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10
제210화. D-5
중앙의 작은 황궁이라 불리는, 하이만 가의 대저택.
규모로 보나, 화려함으로 보나, 황궁 자체에 절대 밀리지 않을 정도의 위세가 대단했다. 수도에 처음 온 이방인들이 황궁으로 오인하여 들어서는 경우가 왕왕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볼 것이라.
하이만 공작은 응접실에 흐르는 작은 분수를 보며 물담배를 피워댔다.
“그러니까, 지금 체투르 구역에서 황궁친위대와 맞붙었다는 말이지?”
“송구합니다.”
“그것도 대장인 제이럿이 직접.”
“현재 체투르 안쪽으로 접근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다리는 침수되었고, 다른 쪽은 친위대가 자체적으로 신분증을 받으며 막아섰습니다. 소식으로는, 그, 마갑옷 대부분이 훼손되었고, 창고에 적재 중인 것들 역시 압수되었다고…….”
짜악!
보좌관은 말을 잇지 못했다. 기다란 물담배 파이프가 얼굴을 제대로 후린 탓이다. 하지만 그는 묵묵부답으로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분명히, 아랫것들 간수 잘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사태부터 사사건건, 흑갑옷 입은 것들이 사고를 쳐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이만 가의 정식 기사들이 아니라, 용병 계약을 맺고 데려온 자들이라 그런 것 같다.
보좌관은 허리를 굽히며 다시금 사과했다.
“송구합니다.”
“증인으로 잡혀가면, 그 뒤는? 자네, 영특하니 잘 알지 않나. 어찌 될 것 같은가? 응? 게일도 살아있는 마당에, 이안 그놈이 우리를 곱게 내버려 둘 것 같은가?”
하이만의 새까만 눈동자가 반질거렸다. 마치 까마귀의 눈과 같다. 흰자가 전혀 없는 시선은 보좌관의 어깨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친위대 공격의 여파로 절반 이상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황궁으로 호송된 자들도 치료에 들어서긴 했으나, 생명을 장담할 수는 없다 전해왔습니다.”
하이만도 황궁에 저의 돈을 받아먹은 자가 몇 명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림자가 있는 자라면, 그리하여 금화의 반짝임을 아는 자라면, 그 누구나 하이만의 눈과 귀가 되어 정보를 속속들이 일러왔다.
이안도 눈치채고 있을까? 마법부에도 하이만의 금화가 굴러 들어갔다는 것을.
“정리해. 깔끔하게.”
“예. 그 부분은 확실히 하겠습니다.”
오늘내일하며 명줄의 길이를 장담할 수 없는 놈들이다. 숨 꺽꺽 넘어갈 때 슬쩍 도와주기만 한다면, 정리 자체는 의구심 없이 진행할 수 있다. 하이만은 유독 끓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그리고 체투르의 재료들이 압수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갑옷은 하이만의 중추 전력이다. 본디 은행 경비를 보기 위해 만들던 것이니, 가문 자체에서 보관 중인 것들이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재료의 보급이 중단되는 것은 조금 곤란하지. 하이만은 연신 수염을 배배 꼬며 중얼거렸다.
“아마 아코렐라 대장이 연구에 들어갔겠지?”
“예. 그렇습니다.”
마력석이 하이만 가의 소유물이라 주장한다면, 밤중의 전투에 관해서 발뺌할 수 없이 책임져야 했다. 황궁친위대와 맞섰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 없이 중죄라. 그렇다고 눈 뜬 채로 그걸 뺏기자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지 않나.
“아코렐라 대장이라면 실력자이니, 이른 시일 내로 그 정체를 알아낼 것이라.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소유권에 관한 것이다.”
황궁에 귀속되어도, 아르센이 권력을 잡을 수만 있다면 다시 가져오면 된다. 하지만 이안과 진이 떡하니 버티고 막아서 있는 와중, 아코렐라 그 미친 연구자가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다. 필시 지지고 볶으며 온갖 연구에 다 사용할 게 분명하지.
“어째 아르센 황자가 마력운용자라는 것 외,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군. 게일 쪽은?”
“계속 시도하고 있으나, 경계가 상당합니다.”
“미친 척하고 누가 대놓고 찔렀으면 좋겠어. 마리브의 재판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하이만 가가 화두에 오를 것인데.”
하이만은 손톱으로 가죽 손잡이를 긁어대다가 집사를 불렀다.
“집사.”
