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20
제220화. 일심동체
“우웅…….”
진은 작게 투정 부리며 베개에 얼굴을 비벼댔다. 제아무리 황궁의 법도를 익힌 몸이라고 하나, 아침만큼은 평민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이는 엎드려서 눈만 슬쩍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언제나 발치 소파에 앉아있던 시아오시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안이 벽에 기대어 뭔가를 천천히 읽고 있었다.
진은 그것이 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이안 경?”
“일어나셨습니까?”
“…시아는?”
진의 부름에 이안이 고개를 살짝 틀었다. 종이 틈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끼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읽어내리고 있는 게 아니라 꼼꼼히 살펴보는 것 같았다.
이안 경이 동화책은 대체 무엇 하려고 저러지? 진이 몽롱하게 눈만 끔뻑이자, 이안이 시종 호출벨을 흔들었다.
“시아오시는 일이 있어 잠시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금방 올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신 오늘은 저와 아침 식사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너무 좋네.”
딸랑-
종소리가 울리자, 진의 정신도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내 시종이 부름을 받고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저하가 기침하셨다. 준비하라.”
“예. 곧 식사를 대령하겠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안은 동화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진은 의아해서 이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혹여 잘못 본 것인가 싶었는데, 가 맞았다. 진의 외친 선조이자, 카르보 신전의 수호자인 로버사이드 초상화가 손때에 빛바래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왜?”
“저하, 이 동화를 읽고 자면 항시 꿈에서 로버사이드가 나온다고 하셨지요. 하여 재미있게 놀아준다고요.”
“그랬지. 어제는 내 다른 걸 보고 잤으나, 한 치의 예외도 없이 그렇다네.”
진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버사이드와의 놀이는 언제나 즐거웠다. 특히 아르센과 함께 지낼 때는 더더욱, 그것만이 하나의 탈출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안은 책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제가 며칠 빌려도 되겠습니까? 황실 도서관에도 없는 책인지라, 부탁드리겠습니다.”
로버사이드에 관한 책은 많았으나, 진이 갖고 있는 동화책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카르보 신전에서 특간으로 펴낸 것이기 때문이다. 진은 당연히 허락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대도 그 책이 마음에 들었군? 부탁이랄 것도 없네. 편히 보시게.”
“감사합니다.”
“진 저하. 욕실로 드시지요. 준비가 끝났습니다.”
“응. 그래. 이안, 곧 오겠네. 아침 같이 먹어.”
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종들을 따라나섰다. 이내 문이 닫히고, 이안은 의자를 끌어다 앉아 본격적으로 동화책을 탐독했다.
‘의아하다. 책을 읽을 때마다 진의 꿈에 로버사이드가 나오는 게, 과연 우연일까? 아이의 즐거움이 만들어낸 환상치고는 그 수가 너무 빈번하지 않나?’
그리고 무엇보다, 동화책을 읽어준 자신에게도 로버사이드가 나타났다. 마물이 범람하고, 아르센을 죽이려는 등 즐거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안은 아직도 그의 처절한 절규가 귓가에 생생했다.
‘태어나서는 아니 될 아이. 죽여라!’
톡톡, 이안은 로버사이드의 초상화를 두드리며 가만 내려다봤다. 마지막으로 마물을 봉인한 로버사이드,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아르센의 능력, 신탁의 기이함…….
이안의 머릿속으로 가설이 하나 떠올랐으나,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는 섣불리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혹여 짐작이 사실이라면, 원 역사에서는 아르센이 어찌 되었을까. 진이 황제인 것은 변하지 않으니 분명 아르센이 무너질 만한 사건이 있었으리라.’
이안이 골똘히 생각을 잇는 와중, 아침 준비를 마친 진이 멀끔한 모습으로 달려 나왔다. 아이는 이안의 팔을 붙들며 식사를 재촉했다.
“이안 경. 어서 식당으로 가지. 오늘 주방장이 오리고기를 잡았다 하여. 어? 그런데 로만드로도 안 보이는군.”
“시아오시와 함께 갔습니다.”
“그래?”
진은 눈을 좌우로 굴리며 이안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이안이 허리를 굽혀 귀를 기울이자, 진은 아주 조심스러운 비밀을 속닥거렸다.
