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1
제21화. 다이아몬드
“뭐…….”
좀처럼 당황할 일 없는 이안이 말까지 더듬었다. 베릭은 휘파람까지 불어대며 안으로 성큼 들어왔는데,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너, 분명 내가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난 잘 기다리고 있었어. 불러서 왔다고.”
“누가?”
“집사라던데.”
“뭐?”
“주점에 와서 언제든지 저택에 들어가도 된다더만. 그 얘기 듣자마자 바로 튀어왔지. 문제 있나?”
이안의 표정이 조금 복잡해졌다. 단순히 베릭이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녀석 성미에 몰래 들어왔을 리는 없을 테고. 정문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니까.
베릭은 가만 서서 이안을 내려다봤다.
“…….”
스리슬쩍 왼쪽으로 움직이는 시선. 베릭은 테이블에 놓인 과일과 빵 따위를 힐끗거렸다. 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
“앗싸. 사양하지 않겠다.”
베릭은 게걸스럽게 두 손으로 음식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안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챘다.
“그것만 말하던가?”
“너랑 계속 같이 있다가 보고하래.”
“그걸 성실히 할 생각은 아니지?”
와구와구.
베릭이 과일을 씹어대며 이안을 빤히 쳐다봤다. 지금 자신을 뭐로 보고…. 검을 쥔 자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았으며, 검의 방향 역시 한 곳만을 향하기 마련이었다.
“됐고, 빨리 말해봐. 그날 그거 뭔데.”
“아. 맞다.”
마력인지 뭔지 궁금해서 숨넘어갈 지경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안이 함구하라 해서 죽은 듯이 그리 지냈다. 물론, 주위에 알 만한 사람이 없던 탓도 있지만.
“좋아. 잘 들어라.”
이안은 베릭을 마주하고서 그가 내재한 경이로운 힘을 설명해 줬다.
세계의 원천이자 신의 존재를 감히 짐작게 하는 미지의 에너지. 베릭의 붉은 눈동자가 햇살처럼 화사하게 반짝였다.
“…말도 안 돼.”
“따라서 마력이 몸의 기운을 막고 있었으니,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훈련해 봤자 제자리였겠지.”
“그, 그걸 네가 뚫어준다고.”
“…너는 경칭이 뭔지 모르는가?”
“와씨, 진짜 대박이네…….”
베릭은 제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서성거렸다. 기쁨과 흥분으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훈련장에서 느꼈던 이질적인 힘이 정녕 자신의 것이라. 그는 벽에 머리를 박고서 웃음을 터트렸다.
“말이 안 통하는군.”
“당장 시작할까? 난 뭘 하면 될지 알려줘.”
이안은 그를 빤히 쳐다보며 침묵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마력을 넣어주고 싶은데, 여기서 행패라도 부렸다가는 곤란하지 않은가.
그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릭은 참기 힘들다는 듯 다리를 달달 떨어댔다.
“손.”
“손!”
이안의 손바닥에 베릭의 손이 놓였다. 그는 손을 단단히 잡으며 경고했다.
“자제하는 법을 배워. 그렇지 않으면 며칠 동안은 죽어라 체력 훈련만 시킬 것이다.”
“걱정 말고 어서!”
지이잉.
베릭의 대답을 듣자마자, 이안은 마력을 발동시켰다. 녹안이 금빛으로 변하면서 머리칼이 부드럽게 흩날렸다. 서로 맞닿은 부분을 타고 마력이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쿠웅! 쿵!
“어머.”
“이게 무슨 소리지?”
아래층에서 볼일을 보던 하인들이 낯선 굉음을 듣고서 멈칫거렸다. 아무래도 이안의 방에서 난 소리 같은데…….
똑똑.
“이안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대답이 조금 늦다. 하인이 문고리를 돌리려는 순간, 이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다. 테이블이 박살 났어.”
“네? 어쩌다가요?”
멀쩡한 테이블이 어찌하여?
벌컥!
하인이 놀라서 문을 열자, 보이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산산조각이 난 가구들과 열 뻗친 이안 그리고 엎드려뻗쳐 자세인 붉은 머리칼 남자. 거꾸로 된 얼굴이지만 분명히 웃고 있었다.
“…저기.”
“되었네. 나중에 청소나 해줘.”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이안이 나가보라는 듯 손짓하자, 하인은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거덕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 * *
“이안.”
다음 날 아침 식사.
