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22
제222화. 밀어
이안과 로만드로가 세부적인 계획을 다듬고 있을 때였다. 바깥에서 기별이 들려왔다.
“이안 님. 궁밖에서 전서구가 들어왔습니다. 하문하셨던 에릭세 담당자에 관한 내용입니다만, 안으로 들일까요?”
“들라.”
에릭세의 저택으로 갔던 부하가 우선적으로 상황 보고를 올린 것이었다. 이안은 고이 접힌 쪽지를 펼쳐 읽어내렸다. 로만드로 역시 궁금하다는 듯 뒤에서 고개를 쭉 빼내었다.
“무어라 하는가? 마차 사고가 맞나?”
“맞습니다. 에릭세의 저택 하인 말로는, 아침 출근길에 사고가 나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는군요. 생명에는 다행히 지장 없지만, 내일까지 출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마차 바퀴가 빠질 정도로 큰 사고였다 해요.”
“쯧쯧! 어찌 멀쩡한 자를 끌어들여서, 원.”
“센트라 병원이군요. 그쪽에 가서 에릭세의 상태를 직접 확인 후 복귀하겠다 합니다.”
이안은 쪽지를 고이 접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이리되면, 어찌어찌 고발장 접수가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그것이 대회의에 회부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다. 고발장이 적합한지를 검토하고, 그걸 대회의장에 올리는 게 에릭세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로만드로가 의심하였던 직원이 중간에 빼돌리지 않더라도, 마력확인식 이전에 대회의를 열긴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이만 가의 계획대로라면 말이다.
“하이만과 아르센 측은 재판을 기피하려 할 것입니다. 승산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아예 재판 자체가 열리지 않게끔, 대회의에서 잘라 버릴 생각이에요.”
“사실 황궁 모두가 그걸 기다리고 있네. 아르센 저하가 마법사인지 아닌지 만큼, 지금 중요한 게 없으니.”
반대로 말하자면, 이안은 마력확인식 전에 대회의를 소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수는 아니지만, 일 처리를 쉽게 할 수 있다면 그러는 편이 나았다.
그는 쪽지 끄트머리를 손으로 톡톡 튕기더니, 이내 호출 종을 딸랑거렸다.
“이안 님, 부르셨습니까?”
“헤일 대장을 중심으로 마법사를 결집해라.”
“예? 아, 알겠습니다.”
헤일 대장을 중심으로 하라는 말은, 곧 외근직에 몸 쓰는 자들을 주로 모으라는 뜻 아닌가? 이안은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 공문용 인장을 꺼냈다. 그러자 로만드로가 책상을 정리하여 집필 기구를 놓아주었다.
“공문을 보낼 것인가? 무어라고?”
“사법부 장관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고 공론화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쪽도 하이만이 수를 써 두었다면?”
“아닐 겁니다. 수뇌부 쪽을 쥐고 있다면, 구차하게 이런 수작질을 하진 않았겠지요. 재판까지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을 터. 바리엘의 사법부는 공명정대함이 남다르니, 하이만의 마수가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그, 그래. 하긴, 위쪽을 끌어들였으면 그리 고생할 필요도 없었어. 근데 헤일 대장에게 공문을 전하라 하는 건 좀 인력 낭비인 것 같은데.”
“헤일 대장은 다른 역할을 수행할 겁니다.”
스윽스윽.
이안은 정갈한 글씨로 종이를 빼곡하게 채웠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법부의 공식 인장을 찍으려는 순간이었다. 바깥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안 님, 저기, 오늘 사법부 장관님이랑 부장관님 모두 출근 안 하셨다고 하는데요.”
타악.
인장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장관이랑 부장관 모두 출근 안 하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안이 인상을 찡그리며 도장을 내려놓자, 시종은 허리를 바짝 숙이고 더듬거렸다.
“자, 장관님은 어제 다비온 백작님 파티에 가셨다가 숙취로 못 일어나셨다 하고요. 부장관님은 외곽에 일 보러 가셨다가 배탈이 심하게 나셔서 꼼짝도 못 하신답니다. 급한 공문이면 각 부서별 담당자들 소집하여 처리하겠다고 하는데, 어찌 전하면 좋을까요?”
어이없이 웃는 이안과 달리, 로만드로는 경악하여 입만 벙긋거렸다. 아예 날 잡아서 사법부가 텅 비도록 수작질한 것 아닌가? 로만드로는 당황하여 이안을 돌아봤다.
“이게, 이게 말이 되는가? 응?”
“막을 수만 있다면, 무얼 못하겠습니까.”
