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38
제238화. 이안이 없다면
“다들 비키시오!”
“가서 의사를, 의사를 불러와!”
“이안 경! 눈 떠보시오. 이안 경.”
시아오시가 이안을 둘러업고 내달렸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 저의 무너짐으로 인하여 불안이 증폭되는 것을 멀리하고자 한 주군이시다. 그는 건물을 돌아 집무실로 뛰어갔다.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은밀하게.
“이안! 제발, 아, 피가 계속 나와요!”
필사적으로 따라오던 필리아가 질겁하여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시아오시는 어깨가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주인께서 무의식적으로 피를 토해내고 있는 것이라.
네르사른은 넘어지려는 필리아를 붙잡아 주었고, 로만드로와 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연신 앞길을 텄다.
타앙!
본관은 한산했다. 마법사들 대부분은 이안과 함께 마력확인식을 진행하였고, 그중 반절은 아르센에게 당해 쓰러졌으며, 나머지 반절은 수습에 나섰으니까. 본관 문을 거칠게 박차고 들어섰음에도, 시종들 외에는 도움을 청할 만한 자가 보이지 않았다.
“헉, 이안 님?”
“마법사들은? 본관에 남은 마법사들 없는가?”
“다, 당직 서시는 분이 있을 것인데요.”
“서둘러 데리고 와! 그리고 의사도!”
“아, 알겠습니다!”
“따뜻한 물과 수건을!”
타닥타닥!
시아오시는 집무실 옆, 작은 침실에 이안을 눕혔다. 업무를 보다가 피곤해지면 잠깐씩 눈을 붙이는 공간이었다. 평소에는 베릭이, 최근에는 로만드로가 주로 애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천천히, 천천히 내리게.”
뒤로 꺾인 고개와 흰색을 찾아볼 수 없는 붉은 셔츠 그리고 희게 질린 안색으로 인하여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어디, 덮을 만한 것이…….”
로만드로가 담요 따위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중앙에 올라와서, 이안은 보금자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처럼 쓰러졌을 때, 가까이 의탁할 만한 곳이 고작 집무실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니. 게다가 침대며 자잘한 물건들은 모두 전 장관 웨슬리가 쓰던 것들 아닌가.
“여기 있습니다.”
“아, 그래.”
“이안 님? 헉, 상태 무슨 일입니까?”
시종이 두꺼운 담요와 함께 아코렐라를 데려왔다. 보호경을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몰래 빠져나와 지하실에서 실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질겁하며 이안을 살폈다. 외상은 크게 없는데, 각혈이 끊이질 않으니, 이는 안쪽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
“아코렐라 대장! 이안 좀 어떻게 해보시게.”
“자, 잠깐만요. 너! 아래로 내려가서 내 집무실 오른쪽 찬장 두 번째 칸에 있는 것들을 다 가져와. 그리고 너는, 어, 그, 보관실에 전언해서 마력증폭제 내오라 해! 아! 주사기도!”
어지간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아코렐라였거늘, 사고가 멈춘 것처럼 말을 더듬어댔다. 시종들이 명령을 받고 바삐 움직이는 와중, 진은 연신 이안의 오른팔을 붙잡고 울어댔다.
“이안 경, 죽으면 아니 되네.”
“저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안 장관은…….”
진을 위로하려던 로만드로가 코를 움켜쥐었다. 손 틈으로 뚝뚝 흐르는 피.
며칠간 밤새며 체력을 갈아냈던 것은 이안만이 아니었다. 로만드로 역시 마법 물약으로 인위적인 체력을 끌어다 쓰지 않았나. 이제 한계에 다다랐노라고, 그의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늦게 따라 들어온 비비안나가 그걸 발견하고 바로 수건을 받쳐주었다.
“여보!”
“괜찮아. 비비. 걱정하지 말아.”
“세상에, 하아. 정말…….”
로만드로는 웃으며 비비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저 코피에 불과하다며, 아내를 안심시키려는 손짓이 다정하게 이어졌다. 시아오시는 땀을 닦아내며 그를 돌아봤다.
“로만드로 님. 로만드로 님도 가서 쉬십시오.”
“되었다. 이안이 누워있는데 나까지 자리를 비우면 뒤처리는 어찌하려고.”
