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11
제211화. 재판이 열리다
어스름한 새벽. 황궁의 불이 일찍 켜졌다. 다들 침묵 속에서 몸단장하고, 정복을 꺼내 입었으며, 정갈한 아침 식사를 맞이했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종들의 손길을 받으며 단추를 천천히 잠갔다. 마법부 장관에게 수여된 배지와 패치 따위도 하나 빠짐없이 가슴팍에 달았다.
오늘은 마리브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날이자, 다른 의미로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었기에.
똑똑.
“들어오십시오.”
“오, 이안. 준비가 거의 다 되었군.”
“오셨습니까. 어제 깨우지 않으시고요.”
로만드로 역시 보기 드물게 멀끔한 모습이다. 언제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휘날렸던 머리칼이 단정하게 눌려있었다. 아마 비비안나의 솜씨일 것이라. 로만드로는 가죽 서류철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급한 일도 없는데, 사람이 쉴 때는 쉬어야지.”
“로만드로 님은 좀 쉬셨습니까?”
“그럼! 비비안나가 옆에 있으니 집에 안 가도 마음이 편안하여 오랜만에 푹 잤네. 최종으로 봐둘 것은 여기 다 정리했고, 재판에 참석만 하면 돼.”
이안은 거울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잠시 시종들의 손길을 물린 다음, 보고서를 확인했다. 감히 말하건대, 지난밤은 이안이 실로 오랜만에 잠들 수 있는 평화로운 날이었음이 분명했다. 거사를 앞두고 모두가 숨죽인 덕분이라.
“마리브 저하는요?”
“아침 일찍 감옥에 가 보았네. 별문제 없어 보이니, 걱정할 것 하나 없어. 그리고 하이만 가에 보내는 고발장은 내일 중으로 각 부서의 승인을 받아 전달될 것이네. 아무래도 다들 바쁘고, 재판에 하이만 가 역시 참석하니 껄끄러운 상황 만들기 싫다는 것이겠지.”
“세르오 가도 재판에 온다 하지 않았나요?”
“끝나고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으니, 식사라도 같이 함세. 세르오 백작의 몸 상태가 안 좋아, 그의 장남인 말론 호프 세르오가 대신 올 것이라 전해왔어.”
“아아. 그것 괜찮지요.”
여러모로, 처음 보는 자보다 안면 있는 자가 낫지 않겠나? 말론 호프 세르오는 신년회에서도 만난 적 있고, 베릭이 제이럿과 대련할 때도 본 적 있다. 젊고 신사적인 자이니, 대담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안이 보고서를 다시 넘기자, 시종들이 다가와 옷매무시를 마무리했다.
“그럼 진 저하를 모시고 오십시오.”
“그러지. 밖에서 보자고.”
로만드로는 코를 훌쩍이며 알겠노라 답했다. 멀끔하게 꾸며놓으니 거참, 귀공자가 따로 없다. 어디 후작가 영식이 잘생겼다고 소문이 자자하지만, 이안 앞에서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리라.
끼이익.
이안은 로만드로가 나간 뒤, 마지막으로 외관을 확인하고 일어섰다. 평소와 달리, 로브를 쓴 마법사들이 로비 곳곳에 모여있었다. 그들 역시 재판의 중요 참관자들 중 하나로, 이안과 함께 움직일 것이었다.
처억.
“이안 님.”
“다들 모였는가.”
“예. 마력석관리부 제외, 모두 모였습니다.”
“아코렐라 대장의 연구 결과서도 준비되었고?”
마리브가 사용했던 호박색 원석, 이드갈에 대한 결과서를 묻는 말이었다. 이안의 물음에 마법사들이 차례로 자료를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현장의 증인이자, 상황 수습의 핵심 인원으로서 마리브를 규탄하기 위한 서명서였다.
“문제없습니다. 가시지요.”
“이안 경!”
진이었다. 로만드로의 안내를 받으며 씩씩하게 걸어오는 아이. 작지만 위엄 있는 정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시아오시 역시 신경 써서 태를 세운 티가 났다.
“저하. 좋은 아침입니다.”
“응. 좋은 아침이라.”
“준비는 다 되셨고요?”
“그래. 나가기만 하면 돼.”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미와 아르센을 만날 준비. 진의 대답에 이안이 손을 내밀었고, 아이는 망설임 없이 맞잡았다. 두 사람은 선두로 마법부 건물 계단을 내려갔다.