이안은 칼질을 멈추고 데르가를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백작 부인과 첼 역시 둘을 주시했다.
“새로운 친구를 만든 모양이더군.”
모두 알고 있으면서 다시금 묻는 저의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안은 나이프를 옆으로 치우며 웃었다.
“네. 아버지. 베릭이라는 자입니다. 훈련장에서 만났는데, 마음이 잘 맞더군요. 아마 첼 형님도 얼굴 보면 알 것입니다.”
대답을 얼마나 상세하고 투명하게 하는가가 궁금한 것이다. 데르가는 계속해 보라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훈련장에서 쫓겨나 이제는 못 보는구나 싶었답니다. 아버지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쫓겨나? 왜?”
가만히 듣고 있던 백작 부인 메리가 되물었다. 데르가와 달리 그녀는 어제 베릭이 저택에 든 것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동료를 폭행했거든요.”
“세상에. 끔찍하여라. 그런 자를 가까이 두다니. 너도 참 어지간하구나. 성격이 잘 맞니?”
비꼬는 뉘앙스에도 이안은 웃기만 했다. 어쨌거나 베릭을 옆에 두는데 성공했으니까. 훗날 일이 터지면 이자들의 목을 베는 것이 바로 그 아이일 것이다.
“한 달 내로 글자를 떼지 못하면 그놈과 놀았다 여기고 목을 비틀어버리겠다.”
“…네. 아버지.”
여러모로 알뜰하게 써먹을 속셈이군. 족쇄로도 모자라 채찍으로 쓸 생각인 듯싶다. 이안은 순종한다는 뜻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두툼한 데르가의 손가락만 보였다.
‘다행히 가구 박살 낸 건 모르나 보네.’
하인이 비밀에 부쳐준 모양이다.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도 그러하지만, 해나와 가깝게 지내다 보니 아랫것들 사이에서 이안의 입지가 영 나쁘지는 않았다.
‘음?’
그러다 문득, 그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굵은 알과 화려한 금박 디자인. 지금껏 봐온 데르가는 장신구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이상하게 저것만은 매일 끼고 있었지.
‘결혼반지인가?’
이안은 백작 부인의 손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의 왼손에는 다이아몬드가 없었다. 오팔과 진주, 루비 따위는 있었지만.
‘커팅이 너무 조잡하지 않은가.’
계속 관찰하던 그는 다이아몬드 커팅이 묘하다는 걸 알아챘다. 자고로 보석이란 빛의 반사를 극대화하여 화려하게 보이는 게 목적인데, 데르가의 것은 그것과 멀게끔 둥글게 깎여있는 것이다.
마치 보여주기보다 어디에 넣기 편하게…….
달그락.
“쯧쯧.”
“아직 그런 실수를 하면 어쩌니?”
“아. 죄송합니다.”
이안은 저도 모르게 포크를 놓치고 말았다. 백작과 부인의 매서운 눈초리에 서둘러 사과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내 살얼음 같은 식사 시간이 끝나고, 다들 식당을 떠났지만 이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인들이 쭈뼛대며 다가와 물었다.
“이안 님. 식사가 모자라셨나요?”
“곧 선생님 오시니 간식을 든든하게 올리겠습니다.”
그릇을 치워야 하는데, 이안이 저리 버티고 있으니 움직일 수가 없다. 그는 가만히 밖을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끼고 있는 반지, 결혼반지는 아니지?”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말씀이신가. 하지만 하인들은 최대한 아는 선에서 대답했다.
“아닌 거로 알고 있습니다. 마님이 끼신 루비가 결혼반지라 하시던데요.”
마력 브로치가 붉은색인 이유였다. 이안은 턱을 괸 채 테이블만 톡톡 두드렸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심증은 굳어졌다.
‘책상 아래로 손만 뻗었던 몸짓 하며, 집사가 가진 의문의 열쇠 그리고 그 머리와 굉장히 유사한 다이아몬드 반지라.’
넣고 돌리는 형식이 아니라 그저 어딘가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금고가 다이아몬드에만 반응하는 걸까? 아니지, 그렇다면 집사의 열쇠 또한 보석이 박혀있어야 했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재질.’
데르가는 절대 마스터키를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는 자가 아니다. 집사가 들고 있는 건 신뢰의 증거라기보다 시험의 한 조각이라 볼 수 있을 터.
보안과 직결하여 생각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다. 바로 안쪽에 전기가 흐르고 있을 가능성.