“각 부서 담당자들을 모이라 할까?”
“아닙니다.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것을 보니, 그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안은 쓰던 공문을 태워 버리고, 새로운 종이를 꺼냈다. 그러곤 무엇인가를 가볍게 휘갈기고는 시종에게 건넸다.
“전서구에게 이것을 묶어 센트라 병원으로 보내라. 답장이 또 올 것이니, 항시 창문에서 대기하고.”
“예. 이안 님.”
시종이 나가자, 이안은 겉옷을 가벼운 것으로 갈아입었다. 마치 외출을 준비하듯 말이다. 이안은 로만드로의 안색을 살피고서 물었다.
“로만드로 님은 이제 그만 가서 쉬십시오.”
“고발장 접수까지가 내 임무이니, 나 또한 끝까지 돕겠네. 그, 근데 대체 무엇을 어찌하려고?”
“제가 직접 하려고요.”
“응?”
이안의 단호한 대답에 로만드로가 멈칫거렸다. 고발장 접수를 위해 장관이 직접 움직인다니. 이만한 촌극이 또 어디 있겠는가? 로만드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완강히 버텼다.
“그, 그렇다면 아니, 절대! 내가 같이 가겠네!”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나 있으면 방해되나?”
“그건 아니지만요.”
“그러면 끝까지 하자고! 나 아직 쌩쌩해!”
로만드로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치자, 이안은 단추를 잠그며 웃었다.
“그러면, 음, 보호장비를 준비하십시오.”
“…보호장비? 그건 왜?”
로만드로는 불길함을 느끼며 멈칫거렸으나, 이안은 그저 웃기만 했다. 가끔, 하찮은 수작에는 하찮은 대응으로 나서는 것 또한 나쁘지 않으리라.
몇 시간 후,
타닥타닥!
똑똑!
“이안 님! 센트라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일어나 서신을 받았다. 그러곤 소파 등받이에 반쯤 널브러져 있던 로만드로를 깨웠다. 침을 줄줄 흘리며 자던 그가, 몽롱한 시선으로 이안을 쳐다봤다.
“흡, 나, 나 안 잤네. 이안.”
“알겠습니다. 슬슬 출발하지요.”
이안은 가죽 장갑을 끼며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헤일 대장을 비롯하여 대기하고 있는 마법사들이 동시에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안이 손짓하자, 헤일이 궐련을 질겅이며 몸을 가까이 숙였다.
“사법부로 갈 것이다.”
“사법부는 어찌…….”
“에릭세의 도장을 챙기러 가는 것이다. 챙겨서, 센트라 병원으로 가게. 그 자리에서 고발장을 결재받고 와.”
뭔지 모르겠지만, 헤일은 일단 알겠노라 답하였다. 그리고 뒤에 있던 마법사들에게 지시했다.
“이안 님을 따르라. 사법부로 간다.”
“사법부로 간다! 다들 가자!”
수십 명의 마법사가 로브를 휘날리며 건물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들 선봉에 선 이안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서쪽을 바라봤다. 사법부가 있는 방향이었다.
* * *
정오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건만, 사법부는 이례 없이 한산했다. 마치 전염병이라도 돈 것처럼 절반 이상의 직원들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특히 장관과 같은 고위직까지 모두 휴가를 내버렸으니. 아예 업무 마비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누가 보면 오늘 휴일인 줄 알겠다.”
“그러니까요. 어찌 윗분들, 동시에 다 이럴 수가 있어요? 부장관님도 그래요. 오늘까지 보고하라고 해서 어제 야근했는데, 정작 자기는 안 나오시고.”
“그래도 상관들 안 나오니까 난 살맛 난다.”
“맞아. 게다가 다 빠져서 너무 좋아. 한둘만 빠졌어 봐. 그거 대신하느라 오늘도 야근이었을걸?”
직원들은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조금씩 일감을 나눠가며 잡담을 떨어댔다. 오늘따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업무도 적었다.
평온하게 차를 홀짝이며 서류를 뒤적이던 중, 누군가 의아한 소리를 내었다.
“어? 저기 뭐지요?”
“왜? 뭔데?”
“마법부 깃발인 것 같은데. 마차 떼가 사법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직원의 말에 다른 자들 역시 몸을 일으켜 창문 아래를 내려다봤다. 말 머리가 사법부 내에서도 접수처가 주로 모여있는 건물로 틀어져 있었다.
“내버려 둬. 우리 일도 아닌데.”
“흐음. 아무래도 그렇지요?”
“무시해, 무시. 오늘 하루만큼은 조용히 좀 넘어가게. 곧 있으면 퇴근이잖아.”