“예. 주인님.”
“루스웨나에 서신 한 통을 쓸 것이다. 준비해.”
루스웨나는 바리엘과 인접한 접경국 중, 제일 유서가 깊은 나라였다. 강성하고, 융성하며, 비옥한 토지를 중심으로 부족함이라고는 모르는, 그런 나라.
그리고 멜라니아의 외친이 다스리는 나라이기도 했다. 집사는 바로 고급 용지와 펜대 따위를 준비하여 하이만 앞에 대령했다.
“전서구로 보내실 것입니까?”
“아니. 예를 갖추어서 직접.”
“말을 잘 타는 자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끼이익.
하이만은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듯, 한참이나 백지를 내려다봤다. 그는 촛불이 사그라들 때쯤 돼서야 우아하게 펜을 들었고, 이내 서문을 작성했다.
-루스웨나의 여왕이시여. 하이만 가를 도와주소서.
* * *
히이잉!
일몰이 질 무렵. 로만드로는 친위대원들과 함께 마차를 몰고 마법부에 당도했다. 피곤하여 어깨를 돌릴 때마다 아드득 소리가 난다.
“로만드로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오. 그래. 어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저희 어제도 봤지 않습니까. 이게 다 체투르 구역에서 압수한 것들이지요? 안녕하십니까, 친위대원님들. 짐 내려두십시오. 저희가 옮기겠습니다.”
마차 뒤에서 작은 상자 대여섯 개가 내려왔다.
체투르 구역을 이 잡듯이 뒤져서 발견한 것 중 절반이 마법부로 귀속되었다. 연구 목적이 우선이요, 사건에 개입되었던 부서가 친위대와 마법부 두 곳이니 일정하게 배분된 것이다. 후에 정식 안건을 통하여 친위대에서 보관하는 것도 마법부로 옮겨올 예정이다.
‘해가 지는구먼. 드디어 내일, 재판…….’
로만드로가 기지개를 쭉 켜는 순간. 그는 계단 위에서 번뜩이는 안광과 시선을 마주하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아코렐라의 연구용 보호 안경이 빛에 반사되어 번쩍이고 있었다.
“로만드로 님!”
“아이고, 깜짝이야.”
타닥타닥!
촤아악!
아코렐라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게 아니라, 아예 난간에 몸을 기대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녀의 뒤로 부하들이 따라붙었다.
“왜 이제 오세요?”
“저요? 보고서 처리할 게 있습니까?”
“기다렸잖아요! 정말!”
그리 말하고서, 바로 상자 뚜껑을 열어본다. 한가득 쌓여있는 검은 원석들. 아코렐라는 저도 모르게 코피를 주룩 흘리며 실실 웃어댔다. 저것이 사람의 모습인가? 심신이 피곤하여 헛것을 보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엄청나다.
아코렐라가 고개를 휙, 돌리자 로만드로는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이거 바로 연구실로 가져가도 되죠?”
“그러십시오. 어차피 마법부에서는 아코렐라 대장 외에 이걸 만질 사람도 없습니다.”
“끼야호! 무야호! 아까 낮에 이안 님이 준 거, 뭘 잘못했던지 작살 나버렸거든요. 이만한 양이면 문제없어요. 음음. 아주 좋아. 너무 좋아!”
아코렐라가 제 부하들에게 서둘러 옮기라는 듯 눈짓하자, 친위대원들은 잘되었다며 마차 뒤쪽을 대충 갈무리했다.
“로만드로 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 고생했습니다. 다시 연락드리지요.”
“고생고생! 완전 감사! 아하하하!”
히이잉!
마차가 떠날 때까지, 아코렐라는 진심을 담아 손을 붕붕 흔들었다. 로만드로는 그녀와 함께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그런데 어찌, 연구 진전이 있습니까?”
앞서 걸어가던 아코렐라가 갑자기 멈춰서서는 고개를 휙 돌렸다. 로만드로가 놀라서 넘어질 뻔하였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번쩍여 댔다.
“로만드로 님. 아무리 뛰어난 연구자라도 고작 표본 하나로는 아-무 것도 몰라요. 그래서 저거 기다린다고 얼마나 목 빠진 줄 아세요?”
“…….”
“그런데 말이죠! 그런데-!”
어지간히 신난 것 같다. 평소에도 미쳤는데, 지금은 거의 저세상 수준이다.
“제가 누구? 아코렐라 아닙니까?! 아하하하!”
