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21
제221화. 함정 극본
‘젠장.’
마법사는 방안을 서성이며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로만드로가 의심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거늘, 어찌 접수대까지 간 그가 막판에 등을 돌려 나왔는지 모를 노릇이다.
‘그래. 솔직히 접수대 직원은 그럴 수도 있었어. 어수선하면서도 정제된 분위기 역시, 눈치가 빠르다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마법사들까지 믿지 않았던 걸까? 마차도 안 타겠다, 걸어가는 도중 만난 동료에게 시아오시만 홀랑 데리고 타서 도망치듯 먼저 떠나지 않았나? 마법사 둘은 난감하여 부서로 돌아가는 게 맞는지,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조심히 노려보는 건데! 아니면 아예 가는 마차 안에서 일을 봤어야 했다. 뭘 하기도 전에 의심을 받으니 답답해서 미칠 노릇 아닌가?
무심하게 생겨서는 촉이 아주…….
끼이익.
“이안 님.”
그때, 문이 열리며 이안이 들어왔다. 마법사는 정 자세로 서서는 긴장된 숨을 겨우 참았다. 로만드로가 분명 무언가 이상하다고 말했으리라.
그렇다면 실담물약을 쓸 것인가?
아니면?
마법사는 필사적으로 이안의 표정을 살피려고 애썼다.
“로만드로를 호위하여 사법부에 다녀왔다고.”
하지만 이안은 담담하게 말을 건네며 의자에 앉았다. 그 역시 앉아도 좋다는 눈짓까지. 마법사는 생각보다 부드러운 말투에 주춤거렸다. 그는 겨우 대답을 내놓으며 의자를 끌어당겼다.
“…예. 그렇습니다.”
“고생했네. 식사는?”
“아직, 아직입니다.”
“오늘 오리고기가 괜찮더군. 보고 후 서둘러 식당에 가 보시게. 늦으면 주방장이 싫어할 것이라.”
이안이 뜻밖의 말을 꺼내자, 마법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심문이 아니라 ‘보고’라는 단어를 쓴 것인가? 그 말은, 이안이 저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는 뜻?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잘하면,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다.
‘아니지. 사실상, 하나 그릇된 것 없는 호위였다.’
제삼자의 측면에서 본다면, 로만드로 혼자 지레짐작하여 호들갑을 떤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마법사는 웃음을 숨기며 알겠노라 답했다.
“그런데 로만드로가 말하기를, 사법부의 담당 직원 태도가 이상했다고 한다. 옆에서 함께 보았는가?”
“예. 접수대까지 호위하여 갔습니다.”
“상세히 보고해 보아라.”
이안은 그리 말하며 펜대를 가볍게 쥐었다. 그 손으로 당최 모르겠다는 듯이 미간을 문질러 대니, 고운 피부에 붉은 자국이 얼핏 올라왔다. 이안은 서류에 뭔가를 적으며 중얼거렸다.
“듣자 하니, 물리적인 충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담당 직원 역시 황궁의 사람이라. 문제 될 게 하나 없었는데도 로만드로가 그리 판단한 연유가 궁금하다. 정작 본인은 그저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하니, 원.”
“그, 그러시군요.”
마법사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로만드로 님이 그리 느끼신 연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저와 함께 갔던 라트리스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꼭 뭐에 쫓기듯이 사법부를 뛰쳐나가셨거든요. 중간에 퀸타나 님 마차를 만나기 전까지, 계속 힐끔거리며 불안해하시고. 마차에 타서는 자리가 없다고 먼저 가겠다는 말까지 하셨습니다.”
“흠. 그래?”
“아무래도 누적된 피로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법부 직원, 저도 잘 아는 자인데요. 워낙 업무가 많아 기계적이긴 하지만, 친절하고 괜찮은 자입니다.”
이안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펜을 끼적거렸다. 중간중간 호응까지 해주니, 마법사는 점점 더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꼈다.
“신분증을 제시해 달라는 등, 그쪽에서는 조금 모욕적이었을 것입니다. 고발장을 가져다주며 다시금 대화를 잘 해보는 건 어떨지요?”