“…외람되지만, 이안 님이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할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수습을 명하셨으니, 몇 시간 동안은 현장에 있던 자들이 우선하여 맡지 않겠습니까.”
마법부의 의결이 필요할 때, 보좌관인 로만드로 마저 없다면 실로 곤란해진다. 그러니 몇 시간일지라도 체력을 보충하여 안배하는 것이 나을 것이란 제안이었다.
로만드로가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려 하자, 반항이라도 하듯 재차 피가 쏟아져 내렸다.
“꺄아악! 여보!”
“아, 알겠네. 비비. 제발 놀라지 마. 나 진짜 괜찮아.”
“로만드로. 시아의 말이 타당하다. 사상자가 많았지만, 수상이 무사해. 황궁친위대의 제이럿 대장도 그러하고. 딱 몇 시간, 몇 시간 동안은 그들을 믿고 있게.”
진이 로만드로의 등을 떠밀었다. 그는 몇 번이고 누워있는 이안을 돌아보더니, 내키지 않은 발걸음으로 나섰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딱 한숨만 잔 후에 돌아오겠다는 중얼거림이 끊이질 않았다.
“아코렐라 대장님. 말씀하신 것들 가져왔습니다. 의사 역시 바로 올 것입니다.”
“이리 내려놓아라. 하아, 역시 내가 만든 물약이라니까. 효과와 부작용이 이리 한 치의 오차도 없어서야, 원. 허허허. 이럴 줄 알았으면 마력 훈련 좀 해둘걸. 저하, 제가 내근직이거든요. 힘보다 머리를 쓰는지라…….”
“알았으니까, 어서!”
“옙. 이안 장관님. 정신 단단히 차려보십시오. 들어갑니다.”
아코렐라는 마력증폭제를 제 팔에 주사하고, 이를 꽉 깨물었다. 아직 실험 단계였지만, 뭐 어쩌겠나. 상사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녀는 마력을 개방하여 이안에게 힘을 흘려보냈다.
지이잉. 지잉!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이안의 호흡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은 그것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기대는 언제나 착각을 불러일으키니까. 아이는 이안의 가슴팍에 귀를 바짝 붙이고 중얼거렸다.
“계속하게, 계속…….”
이안이 울컥, 하고 피를 토해내자 진과 시아오시 그리고 시종들이 동시에 손을 뻗어 받아내려 했다.
진은 절망에 찬 낯으로 피범벅이 된 이안을 바라봤다. 죽음이라는 게, 이다지도 가까이 있었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 * *
“이아아안. 이안아.”
“…조용히 본다고 하였잖아.”
“아니, 내가 몇 번 내장 뒤집혀보니까 알겠거든. 이게, 정신을 좀 차려야 회복이 빨라져. 이안아아. 일어나 봐. 주인아? 주인님?”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은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켰고, 이내 이안의 집무실 소파라는 걸 깨달았다. 자각하지 못한 채 기절하여 잠든 듯했다.
진이 소란스러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를 히- 드러내며 웃는 베릭과 눈이 마주쳤다.
“베릭?”
“주인님이 아니라 저하님이 일어나셨네.”
꿈인가? 이불에 돌돌 말려있는 베릭은 시아오시에게 둘러메어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가?”
“엥. 그랬으면 이러고 안 있죠.”
한 발자국도 못 걷는 주제에, 피 냄새를 기막히게 맡고 무슨 일인지를 물어왔다. 시종은 거짓을 일러줄 연유가 없었고, 사실 그대로 이안이 쓰러졌다는 걸 일러주었다. 덕분에, 고생은 시아오시의 몫으로 돌아왔지만.
“이안아아~. 고기 우리끼리 먹는다~? 저번에 먹었던 그거, 나 이번에는 두 배로 시킬 거라고~. 안 일어나면 세 배로 시킨다~?”
베릭은 연신 재잘거리며 이안을 불러댔다. 그의 부름에 이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것 보라며, 효과가 있다고 베릭이 즐거워했다.
“이안 경은 좀 어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하였습니다.”
시아오시는 그리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얼굴만 본다 한 약조를 어기고, 이리 시끄럽게 굴다니. 이제 베릭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려는 듯했다. 그걸 알아챈 베릭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저항했다.
“조금만, 아나, 진짜 조금만!”