타닥타닥!
그 뒤를 따르는 수십 명의 마법사. 아침의 찬 바람이 로브를 흔들었으나, 표정은 굳건하다. 진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저와 함께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 * *
재판에 참석하기 위한 귀족들의 입궁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 중에는 하이만을 비롯하여 내란 혐의를 지닌 귀족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이안은 예외 없이 중앙의 모든 귀족이 재판에 참여하기를 종용했다. 그리하여, 내란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눈으로 똑똑히 보게끔 만든 것이다.
제아무리 황자라고 한들, 바리엘을 위협한다면 저리되는 것이라고. 귀족들은 마리브의 사례를 영원히 상기하여 허튼수작질 따위 부리지 말라고. 일종의 경고나 마찬가지였다.
타닥타닥!
히이잉!
“아, 샬롯 경. 안녕하시오.”
“자자, 들어갑시다. 여기 서 있어서 무엇합니까.”
“재판은 오늘 하루로 끝난다지요?”
“뭐, 길게 갈 것 뭐 있나요. 폐하께서 상해를 입으셨고, 황궁의 잔해가 그 증거이니. 저는 마리브 저하께 내려지는 처형 방식이 궁금합니다.”
“황가에서 퇴출당하면, 교수형이지 않을까 싶어요.”
마치 신년회를 방불케 하는 인파였다. 재판장 앞에는 마차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귀족들은 엄숙하게 귓속말을 나누며 재판장에 들어섰다. 모두 무채색의 옷을 입은 상태였다.
위에서 지켜본 그 광경은, 마치 재판이 아니라 거대한 장례식이 열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딜라이나 님과 아르센 저하이십니다.”
“오호, 오셨군요.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아르센 저하가 마력운용자라는 것 말이지요?”
“세상 참 재밌습니다. 어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르센 저하가 능력을 보이셨는지. 그나저나, 다쳤다고 들었는데 어찌 쾌차하신 듯합니다.”
“진 저하와 이안 경은 조금 곤란하게 되었지요.”
“쉬잇. 이쪽으로 오십니다.”
그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딜라이나와 아르센.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지지자들을 이끌고 계단에 올랐다. 며칠 전만 해도 진에게 표를 던지던 자들 역시 섞여 있었다. 귀족들은 좌우로 갈라지며 고개를 숙었고, 딜라이나는 하이만을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하이만 공작.”
“딜라이나 님.”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며, 은밀하게 뭔가를 속삭여댔다. 딜라이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본 귀족들은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것을 확신했다. 바리엘의 돈줄인 하이만, 그리고 마력운용자인 아르센이 만났노라고. 다음 세대의 황제는 이미 정해진 것 같노라고.
끼이익!
타닥타닥!
그때, 마차가 속속들이 도착하며 거친 마찰음을 내었다. 마법부의 깃발이 달린 마차들이다. 귀족들은 혹여나 불똥이 튈까 봐, 서둘러 재판장 안으로 피했고, 딜라이나는 걸음을 멈춘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하, 조심히 내리십시오.”
“고맙네.”
진이다. 이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리는 아이. 고작 얼마간 안 봤다고 키가 조금 큰 것 같기도 하다. 딜라이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르센은 건조한 눈길로 그런 딜라이나를 올려다볼 뿐이다.
“아.”
열심히 계단을 오르던 진이 딜라이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어서, 옆의 아르센까지. 아르센은 제 어미를 대신해 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진. 오랜만이다.”
“…….”
“상처가 많이 아물었구나. 보고 싶었어.”
진은 기분이 참 이상했다.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같이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 떨어져 있었다고, 이리 어색할 수가 있나. 제 인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 여겼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지금 진은 굳건하게 잘 서 있었다. 올곧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아르센의 인사에도 가슴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그래’라니. 무엇에 대한 대답일까. 아르센은 눈썹을 까딱거리며 진과 시선을 마주했다.
‘어쭈.’
눈빛이 날카롭군. 아르센은 속으로 비웃으며 아이를 찬찬히 살폈다. 때깔이 영 나쁘지 않은 게, 마법부에서 애지중지 잘 보살피고 있는 듯했다.
“이안 경. ‘우리’ 진을 잘 보필하고 있는가?”