타악.
그 말과 동시에 이안은 펜을 내려놓았다. 우아하지만 단호한 손짓에, 마법사의 말문이 저절로 막혔다. 이안은 싱긋 웃고만 있었다.
“나는 로만드로가 내린 판단의 근거를 물었다. 그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는 그대가 결정할 게 아닌데.”
“아, 소, 송구하옵니다.”
마법사는 저도 모르게 볼 안쪽을 깍 깨물었다. 그저 모르겠다고, 거기서 끝낼 걸 그랬다.
이안은 몇 번이고 펜을 톡톡 두드리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법사가 따라 일어서자, 그는 웃으며 손짓했다.
“앉아있게. 아쉽게 되었어. 오늘 식사가 참으로 맛있거늘.”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병사들이 마력봉인석 족쇄를 들고 들이닥친 것이다. 그들은 마법사가 저항하기 전, 재빠르게 결박하여 침대 위로 몸을 눌러 제압했다.
“이안 님! 이안 님! 왜 이러십니까?”
“가만히 계시오.”
“읍! 읍읍!”
콰앙!
이안은 결박당하는 그를 힐끔 본 다음, 미련 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집무실에서 계속 돌아다니던 로만드로가 화들짝 놀라며 다가왔다.
“뭐라 하던가?”
“확실히 수상하니, 심문을 본격적으로 하는 게 맞겠습니다. 은밀하게, 차질 없도록 해주십시오.”
정황을 묻는 말에, 그는 일말의 주저 없이 대답을 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라면, 로만드로가 어찌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에 대해 복기하고 고민하여 답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요, 또한 로만드로의 판단이 오류라는 걸 상정한 증언이었다.
“아이고, 세상에.”
로만드로가 두 손으로 이마를 짚어댔다. 마법부에도 하이만의 끄나풀들이 있는 게 사실이라. 한마음 한뜻으로 싸워도 치열할 터, 이런 분열은 가히 치명적이었다.
혹여 모를 내부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솎아낼 자들의 경계를 사지 않기 위해, 이안은 두 마법사를 숨기기로 했다.
“두 사람은 출장 처리해 놓으세요.”
“아, 알겠네. 마법부에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은가?”
“알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것이 문제라. 당장 가려낼 수 없는 게 치명적이네. 여러 중대 사안을 앞둔 지금, 물리적인 여유가 없지 않나?”
통상적으로 배신자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오늘처럼 덜미가 잡히는 것 아니고서는 말이다. 상대측에 파고들어 단서를 얻어내거나, 혹은 배신의 결과로 배신자가 정체를 드러내거나. 둘 중 하나일 터.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려 한다면, 그리하지요. 하지만 스스로 걸어 나오게 한다면, 비교적 쉽습니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게 무슨…….”
“하이만의 이름을 잠깐 빌릴까요?”
일종의 함정수사였다. 상대를 표방하여 함정으로 만들어 놓고, 접근하는 자들을 배신자로 정의하여 처단하는 것. 로만드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겨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이만 내부에 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네. 이미 배신자들은 그쪽과 연락망이 있을 터이니, 바로 들킬 터. 쉽지 않아.”
이안은 동의한다는 듯 방긋 웃었다. 그것 역시 이미 염두에 두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정당한 말씀입니다. 함정은 함정인지 몰라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렇다면 저희와 대립하는 자이자, 하이만도, 아르센도 아닌 자의 이름을 빌리면 좋겠군요.”
“그런 자가 황궁에 있…….”
있을 리 없다고 말하려는 로만드로. 이내 뭔가를 떠올리고 멈칫거렸다. 그는 말문이 안 트이는지, 연신 손만 딱딱거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아아!”
“게일 저하입니다.”
“게일! 내가, 내가 방금 말하려 했는데잉!”
이안은 책상에 쌓인 보고서를 뒤적거렸다. 하이만이 이웃 나라인 루스웨나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란 의견이 가득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얼마 전 하이만의 기사가 국경을 넘어 루스웨나로 들어갔다는 전언도 함께였다.
