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32
제232화. 황족
“아르센!”
“이거 놔!”
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기겁한 딜라이나가 황급히 아이를 떼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르센의 시선은 맹렬히 이안을 쫓았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 맹수처럼. 그는 되려 어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이안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재밌네.”
“…….”
아르센의 안광이 번뜩였다. 다시금 능력을 개방한 것이었다. 감각 끝으로 원초적인 힘이 터져 나오는 게 느껴졌으나, 이안에게 닿자마자 사그라들었다.
꽈악!
멱살을 그러쥔 아르센의 손등 뼈가 희게 튀어나왔다.
이걸 어찌 잊을 수 있겠나? 황제가 그러했고, 마리브가 그러했으며, 게일과 진 역시 그러했다.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신의 절대적인 비호를 입증했고, 아르센은 그 한계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지금, 저 손등 뼈처럼.
“황족이구나? 응? 이상하다. 이게 어디서 나왔지?”
아르센도 작게 속삭였다. 그의 볼에는 홍조가 가득 물들어 있었다. 엄청난 걸 알았으니, 이를 어찌 써먹으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웃음만 새어 나왔다. 키득대는 아이의 어깨가 크게 들썩일수록, 딜라이나는 당황스럽게 아들을 지켜봤다. 낯설고, 또 낯설어서 무섭다.
“…마물다운 작태가 볼만하구나. 너를 바라보는 자들의 눈빛을 보아라.”
이안은 담담히, 그리고 단호하게 손을 떼어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흥분에 가려졌던 아르센의 시야가 순식간에 트였다. 딜라이나를 비롯한 대신들, 신관들, 심지어는 마법사들까지 경악과 의아함에 점철되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하.”
하지만 무슨 상관? 아르센의 능력은 발휘되자마자 이안에게 무마되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행동이 기이하긴 하나, 뭐 어쩌라고? 거사를 앞둔 두 사람의 기 싸움 정도로 치부할 만하지 않나?
“어머니. 그만 갑시다.”
“으응? 그, 그래.”
아르센이 싱긋 웃자, 딜라이나 역시 마지못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언제나처럼 다정한 제 아들이다. 방금은 분명 이안이 못된 말을 하여 그런 것이라.
“이안 경. 그대 못지않게 나 역시 내일이 기대되는군. 아, 정말 놀랍다니까.”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까지 차대니, 그 진심이 느껴졌다. 아르센은 딜라이나와 함께 마차에 올랐고, 정신 차린 관료들이 그 뒤를 따랐다. 휘몰아쳤던 마차 행렬이 하나둘, 왔던 길로 사라졌다.
히이잉!
마주 앉은 딜라이나와 아르센.
어미는 조심스럽게 아들의 손등을 붙잡았다. 창밖, 정확히는 창밖의 이안을 끝까지 노려보던 아르센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완연한 즐거움이 서려 있었다.
“아르센. 아까 이안이 무어라 했니?”
“왜요? 알아서 무엇하시게요?”
“혹여 상심할 만한 말이라면-”
“아버지가 낳은 자식들이 모두 몇입니까?”
“응?”
낙상하여 죽은 3황자를 포함하여 계승권에 있던 것은 딱 진까지가 마지막이었다. 그 아래로는 황궁에서 신분 없는 여인이 낳은 자식들이라, 의미가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열댓 정도 된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모두 궁 밖에서 죽은 듯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후계 자리만 견고히 한다면, 그 누구도 너를 넘볼 수 없단다.”
“흐음. 그래요?”
아르센은 감흥 없이 대꾸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게일의 처소에서 봤던 필리아만 맴돌고 있었으므로.
틀에 찍은 것처럼 똑 닮았으니 생모는 맞을 것인데, 그러면 아비가 황족일까? 멸문한 데르가의 서자라 들었는데?
‘이걸 어떻게 엮을까? 응? 진, 너는 알고 있니?’
이로 엮나, 저로 엮나. 재미난 상황이 벌어질 건 분명했다. 아르센은 다시 한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황족의 축복이고 뭐고, 다 부질없다. 이제 정말 제국을 손에 넣기까지 한 발자국만 남겨두고 있지 않나. 그런데 이안의 비밀까지 굴러들어 왔으니, 이보다 쾌조는 없으리라.
타닥타닥!
한편, 로만드로는 멀어지는 마차를 뒤로하고 이안에게 다가갔다. 이안은 흐트러진 옷가지를 탁탁 털어내며 괜찮노라 손을 내저었다. 흰 목덜미로 새빨간 손톱자국이 나 있다. 아르센이 멱살을 잡는 과정에서 긁힌 듯했다.
