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25
제225화. 신의 목소리
이안이 마법사에게 보고 받았던 그 시간. 딜라이나의 시종 역시 어두운 복도를 내달리고 있었다. 아르센이 마력운용자라는 게 알려진 이후, 그녀의 궁에는 낮과 밤을 따지지 않고 손님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응접실 입구에는 딜라이나의 시종들 외, 처음 보는 자들이 제 주인들을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밤에 무슨 소란인가.”
다급하게 달려와 숨을 헐떡이니, 시종장은 위엄 있게 꾸중하였다. 하지만 시종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조용히 보고했다.
“급한 일입니다. 기별을 넣어주십시오. 카르보 신전의 신관이 방금 입궁하였다고 합니다.”
신관이 입궁? 이 밤에? 시종장은 당황하여 그를 안으로 들였다. 중문을 젖히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높으신 분들의 안타까운 탄성이 들려왔다.
“결국 에릭세가 고발장에 도장을 찍었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죽여 버리는 건데요. 쯧쯧.”
“큰일 날 말씀입니다. 다들 알음알음 알고 있어요. 사법부 장관부터 그 아래까지 줄줄이 출근하지 못하였으니, 예사가 아닌 것을 눈치챘단 말입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죽었으면, 뒷감당을 어찌하시려고요.”
“맞습니다. 이안 경이 그쪽으로 파고들어 문제 삼았다간 더 걷잡을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일은 다 하였어요.”
“사법부에서 난투도 있었다면서요?”
“모른 척하고 마법사들 팔이라도 부러트렸으면 속이 시원했을 것입니다.”
“흐음. 오늘 접수가 되었으니, 속결로 처리하면 마력확인식 이전에 대회의가 열리겠군요. 지금 우리 쪽 수가 몇이지요? 최대한 참석 불가하다는 의견을 보내서 날짜를 뒤로 잡게끔 조정합시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똑똑.
끼이익.
시종이 인기척을 냄과 동시에 문을 열었다. 지체 높으신 분들이 의아하게 쳐다봤으나, 그녀는 재빨리 딜라이나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카르보 신전의 신관이 급히 입궁하였습니다. 신탁의 빛을 옮기는 도중 문제가 생긴 듯하여, 도움을 요청하려는 듯합니다.”
“뭐?”
딜라이나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희소식 아닌가. 날짜가 조금 남았는데 신관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직접 입궁할 정도라면, 꽤 가까운 거리까지 왔다는 뜻이었다. 대회의보다 마력확인식을 먼저 열어야 하는 그들로서는 심히 반가운 전언이었다.
“딜라이나 님? 왜 그러십니까?”
“카르보 신전의 신관이 입궁했다 하네. 오는 도중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중앙 가까이 인접했다는 것이지.”
안타까운 탄성은 어느새 환희의 탄성으로 바뀌어있었다. 대신들이 반사적으로 손뼉까지 치며 기뻐했다.
“오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카르보에서 중앙으로 넘어오려면 동쪽 산을 넘어야 합니다. 문제라 하면 거기서 생겼을 가능성이 있어요. 워낙에 가파르고 험한 산인지라, 길목을 뚫은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몰랐더라면 마차가 고장 났을 것입니다.”
에릭세가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해서 걱정스러운 한탄을 늘어놓았는데, 이리되면 또 상황이 바뀌게 된다. 이안의 입으로 직접, 신탁의 빛이 도착하는 대로 마력확인식을 열겠다 하였으니 그걸 먼저 들여오면 될 일 아닌가?
“마법부로 들어갔겠지요?”
“마력확인식은 마법부 소관이니까요.”
“딜라이나 님. 사람을 보내십시오. 마법부에서는 대회의를 먼저 열고자 하니, 돕는 둥 마는 둥 시간만 끌 것입니다. 카르보 가문이라는 연결고리를 이용하여, 직접 돕겠다 하십시오. 하여, 최대한 서둘러 신탁의 빛을 들입시다.”
대신들의 재촉에 딜라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고발장이 접수되자마자 이런 기회가 오다니. 그녀는 직접 가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관을 직접 보고 오겠다. 산후를 도왔던 자라면 우리의 입장을 더더욱 이해해 줄 터. 그대들은 여기서 기다리시오. 일을 보고 돌아오겠소.”
딜라이나의 외출 선언에 시종들이 바삐 움직였다. 겉옷을 챙기고, 마차를 불렀으며, 마법부에 기별을 넣었다.
