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35
제235화. 마지막
콰앙!
폭발음이 터지자 회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피하기 위해 출입구로 내달리는 사람들과 반대로 들어서는 마법사들. 얽히고설키는 거대한 인파의 흐름이 사위를 어지럽게 흔들었다.
“꺄아아악!”
“서둘러 길을 트시오! 이런 젠장!”
“괜찮습니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나가세요.”
“위험합니다. 한 명씩, 제발!”
“으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조심, 조심해 주시, 으윽!”
속절없이 넘어지는 자들이 즐비하였고, 그로 인해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혼란이 범상치 않으니, 지체 높으신 분들의 반응이라 하기에는 너무 날것 그대로다.
로만드로는 끄응, 한숨을 들이쉬며 소리쳤다.
“마법부에서 제압할 것입니다. 침착을 유지하여, 품위를 지키십시오!”
“마물이라 하지 않나, 마물!”
“다들 비켜! 작위 순으로 퇴장해!”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대제국 바리엘. 타국과 비견하여 마물의 피해가 거의 없는 나라였고, 이들은 평화로운 생활 속에서도 최상의 삶을 즐기던 자들이었다.
그저 가십을 위한 정보 따위로 마물을 소비했다는 뜻이었다. 개중에는 은연중에 마물이 실존한다는 걸 믿지 않았던 자들도 있으리라.
촤아아악!
쾅! 콰앙!
아르센의 심장을 정확히 겨눈 이안의 공격.
하지만 아이는 작은 손짓으로 그것을 파훼시켰다. 맞물린 두 힘이 서로를 튕겨내며 사그라졌다. 마치 금빛의 모래가 허공에 흩뿌려지듯. 아르센은 그걸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뭐지?’
힘 조절을 한 것일까? 곁에 있는 신탁의 빛 때문에? 아니면 신관들? 아직 신관들의 숨이 붙어있다. 이안이라면 다른 의도를 숨겼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진짜 힘에 부친 것일 수도 있고. 무엇이 되었든,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나.
이안은 악마의 낯을 살피며 함께 웃었다.
“아둔하도다. 살아나갈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안의 눈짓에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창문과 중문 등, 바깥으로 통하는 모든 곳 앞에 그어지는 주문진.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두는 것과 같았다.
“내 친히 몇 번이나 일렀다. 네가 마물이라면, 죽일 것이라고. 이곳은 네놈이 인간의 몸으로 딛는 마지막 장소가 될 것이라.”
지이이이! 지잉!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가동하였고, 신관들까지 합세하여 신성을 더하였다. 건국부터 기록되어 있던 마물이다. 단순히 심장을 꿰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저놈이 죽을 때 다시금 저주를 남긴다면? 또 언제고 황실에 마물이 숨어들 수 있는 일. 썩어든 나무를 완전히 도려내고, 태우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으니.
“아!”
주문진에 빛이 깃들 때마다 아르센은 숨이 턱턱 막히는 걸 느꼈다. 마물이 놀라서 도망치려 하자, 이안은 재빨리 수십 개의 동심원을 만들어냈다.
「기속(羈束)」
발동 수식이 번쩍이며 바닥이 갈려갔다. 산산이 조각난 틈으로 마력이 솟구쳤고, 이내 천장에서 아르센의 위치를 조준하여 가두었다.
콰앙! 쾅!
아르센이 빛을 꺼트리려고 하자, 이안은 쉼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시선을 앗는 것처럼, 적당히 그리고 느릿하게.
아르센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내 실신하여 호위에게 부축받는 딜라이나를 발견했다. 그들이 막 회장을 벗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째앵, 하고 울리는 뒷골. 딜라이나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진이 놀라서 돌아보자, 아르센이 울먹이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위들이 당황하여 몸을 끌었으나, 무언가에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 저를 버리실 것인가요? 진에게 그리했던 것처럼, 남은 저마저도 그리하시려고요?”
“아아…….”
“아르센! 제발, 그만!”
딜라이나가 괴로워하자, 진이 분노를 담아 일갈했다. 평생 눌려있어 진득해진 분노였다. 아아, 저것이로구나! 아르센은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 희열에 차 소리쳤다.
“진! 내가 재밌는 거 하나 알려줄까?”
솨아아악!
촤악!
아르센의 시선이 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안이 악마의 속삭임을 차단하기 위해, 마력을 응축시키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빠르게 날아든 삼대장 베올스가 아르센의 얼굴에 검을 휘갈겼다. 아르센이 고개를 꺾으며 피하였으나, 오른쪽 귀가 뜯기고 말았다.