“하.”
그것참 고약하고 깜찍한 잠금장치다.
하인들은 서로 눈치만 살피며 이안을 힐끔거렸으나,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한참 후, 움직인 것은 교사가 올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끼익.
방문을 연 이안이 베릭을 보며 지시했다.
“나가.”
“엥? 왜?”
쿵!
물구나무선 채 팔굽혀펴기하던 베릭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안은 그러든지 말든지, 책상을 정리했다.
“곧 가정교사가 온다.”
“뭐 어때? 좀 있으면 안 되나? 방이 이렇게 넓은데.”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 하인이 간식을 가져오면 네가 받고 돌려보내.”
“그렇다면 말이 다르지. 좋아!”
마침 배가 고팠다며, 베릭은 웃옷을 집어 들고 나갔다.
곧이어 교사가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그는 문 쪽을 힐끔거리며 이안에게 물었다.
“도련님. 바깥의 저자는 누굽니까?”
“일단 앉으시지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평소답지 않게 무게 잡는 이안이 낯설었다. 교사는 옷을 벗지도 못한 채 소파에 앉았다.
‘금고의 열쇠를 알아냈으니, 남은 것은 계획뿐.’
해나와 베릭을 이어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더 필요했다. 데르가와 가까이, 오래 마주할 수 있는 인물로.
“무슨 일이시죠?”
“선생님. 몰린 경과 아는 사이입니까?”
훅 들어온 질문에 교사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 아, 아니요?”
“바리엘 대학을 나오신 것만으로도 접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 보니까 동향이시더라고요.”
맨날 심드렁한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아는군. 이안은 속으로 살짝 웃으며 등받이에 기댔다.
“그, 그럴 리가요! 그런 우연이!”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보고드려도 되겠군요?”
“저기! 그게, 아니라!”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요. 교사는 입술만 잘근잘근 씹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데르가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실로 곤란했다. 목이 잘리지는 않겠지만, 일단 일자리를 잃을 것이요, 얼마 안 가 브라츠 영지에서 쫓겨날 게 분명하니까. 대사막을 연구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는데 말이다.
“…도련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아니요. 아버지가 선생님을 통해 저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과 뒤에서는 몰린 경과 통하고 있다는 게 거의 확실해서요.”
평소 느릿느릿하고 매사에 관심 없어 보이던 이안이 맞나? 교사는 놀라서 말문이 막힌다는 게 뭔지 몸소 체감했다.
“게다가 몰린 경의 사주를 받고 집사 방에 침입하려 하셨죠.”
“잠깐! 그건 아닙니다! 하나씩 다 말씀드릴 테니까, 진정, 진정하세요.”
“선생님. 진정은 선생님이 하셔야지요.”
이안은 차를 들어 보이며 생긋 웃었다. 교사는 더듬더듬, 말을 신중하게 고르며 자신을 변호했다. 아주 처음, 브라츠에서 몰린을 만난 것부터 시작이다.
“데르가 백작님과 도련님 얘기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학부모라면 다 하는 과정이고요. 본래 첼 도련님을 맡았을 때는 첼 도련님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흐음. 그래요?”
편지 얘기는 하지 말자. 그것까지 알릴 필요는 없다.
“그러다 이안 님도 함께 맡게 되었고, 중앙에서 심사가 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몰린 경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당숙이신데, 사실상 제가 본가를 나온 이후로는 처음 뵙는 거였습니다.”
“오래되셨나 봐요.”
“10년 가까이 되었죠.”
10년 동안 학문에 매진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래서 안부를 주고받다가, 이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연구라는 게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서…. 그저 저택 안의 얘기를 전해주면 생활비를 보태주신다고 하였어요. 저로서는 거절할 방도가 없었고, 그리 중요한 얘기를 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게 아니면 아버지가 알아도 상관없겠어요.”
“도, 도련님!”
사색이 되어 눈이 뒤집힐 것 같다. 그저 주도권을 쥐기 위해 흔드는 말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격렬하다. 인생을 바친 연구가 뒤에 버티고 서 있어서 그렇겠지.
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제가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쓰러지시겠어요.”
“제발요. 백작님께는 비밀로 해주세요.”
“선생님. 제가 왜 아버지에게 바로 말하지 않고 선생님께 얘기를 꺼냈는지…….”
교사의 빛바랜 동공이 흔들렸다.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영 빠릿빠릿하지 못하다.
“아직도 모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