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08
제208화. 체투르 3번 구역
“하아, 하아…….”
“아이고, 죽겠다.”
“죽긴 뭘 죽어. 살았는데.”
“다들 다친 곳 없어? 무사해?”
흠뻑 젖은 친위대원들이 죄다 무릎을 짚으며 숨을 헐떡거렸다. 여명이 터올수록 잦아지는 빗줄기에, 다들 살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털어댔다.
그들의 앞에 쓰러져 있는 갑옷 군단. 그나마 체력이 남은 몇몇이 상대 기사를 바닥으로 끌어냈다.
“이놈은 죽었습니다.”
“여기도요. 죽었습니다.”
“아, 젠장. 어이가 없네, 진짜.”
마력석 갑옷의 폐해였다. 전투에 있어서는 거의 절대적인 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졌지만, 그것이 깨지는 순간, 마검사의 공격을 범인이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다. 친위대원들은 산산이 조각난 갑옷을 발로 대충 툭툭 치우며 생존자 확인에 몰두했다.
“이놈은 살았는데, 출혈이 심합니다.”
“옮겨! 그나저나, 지원은 왜 이렇게 안 와?”
“보통은 그 말 하면 오지.”
“맞아. 처리 다 하면 오는 게 그쪽들 특징이라.”
“말발굽 소리 들린다. 와, 예외가 없네. 없어.”
다그닥다그닥. 저 멀리서 몰려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친위대원들은 가볍게 농담을 하면서 그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아아안! 이안!”
“로만드로 님. 여깁니다.”
베올스의 말을 함께 타고 있는 로만드로. 그는 손수건 든 손을 연신 흔들며 이안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제이럿 대장은 웃옷 물기를 대충 짜내며 한 소리 했다.
“베올스,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비가 너무 심해서 다리가 물에 잠겼어. 좀 돌아왔네. 다들 무사한가?”
리아마가 죽고 나서, 친위대를 이끌 자는 베올스와 제이럿 둘뿐이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나 싶은 걱정에 베올스의 안색이 어둡다. 그는 제이럿에게 상처 하나 없음을 깨닫고 궐련을 건네주었다.
“대련만 했다 하면 리아마가 제일 날아다녔는데.”
“걔는 어리잖아. 쯧. 그리고 뭐, 정보도 없고.”
“할 만하던가?”
“애들 다섯이 덤벼도 안 되더라.”
제이럿과 베올스는 만나자마자 바로 밤중에 있었던 전투를 공유했다. 어떤 접근 방식을 썼는지, 대원들의 대열은 어쨌는지 등등. 앞으로 또 갑옷 군단이 나타나더라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부상자는 이쪽으로 옮겨주십시오!”
“걸을 수 있겠습니까?”
“아파요. 조금만 천천히.”
이어서 도착한 응급 호송용 마차가 부상자를 줄지어 옮겼다. 그래봤자 이쪽에서는 바르사베밖에 없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적군의 생존자였지만 말이다. 살려서, 단단히 살려서 증언을 따내는 게 다음 과제였다.
“대장님. 그리고 이안 장관님.”
절뚝거리며 부축받던 바르사베가 두 사람을 불렀다. 새벽의 빛이 완연히 터오기 시작했다. 아직 회색빛의 하늘이었으나, 이날의 오후는 햇빛이 쨍하게 드리라.
“추격자들이 주로 3구역에서 많이 차출된 듯합니다. 그쪽을 살펴보십시오.”
“그래. 알겠다.”
“대장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제이럿은 입을 딱딱하게 다물고서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서둘러 가라는 듯 손만 흔들어댔다.
“다시 한번 더 시체 따위가 발견되었다는 말이 들리면, 혼날 줄 알아라.”
“예. 알겠습니다.”
“들어가.”
바르사베는 이안을 향해서도 꾸벅 인사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급한 자들이 먼저 체투르를 떠났다.
이안은 로만드로, 제이럿 그리고 베올스에게 눈짓하며 잠시 얘기 좀 하자는 신호를 주었다. 그들은 정신없이 수습되는 길목에서 벗어나, 담배를 꺼냈다.
“로만드로 보좌관님, 태우십니까?”
“아니요. 감사하지만, 아내가 아이를 가져서.”
“이안 장관님은요?”
“나도 되었네. 그것보다, 이제 해가 완연히 터오면 어찌 될지 예상 가는가?”
“예상이라 하면, 하이만이요?”