“아아악!”
“천한 미물이 여기가 어디라고! 황궁을 어지럽혀 황제 폐하를-!”
“베올스 대장! 떨어져라! 안 돼!”
베올스는 뒤로 나뒹구는 아르센을 쫓아 검을 꽂아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허공에서 멈추는 공격. 아르센이 오른쪽 귀를 붙잡은 채 씩씩거리며 눈물을 흘려댔다.
‘검은 눈물?’
“감히! 감히! 이, 이-! 으아아악!”
지이잉!
괴성을 바락바락 내지르는 마물의 고함이 순식간에 터졌다. 전신에 경련이 일어나는 베올스. 스스로 움직이는 몸과, 이를 저지하려는 의지가 만들어낸 진동이었다.
“베올스!”
세뇌는 자아가 잠식당하는 것이다. 하여, 이안이 제일 경계하고 있는 것 중 하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성체가 아닌 아이의 몸인지라, 발악의 수위가 정해져 있다는 것. 숨을 내놓기 전에는 수많은 자를 동시에 세뇌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자극하지 않고 묶어두려 한 것인데…….
스윽.
아르센에게 향해있던 검이 어느새 베올스의 목덜미로 돌아갔다. 아이는 악에 찬 저주를 퍼부으며 흰자를 보였다.
“찢어 죽일 것 같으니라고!”
콰직!
베올스가 스스로 목을 찔렀다.
솟구친 핏물을 뒤집어쓴 아르센이 숨넘어가라 웃어댔다. 참혹하고 끔찍한 광경이건만, 어쩐지 목소리가 너무 낭창하여 괴리감이 느껴졌다.
“이, 이안 님. 어쩌지요?”
“…다들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주문진을 그려라. 호위들은 진 저하를 모셔.”
“저하, 가셔야 합니다. 딜라이나 님을 놓으세요.”
“드, 들어보게, 어머니를 들어보아. 그럴 수 있잖아.”
“알 수 없는 힘에 묶여있습니다. 이리 오세요!”
이안의 명령에 호위들이 진을 안아 들었다. 꽉 잡고 있던 드레스 자락이 끝끝내 진의 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지막까지 어미의 모습을 담고 있을 때였다.
지잉!
호위들의 발걸음까지 멈추었다. 그들은 어지러워하며 앞으로 고꾸라졌고, 진 역시 나뒹굴며 바닥에 넘어졌다.
“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보렴! 나는 네 어미에게 능력을 쓴 적이 없단다!”
몸을 일으키던 진이 움찔거렸다. 표정에는 두려움이 설핏 올라와 있었다. 지금, 내 얼굴을 한 악마가 무엇이라 하는 것인가?
“어미가 너를 버린 것은 전적으로 어미의 선택이었어. 내가 아니더라도 너는 버려졌을 것이니, 괜히 나를 탓하지 말아다오. 불쌍한 내 동생.”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란다. 이안의 어미, 필리아 얘기를 들었니? 똑같이 능력을 썼지만, 필리아는 끝까지 반항하여 내 실패했다. 딜라이나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너를 그리 대하지 않았겠지.”
콰앙!
이안이 입 다물라는 듯, 그의 정수리로 빛줄기를 꽂아 넣었다. 하지만 기세가 오른 아르센은 그걸 있는 힘껏 쳐내고, 다시 소리쳤다. 한 치의 거짓도 없노라, 결백하다는 순수한 표정은 덤이다.
“하나 더!”
“저하. 거짓말입니다. 귀 막으시고 나가십시오.”
“이안, 저거 황족이다! 하하하!”
“……!”
너무 느닷없고 근본 없는 말 아닌가? 이안의 아비가 데르가이고, 어미가 필리아인 것은 모두가 자명하게 아는 사실이었다. 끝없이 주문진을 그려대던 마법사들조차 놀라서 멈추었다.
이안은 무덤덤한 시선으로 마력을 최대한 응축시키고 있었다. 저것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는 게 좋겠다는 듯이.
“진. 너는 몰랐지? 이안이 왜 너 같은 것을 도와주겠어? 다 저것도 속내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 나를 죽이고, 너만 남으면 분명 그걸 내보일 것이란다! 나보다 더 위험한 자이니, 조심하렴! 아하하하!”
콰앙!
이안의 공격으로 아르센의 목덜미가 뚫렸다. 아이는 몸을 숙이며 검은 피를 쏟아냈으나, 웃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놀랍게도, 음성 또한 변함없이 청명하다.
“못 믿겠으면 보여줄까?”
“헉! 으윽!”
“으아아악!”
