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09
제209화. 특등급 A++
“저기, 이안 님.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안내에 이안이 눈을 떴다. 창문에 머리를 살짝 기댄 것 외, 반듯한 자세였다. 그는 창밖의 풍경이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로만드로가 이안의 휴식을 강력히 주장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
“수고했다.”
“아닙니다.”
허리를 넙죽 숙인 마부가 뒤쪽을 힐끔거렸다. 사실, 마법부에 도착한 지 삼십 분이 지나고 있었으나, 마법부원들의 언질 탓에 대기하고 있던 참이다. 언제 집에 가나 싶었는데, 그래도 오래 걸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마차 문이 열리자, 인근에서 서성이던 마법사들이 죄다 가까이 다가왔다.
“이안 님. 돌아오셨습니까?”
“로만드로 님은요?”
“외근이다. 급한 일이 있는가?”
“아닙니다. 나중에 처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급한 건은 집무실 책상에 올려두었습니다. 그나저나, 황궁친위대가 밤중에 격전을 벌였다고 하던데요. 사실입니까?”
이안이 계단을 오르자, 누군가가 따뜻한 로브를 걸쳐주었다. 바르사베 및 갑옷 군단을 황궁으로 호송한 자들이 발 빠르게 일러준 것이다. 이안은 로브를 기꺼이 받아들었다. 잠깐 자고 일어났다고 몸 전체가 으슬으슬했다.
“이안 님. 오셨네요.”
“마침 잘 만났군, 아코렐라 대장.”
“예? 저요? 왜요?”
로비를 지나갈 때, 아코렐라가 제 부하들과 인사하며 이안을 지나치려 했다. 그의 부름에 바로 멈추었지만 말이다. 아코렐라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그녀의 앞머리가 뽀글뽀글 그을려 있었다. 실패한 연구의 흔적임이 틀림없다.
타앗!
“오잉?”
“그게 뭔지 알겠나?”
이안은 주머니에서 의문의 마력석을 꺼내 던졌다. 아코렐라는 두 손으로 가볍게 받아냈고, 이내 코를 들이밀며 깊이 들여다봤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부하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숨결이 닿을 정도로 몰려들어 마력석을 오밀조밀 살폈다.
“새까만 것이…….”
“당최…….”
“…처음?”
아코렐라의 안면이 점점 풀어졌다. 눈이 커지고, 턱은 떡 하니 벌어졌으며, 콧구멍은 의지를 상실한 채 제멋대로 벌렁거렸다. 숨이 턱, 하고 막힌 것처럼 아코렐라는 제대로 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이, 이거 뭡니까?”
“나도 몰라서 묻는 것인데.”
아코렐라는 모른다. 부하들도 모른다. 이안 역시 몰라서 묻는 것이라 한다. 이는 곧 처음 발견된 마력석이란 뜻 아닌가? 아코렐라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아아악!! 아아악! 악!”
“대장! 대장! 가, 같이 가요!”
“넘어지겠어요. 잠시만, 천천히!”
“빨리 연구실 문 열어! 이 짜식들아!”
콰앙! 쿵! 쿠웅!
연구자로서, 마법사로서 흥분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지하실로 굴러가다시피 뛰어 내려갔고, 부하들 역시 뒤를 따랐다.
“마력석관리부, 괜찮은 거 맞지? 안 말려도 되지?”
“하,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한데. 이안 님, 저거, 표본이 더 없다면 미리 말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아코렐라 대장, 항상 마지막에는 때려 부수더라고요.”
“되었다. 곧 있으면 상자로 줄줄이 들어올 것이다. 황궁친위대가 도착하면 아코렐라 대장에게 안내나 해주거라.”
“황궁친위대가 어찌해서 마력석을 가져옵니까?”
“체투르 구역에서 압수한 것이거든. 하이만 가와 연관되어 있다. 검은 갑옷의 파편 역시 함께 들어올 것이라, 다들 마력석관리부를 주력으로 삼고, 성심성의껏 도와라.”
“네. 알겠습니다.”
검은 갑옷! 삼대장 리아마를 죽였다던 그 갑옷이다. 이안과 하이만의 정치적 관계를 알고 있는 마법사들이기에, 사태의 중요성을 짐작하여 알아챘다.
이안은 슬쩍 들어오는 보고서를 대충 넘기며 되물었다.
“베릭은?”
“아! 아아! 맞다. 베릭 일어는 났습니다.”
“일어는 났다라. 움직일 수는 없는 거고.”
“그 상태로 움직일 수 있으면, 그건 좀…….”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베릭의 처소로 모퉁이를 돌았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의 뒤를 우르르 쫓았다. 베릭을 보고 난 다음 집무실로 가면, 제일 먼저 저들의 보고서를 처리해 달라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말은 잘하던가?”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싶었습니다.”