“로만드로와 비비안나의 아이가 딸일 것 같아. 다행히 비비안나를 똑 닮아서, 총명하고 어여쁠 것이라.”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로버사이드 님이 일러주었지!”
진의 볼우물이 살포시 패였다. 이안은 조금 놀란 듯,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붙잡고 뒤쪽에 시선을 주었다. 시종들이 재빨리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물러났다.
“로버사이드가 그런 것도 일러줍니까?”
“자주는 아니고, 아주 드물게.”
“또 일러준 것이 있나요?”
“으음. 아, 로버사이드 님이 마지막으로 처리했던 마물 말이야.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진은 기억을 더듬거리며 이안의 손을 가져왔다. 그러곤 손바닥에 조심조심, 선을 그어가며 뭔가를 그려댔다. 문자인 듯한데, 이안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라 이해할 수 없었다.
ᚫᚱᛋᛖᛀᛖ
“이름을 이리 쓴다고 하였다.”
“어찌 읽습니까?”
“글쎄. 나뭇가지로 땅에 쓴 것이라.”
이안이 아는 한, 인근 국가의 문자는 아니었다. 로버사이드가 건국 초의 사람이니, 고대에서 쓰던 것인가? 아니면 진이 만들어낸 환상? 이안이 가만 서서 글자를 눈에 익히는 동안, 진은 지나가는 마법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좋은 아침이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진 저하.”
“오늘 넥타이가 아주 멋있으십니다.”
“그대도 멋져! 고마워!”
두 사람은 식당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는 두 사람분의 자리. 이안이 진의 맞은편에 앉으려는 순간이었다.
벌컥!
갑자기 식당 문이 거칠게 열리더만, 땀에 흠뻑 젖은 로만드로가 나타났다. 그는 숨을 거칠게 헉헉거리며 빠르게 이안과 눈을 마주쳤다.
“로만드로?”
“지, 진 저하도 함께시군요.”
“일을 보러 간다더니? 어서 오시게. 식사는 하였어?”
반갑게 맞이하는 진과 달리, 이안은 냅킨 펼치던 걸 멈추고 로만드로를 살폈다. 그 뒤에 서 있는 시아오시까지 함께. 두 사람은 고발장을 나눠 들어 품에 꼭 안고 있었다.
“로만드로 님.”
“이, 이안. 저기, 있잖아.”
“숨 좀 돌리십시오. 시아오시. 너도.”
고발장을 접수하러 갔던 자들이 저런 몰골로 들이닥치니, 이안은 염려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음을 인지했다. 종이를 나눠 든 것은, 한 번에 분실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일 터. 로만드로가 그만한 위협을 느꼈다는 걸 의미했다.
“문을 닫고, 모두 물러나라.”
끼이익.
이안의 지시에 시종들이 허리를 잔뜩 숙이며 식당을 나섰다. 진은 영문 모를 상황에 눈만 크게 뜨며 분위기를 읽어내렸다. 지금, 뭔가 문제가 생긴 듯하지?
“어찌 되었습니까?”
“허억, 허억, 그, 아무래도, 날치기하려는 듯하네.”
로만드로는 숨을 헐떡이며 의자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황자 앞에서 쓸 단어는 아니다만, 그만큼 이 상황을 적절히 표현하는 게 없었다.
“하이만 공작, 그리 안 봤는데 아주 저열해. 혹여 마차에도 문제가 생길까 봐, 걸어왔어. 중간에 퀸타나 만나지 않았더라면 무릎 다 나갈 뻔했네.”
마차를 탔다가 납치당한다면 방도가 없지 않나. 결국, 로만드로는 걸어오는 걸 택했고, 중간에 퀸타나를 만나 마법사 두 사람을 떼어내어 먼저 돌아왔다.
“담당자인 에릭세가 마차 사고를 당했다는군. 아마 오늘내일 중으로는 나오지 않을 듯한데, 거기 접수하는 직원들 하며, 모여있는 자들이 영 수상쩍었단 말이지.”
“투박하군요.”