“이, 이안 님. 이거, 우우욱.”
“잠깐, 뒤로 물러서! 크흑!”
아르센이 녹아내렸다.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던 힘까지 모조리 써버린 탓이었다. 그저 흐물거리는 진액 위에, 머리와 팔딱거리는 심장만이 남았다.
“황족만이 축복을 받아 정신 지배에 걸리지 않지! 보아라! 진, 나의 동생아! 여기서 멀쩡히 서 있는 게 누구인지!”
마법사들이 모두 앞으로 고꾸라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신성을 두른 신관들은 더욱 빠르게 반응하여 기절한지 오래다.
진은 뒷걸음질 치며 주위를 둘러봤다. 오로지 진과 이안. 두 사람만이 저 악마의 숨결 앞에서 숨 쉬고 있었으니.
“이안 경?”
“…저하.”
이안은 대답 대신 진의 어깨를 잡고 뒤로 밀었다. 천천히, 한 걸음씩 물러서던 진은 어느새 문밖으로 나와 있는 걸 알아챘다.
“이안 경!”
“나중에 뵙겠습니다. 거기 누구 없는가!”
“저하, 이쪽으로!”
“이안 경! 잠깐만!”
끼이이익.
쿵!
진은 호위를 뿌리치며 이안에게 다가가려 하였으나, 그럴 수 없었다. 냉정하게 닫힌 문 때문에. 혹은 짐작할 수 없는 이안의 시선 때문에.
“하하하!”
머리만 남은 아르센이 웃을 때마다 심장이 크게 펄떡거렸다.
이안은 쓰러진 사람들 사이를 지나 걸었다. 발 딛는 곳마다 파장이 일어나며 새로운 주문진이 그려졌다. 마법사들이 하나하나 그었던 것과 달리, 그저 인지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이잉.
“마물 아니랄까 봐, 끝까지 추악하구나. 내 너를 고이 보낼 수는 없겠다. 느낄 수 있는 고통을 모두 느끼고 가거라.”
“하, 하하하!”
아르센이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이안이 바닥에 나뒹구는 검을 줍자, 이제는 얼굴마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나름대로 필사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를 지금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네놈의 악함은 더욱 거세져 곤란해졌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니구나. 너는 십 년 전, 태어나자마자 죽었어야 했다. 아니. 그 전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이안. 내 너에게도 일러줄 게 있어.”
흐물거리던 진액에서 독기가 올라왔다. 점점 짙어지는 기운에, 이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참을 수 없이 역하다.
“너는 절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알고 있거든. 다음 바리엘은 진을 부르고 있어.”
그것이, 진의 형제로 내려온 까닭이다. 혹여 네가 황좌에 욕심내고 있다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이니라.
이안은 당연하다는 듯 검을 다잡고 다시금 걸었다.
“그거 잘 되었군. 나 역시 미래의 바리엘에 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러자 아르센은 다급하게 소리치며 독기를 더욱 둘러댔다. 마력으로 쳐낼 수 없을 정도로 독하다. 이것이 아르센의 근원이라 그럴 터였다. 건국부터 이어온 저주의 밑바닥.
“어, 어디 한번 찔러 보아라! 나를 죽이면 너 역시 죽을 것이다. 네가 죽으면 진 역시 얼마 안 가 죽을 것이라!”
이안은 펄떡대는 심장을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자신이 죽으면, 추후 황궁에서 진의 입지가 어떻게 될지는 짐작 가능했다. 하이만도 그렇고, 하이에나 같은 자들이 어린 황자를 뜯어먹으려 하겠지.
하지만, 여기서 아르센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시간은 아르센의 편.’
자생하여, 다시 진을 옭아맬 것이라. 나아가 바리엘을 쇠락게 할 것이라. 아르센을 넘어서 또 다른 마물이 황궁으로 스며들리라.
“…마물아. 그런 건 선택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지이잉. 지잉!
이안이 온몸의 힘을 끌어냈다. 그러자 회장 곳곳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들이 동시에 발화하여 이안의 검으로 몰려들었다. 우주의 흐름처럼, 헤아릴 수 없는 빛들이 아득하게 움직여 이안을 감쌌다.
“이……!”
아르센의 독기가 최후를 거부하듯, 팍 튀어 오르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쿵.
회장의 문이 열렸다. 이안은 검을 허공에 치켜든 채로 뒤를 돌아봤다.
“대낮부터 파티가 꽤 화끈하네.”
게일이었다. 아르센의 마기가 회장 안에 팽배했으나, 문제없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궐련을 튕기며 인사했다.
“나도 끼워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