“황궁친위대임을 밝혔음에도 공격을 개시하였으니, 이는 명백히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사안. 사태도 그렇고, 게일 저하와 얽힌 것도 그러하지. 전체적으로 하이만 가에 희소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네.”
아르센이 마력운용자라는 것 외에 말이다. 물론, 그것도 며칠 안으로는 무용지물이 되겠지만. 이안은 베올스를 힐끔 쳐다봤다.
‘제이럿은 바르사베의 일도 그렇고, 밤중의 전투로 인해 하이만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 문제는 베올스인데.’
베올스는 황제의 전언을 직접 받든 자. 진이든 아르센이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격한 후계자를 선출하고자 할 터였다. 방관적인 중립자라면 몰라도, 혹여 균형을 맞춘다는 빌미로 아르센에게 도움을 준다면 까다로워진다. 덤덤하면서도 의심스러워하는 이안의 눈빛을 읽은 것일까. 베올스는 담배를 비벼끄며 덧붙였다.
“저는 폐하의 안위가 우선이고, 다음이 황궁친위대입니다. 제이럿의 뜻이 곧 저의 뜻이니 너무 그리 보지 마십시오.”
이안은 싱긋 웃으며 가볍게 손짓했다. 더 가깝게 모여들라는 신호였다.
“곧 있으면 출근하는 자들이 몰려들 터. 다리는 침수되었다고 하니, 베올스 그대가 지나온 길목도 사람을 세워 막으시게.”
“하지만 이쪽은 개인 사업장이라 명분이 없습니다.”
“밤중 내린 폭우로 침수 및 붕괴의 위험이 있다 하면 되지 않나. 재난에 준하는 특별 방침이라 이르면 된다. 사람이 섞여들면 수색에 난항이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네.”
일리가 있다. 제이럿과 베올스는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고, 로만드로는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이안을 쳐다봤다. 분명, 아까 밤중에 일러준 내용 아니던가?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알고 있는 것을 바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라, 로만드로는 헛기침하며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자신의 아이가 이안을 닮기를.
“로만드로?”
“예? 예예? 아, 예!”
“피곤하겠지만, 조금 더 힘내어 3구역을 수색하도록 하지. 황궁을 통해 정식으로 하이만 가에 고발장을 보내고, 현장에서 체포한 자들의 신병을 보호하라.”
“출궁한 지 하루 만에 다시 붙잡혀 오게 생겼군요.”
“아무리 하이만이라 한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크다. 서둘러 대회의도 소집해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바로 전언하겠습니다.”
이제는 견제가 아닌 필수에 의한 세대교체가 일어나야 할 판이었다. 하이만 가와 얽혀 있는 문제가 워낙에 복잡하고 많다 보니, 그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곧 바리엘에도 문제가 되지 않나? 침몰하는 배에서 서둘러 물건을 내리는 편이 안전하리라.
‘그러고 보니, 전생과 비교하여 하이만 가는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걷게 되는군.’
하이만 가는 이안이 황제인 시절에도 건재하던 가문이었다. 그들의 은행은 여전히 시중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들을 제외하고서는 바리엘의 경제를 논할 수가 없었다.
‘…조금 걸리는데.’
원 역사와 다르게 하이만을 몰락시키면, 미래의 바리엘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자리를 대신하는 세르오가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명맥을 잇게 되는 걸까?
역사는 거대한 흐름이지 않나. 그 안에서 제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물살만 사납게 튈 뿐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변함없다. 신이 눌러놓은 핀은 절대 뽑히지 않는 것처럼.
“이안 님. 가시죠.”
이번에는 로만드로가 이안을 일깨웠다. 그사이, 시체와 갑옷 잔해 따위는 빠르게 수습되어 거리가 깨끗했다. 그들은 우선 3구역을 중심으로 창고와 건물 수색을 진행하기로 했다.
타닥타닥!
“관리자를 데려오라! 신고되지 않은 물품이 있는지 대조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것이 있다면 꺼내오라!”
“여기 창고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희, 저희는 밤새 잔업 하던 것뿐인데요.”
“무슨 일인지도 몰라요. 정말이에요.”
“저희는 코앤코 소속입니다. 하이만이 아니라요.”
“하이만에서 자금 지원을 받고 있긴 한데…….”
체투르 구역을 나가지 않고, 밤을 지켰던 자들 역시 속속들이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들은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으며, 가족 단위라 할지라도 경비대에 들러 간단한 대질 신문을 명받았다.
