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28
제228화. D-2
“아직이십니까?”
“미안해요.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령이 있어서.”
“하, 갑자기 왜 이러시지? 돌아버리겠네.”
“로만드로 님은요? 로만드로 님은 어디 계시는데요?”
해가 중천에 걸리고, 느지막이 내려오는 시각. 마법사들이 제각각의 보고서를 품에 껴안은 채로 집무실 앞을 서성였다. 불과 어제만 하더라도 한시가 멀다며 들락거렸던 곳이거늘, 어째서 이안이 출입을 금지했는지 알 턱이 없다.
문 앞을 지키던 비비안나가 난색을 표하며 웃었다.
“안에 함께 계셔요. 주시면 전달해 드릴게요.”
“진짜 잠깐만이라도 뵈면 안 되겠습니까? 사법부에서도 난리 났습니다. 고발장 접수 건으로 열리는 대회의에 당사자인 하이만이랑 그 측근들이 불참 의사를 보였다고요.”
“과반수 살짝 미달일 수 있답니다. 그러면 회의가 열려도 의결할 수가 없어요. 아시잖아요.”
“대체 안에서 무엇하고 계신답니까?”
“그, 글쎄요. 저도 자세히는 잘…….”
마법사들은 거의 울먹이며 그녀의 소매를 붙잡았다. 일단 있는 힘껏 다른 부서를 뛰어다니며 대회의 참가를 종용하고는 있으나, 정작 수장인 이안과 로만드로가 나서지 않는다면 효과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호,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그래! 며칠 정신없이 바쁘셨잖아!”
일 중독자처럼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며 업무를 처리하던 이안이었다. 그런데 딱 하루 만에, 이리 칩거하듯 모습을 감춘 것이다. 거기에 로만드로까지 합심하여! 실무자들이 동시에 이러면, 아랫사람들은 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아프신 건 아니고요. 사실 아까 들어가 봤는데, 저도 혼났어요.”
“아…….”
비비안나가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난감하게 대꾸하자, 마법사들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안도 그렇지만, 특히 그 애처가인 로만드로가 꼼짝하지 않았다면 방도가 없는 것이라. 그들은 시계를 확인하며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회신이 여섯 시까지이니,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부인. 꼭 부탁 좀 드립니다.”
“네. 수고하세요.”
“제발, 잠깐만이라도 뵙고자 한다고 전해주십시오.”
“노력해 보겠습니다.”
비비안나가 웃으며 가볍게 손짓했다. 마법사들은 마지못해 발걸음을 돌렸고, 답답한 듯 말을 얹어댔다.
“큰일 앞두고 이러시니 이해할 수가 없네.”
“그러게. 아무래도 신탁의 빛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그런 것 같아. 그때 당직 서던 애들 다 돌산으로 지원 나갔다며?”
“딜라이나 님 부하들이랑 마차 같이 타고 갔단다.”
“그 밤에? 으윽. 듣기만 해도 불편.”
“아르센 저하가 마법사라면, 이안 님이 제일 곤란하시니까 생각이 많으실 게 분명하지. 이해하자.”
“그렇다고 일에서 손을 떼면 어떡해?”
“내 말이. 게일 저하 쪽도 요즘 심상치 않구먼.”
“게일 저하? 왜?”
“모르냐? 루스웨나로 망명한다는 소문 쫙 퍼졌다.”
“감금되어 있는데 어떻게?”
타닥타닥!
마법사들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수군덕대던 소리 역시 잦아들었다. 비비안나는 한숨을 들이 삼키며 손을 툭, 하고 떨어트렸다. 그리고 굳게 닫혀있던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차락!
“로만드로 님. 아까 보셨던 책, 주십시오.”
“ 이거 말인가?”
“여기도 구어가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읽습니까?”
“…k. a. r. v. o. 카르보 신전을 뜻하는 것입니다.”
집무실 안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서류뭉치가 쌓여있었다. 이안과 로만드로는 셔츠 팔을 걷어붙인 채 잠도 자지 않고, 만 하루 가까운 시간을 정보 탐색에 할애하는 중이었다. 아비드엘과 마카엘 신관 역시 마찬가지. 로브를 벗고 합심하여 두 사람을 도왔다.
