣으며 함께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쾅!
콰직!
“으아아악!”
번쩍, 번쩍! 젖어있는 거리가 빛을 그대로 받아내어 속절없이 빛났다. 한 번에, 한 명씩. 하지만 모두가 함께. 황궁친위대는 코펜트라는 전술명을 되뇌며 다시금 검을 내려쳤다.
채애앵! 챙!
결국, 투구가 박살 났다.
그 안에 있던 기사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제이럿과 대면했다. 껍질이 벗겨진 기사는, 마검사들 앞에서 한낱 개미 새끼에 불과하지 않나.
제이럿은 망설임 없이 그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투둑.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 다른 자들의 발치에 닿았다. 분수처럼 솟던 피 역시 비에 희석되어 점점 옅어져 갔다. 곧 너희들의 피 역시 저처럼 사라질 것이라. 제이럿은 검을 들어 보이며 침묵으로 경고했다.
처억!
‘나와 대원들 여섯 명이 동시에 두 합을 치면 투구가 깨진다.’
경험으로 정보가 쌓였다. 삼대장 리아마를 꺾었다고 해서 조금 긴장했거늘,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위협적이긴 하다만, 리아마는 적에 대한 인지가 하나도 없는 상태였고, 제이럿은 합을 맞출수록 상대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적 시 한 기당 최소 인원을 여섯 명 이상으로 잡아야 한다는 말이로다. 일망타진하려면 황궁친위대가 모두 동원되어야 하지만, 하나씩 격파한다면 우리로도 충분하겠다.’
“뭉쳐! 저놈들이 한꺼번에 공격하게 두면 안 된다!”
“서로 앞과 뒤를 봐줘라!”
“젠장, 대장이다! 저자는 대장이니 조심해!”
“팔이든 발이든, 우선 잡아! 잡으면 우리가 유리해!”
하지만 상대 역시 생과 사를 앞둔 사람인지라, 상황을 타개할 방도를 찾아냈다. 흐름이 완전히 바뀌지 않았나. 이제는 단체 대 단체로 어느 쪽의 호흡이 먼저 흐트러지는 지가 관건이리라.
제이럿이 다시금 기합을 넣으며 뛰어들었다.
“으아앗!”
“대장님을 호위하라!”
“호위해! 코펜트!”
“왼쪽 셋, 오른쪽 둘!”
“뭉쳐! 뭉치면 우리가 이긴다!”
채앵! 챙!
제이럿이 덤벼들자, 수많은 공격이 뒤엉키며 서로를 파고들고, 쳐냈다. 누군가가 제이럿을 대신하여 검을 받아내면 그 틈으로 갑옷이 파고들었고, 다시 황궁의 동료가 밀어주는 등,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맞물리며 균형을 이루었다.
촤아아악!
“아, 씨.”
“젠장. 대장님!”
“물러서지 마라!”
“계속 퍼부어!”
쿠구구궁.
천둥이 그들의 소란을 삼켜 버렸다. 괴성과 굉음과 비명이 난무하였으나, 귓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하늘의 울부짖음 뿐이라.
바르사베를 보호하던 황궁친위대원 역시 전투에 가담하기 위해 달려갔고, 그녀는 쓰러진 채로 그걸 지켜봤다.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동료들의 뒷모습이 간헐적으로 보였다. 치열하고, 맹렬한 모습들이 사진처럼 보였다가, 꺼지길 반복했다.
‘움직일 수만 있다면-’
움직일 수만 있다면, 저곳에 뛰어들어 함께 피를 흘릴 것인데. 홀로 이리 누워있는 게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저놈들을 묶을 수만 있다면-’
비바람보다 더욱 빠르게 놈들을 제압할 수 있을 터. 바르사베가 염원을 담아 간절히 주먹을 쥐었다.
그때, 차분하게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만엽(萬葉)」
마력의 힘으로 뭉쳐져 있어, 그 어떤 소란 속에서도 청명하게 울리는, 이안의 목소리였다. 황궁에서 마리브를 제압할 때 썼던, 기속(羈束) 마법의 하나였다.
쿠구구궁!
사아악.
이계의 마법수(魔法樹)가 재빠르게 갑옷 군단을 옭아맸다. 갑작스러운 개입에, 다들 고목의 가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안이 바르사베를 한 손으로 일으키며 웃었다.
“황궁친위대에 어찌 기속 마법 쓰는 자가 하나 없나? 혹 다들 빗속의 전투를 즐기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건, 리아마 대장님이 주력이십니다.”
“주력이 아니면 아무도 못 쓴단 말인가?”
“이안 님. 이안 님은 마법부 장관이지 않습니까.”
바르사베가 쥐어짜며 대꾸했다. 학자가 학도에게 설교하는 것과 같은 맥락 아닌가. 그들은 마검사였지 마법사가 아니란 말이다. 바리엘 최고 권위자인 마법부 장관께서 저리 말하니, 황당하여 할 말이 없다.
이안은 그녀의 상처를 훑어보다 제이럿에게 지시했다.
“오래 잡지는 못하네. 보시다시피, 나 역시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하여. 서둘러 정리하는 게 좋을 것이네.”
지이잉!
이안의 금안이 더더욱 짙어졌다. 마법수를 유지하기 위해 마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증거였다.
갑옷 군단은 나무를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으나, 쉽지 않았다. 제이럿과 황궁친위대가 한 발자국 물러나서 거리를 확보했다.
타앗!
“아, 그리고 그대들 중에 혹시 에서 붉은 머리 검사와 싸웠던 자가 있는가?”
느닷없는 물음이었다. 갑옷 군단은 대답 대신 격렬한 저항으로 마법수를 잘라냈다.
콰직!
“유감이군. 있다면 살려주려 하였는데.”
바르사베가 옆구리를 쥐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이안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싱긋 웃었다.
“베릭은 당한 대로 돌려줘야 하는 성격이라서.”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일어나자마자 갑옷 찾겠다 소란 피울 게 빤하다. 한번 패배한 자에게 승리하는 것만큼 확실한 성장이 없지.”
“…걔, 안 죽었습니까?”
“아쉽게도, 죽다 살았지.”
“호외인지 뭔지는요?”
“그것은 다행이게도, 성공했네. 그대 덕분에.”
바르사베는 안도감을 느끼며 몸에 힘을 풀었다. 이제 여기서 동료들과 함께 살아서 돌아가면 모든 게 끝이다.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라.
“…하아. 하하.”
“제이럿. 모두 제압하시게. 몇몇은 죽어도 상관없어.”
처억!
상대는 묶여있다. 제이럿과 친위대원들은 하늘을 향해 맹세의 손짓을 한 다음,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
콰아앙! 쾅!
번쩍!
“헉. 뭐여.”
마차에서 서쪽을 지켜보던 로만드로는, 하늘이 일순 밝아짐을 알아챘다. 어두운 밤, 서쪽 하늘에서 떠올라 터지는 태양처럼.
길었던 밤을 몰아내는 폭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