“그러고 보니, 체투르 경비대 대장이 보이질 않는군. 소란이 생각보다 큰데 말이지.”
베올스는 3구역 출입관리소에서 확보한 서류 더미를 휙휙 넘기며 중얼거렸다. 시체를 지키던 경비 외, 다른 일반병들은 모두 지원되어 수색을 진행 중이건만, 정작 중요한 경비대장을 만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경비대장님의 개인 사정으로 체투르를 나가셨다고 합니다. 전언을 보냈으니, 금방 당도하실 겁니다.”
옆에서 함께 보고서를 뒤적거리던 이안이 혀를 끌끌 찼다. 카렌나에서 도적 떼를 만났을 때도 이러지 않았나. 항시 일이 터졌을 때 책임자가 제자리에 붙어 있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이만하면 과학이라.
삐이익!
그때, 멀리서 손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이상 물품을 발견했다는 신호다. 이안과 베올스는 바로 관리소를 뛰어 나섰다.
타닥타닥!
비는 완전히 그쳤지만, 바닥은 여전히 흥건했다. 젖은 도로 위로 나무 상자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모두 의뭉스러운 창고에서 나온 물건들이다.
“이게 다 뭐지?”
“아, ‘코앤코’ 창고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에, 그러니까 이쪽이 대장장이들에게 납품하는 철, 구리, 주석 따위고요, 이쪽은 비매품으로 거래되는 것인지 표식이 없습니다.”
“한데?”
“이거, 색깔이 새까만 것이 완전 그 갑옷 색 아닙니까? 무광 도는 것도 그렇고, 마력을 슬쩍 넣어보니 반응도 오던데요. 이상 반응일까 봐 간만 봤습니다.”
끼이익.
친위대원 한 명이 상자를 열었다. 얼핏 보면 석탄으로 착각할 정도다. 주먹만 한 크기의 둥그런 것들이 쌓여 있었다. 이안은 하나를 쥐고서 이리저리 살폈다.
“음.”
“좀 아시겠습니까?”
무광의 검은 마력석이라. 대충 짐작 가는 게 몇 가지 있긴 하다만, 이안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정확한 것은 연구를 해 봐야 알 것이다. 그는 뚜껑을 닫으며 로만드로에게 눈짓했다.
“아코렐라 대장에게 보내봅시다.”
“아이고, 그 대장 또 좋아서 기절하겠네. 이번에는 못 일어나는 거 아닌가 몰라.”
“새로 발견되는 거면 참으로 의미가 깊겠습니다.”
안쪽 창고에서 또 발견되었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새로운 마력석의 등장이, 하이만 가의 창고를 몰수함으로 밝혀지다니. 이안은 로만드로에게 마력석을 가볍게 던졌다.
“아마 하이만 가에 고발장을 보내기 전, 먼저 연락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압류하라! 이곳에서 발견된 의문의 원석들은 황궁에 귀속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자자, 움직이자고.”
“몇 명만 전담하여 운송하고, 나머지는 다음 창고로 이동하여 수색을 계속하라. 3번 구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오늘이 가기 전에 전 구역을 모두 살펴볼 것이라.”
처억!
이안의 말에 대원들이 경례하며 흩어졌다. 로만드로는 아코렐라에게 보낼 마력석을 선별하더니, 이내 이안에게 제안했다. 비를 쫄딱 맞고 쉬지도 못한 채 마력을 개방하지 않았던가.
“그러지 말고, 이안 님이 원석 갖고 들어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집무실에 서류가 올라와 있을 터이니, 푹신한 곳에서 잠도 좀 자고요. 바로 일 보시면 되겠네요.”
“제가 갔으면 좋겠습니까?”
“예예. 가서 베릭이 놈 잘 있는지도 보시고요. 진 저하도 뵙고 인사 올리십시오. 여기는 제가 있을 테니까.”
로만드로의 다그침에 이안의 눈이 장난스럽게 휘었다. 되었다고 물리려는 순간, 전서구가 재빠르게 이안의 어깨로 날아들었다. 마법부에서 보낸 것이었다.
“…그러면 원석은 제가 갖고 가겠습니다. 로만드로 님은 일 처리 잘하시고 복귀하십시오.”
“뭡니까?”
이안은 종이쪽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삐뚤빼뚤, 누렁소가 그려져 있었다. 베릭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