“이, 이안. 괜찮나?”
“무슨 일입니까, 대체? 아르센 저하 왜 저러셔요?”
“헉, 목덜미에 긁힌 상처가 생겼습니다!”
다들 차마 손대지 못하고 안절부절 주위만 맴돌았다.
이안은 옷매를 마무리한 다음, 대신관과 신관들을 돌아봤다. 로브에 가려져 있어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서로 밀착하여 수군거리는 것이 여간 당황한 게 아닌 듯하다. 입궁하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탓이다.
“자, 다시 움직이자고. 바깥의 제국민들이 기다리고 있어. 대신관과 랑코는 나를 따라오시게.”
이안이 손을 탁, 튕기자 멍하니 서 있던 문지기들이 화들짝 놀라며 움직였다. 그들은 신관의 짐을 마차에 옮기고, 서둘러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뭔지 몰라도, 윗분들 싸움에 휘말리면 언제나 피 보는 것은 아랫것들 아니겠는가.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저기, 이안 장관님.”
“말씀하시오.”
이안을 따라 걷던 대신관 릴리가 조심스레 이안을 불렀다. 이는 저들이 생각하던 황궁의 모습이 아니다. 원체 사랑과 희망이 샘솟는 곳은 아니었으나, 이처럼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지 않나. 황궁은 세상의 중심이라, 그 무게를 딱 버티고 서 있어야 하는데.
“황궁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보니, 바깥소식에 둔합니다. 딜라이나 님과 아르센 저하, 두 분의 행동이 의아한 것은 둘째 치고, 진 저하는 어디 계십니까?”
“진 저하는 마법부 처소를 거처로 삼으셨네.”
“마법부를요?”
“그 전에, 랑코 신관.”
“예?”
이안은 발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아비드엘과 마카엘을 만나게 하기 전, 미리 짚어둘 게 있었다.
“신탁을 받았을 때, 신의 목소리는 어떠했나?”
“신의 목소리요? 저의 능력으로는 차마 그 위대함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목소리에 옅은 감동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아, 랑코는 다시금 그날의 영광을 상기하는 듯했다. 이안은 지그시 채근하며 되물었다.
“그대의 기억을 묻는 것이라. 신께서 위대하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 참고로 아비드엘과 마카엘의 표현은 참으로 흥미롭더군.”
“…울림이 깊고 무거웠으며 제가 딛고 선 바닥이 흔들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저 한마디 한마디가 강한 무게로 제 심장을 흔드셨지요.”
가는 목소리라 주장했던 아비드엘보다, 무겁다 했던 마카엘의 주장에 더 부합하는 말이었다.
이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번뜩이던 아르센의 안광을 떠올렸다.
‘아까 내게 힘을 쓰려 했지.’
이안은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정신 마법의 일종인 ‘세뇌’를 쓰려 한 게 분명했다.
그가 쓸 수 있는 사특한 수작 중에 제일이요, 그 후 황족을 운운한 것으로 보아 ‘무력화’에 막힌 모양이다.
‘황족의 축복이 그대로라는 건, 내가 여전히 이안이라는 뜻.’
서자 이안이 아니라, 황제 이안.
그는 로만드로를 돌아보며 지시했다.
“게일 저하 처소에 인력을 더 배치하십시오.”
“인력? 어째서?”
아르센이 이안의 핏줄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생모인 필리아 쪽을 파고들어 건드릴 터. 만 하루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르센이 황궁에 폭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선 누가 믿을 것이며, 믿는다 한들 아르센에게는 이득 되는 게 없었으니까.
‘마법부 장관인 내가 황족이라면, 아르센이 밀고 있는 첫 황실 마법사라는 게 부정될 것이다. 공식적으로 거론하기보다, 내 주위를 흔들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게 맞지.’
필리아.
…혹은 진.
로만드로는 제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이안을 빤히 쳐다봤다. 시선을 깨닫자, 이안은 그저 웃으며 앞서 걸었다.
“아까 보시지 않았습니까, 아르센의 기행을. 혹시 몰라 염려하는 것입니다.”
필리아에겐 네르사른과 전사들이 있고,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취할 만한 방도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진은? 정세의 폭풍 한가운데 있는 아이니, 어떤 방식으로든 이안의 비밀을 던져 흔들어 놓을 터.
‘진 곁은 내가 지키면 돼.’
“타시게나.”
이안은 손수 마차 문을 열어주며 대신관 릴리와, 랑코를 안내했다. 그들이 독립되고 밀폐된 공간에 들어서자, 이안은 숨겨진 본론을 일러주었다.
