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41
제241화. 이름을 부르는 것
“…반대할 이유가?”
진은 아까 하이만이 저를 어찌 보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대가 마땅한 연유를 댈 차례라.
그리하여 설득해 보라는 듯, 한층 여유롭게 공작과 마주했다. 마땅치 않으면 스스로의 아둔함을 인정하라는 미소는 덤이다. 잘게 재촉하는 턱짓에, 이안의 모습이 진하게 겹쳐 보였다.
“이유는 저하께서 마련하기에 달렸지요.”
“화두는 그대가 던지고, 이유는 내가 마련하라?”
마법부의 권세가 커지면 커질수록, 진에게는 일차적으로 이득이었다. 아비와 어미를 비롯하여 의탁할 혈육 하나 없는 마당에, 이안이 보호자 역을 단단히 자처하고 나섰으니까. 그가 마법부 장관인 이상, 마법부의 힘이 곧 진의 입지와 직결되리라.
그것이 언제고 황좌를 위협할 정도가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진이 아는 이안은 영민하여 그런 문제를 야기할 틈조차 없을 것이다.
“진실로 반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물속에 무슨 물고기가 사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한번 휘젓는 막대기와 같이 쓰시라는, 일종의 간언입니다. 저하께서는 아직 어리시어 잘 모르시겠지마는, 사람 마음만큼이나 탁한 것이 없답니다.”
진은 미소를 싹 지우고 하이만을 노려봤다. 스멀스멀,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십 년간, 아르센이 저의 혼을 죽이기 위해 놀려댔던 독설(毒舌)과 참으로 비슷하지 않나.
“동의하오. 탁하다 못해 썩었어.”
이제는 속지 않는다. 귀에 진물이 물리도록 들었고, 심장이 부르트도록 새겼으니까. 저것은 저를 위하는 척, 잠재력을 통제하고 의지를 억압하려는 헛소리다.
‘저하께서는 세상의 중심이시라, 저하의 믿음이 곧 진실이지요.’
진은 귓가에 울리는 이안의 음성을 따라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회의가 재개되기를 기다렸다.
어떤 말 붙임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노골적인 기세에, 하이만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제 세력에 둘러싸였다.
“…시아야.”
뒤에서 기척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던 시아오시가 한 발 가까이 다가왔다. 진은 보고서로 입가를 가리며 조용히 명했다.
“마법부로 가서, 로만드로가 작성하여 접수했던 고발장을 가져오도록 하라. 할 수 있지?”
“예. 저하.”
“그래. 서두르자. 혹여 문제가 생기면 비비안나에게 도움을 청하여라.”
진은 시아오시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두툼한 보고서 끄트머리를 매만졌다. 지금 이 자리에 이안이 있었더라면, 무엇을 얻어냈을까. 고민할수록 하나의 답만 또렷하다.
끼이익!
이내 한 시간 후. 수상은 이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다시 회장에 들어섰다. 무슨 일인지 알려달라는 진의 눈짓에, 그는 잠시 기다려달라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실례했소. 회의를 계속하지. 모두 착석하여 주시길 바라오. 그리고 마법부에서 전언해 오기를, 금언 마법을 우선으로 사용할 것이라 하는데…….”
수상은 난감하게 수염을 매만지며 말꼬리를 흐렸다. 희멀건 그의 눈동자가 아주 짧게 하이만 공작을 훑고 지나갔다.
‘루스웨나를 끌어들이다니. 참나, 바리엘 귀족이라는 자각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아무리 그쪽과 혼인 동맹을 맺었다지만…….’
하이만이 루스웨나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흘렸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특히 변수는 딜라이나. 그녀가 혹, 하이만에게 황제의 동결도 알렸을까?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딜라이나가 그것까지는 공유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의 불능은 곧 자신과 아르센에게 위협적인 수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 수상은 자연스레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뒷말을 이었다.
“금언 마법을 전문으로 한 마법사가 없고, 무엇보다 마력 소모가 꽤 큰 것인지라 당장 오늘 중으로는 다섯 명 정도가 최대라 하오.”
오늘 밤, 다섯 명만 출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귀족들은 저도 모르게 눈치를 나누려다 멈칫거렸다. 하이만 공작과 그 세력들이 나서지 말라는 듯 기색 했기 때문이다. 하이만은 품위 있게 한쪽 손을 들어 보이며 발언했다.
“수상. 아시다시피 하이만 가문은 은행을 비롯하여 여러 사업체를 꾸리고 있소. 내가 오늘 나가지 못하면, 이는 가문에만 국한되는 피해가 아닐 것임을 확신하지.”
제국의 재화 흐름을 이끄는 자였다. 일리는 있되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변명이다.
수상은 봉을 잡은 채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루스웨나 건도 그러하고, 내란 및 아르센 결탁 혐의 등을 토대로 황궁에 잡아두는 것이 좋으리라.
하지만…….
‘해도 되겠는가?’
하이만은 중앙 귀족들의 중심축이요, 그를 흔들고자 한다면 다른 자들이 어찌 나올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귀족들의 사병 수에 제한을 두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모두 뭉친다면? 게다가 흑갑옷을 소유한 하이만 아닌가.
황궁에서 감당 가능할까? 황제도 없고, 마리브와 게일도 없다. 두 황자의 내란으로 병력 자체도 분산되었다. 마법부와 친위대는 아르센 사태로 인력이 모자라다.
수상은 지금 황궁이 최악의 상황이라는 걸 몸소 체감했다. 명명백백, 명분은 확실하나 이리 고민할 수밖에 없다니.
“나는 반대하네.”