“하하. 그래.”
소란을 조금 피운 모양이다. 마법사의 인상이 찌푸려지자, 이안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대사막에서 브라츠로 돌아올 때, 걷지도 못하면서 성질머리는 그대로라, 쿠실레 뒤에 짐짝처럼 매달려 옮겨지지 않았나.
타닥타닥.
처소 문이 한 틈 열려있다.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은 말소리뿐만 아니었다. 확연한 고기 냄새가 풍겼다.
“아니, 이거 진짜 너무들 하시네! 진 저하님!”
“베릭. 진정해. 실밥이 다 터지겠네. 의사가 그랬잖은가. 지금 뭘 먹으면 자네 진짜 죽는다고.”
“이래도 저 죽어요!”
“괜찮아. 안 죽어.”
“와, 돌아버리겠네. 시아! 진 저하 좀 설득해 봐!”
“…….”
“저, 저 새끼 저거, 고기 처먹는다고 대꾸도 안 해?”
“자자, 베릭. 그러지 말고 냄새나 계속 맡아라.”
“아아아악! 이안아아!”
치이이익.
아주 가관이다. 침대에 꼼짝 못 하고 누워있는 베릭 옆에,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시아오시와 진. 선홍빛의 고급 소고기가 한쪽에 잔뜩 쌓여 있었다. 베릭이 울부짖으며 이안을 부를 때, 시아오시가 그를 먼저 알아봤다.
“오셨습니까.”
“오! 이안 경! 왔소?”
“이안아? 이안아아아!”
인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이안은 마법사들을 뒤로 물리며 문을 닫았다. 베릭은 목 아래로 아예 움직이지 않는지, 눈만 미친 듯이 깜빡이며 반가움을 표했다.
“저하. 어찌 식사를 여기서 드십니까. 식당 가서 드시지 않고요. 바람이 좀 차나, 오후에는 햇볕이 따뜻하니 정원에서 드셔도 좋겠습니다.”
“이안 경! 내 말 좀 들어보아. 베릭이 일어나자마자 시종들을 닦달하여 고기를 먹으려고 했다지 뭔가? 내장이 죄다 다쳤다 하여, 무조건 금식이라 일렀는데도.”
“그렇습니까?”
“의사에게도 성질을 부려대니, 기어코 내 귀에도 들려왔지. 바로 달려와서 베릭을 막았네!”
진이 눈을 반짝이며 이안을 올려다봤다. 어서 칭찬해달라는 시선에, 이안은 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잘하셨습니다.”
“잘했다고? 앙? 옆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 이건 반칙이지! 고문이고! 진 저하님! 진짜 너무하십니다요!”
“자네가 고기 냄새라도 맡게 해달라 하였잖은가?”
“아니…. 하, 진짜. 이안아. 넌 내 맘 알지?”
냄새라도 맡게 해달라, 코에 들이밀면 바로 낚아챌 속셈이었을 것이다. 진이 부채를 사용할 줄도 모르고. 이안은 침대에 걸터앉아 베릭의 상태를 찬찬히 살폈다.
“…몸은.”
“멀쩡해. 그러니까 한 입만.”
“조금만 더 참아라. 건강한 자도 일어나자마자 고기를 먹으면 부담되는 것인데, 어찌 그래.”
이안이 한마디 하자, 진이 가까이 다가와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아오시는 입에 있는 것만 덤덤하게 씹어댔지만.
“아. 나, 진짜. 하.”
“바르사베도 살아서 돌아왔다.”
“뭐? 어금니 살았어?”
이안은 화제를 돌리며 싱긋 웃었다. 단순하기도 하지, 방금까지 울상이던 녀석이 바르사베의 생존을 알리자마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실, 바르사베가 베릭을 친우로 여기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베릭에게는 몇 없는 친밀한 지인일 터.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다치긴 했지만, 금방 나을 것이다. 그러니 베릭 너도 치료에 전념해. 그리하면 원하는 대로 다 먹여주마.”
“아! 오케오케! 의사 불러와! 빨리 치료하라 그래! 약 발라라!! 계속 발라!”
진은 나름의 위로로 연신 부채질하며 고기 냄새를 풍겨주었다. 꼼짝 못 해도 멀쩡한 걸 보니 다행이다. 이안은 침대 옆에 놓인 흑검을 보며 물었다.
“베릭.”
“어쩔 수 없다! 마력 안 썼으면 나 진짜 죽었어.”
베릭은 지레짐작하며 선수 쳤다. 흑검에 마력을 넣지 말라 하였는데, 아주 제대로 개방하여 적과 맞서지 않았나. 마물을 불러일으키는 검이라, 인근에 마물이 없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2차 피해가 클 뻔했다.