이안은 미지근한 물로 입술을 축였다. 투박하지만, 어느 정도 확실한 방법이다. 아무래도 하이만 측은 아르센의 마력확인식 이후 대회의가 열리도록 조절하려는 듯했다. 며칠 안 남았으니, 직접적인 물리 행사가 제일 효과적이긴 하다.
“그리고 이안. 마법부에도 하이만 가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아까 같이 간 마법사 둘도 좀, 아, 뭐라고 해야 할까. 싸하다고 해야 하나?”
로만드로의 속삭임에 진의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마법부는 다른 부서에 비해 인원이 훨씬 적다. 또한, 기본적으로 재산 수준이 높고, 자긍심이 고고하여 결속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
그런데도 불구, 하이만의 마수가 끼쳤다면 황궁 전체에서는 그 수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새삼 하이만이 귀족 위의 귀족이라는 게 체감되는 대목이었다.
“그래요.”
하지만 이안은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촉이란 게 쉬이 무시할 게 아닙니다. 로만드로 님이 그리 느끼셨다면, 충분히 조사할 가치가 있어요.”
“자네도 알고 있는 거였지? 그래서 시아오시를 붙여준 것이고. 나, 얘 없었으면 무서워서 울 뻔했다. 진짜. 뛰어오는데 우리 비비안나 얼굴이 어찌나 아른거리던지, 원!”
로만드로가 시아오시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앓는 소리를 해댔다. 그의 모습에 이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상대를 의심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제 편을 솎아내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이안, 어찌 눈치챘나? 응?”
“…그저, 아니길 바랐을 뿐입니다.”
아니길 바랐다는 말. 그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상정하고 있었다. 황궁이라는 배경을 떠나, 인간의 삶이 그랬다. 이안은 나움의 말을 떠올리며 냅킨을 가볍게 접었다.
‘폐하. 사람이 셋 모이면 그중 하나는 배신자요, 하나는 변절할 가능성 있는 자입니다. 남는 것은 폐하이시니, 폐하는 스스로만 믿으십시오.’
‘…그대는?’
‘폐하. 저 역시 믿지 마십시오. 항시 의심하되, 곁에 두고 이득을 취하십시오. 믿으면 언제나 다칩니다. 저는, 폐하께서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때는 왜 그걸 마음에 새기지 못했을까. 이안은 조카 크로니를 함께 떠올리며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로만드로와 시아오시, 그리고 진이 이안의 무거운 침묵을 지켜봤다. 무덤덤한 표정이거늘, 눈빛이 짙다.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게 느껴졌다.
“이안 경?”
진의 부름에 이안이 고개를 들고 방긋 웃었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언제고 한번은 할 일이었습니다.”
“어떤……?”
마법사들만큼은 사사로운 것에 혹해서는 아니 된다. 강인한 힘에 깃드는 강인한 책임. 마법사의 맹세를 한 자들이라면, 그리해서는 아니 되지.
이안은 종을 가볍게 흔들며 식사를 내오라 명령했다.
띠링.
“에릭세 담당자의 현 상태가 어떠한지 알아보라. 그리고 사법부에 공문을 보낼 것이니, 서류를 준비해. 사람을 보낼 때는 서로 다른 부서의 마법사 둘을 붙여서 보내거라. 자원하는 자는 받지 않겠다.”
“예? 아, 예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로만드로와 함께 갔던 마법사 둘에게 각자의 방에서 대기하라 전해라. 식사가 끝나는 대로 대면할 것이니.”
갑작스러운 지시에 시종이 당황했으나, 잠시였다. 그는 곧 총총거리며 이안의 명을 전하기 위해 돌아나갔다. 로만드로가 남은 물을 꿀떡거리며 물었다.
“이안. 실담물약, 써야겠지?”
“이미 마력석관리부는 그걸 무력화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다는 건, 곧 다른 마법사들도 알 수 있다는 뜻이지요. 신뢰가 없습니다.”
이안은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왼손으로 포크를 들었다. 그러곤 아주 우아하게 토마토를 잘라냈다. 하나였던 것이 곧 두 개가 되고, 다시 세 개가 된다.
“다른 방식으로 솎아낼 것입니다. 마법부는 일심동체라, 안에 다른 것이 들어있다면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