“대장, 우리, 진짜 좀 평범하게 대화합시다.”
“몇 가지 특이사항을 알아내긴 했어요. 우선 희한하게 결정이 상당히 뒤죽박죽이더라고요, 이런 경우에는 원석 그 자체로 생긴 게 아니라, 어디서 정제가 되었다든지 아니면 복합적인 합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로만드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아코렐라를 올려다봤다. 당최 뭔 소리인지, 같은 바리엘 어를 쓰면서도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녀는 말을 뚝 멈추고 싱긋 웃었다.
“예상으로는 유기체의 결합 과정에서 파생된 하나의 결과 같아요. 세상에서 친위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유기체가 몇 없거든요. 그것도 저렇게 아름다운 역청탄의 색을 띠고서!”
뭔 소리여. 로만드로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저 멀리서, 비비안나가 미니와 함께 담요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종일 비 맞고, 그, 못 먹고 뛰어다니느라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설명해 주셔도 못 알아들으니, 나중에 보고서에나 예쁘게 써 주십시오.”
“그러죠! 색 있는 펜으로 써드릴게요!”
“사양합니다아.”
그리 말하며 비비안나의 품에 안기는 로만드로. 비비안나는 비 맞아 꿉꿉한 남편을 안쓰럽게 반겨주었다. 그걸 본 아코렐라는 크게 소리치며 연구실로 뛰어 내려갔다.
“멋-찐 사랑 하쎄요! 아하하하!”
어지간히 기분 좋구나. 이쯤 하니 술 먹은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로만드로는 혀를 끌끌 차며 비비안나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녀는 로만드로가 자리를 비운 동안, 서류를 급한 순으로 정리하여 책상에 올려두었다.
“고마워. 비비. 이안 님은?”
“아까 식사 후 주무시고는 아직 안 일어나시네요. 진 저하도 같이 계세요.”
“에이구, 피곤할 만하시지. 나머지 정리는 내가 할 터이니 깨우지 말고 내일까지 푹 주무시게 하자고. 어차피 재판 중재는 사법부에서 하는 거라, 우리 쪽에서는 증언 정리밖에 없어.”
사락.
내일이면, 이제 바리엘의 제 1황자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모두 미래의 황제라 의심치 않았던 자가 저리 몰락하다니. 이래서 사람의 일이란 한 치 앞도 못 본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비비안나는 로만드로 옆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며 중얼거렸다.
“…재작년이었나? 제가 휴직하기 전에요.”
그녀 또한 로만드로처럼 황궁 곳곳을 누비며 일 처리를 보는 자문관이었다. 당연지사, 마리브와 게일 황자도 오가며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두 황자께서는 정말, 정말 아름다우셨거든요. 외형적인 것을 떠나서, 두 분 다 다른 방식으로 바리엘을 치열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황궁에 들어와서 보게 된 마리브와 게일은 놀라울 정도로 변해있었다.
한 명은 재판을 앞둔 죄인의 신분이라 쇠사슬로 손목이 묶여있었고, 한 명은 몸 가눌 수 없이 너절한 상태로 쓰러져 있지 않나.
“참,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일 재판은 제국민들에게 비공개로 진행되지. 적어도 마지막까지 황자의 위엄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라. 역사에서는 사라져도, 당분간 바리엘에는 계속 살아있을 것이네.”
부정하지 않겠다. 마리브는 그래도, 노쇠한 황제를 대신하여 바리엘을 이제껏 잘 이끌어왔던 자였다. 로만드로는 비비안나의 손등을 토닥이며, 서류에 적힌 마리브의 이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마리브와 게일의 옛 영광을 추억하는 것은, 마법부뿐만 아니었다.
‘곧 있으면 날이 바뀐다.’
‘마리브 저하께서 결국…….’
‘이렇게들 가시는구나. 역사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 느껴진다.’
황궁 본관 로비에 걸린 황자들의 사진을 내리는 직원도, 마리브의 처소를 정리하는 시종도, 감옥 앞에서 그를 지키는 경비도, 모두 마리브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며 찬란하던 그를 떠올렸다.
그것은, 마리브 역시 마찬가지.
“…아.”
그는 목을 뒤로 한껏 젖힌 다음, 까만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가 지금껏 살아왔던 황궁의 나날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저의 죽음이 이럴 것이라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데에엥- 데엥-
자정을 알리는 소리에, 마리브는 결국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