아르센의 능청맞은 인사에 이안도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요. ‘우리’ 진 저하께서는 총명하시고 사려가 깊으시니, 마법부 모두가 칭송하여 모시고 있답니다. 아르센 저하께서는 몸 상태가 좀 어떠십니까?”
“보시다시피 쾌차하였으나, 마음의 상처만은 아물지 않으니. 게일 형님께서 살아있는 한, 쉬이 나을 것 같지는 않소.”
게일을 보호하고 있는 이안을 비난하는 말이었다. 제아무리 황자라고 하나, 죄인임이 명백한 자를 처분하지 않고 살려두고 있으니. 아르센의 심기가 상당히 거슬린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이안은 못 알아들은 척, 능청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심려가 크시겠지만, 잘 추스르시길 바랍니다.”
“그게 그리 쉬이 되겠나? 나를 죽이려 했던 자를 어찌 잊어. 나는 절대 그리 못 하지.”
아르센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에는 게일뿐만 아니라 이안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니지만, 처리를 종용하지 않았던가.
아르센이 이안의 팔을 거칠게 잡아 쥐자, 진이 손을 단박에 떼어냈다.
타앗!
“보는 눈이 많다.”
“…진?”
“이안, 그만 들어가지. 아르센, 어머니를 잘 보필해다오. 내 몫까지.”
진은 제 어미에게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다. 구겨진 소매를 탁탁 쳐내며 옷매를 가지런히 했다.
“그럼, 이만. 아르센 저하. 또 뵙지요.”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던 마법사들이 줄지어 아르센과 딜라이나를 지나쳤다. 아르센이 마력운용자라면 마법부와도 긴밀한 사이가 될 것이겠지만, 전체적으로 적대한다는 분위기가 냉랭했다.
끼이익.
“마법부가 도착했군.”
“시간이, 곧 있으면 시작하겠어.”
“쯧쯧. 마리브 저하도 참 대단하시군. 진 저하의 저 얼굴 좀 보게나. 어린 황자에게 저런 상처라니.”
재판장의 천장은 거대한 돔으로 둥글게 내려앉아 있었다. 단상 위, 마련된 판사의 자리는 모두 쉰다섯.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사법부에서 권위가 있는 자들은 모두 나와 판결문에 서명할 것이었다.
“판결에 관한 권한은 사법부에서 절반, 그리고 남은 절반의 절반은 황가에, 나머지는 황궁의 고위 관료에게 돌아갑니다. 진 저하께서도 한 표를 던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공개되는 것이니 입장을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일종의 참여 재판이었다. 들러리인 귀족들은 2층에서 참관하고, 황족과 고위 관료들은 1층에 자리 잡았다. 판사들의 뒤로, 거대한 황좌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황제가 동결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 자리에 앉아서 재판장을 내려다봤으리라.
“무슨 뜻인지 알겠네.”
“긴장하지 마세요. 오늘 긴장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죽음을 앞둔 자만큼 두려운 자가 있을까. 진은 입술에 침을 축인 다음, 자세를 바로 했다.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벨벳 로브를 두른 판사들이 일렬로 입장했다.
“모두 정숙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마리브 황자의 내란 혐의 및 황제 폐하 시해에 관한 재판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땅땅!
판사장의 봉 두드리는 소리가 일순, 회장의 소란을 잠재웠다. 판사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위엄 있게 정면을 쳐다봤다.
“피고를 들이도록 하라.”
끼이익.
다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들어오는 금발에 푸른 눈 사내.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여느 때와 같이 안경을 쓴 자. 체면을 위하여 쇠사슬까지 벗었더니, 일전의 황자 위엄을 그대로 지닌 모습이다.
“마리브 황자 저하다.”
“어쩜 저리도…….”
“쉿. 정숙하게나.”
수군거림도 잠시. 마리브는 담담하게 착석하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중앙의 귀족들이 모두 저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의 발을 핥느라 정신없던 것들이, 혐오와 동정 그리고 연민 혹은 분노의 시선으로.
‘하.’
마리브는 그러다 이안을 발견했다. 그는 비릿하게 입가를 올리며 무언의 말을 속삭였다. 이안은 그것을 알아볼 수 없어 인상을 찌푸렸고, 마리브는 웃으며 고개를 바로했다.
“피고의 이름은?”
“…나는 바리엘의 1황자, 마리브 베로시온이다.”
마리브의 역사가 끝을 맺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