퇴근까지 세 시간 남았다. 담당자의 지시에 직원들은 어깨만 으쓱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법부 반대쪽 건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끼익!
히이이잉!
접수 건물 앞에 들이닥친 마차 떼에, 경비들이 당황하여 뒤로 물러섰다. 마법사들은 마치 한판 하러 온 자들처럼 표정이 비장했다.
“무슨, 무슨 일이십니까?”
마법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린 이안. 품에서 서신을 꺼내 들었다. 에릭세의 친필 서명이 적혀있는 것이었다.
“마법부에서 고발장을 접수하려고 하는데, 에릭세 담당자가 오늘 사고로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군.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인지라, 병원에 연락해 보니 도장을 갖고 오면 흔쾌히 처리해 주겠노라 하였어. 하여, 그걸 가지러 왔다네.”
경비는 에릭세의 친필 서명 따위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언제고 이 자리에 서서 입구만 지킬 뿐이었으니까. 경비들이 주춤거리며 마법사들을 돌아봤다.
“그런데 어찌 이리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까?”
“장관이 부하 데리고 다니는 것 또한 소명해야 할 일인가? 그대만큼이나 내 시간이 귀하여, 비키시게.”
타닥타닥!
경비들이 창을 내리고 몸을 틀려는 순간이었다. 안쪽 접수대 직원들이 놀라서 달려오더니, 이내 당황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저, 저자일세! 이안!”
아침에 로만드로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청받은 직원이었다. 지목당한 여자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기서 무엇들 하십니까?”
“에릭세의 요청으로 그의 도장을 가지러 왔다.”
“그걸 지금 믿으라고요?”
“황제의 직인도 아니고, 그저 업무용 도장인데 무엇 그리 날을 세우는가? 여기 에릭세의 친필 서명이 있다. 확인할 자가 있다면 확인하라.”
이안이 검지와 중지 사이에 서신을 끼우고 가볍게 흔들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저 입만 앙다문 채 서로 시선을 나눌 뿐이었다. 저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것도 없이 무조건 막아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헤일은 그제야 명령의 의미를 알아챘다.
‘이거, 오랜만이네.’
그리고 까드득, 손과 발을 가볍게 풀었다. 고고한 황궁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의견 관철을 위하여 물리적 충돌이 있을 때도 빈번하였다. 원리 원칙을 누구나 지키는 것은 아니기에. 물론, 대부분은 회의 도중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안 됩니다. 곧 있으면 업무 마감 시간입니다.”
“도장만 가져가면 될 일이다.”
“에릭세 님이 직접 오기 전에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다들 뭐 해?”
처억!
하이만에서 얼마를 쥐여줬는지 몰라도, 직장을 그만둘 용의까지 있나 보다. 직원들은 서로 팔짱을 끼어 단단히 몸을 묶었고, 이내 입구를 굳건히 막아섰다.
“저, 저, 괘씸한! 이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아? 어찌 이리 일 처리가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 맞는가?”
로만드로가 씩씩대며 삿대질하였으나, 그들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아시오!”
헤일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마법을 쓴다면 이안 혼자서도 저들을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리 동료들을 끌어들인 것은, 추후 혹여나 마법으로 인한 일방적 폭력을 부정하기 위함이었다. 헤일을 비롯한 마법사들도 그걸 깨닫고 몸을 가볍게 풀었다.
“자아.”
이안은 회중시계를 딸깍거렸다.
“앞으로 십 분.”
“알겠습니다.”
“밀어.”
이안이 짧게 손짓하여 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헤일을 선두로 마법사들이 내달렸다. 로만드로는 우왕좌왕하며 움찔거리기만 했다.
타앗!
타닥타닥!
“이야아앗!”
“으앗! 으앗!”
“비켜라! 비켜!”
“뭐래, 저리 안 꺼져? 안 된다니까!”
“붙어! 팔 놓지 마! 벼텨!”
주먹 대신 어깨를 밀치고, 머리를 뜯는 대신 옷깃을 잡아 뜯었다. 마법사들과 사법 접수 직원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는 동안, 이안은 뒤에서 그걸 지켜봤다.
그리고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로만드로. 이안이 눈썹을 까딱거리자, 로만드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눈을 딱 감고 뛰었다.
“이, 이, 이것들아! 우리 일 좀 하자!”
타앗!
격렬한 몸싸움에 바로 튕겨 나뒹굴었으나, 로만드로는 다시 벌떡 일어나 기합을 내질렀다.
“비, 비켜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