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12
제212화. 항변
“1황자 마리브 베로시온의 혐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란 및 황제 폐하 시해를 중심으로, 모반죄, 직인 찬탈 및 유실죄, 황족 상해죄, 마력봉인석관리위반죄, 특수손괴죄…….”
판사장이 읊는 마리브의 죄목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평소라면 황자라는 연유로 관용을 얻었을 것조차 사사롭게 적용된 탓이다. 어차피 나락으로 떨어질 거, 그간의 죗덩이를 모두 안고 가라는 사법부의 의지이기도 했다.
중간에 종이가 넘어갔으나, 죄명은 계속해서 또랑또랑하게 재판장을 울렸다.
“이상, 총 서른두 개의 죄목이었습니다.”
이안은 회중시계를 딸깍거렸다. 아침 일찍 시작하긴 했으나, 마리브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밤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진은 생각보다 긴 죄목들에 당황했는지, 연신 마리브의 뒤통수만 쳐다보고 있었다.
“마리브 베로시온은 위 혐의들을 인정하십니까?”
“인정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하나씩 진행해 보도록 하지요.”
오래 가겠군. 마리브의 당당한 부정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졌다. 판사들 역시 난감한 듯 시선을 짧게 나누었다. 마리브가 심문 과정에서 추태를 보인 게 이미 공공연한 사실인지라, 다들 긴장 아닌 긴장을 해야 했다.
“먼저 내란죄입니다. 마리브 베로시온은 이달의 닷새째 되는 밤, 제국방위부와 결탁하여 황제 폐하의 처소에 무단으로 침입, 그 과정에서 경비를 해쳤고, 황제 폐하에게도 상해를 입혔습니다. 이것은 인정하십니까?”
“…….”
“리아마 친위대장도 함께였지요. 그녀를 선두로 베올스를 무력화하였고, 이내 직인 찬탈 후 아침에 회의장에 들어섰습니다. 맞습니까?”
“아니라고 한다면?”
“기각하겠습니다. 피고의 혐의 인정이 없어도 죄를 입증할 만한 증언과 증거가 충분합니다.”
“하하. 그렇다면 굳이 물을 것 무엇 있나?”
“제국의 신성한 절차입니다.”
“신성한 절차? 웃기는군. 저기 앉아 있는 쌍둥이 황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짓이겠지. 나와 게일이 재판을 통해 죽어야, 저치들이 온전하게 바로 설 것 아니던가?”
갑작스레 지목당한 진이 몸을 움찔거렸다. 2층에서 쏟아지는 귀족들의 시선이 마리브에게서 진과 아르센에게로 옮겨진 탓이다. 아르센은 무던한 표정으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체통을 지키십시오!”
“무엇을 원하는가? 그날에 대해 낱낱이 알고자 하는가? 서류에 무엇이 써 있는지,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대부분 사실일 것이네. 나는 게일과 맞섰고, 그런 게일과 결탁하였던 딜라이나를 죽이려 했다.”
가감 없는 발언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증폭되었다. 딜라이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턱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게,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내 관용을 베풀어 쌍둥이 중 하나만 죽이기로 하였지. 그러자 딜라이나가 개중 한 명을 이때다 싶어 밀어버리더군.”
“사실이 아니다!”
“딜라이나 님, 정숙하십시오!”
딜라이나의 외침에 판사장이 봉을 거칠게 두들겼다. 대회의에서 거론되긴 하였으나, 전해 듣는 것과 실제로 듣는 것은 상당히 다르지 않나. 귀족들은 저들끼리 속닥거리며 딜라이나의 보호자 자격을 입에 올려댔다.
“그래서 내가 베었다. 진. 그 상처는 내가 아니라 네 어미가 낸 것이니, 이 형님을 원망하지 말거라.”
마리브의 발언에 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신성한 재판장에서 반성의 기미는커녕,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늘어놓는 작태가 실로 참담하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마리브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를 묻고자 한다면 물어라.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묻지. 여기서 나와 게일, 둘 중 하나가 승리하였다면 그대들은 어찌했을 것 같은가? 끝까지 노쇠한 황제를 따르며 내게 일갈하였을 것인가?”
그럴 리 없다. 마리브나 게일이 승기를 확실히 잡았더라면, 새로운 시대가 열렸노라고 앞다투어 바닥에 엎드렸을 것이다.
“세상에 따라 중심이 바뀌는 자들이, 어찌 나를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가당치도 않으니, 보여주기식의 단죄는 그만하였으면 하는데.”
“아니요.”