“이안 님. 대회의 관련하여 연락이 계속 들어오나 봅니다. 마법사님들이 힘들어하시네요.”
비비안나는 탁상에 놓인 빈 물약 병을 치우며 일렀다. 아코렐라 대장이 특별히 제조한 것이었다. 일종의 각성제로, 사흘까지는 무리 없이 체력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나흘이 지나가면 두 배 이상의 피로가 밀려와 견딜 수 없는 부작용이 있다 하였다.
그걸 두 병이나 한꺼번에 음용하였으니, 비비안나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하이만 측에서 대회의에 안 온다 하던가요?”
“단체로 시간이 안 된다며, 거부 의사를 보였어요. 과반수 채우려고 마법사님들이 애쓰시는 것 같지만, 한계가 있잖아요. 다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불안해하고 있다라. 이안은 비비안나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싱긋 웃었다. 그 끝에 걸리는 감정, 만족감이었다.
“회신은 몇 시까지 달라고 하던가요?”
“여섯 시입니다.”
“그러면 여섯 시에 딱 맞춰서 전해주세요. 일정대로 대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요. 과반수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지만, 마법사들에게 굳이 알리지는 마십시오.”
이안이 이리 나오는 것은 의도된 상황이었다. 자료 보느라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마법부 전체에 혼란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모두 합심하여 달려갈 때는 사사로운 생각을 할 수 없다. 하나, 이처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책임자까지 부재하여 위기를 느낀다면?
두 가지 모습을 보일 것이다. 누군가는 끝까지 마법부를 살리고자 이를 악물 것이며, 또 누군가는 저 살길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리겠지.
“필리아, 아니지. 어머니께는 언질해 주셨지요?”
이안의 물음에 비비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일의 경비를 단단히 하되, 전사들을 안 보이는 곳으로 물려 경계를 늦추라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박쥐들이 게일에게 쉬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직접 접촉하게 두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네. 그쪽에서도 단단히 경계하겠다 하셨습니다.”
“좋습니다. 돌산으로 나갔던 지원은요?”
“돌산을 내려왔다고, 전서구가 날아왔어요. 비만 내리지 않으면 아마 내일 오후쯤에는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이안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든 게 의도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듯이. 빈 병만 만지작거리던 비비안나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대회의에 굳이 참석하실 것 있으십니까? 마법부에 위기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면, 아예 나가지 않으시는 것도 한 방법인데요. 어차피 과반수 아래로 모이면, 의결도 안 될 거고요.”
“그렇긴 합니다만, 회의에 모여있는 자들은 하이만 가와 엮여있지 않은 사람들이지요.”
시간이 갈수록 아르센 쪽에 모이는 세력이 비대해졌다. 정확히는, 진의 세력이 흩어지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리라.
신탁의 빛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과 마법부의 미적지근한 대응 그리고 게일의 망명까지 합쳐져, 진의 입지는 가을 끄트머리에서 버티고 선 낙엽과도 같았다.
“친히 얼굴을 봐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신념에 맞는 선물도 줄 생각이고요.”
차락.
이안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다시 서류 보는 것에 집중했다. 아르센의 정체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터트린다는 의미다. 비비안나는 폭풍의 소용돌이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을 느끼며, 심장 부근을 토닥였다.
“비비? 괜찮아?”
“괜찮아요. 요즘 들어 몸이 좀.”
“들어가서 쉬어, 제발. 시아오시를 세우고.”
“계세요. 식사를 들일게요.”
“허어, 참.”
막달이 다가오는 중이어서 그럴까. 비비안나는 그저 걱정하지 말라며 쟁반에 병을 받쳐 나갔다.
그러자 그새를 참지 못하고 다시 달려온 마법사들이 집무실 앞을 바글바글 채웠다. 비비안나는 못 본 척, 몸을 재빨리 돌려 복도를 빠져나갔다.
* * *
다그닥다그닥!
히이잉!
사위가 조용한 황궁의 밤.
마차 두 대가 내달려 대회의장에 도착했다. 고발장을 심사하기 위해 수상이 직접 개최한 것이건만, 주위는 이례 없이 한산했다. 로만드로는 혀를 끌끌 차며 옆구리에 든 서류를 단단히 붙잡았다.
“얼씨구, 이것 보게.”