“그걸 혼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엥? 그래? 아님 말고.”
베릭이 아탄족일 수 있다는 걸, 일러주는 게 좋을까? 이안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눈앞으로 고기 한 점이 쑥 들어왔다. 진이 내민 것이다.
“이안 경. 아직 점심 식사 전이지?”
“그렇습니다. 저하.”
“좀 드세. 베릭이 고기를 너무 많이 주문했어. 혼자 어찌 먹으려고 이리했는지 몰라.”
“하! 진 저하님. 저 그거 한 끼에 다 먹는데요?”
“거짓말. 어찌 사람이 저보다 큰 고기를 먹는단 말인가? 나를 놀리는구나. 베릭.”
“제가 보여드릴게요. 입에 넣어주세요.”
진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대, 절대, 고기를 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였다. 이안은 손을 받치며 진이 건넨 고기를 먹었다.
“맛있지?”
“…베릭. 비싼 것으로 주문했구나.”
“당연하지! 이안이 부자잖아! 특등급! 졸라 제일 비싼 거!”
이안은 시종을 부르며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고기를 한 점 먹는 순간, 떠오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밥 먹은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것을. 중간중간 굴라 따위로 허기만 달랠 뿐, 이리 차려진 밥은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스윽.
시아오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안이 손짓으로 그를 앉혔다.
“침실이 좁다. 괜찮으니 앉아.”
“예. 주인님.”
“시아오시, 이것도 다시 먹어보아라. 아주 부드러워. 자꾸 내가 먹으라 해야 먹을 것인가?”
“아닙니다. 저하.”
시아오시는 진이 그릇에 내려준 고기를 난감하게 내려다봤다. 아까도 어쩔 수 없이 먹긴 했지만, 이게 정말 맞나 싶은 것이다. 주인과 겸상하는 노예라니? 그것도 황족과 함께? 그가 머뭇머뭇 포크를 잡자, 이안이 지적했다.
“시아오시. 고기를 자를 때는 나이프를 오른손, 포크는 왼손으로 잡아야 한다. 날이 지나치게 서지 않게끔, 팔꿈치를 테이블에 맞춰 들어.”
진이 시아오시를 잘 따른다. 성정이 믿을 만하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시아오시는 앞으로도 진을 모시게 될 것이다. 그러니 기본적인 식사 예절 정도는 익혀두는 게 좋다.
“아아아! 시아오시! 너까지!”
“…….”
베릭은 식사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나름 처절한 절규를 해댔다.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아서 더 서글프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이안 경, 그림 보았소?”
“누렁소 말씀입니까? 저하가 그리신 것이에요?”
“베릭이 그려달라고 해서 그렸지.”
“실력이 갈수록 느시니, 대단하십니다.”
도란도란, 정겨운 대화와 함께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 문득 조용해져서 돌아보니, 베릭이 입을 떡 벌린 채 자고 있었다. 팔팔해 보여도, 금방 정신을 잃을 만큼 몸 상태가 말이 아닌 것이라.
“그나저나, 이안 경. 내일이 마리브 형님의 재판인 것을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마법부에서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 저하를 해하려 했던 것에 관하여, 필히 대가를 치르실 것입니다.”
“어머니도, 아르센도 올 것이고.”
“그렇습니다. 아직 의지가 서지 않으셨다면, 참관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어미를 만날 각오에 관한 의지였다. 진은 씩씩하게 고기를 한입에 넣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식사 예절에 맞게끔, 대답 대신 짧은 고갯짓이다.
“아니. 내 하나 깨달았네. 의지는 어느 순간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만드는 것이라고. 그러니 나 역시 재판에 나가겠어.”
이안은 싱긋 웃으며 진의 접시에 고기를 올려주었다. 자신이 전생에서 후계를 보았다면, 그리하여 아이가 있었더라면, 진과 같은 아이가 좋겠다.
“알겠습니다. 문제없이 준비하겠습니다.”
“응. 나도 그리하겠네.”
“더 드십시오.”
달그락달그락. 이안은 씩씩하게 고기를 해치우는 진을 보며 웃었다. 중간중간 베릭이 깨어나서 꿍얼댔으나, 그것마저 평화로운 소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비가 온 다음 날은 이다지도 포근하고 따스하구나. 이안은 저도 모르게 식사를 마친 후, 잠들고 말았다.
끼이익.
“헉. 주무신다.”
“아이구, 어째?”
“한 시간만 더 있다 오자.”
진과 시아오시, 베릭과 함께 피 냄새가 진동했던 침실은, 어느새 고기 냄새와 쌕쌕거리는 숨소리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