마리브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이안이었다. 그는 판사에게 손을 들어 보임으로 발언권을 얻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죄란, 본디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훗날, 아둔한 누군가가 마리브 저하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않을 테니까요. 저 길로 가면, 저런 끝이 있을 것이라고, 바리엘이 일러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그러니, 판사들은 허튼소리에 휘말리지 말고 하던 대로 하시라는 뜻이다.
마리브는 지금 간을 보고 있었다. 재판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조금이라도 더 자신에게 나을지, 계산을 재빠르게 하는 중이었다.
최악이라 하면 황가의 성 박탈과 교수형이고, 차악은 그저 단두대였으며, 혹여 기적이 깃든다면 재판을 미룰 수도 있지 않겠나.
타앙! 땅! 땅!
“마리브 베로시온, 이어서 마력봉인석관리에 관한 위반 혐의를 묻겠습니다. ‘이드갈’이라 명명하는 미등록 호박색 원석이 마력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내란에 이용한 것이 맞습니까?”
마리브는 대답 대신 고개만 짧게 주억거렸다.
“이를 구입한 자금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음. 글쎄.”
마리브는 팔짱 낀 손을 까딱이며 잠시 대답을 미루었다. 그리고 2층을 올려다보며 재밌다는 듯 웃음기를 머금었다.
“저기, 잘톤 후작의 처남이 작년 중앙 보수 공사를 진행하는 건으로 상당히 귀한 보석을 넘겨주었지. 그걸 팔아서 만들었었나?”
“예? 저요? 마리브 저하, 저 잘톤입니다.”
“그래. 아아! 아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은, 비스가드에서 만든 의약품을 공식 승인하는 건으로 한몫 먹긴 했었지. 왜, 그 진통 효과가 있다던 거.”
어쭈? 저것 봐라? 이안이 저도 모르게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리브가 거론한 당사자들은 놀라서 벌떡 일어나 항변했다.
“모함입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진정하시오, 잘톤 후작.”
“이는 제 명예와 관련된 것이니, 확실히 짚어주십시오. 마리브 저하. 지금 뭐 하자는 것인가요? 예?”
2층에서 바락바락 반박하는 것이 들려왔으나, 마리브는 관심 없다는 듯이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가 판사장에게 정숙을 요구하자, 판사장은 어쩔 수 없이 잘톤을 퇴장시켰다.
“잘톤 후작, 재판장에서 한 시간 동안 퇴장하시오.”
땅땅!
“아니, 잠깐! 잠깐!”
흥분한 그가 경비들에게 끌려가는 동안, 다른 귀족들은 침묵을 지키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마리브가 하려는 수작질이 뭔지 알아챘기 때문이다.
바리엘에서 황제 다음으로 전능한 자였던지라, 귀족들의 사사로운 치부 따위는 눈감고도 읊을 수 있었다.
“계속할까?”
마리브는 우아하게 손짓하며 판사장에게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쯤 하니, 판사들 역시 몇몇은 구린 뒤가 있는 터라. 저들끼리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눈을 굴려댔다.
“선고 후에 최후의 변론 기회가 주어진다고 알고 있네만.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나의 결백을 입증할 것이라. 기다려지는군.”
판사들과 황족 및 황궁 관계자들이 마리브에게 처벌을 내리고 나서 그에게 발언권을 준다는 것. 일종의 협박이었다.
“보자. 사달로 인해 많은 자가 바뀌었으나, 그래도 내 눈에 익은 자들이 꽤 있어.”
“마리브 베로시온, 재판과 관련 있는 말만 하시오!”
“자금 출처를 물어서 내 성심성의껏 대답했건만, 어찌 그러는가? 아니면 원하는 답이 따로 있는 것인가? 황자인 나를 이리 세워두고, 그대들이야말로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고 있군.”
청산유수, 말은 잘했다. 판사장이 한껏 누그러진 투로 다시금 말을 이었다.
“제국방위부와 리아마와는 어떤 식으로 결탁하게 된 것입니까?”
“행정부의 콜로모, 여기 있나?”
“…헉.”
“거기 있었군. 오랜만이라 반가워. 셋이 한자리에서 모였던 것은 저자, 콜로모 덕분이었지. 콜로모가 제국방위부 장관과 사적으로 아주 사이가 좋았다네. 그리고 리아마 역시 콜로모의 전전 애인으로, 비록 그가 당시 아내를 두고 있긴 했지만-”
“아닙니다! 아니에요!”
“뭐, 말만 하면 이리도 다 부정해대니. 내 증언에 법적인 효과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라.”
로만드로가 입술을 꾹 깨물며 이안을 돌아봤다. 그뿐만 아니다. 황궁의 고위 관료들 모두 이안을 힐끔거리며 은근한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 아무리 잃을 것 없는 자가 무서운 법이라지만, 도가 지나치지 않나! 저 미친 황자의 입 좀 막아주었으면 싶은 심정이 역력해 보였다.