“…쉬이.”
“쉿! 그러니까 나 내려봐. 응?”
베릭이 투정을 부리는 동안, 진은 이안을 살폈다. 확실히 안색이 돌아왔다. 옷도 그사이 갈아입었는지 정갈하고, 깔끔하다. 언뜻 본다면 그저 깊이 잠든 것처럼 보이리라.
진이 안도의 숨을 내어 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노을이 지고 있다.
“얼마나 지났어?”
“세 시간입니다.”
세 시간. 아르센 없는 세상이 벌써 그렇게나 지나있었다. 저와 똑 닮은 모습을 하고, 영혼부터 죽이려 들었던 악마. 하나하나 짚을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상처를 할퀴었던 형제. 그가 존재했던 그날들이 너무나 버겁고 무거웠기에,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낯설었다.
‘신기해.’
아르센의 그림자가 너무 짙었다. 그래서, 그가 사라진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노을은 여전히 붉었고, 바람은 불었으며, 구름은 흘렀다. 아르센은, 지금 와서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라.
꽈악.
진은 무릎에 놓은 손을 꽉 쥐며 다짐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만난다고 하여도,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말자고. 넘을 수 없는 버거움일지라도, 멀리서 본다면 참으로 하찮다. 아르센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똑똑.
“진 저하. 기침하셨습니까?”
“무슨 일인가?”
그때, 시종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인기척을 내었다. 문에 서서 진의 음성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났으면 직접 들어와서 깨웠을 터였다.
“수상께서 긴급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이안 님과 로만드로 님은 몸 상태로 인하여 참석이 불가하다 전하였고요, 마법부에서는 아직도 계속 수습하는 중인지라 헤일 대장만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대장은 먼저 출발했고, 저하의 마차는 대기 중입니다.”
“…그래.”
진은 천천히 일어나서 옷매를 정리했다. 이럴 때가 아니다. 현재 황궁에 있는 황자는 오로지 자신뿐. 이안 마저 저리 쓰러졌으니, 정신을 바로 차려야 했다.
진은 시아오시에게 눈짓했다. 따르라는 지시다.
쿵.
“악! 아퍼!”
시아오시는 베릭을 침대 아래에 대충 내려놓고, 진을 쫓았다. 마법부는 여전히 한산했다. 마법사들이 간간이 보이긴 하였지만, 수습 중 잠시 들른 것인지 죄다 정신없어 보였다.
“이쪽입니다. 저하.”
“로만드로는?”
“비비안나 님이 간호하고 계십니다.”
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차에 올랐다. 이안 없이 처음으로 나서는 대회의였다. 불안하고 떨려왔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
‘회의장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자 함이겠지. 거기서 제일 마지막으로 걸어 나온 것이 나니까. 그것 외, 내가 이를 것이 있을까? 혹 조심할 것은?’
타닥타닥!
마차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긴장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안이 일어났을 때 곤란해하지 않으려면 실수가 없어야 하는데…….
‘이안, 저거 황족이다! 하하하!’
불현듯 떠오르는 아르센의 마지막 외침. 진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뒷말이 지워지지 않았다.
‘진. 너는 몰랐지? 이안이 왜 너 같은 것을 도와주겠어? 다 저것도 속내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 …황족만이 축복을 받아 정신 지배에 걸리지 않지!’
진도 그랬다. 마법사와 신관들이 머리를 쥐어 싸며 쓰러질 때, 그는 멀쩡하니 아르센과 마주했다. 또한, 게일 역시 마찬가지. 병사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독기 안으로 문제없이 들어섰다.
그런데, 이안은 왜……?
‘말도 안 돼.’
이안이 황족이라고? 그러면 필리아는? 전 데르가 백작은? 아르센 이 악마가 죽는 그 순간까지 저를 농락하려 함이 분명했다.
진이 입술을 곱게 깨물자, 마차가 천천히 멈췄다. 제1황궁 본관 대회의실 앞에 도착한 것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저하.”
뒷자리에 앉아있던 시아오시가 문을 열어주며 안내했다. 진은 조심스럽게 내렸고, 긴장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깨달았다.
스윽.
저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귀족들의 시선, 날이 잔뜩 선 속삭임 그리고 경계하는 자들의 몸짓이, 온 사방에서 번뜩이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