“고즈넉하니, 좋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아무리 그래도 수상께서 여는 것인데, 대놓고 무시하는 것과 무엇 다르단 말인가? 떼잉, 쯧!”
서 있는 마차들이 스무 대도 안 되어 보였다. 대회의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참석 인원이었다.
이안은 로브를 휘날리며 천천히 계단을 밟았다. 대회의장 문은 닫혀있지도 않았고, 몇몇 경비들의 떠드는 소리가 제일 먼저 들려왔다.
“마법부의 이안 히엘로 장관님?”
“안으로 드십시오.”
끼이익.
열린 문을 더 크게 젖히는 안내라.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유독 우스웠다. 가운데 앉아있던 수상이 인상을 찡그리며 이안을 맞이했다.
“이안 경. 오셨군.”
“늦어서 죄송합니다.”
집무실 앞을 가로막은 마법사들을 피해, 몰래 나오느라 시간이 늦어졌다.
이안은 회장에 앉은 자들을 찬찬히 살폈다. 삼대장 베올스와 제이럿을 비롯하여 퀸타나 그리고 에릭세 등등. 아는 얼굴을 모두 포함하여 서른 명이 채 안 되는 머릿수다.
“이거, 회의 여는 의미가 있습니까? 하이만 측에서 낮에는 절대, 절대 안 된다 하여 밤에 열었건만 끝끝내 참석하지 않았고. 지금 보십시오. 찬 자리보다 빈자리가 더 많습니다.”
누군가 불만스러운 의사를 표현했다. 이런 상황에서, 왜 굳이 회의를 취소하지 않고 거행하여 오가게 만들었냐는 불만이었다.
이안이 자리에 앉자, 로만드로는 준비한 보고서를 배포했다. 준비한 것에 비해 남는 것이 너무 많은 듯하지만.
“반수를 넘지 못하여 의결이 불가하네. 이안 경.”
“네. 하지만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여기에 참석해 주셨지요.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자에게는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지라, 불가피하게 회의를 취소하지 않고 강행하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수상은 수염을 돌돌 말며 눈살을 찌푸렸다. 보상이고 나발이고, 서둘러서 의미 없는 이 자리를 파하고 돌아가고 싶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안은 보고서를 확인해 달라는 듯 손짓했다.
차락.
퀸타나가 제일 먼저 보고서를 읽어내렸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어이없이 헛웃음을 지었다. 종이에는 아르센이 마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었으니. 살다 살다 이렇게 종이가 아깝게 느껴지는 건 처음인 보고다.
“…미쳤군요. 이안 경.”
“이안 경. 혹시 이거 장난입니까?”
“장난치고는 심한데요. 왜들 진 저하를 떠나서 아르센 저하 쪽으로 돌아서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아니. 마법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이다지도 황당해서야.”
“아무리 수세에 밀려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선을 넘었어요. 이안 경. 수상님. 황족 모독으로 즉결 처분하셔야 합니다!”
이내 격렬한 반응이 터졌다. 라는 동화책부터 시작하여, 주장을 뒷받침할 논리적인 증거가 단 하나도 없지 않나.
그들은 진정으로 미친 자를 보는 것처럼 경악스러운 눈길로 이안을 바라봤다. 사실상 경악을 넘어 공포까지 느껴지는 상황이다.
“저는 진심입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시간이 아까워요.”
“앉으십시오. 퀸타나. 그대가 시간이 아깝다 하여 지금을 넘긴다면, 내일의 바리엘이 없을지도 모르니.”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지요. 일종의 보상이라고. 아르센이 마물인 걸 미리 안 것만으로도 그대들의 미래는 바뀌었습니다.”
“이안 경. 제발.”
“보이는 증거가 없다고 하였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력확인식 날, 두 눈으로 보다 못해 오감으로 느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은 진정하고 제 제안을 들어주세요.”
이안이 앉으라 고갯짓하였다. 퀸타나는 보고서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더니, 이내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인 셈. 그녀가 팔짱 끼고 자리에 앉아 소리쳤다.
“그래서요? 무엇을 제안하시려고요?”
“정확히는 제안이 아니라 협조 요청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는 보고서 맨 뒷장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마력확인식 날, 아르센을 죽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