그녀가 응접실을 떠나가자, 대신들은 와인 잔을 기울이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나저나, 상황이 신기해. 처음에는 이안 경이 마력확인식을 서둘러 열길 바라더만, 지금은 정반대로 바뀌지 않았나.”
“하이만 공작님이 가운데 끼어서 그렇습니다.”
“참, 하이만 하니까 생각나는군. 공작님이 루스웨나로 도움을 요청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아. 저도 들었지요. 기정사실 아닙니까?”
“그렇다면 게일 저하가 루스웨나로 망명하려 한다는 것은?”
“예? 그게 무슨?”
소문이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말문을 연 자가 눈썹을 까딱거리며 최대한 조용히 속삭였다.
“정확히는 정혼을 바탕으로 한 망명이라.”
“하하하! 정혼이요? 게일 저하도 참 대단하십니다.”
“흐음, 그래도 수가 절묘합니다. 루스웨나로 가면 목숨 부지는 물론이고, 마법부와 하이만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지 않습니까?”
“루스웨나 입장에서는 환영이지요. 게일 황자를 확보함으로 바리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게일 저하의 숨이 붙어 있는 이상, 아르센과 진 저하에게는 부담이니.”
“그런데 사실입니까?”
“확인하고 있네만, 전혀 헛소문은 아닌 것 같아. 아까 이안 경이 게일 저하의 궁에 들었다는 정보가 들어왔거든. 아마 망명에 관한 걸 경고하기 위함이라.”
대신들은 와인을 홀짝이며 게일의 망명이 어떤 바람을 불고 올지 계산했다. 그 바람이 피 냄새를 풍길 것인가, 아니면 달콤함을 풍길 것인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에 따라 맡게 될 냄새가 달라질 것이니, 대신들은 저들도 모르게 침묵하고 말았다.
“우선은,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째앵-
그들은 와인 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곧 돌아올 딜라이나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 *
히이잉!
끼익!
마법부 앞에 급히 멈춰선 마차. 이안이 마법사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갔다. 마법부는 낯선 손님의 방문으로 인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이안이 다가오는 것을 본 시종이 집무실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러셨군요. 참으로 아프셨겠습니다.”
“아니. 이제는 아물 대로 아물어서 괜찮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이 무릎 꿇고 앉아 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아오시가 이안이 온 것을 알아채고 뒤로 물러섰다.
“오, 이안 경!”
“진 저하.”
이안의 부름에 진이 다가왔다.
“카르보 신전에서 나온 신관이라. 어릴 때 나를 본 적 있다 하여, 내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네.”
“그러셨군요.”
신관들은 허리를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흰색 로브 아래, 눈과 입을 가린 반투명한 베일로 인하여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손끝 하나 옷 밖으로 내지 않으니, 그저 목소리로만 여인인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카르보 신전의 신관 아비드엘이라 합니다. 늦은 밤, 이리 찾아뵈어 송구합니다.”
“저는 마카엘입니다.”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일세. 어쩐 일인가? 전해 듣기로는 신탁의 빛 이송에 문제가 생겼다 하여.”
“예. 아시다시피, 카르보 신전은 신탁의 빛을 차출한 경험이 많이 없습니다. 하여, 갑작스러운 요청에 급히 출발하다 보니 준비가 미흡하였나 봅니다.”
마력확인식 자체가 드물게 열리는 것도 있었지만, 카르보 신전은 상대적으로 중앙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딜라이나가 출산을 위해 찾았을 때, 그리고 간혹 내려오는 신탁을 전할 때 외에는 거의 교류가 없는 곳이었다.
짐작하건대, 신관들 역시 참으로 오랜만의 바깥나들이일 것이리라.
“마차에 문제가 생겼나?”
“돌산을 넘다가 바퀴가 모두 망가져 버렸습니다. 신탁의 빛에는 문제가 없지만, 꼼짝할 수 없는지라 이리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바퀴를 달아도 사람 서넛이 함께 밀어야 할 만큼 무겁고 거대한 하프였다. 전문 인력도 아닌 신관들이 옮기기에는 문제 될 법하다.
이안은 지도를 가져와 탁상에 펼쳤다.
“위치는?”
“커다란 강을 두 번 건넜으니, 이쯤일 것입니다. 현재 멈춘 위치에서 여기까지 말로 달려 반나절이 걸렸습니다.”