“이렇게 소문을 내봅시다.”
그는 체스 말을 하나씩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루스웨나에서 하이만의 요청을 핑계 삼아 바리엘에 개입하려는 게 정황상 확실하다. 그들의 명분은 하이만의 아내가 루스웨나의 왕족, 즉, 가족이라는 것. 여기까지는 이해되십니까?”
타악.
로만드로가 검은 퀸을 앞으로 끌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퀸 앞과 뒤로 말들이 득실득실했다.
“그렇다면 바리엘에서는 루스웨나에게 어찌 반응하는 게 좋을까?”
타악.
“정치, 경제적으로 압박하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폐하께서 누워계신 점, 그리고 후계 자리를 두고 황궁이 어지럽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강경책보다는 회유책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드는군요.”
“지금 말하는 것들, 모두 가정이 맞나?”
“물론입니다. 다만 실현 소지가 다분한, 가정이지요.”
로만드로가 턱을 쥐며 고민하더니, 이내 흰색 킹을 만지작거렸다. 여기 놓을까, 저기 놓을까? 게일을 이용하여, 회유책?
이안은 그의 손에서 킹을 빼앗아 앞으로 전진시켰다.
“하이만의 아내가 루스웨나의 왕족이긴 하나, 현 왕의 직계가 아니지요. 그리고 왕이 여자인 점도 한몫합니다.”
“…게일 황자가 이런 것들을 이용하여, 살아남으려 한다?”
“애당초 그가 주로 쓰던 수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그렇긴 하다만.”
웨슬리, 멜라니아, 그리고 이번에는 루스웨나의 왕까지. 게일은 늘 그렇게 살아남지 않았던가? 로만드로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여댔다. 팔자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일이 루스웨나로 망명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트리면, 많은 자가 반응할 것입니다. 마법부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루스웨나는 마법사가 많이 없으니, 가면 이곳의 장관급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안은 체스 말 대여섯 개를 동시에 반대쪽으로 옮겼다. 순식간에 판 위가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물론 신념을 따라 타국으로 가는 것은 그들의 선택입니다. 저는 물론 바리엘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만-”
여기서 중요한 분기점이 생겨날 것이다. 배신자를 가려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분기점.
“이 모든 걸 들은 제가, 그리고 하이만이 가만있을까요?”
게일이 타국으로 가서 힘을 모아온다면 이안에게, 특히, 진에게 위협적이었다. 하이만 역시 마찬가지. 루스웨나와 바리엘을 연결해 주던 고리가 유일해지지 않으니,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 이안과 하이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막으려고 할 터.
“게일은 이안 히엘로와 하이만을 견제하기 위해, 세력을 모을 것입니다. 적들의 내부 정보를 모으겠지요. 이것이 핵심입니다.”
배경은 모두 세워졌다. 배우들이 움직이는 이유 역시 적당하다. 이 극본을 토대로 함정이 돌아가면, 그 소리를 듣고 변절자들이 몰려들 것이라. 발을 들이밀면, 돌아가는 칼날에 죽음을 맞이하겠지. 이안은 말을 옮겨 체크메이트에 들어섰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면 됩니다. 혹여 마법사 두 명의 심문으로 단서를 찾아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군요.”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게일 황자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그리고 그가 진짜 다른 마음을 먹으면 어찌하나?”
살아날 길이 있다는 걸 안 게일이 진짜 루스웨나로 망명하면 곤란해진다. 이안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손끝으로 빛을 만들어냈다.
“황자의 도움은 크게 필요 없습니다. 그는 지금이나 소문이 돌 때나 궁에 갇혀 있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혹여 망명에 관한 것이라면…….”
지이잉. 지잉.
“그의 죽음을 정해놓을 것입니다.”
“정해놓다니?”
“마법의 힘으로요.”
이안은 손을 가볍게 튕기며 빛을 꺼트렸다.
그것이 게일의 숨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