“아비드엘의 신탁이 잘못되었다.”
“…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십 년 전, 그녀가 들은 것은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마물의 목소리라. 로버사이드를 증오하여 바리엘을 쇠락하게 하려는 악마의 수작이었다. 나는 그 악마가 아르센이라 확신하고 있네.”
대신관이 대답 대신 로브를 걷어 올렸다. 짐작한 대로, 볼품없이 듬성듬성한 흰 머리칼과 고목 같은 주름이 세월을 담아내고 있었다. 노인은 황당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제가 처음 신탁을 들었을 때도 이리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마법부의 이안 님 맞으십니까? 카르보 신전이에요. 건국부터 함께한 카르보요.”
반면, 랑코는 두려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을 맞잡았다. 저 불손한 발언을 참회해 달라, 기도하는 것 같았다.
“알고 있네. 당장 믿지 못할 것도 이해해. 하지만 지금은 그대의 이해가 중요하지 않아. 마력확인식은 당장 코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걸 밝힐 것이니까.”
“이안 님.”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
타닥타닥!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대신관이 주춤거리며 팔걸이를 붙잡았으나, 당황한 눈길은 흔들리지 않고 이안에게 꽂혀있었다.
“내가 준비한 마력확인식이 거행 가능한 사안인지, 오랜 경험을 가진 그대가 마지막으로 확인해 주었으면 하네. 그리고 혹, 마물을 본다면…….”
촤아아악!
마차 바퀴가 물웅덩이를 시원하게 갈랐다. 그러자 마법부 정원에서 보았던 무지개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안이 내달리는 지금, 이 순간이 무지개를 뜨게 했다.
“나를 도와 마물을 처리해 주게. 그리고 진 저하에게 새로운 삶을 내려주어. 그것이 카르보의 실수를 만회할 유일한 길이니.”
“이안 님. 대체-”
대신관이 무어라 반박하려는 순간, 창문 밖으로 마법부 건물이 보였다. 계단 위에 서 있는 아비드엘과 마카엘. 로브를 벗은 채 얼굴을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이 눈물을 머금고 달려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었으나, 릴리는 그 말을 내뱉지 않았다. 이안이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하였으니까. 그녀는 잠시 침묵하며 손끝으로 성호를 그었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 * *
달그락.
게일은 숟가락으로 수프를 휘적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동그란 무언가가 걸려 올라왔다.
알약보다 조금 큰 구슬이다. 그는 옆으로 그걸 내린 다음, 가볍게 내려쳐 깨트렸다. 쨍 소리와 함께, 돌돌 말린 종이가 드러났다.
“어이없군.”
게일이 망명할 것이라는 소문이 예상보다 빨리 퍼진 게 분명했다. 식사 시간만 됐다 하면, 수프고 빵이고 종이 쪼가리가 끼어있었다. 모두 루스웨나로 가고 싶어 하는 종자들의 접촉이었으니.
게일은 짜증스럽게 이마를 짚었다.
똑똑.
“저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는데요. 괜찮으세요?”
“…….”
필리아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게일은 대답 대신 그릇을 밀며 식사를 치우라 전했다. 이미 그의 서랍에는 쪽지 다섯 개가 쌓여있었다. 이안이 바라는 변절자의 필체가 또렷하게 적혀있는 쪽지다.
“요즘 식사가 부실하시니 걱정됩니다.”
“걱정할 것 무엇 있나. 어차피 죽을 거.”
“…그, 내일은 제가 식사를 함께 못 할 것 같아요. 이안이 마력확인식을 여는데,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필리아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릇을 치웠다.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손끝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황궁에 떠도는 소문을 늦게 들은 탓이다. 마력확인식 날, 아르센 혹은 이안 둘 중 하나는 죽을 것이라고.
“왜?”
“아, 저하는 못 들으셨군요.”
필리아는 머뭇거리며 황궁의 소문을 전했다. 아르센이 마물이고, 그게 아니라면 이안이 죽겠다 한 소문. 게일은 눈을 크게 뜨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뭐?”
“그래서 가보려고요. 제가 간다고 한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걱정이 되어서요.”
‘…아르센이 마물이라고?’
게일은 궐련을 아그작 깨물며 고심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확실한 것은…….
“필리아.”
“네?”
“부탁 하나 하지.”
필리아가 접시를 든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탁이라니. 황자께서 어찌 저에게 부탁이란 걸 하신단 말인가?
“내일, 나도 마력확인식에 데려가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