이안은 손끝으로 길을 가늠하며 멈칫거렸다.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었으니. 이대로 지원을 보내준다면, 예상보다 일찍 황궁에 당도할 수 있겠다. 대회의 전, 아르센의 마력확인식을 열 수 있다는 말이다.
진이 옆에서 서성이며 걱정스러운 눈치를 살폈다.
“이안 경?”
“예. 저하.”
어쩌면 좋은가? 로만드로와 마법사들이 코피 터트리며 고발장 접수를 이끌었는데, 이리되면 소용없는 것 아닌가?
그의 불안한 마음을 읽은 이안이 싱긋 웃었다.
“지원, 보내도록 하지.”
대외적으로, 우선 보내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가서 어찌할지는 정세를 보며 선택하는 게 좋을 터. 이안은 뒤에 서 있는 자에게 지시했다.
“현재 지원 보낼 수 있는 마차를 확인해 보라. 신탁의 빛은 무게가 많이 나가. 일반 마차로는 안 될 것이니, 이를 고려해서.”
“예. 알겠습니다.”
신관은 감사의 뜻으로 가슴에 손을 올리고 절하였다. 아비드엘의 고개가 슬쩍 진에게 틀어졌다. 시선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외람되지만, 진 저하의 상처는 어찌 된 것입니까?”
“황궁에서 소란이 많았소. 일일이 설명하자니 길군.”
딱히 알려줄 의지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카르보 신전은 어쨌거나 딜라이나의 친정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이안이 판단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신탁을 내려댔고, 전적으로 진의 불행이 시작된 곳이다. 믿을 수 없으니 정보를 내어줄 수도 없었다.
“마법부에서 신탁의 빛 외, 진과 아르센 저하의 신탁을 담당했던 자도 동행해 달라 요청하였는데. 그것에는 문제가 없는가?”
말로는 요청이라 하였으나, 실상은 인장 찍힌 명령이었다.
그러자 아비드엘은 베일을 걷어냈다. 옅은 갈색빛 눈동자 아래, 주근깨가 가득했다.
“예. 저를 부르셨다 하셨지요.”
“아비드엘 신관, 그대가?”
“예. 그리고 마카엘은 이번에 내려온 신탁을 맡은 신관입니다.”
당시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가 증언한 것과 일치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주근깨가 가득한 신관이라 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진 저하에게 송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신의 전언이라고 하나, 그것을 전한 것은 저였으니까요. 저주에 가까운 말인지라, 그것이 저하를 얼마나 짓눌렀을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진이 당황하여 입을 벙긋거렸다. 하지만 이내, 신관의 손을 붙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손한 의도가 없었다면, 그저 그녀는 제 몫을 다 한 것뿐이었으니.
“그, 그대의 잘못은 아니다.”
“저하.”
하지만 이안은 아니었다. 신탁 자체가 문제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 중간에 아비드엘이 실수했거나 고의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게 분명하지 않나.
“아비드엘. 그대가 신탁을 받았을 때, 신관이 된 지 몇 년 차였지?”
“삼 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신관이라는 직위에 높고 낮음은 없다만, 한평생 죽을 때까지 신전에서 사는 자들 사이에서 삼 년 차라면…….
“흐음.”
“왜 그러시는지요?”
“당시 상황을 다시, 자세히 일러주었으면 하는데.”
“기록에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대의 입으로 다시금 확인할 것이 있다.”
아비드엘이 고개를 조아리며 십 년 전 그날을 상기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로 시작하는 것은, 의사가 했던 것과 같았다.
“그때 저는 신관들과 함께 순산을 기원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뜻이 신께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저 몇 시간을 엎드려 빌어댔지요.”
그녀는 조곤조곤 증언했다. 그러곤 이내 그 저주를 읊었다.
“나중에 태어난 자가 먼저 태어난 자를 해할 것. 그리고 형제 중 황좌에 가까운 자가 죽으면 황실의 대가 완전히 끊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목소리. 그래. 신의 목소리는 어떠하던가?”
“예?”
느닷없는 물음에 그녀가 당황하여 되물었다. 십 년 전, 한번 들은 음성을 어찌 기억하나. 하지만 이내 조심스레 말을 내놓았다.
“특징이랄 게 없었습니다. 그저, 청명하고 가느다란…….”
아비드엘이 그리 설명하자, 옆에서 가만 듣고 있던 마카엘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에 의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왜 그러신가? 마카엘?”
“아니,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데.”
“그게…….”
그가 당황하여 작게 중얼거렸다.
“제가 들었던 신탁에서, 신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고 여겨져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