마법사들이 소곤대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이, 이안. 이거 상황이 좀 난감해지는데.”
“조처하는 게 낫지 않겠나? 안 그래도 어수선한 황궁인데, 별별 시답지 않은 것들로 흔들리면, 그것 또한 바리엘에 피해라.”
“이안 님. 다들 우리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미치겠네. 뭐 마지막까지 저리 한답니까? 황자로서 위엄이나 명예 따위는 개나 줘버렸답니까?”
이안은 폭주하는 마리브를 보며 혀를 차댔다. 2층의 귀족 몇몇은 혹여 저가 거론될까 봐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중이었다. 잔머리 하나는 참으로 지고한지라. 이안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손을 들었다.
“오, 이안 경!”
“외람되지만, 마법부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봐주십시오. 마리브 황자는 심문 내내 사실과 확연히 다른 것을 증언하였고, 이는 재판을 어지럽히기 위한 방책이라 사료됩니다.”
차락.
이안의 말에 여기저기서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이안이 시켰다는 둥, 일전에 브라츠령에서 이안과 만났다는 둥, 하등 신빙성 없는 것들이 적혀 있고, 이에 반박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첨부되었다.
“이를 참작하여 판단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협의였다. 마리브는 지금 살기 위해 온갖 엄한 짓을 다 하고 있으니까, 다들 저걸 진실로 여기지 말자는 일종의 합의된 협의.
즉 마리브의 증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당장 중요하지 않으니, 신속 정확한 재판 진행을 위해 함께 수모를 감내하자는 신호였다.
“음. 그래요. 그렇군요.”
“이런 경우, 질의 형식을 바꾸는 것도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타당한 제안이니 받아들이겠습니다. 마리브 황자는 앞으로 ‘그렇다’와 ‘아니오’로만 답하십시오. 그 외의 것은 모두 기각합니다.”
타앙! 탕탕!
마리브는 아쉽긴 하지만, 전혀 굽히는 기색이 없었다. 어차피 모두가 진실임을 알고 있지 않나. 폭로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 가져가게 될 것이다.
“다음은 특수손괴에 관한 내용입니다. 내란으로 인해 파괴된 황궁 재산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황궁 전실과 본관 우측, 2층,…….”
확실히 하되, 서두르는 게 좋겠다. 판사는 그리 판단하고 말을 빠르게 했다. 마리브가 ‘그렇다’와 ‘아니오’ 외 다른 말을 하려 치면, 재빠르게 봉을 내려치어 말을 끊어냈다. 아마, 저 판사 역시 마리브에게 잡힌 약점이 있으리라.
탕탕!
“여기까지가 마리브 베로시온에게 걸린 서른두 개의 죄목이었습니다. 황궁의 법도와 황제 폐하의 지시를 따라, 황자에게서 황가의 성을 박탈하고, 교수형에 처할 것을 제안합니다. 다들 의지를 보이십시오.”
베로시온 박탈과 교수형이라. 마리브는 지그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끝까지 발악했으나, 어쩔 수 없나.
“의지를 보이십시오.”
판사장의 말에 마리브가 눈을 뜨고 뒤를 돌아봤다. 이상하게, 다들 먼저 손을 들고 찬성하는 자가 없었다. 혹여 마리브가 끝까지 자폭할까 봐, 최대한 눈에 띄는 첫 번째를 기피하느라 그런 것이다.
“하하. 다들 뭣들 하시오? 어디 찬성해 보시게.”
마리브는 아주 잘 걸렸다는 듯, 아예 팔 한쪽을 의자에 걸치고서 소리쳤다. 딜라이나 역시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아르센을 힐끔거렸다.
“…아르센?”
“먼저 할 것 없습니다. 괜히 오물 밟았다가 곤란해지게요? 조금 기다리세요.”
아르센이라 한들, 그의 추종자들이 뒤에서 어떤 짓을 하고 다녔는지, 마리브만큼 세세하게 알지는 못했다. 다들 암묵적으로 폭로가 진실임을 알고 있다. 재판장에서는 무시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칼날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
스윽.
참으로 무겁고, 기이한 침묵이 이어지는 순간.
“나는 5황자 진 베로시온이오.”
진은 조그만 손을 들어 보이며 찬성의 뜻을 보였다. 그의 왼쪽에 앉아 있던 이안이 괜찮다는 신호를 슬쩍 준 것이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먼저 나선다는 것은 여러모로 모험할 가치가 있다.
“재판부의 판결에 동의하는 바이다.”
특히, 황좌를 노리고 있는 자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