수상이 고민을 거듭하던 때였다. 앓던 것이 무색하게, 단호한 진의 음성이 치고 나왔다.
“하이만 공작. 그대는 게일 형님과 결탁하여 내란에 참가했다는 혐의가 있어. 이어서 바로 마물이었던 아르센을 후계 자리에 앉히려 하였지. 의도하였든 아니든, 그대의 행적이 계속해서 바리엘을 위협하고 있음이라. 황궁에 남아서 추가 조사를 받는 게 좋겠네.”
“저하. 이미 그것에 관하여는 소명을 하였습니다.”
“소명이 판결을 대신할 수 있다 여기는가? 며칠 전, 마법부에서 하이만 공작을 대상으로 고발장을 접수하였네. 하지만 재판 회부 결정을 내릴 대회의에 대부분 불참하여 불발되었지.”
과반수를 얻어야 하는데, 모인 인원 자체가 과반수가 안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진은 싱긋 웃으며 관료들을 돌아봤다. 그들은 시선을 슬쩍 아래로 깔며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 짐작하건대, 아마 아르센의 수작이지 않았을까 싶어. 그렇지 않고서는 어찌 그 많은 자들이 한번에 자리를 비울 수 있단 말인가? 안 그래?”
“그, 저하…….”
“마침 모두 대회의라는 명목으로 모였어. 서기는 없지만, 의결에 필요한 자가 다 있으니, 문제 될 것 있겠나? 하이만의 재판 회부에 대하여 함께 논의해 보세.”
그때, 시아오시가 뒤에서 고발장 원부를 건넸다. 진은 그걸 원탁 한가운데로 던지며, 확인할 자는 확인해도 좋다는 뜻을 보였다. 표지에 정식 고발장임을 알리는 인장이 대문짝만하게 찍혀있었다.
“아르센에 관한 사안은 함구함이 맞지만, 이는 별개다. 이안 경이 일어나면 내 친히 결과를 전할 것이네.”
여기서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이름을 기억하리라. 제국의 유일한 후계자인 자신과 정세의 중심인 이안이 기억하여 가만두지 않으리라.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리 경고하고 있었다.
“관료들은 이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렷다.”
“저하, 그것이…….”
“아하라. 세뇌로 인하여 가물가물하신가? 크게 읽어라도 드릴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요.”
의결권을 가진 자들이 하이만의 눈치를 보았다. 대놓고 이리 나오면 되받아칠 명목이 없기 때문이다.
진은 수상에게 진행해 달라는 듯 눈짓했다. 수상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토해내며 봉을 잡았다. 아무리 황제 권한 대리인이라고 하나, 저는 그저 수상일 뿐. 황자인 진이 이리 나서준다면 한결 수월하다.
“음, 그러면 갑작스럽지만, 이는 하이만 공작의 출궁과 관련한 사안이니 이를 먼저 짚고 넘어가겠소. 고발장의 번호는 52398.”
차락.
퀸타나는 고발장이 진짜 원부인지를 확인하여 문제없음을 알렸다. 귀족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거세졌다.
“재판일이 잡히면 그 뒤로는 어찌 됩니까?”
“게일 저하가 없으시잖아요.”
“증인 한 자리가 비는 것쯤은 문제없어요. 제가 사법부에 있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내란죄 외에도 걸린 게 많답니다. 아무래도 하이만 공작이라 한들, 쉬이 넘어갈 수 없겠어요.”
“하이만 가문이 사라지면, 우리는 어찌 됩니까?”
“전체적으로는 격하 당하겠지만 개중 몇몇은 하이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안 경이 밀어주려는 가문이 따로 있나요? 소문이 없는데요.”
“세르오 가에서 청혼을 넣었다고는 들었어요.”
“어머. 세상에.”
하이만은 입매를 단단히 굳히고서 난간 틀을 쥐어 잡았다. 그 역시 공직 없는 귀족이라 의결권이 없다. 그는 살벌한 눈빛으로 제 돈을 처먹었던 관료들을 노려봤다. 여기서 배신하면, 진짜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경고였다.
“…고발 내용과 그에 부합하는 주장 그리고 증거물 따위는 이미 에릭세 담당관에 의해 합격선을 밟았습니다. 바로 거수하시지요. 52398번 고발장의 재판 회부를 동의하시는 자는 뜻을 보이십시오.”
탕탕!
진이 먼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퀸타나. 손을 듦으로 인해 스쳐 지나가는 옷감 소리가 조용히 흘렀다. 이어서 몇몇 자들이 힘을 모았다. 하지만 아직 과반수에는 한참 모자라다. 진은 천천히 손든 자들의 이름을 힘주어 불렀다.
“지금 손을 든 자들은 행정부의 퀸타나, 사법부의 매팅글리, 시릴 폴슨, 하비 보드킨 그리고 외교부의 에쉬버스터, 와이번이로다. 맞나?”
“예. 저하.”
“내 회의에 참여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대들 이름을 못 외웠을까 봐 걱정하였어. 그런데 괜한 기우였군.”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참으로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거수한 자들을 기억한다는 것과 아닌 자들을 인지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으니까. 여기저기서 마지못해 올라가는 손들.
“오. 웰링어 마베.”
“예. 저하.”
“그래. 그대도 외교부였지.”
스윽.
거대한 돌을 미는 게 어렵지, 한번 굴리고 나면 관성으로 내달리는 게 이치였다. 과반수에 가까워질수록, 의결 가능성이 가까워졌고 반대하는 자들은 손끝을 딱딱 튕겨댔다. 끝까지 버티고 있다가 재판이 잡히면, 그때는 정말 하이만과 묶여서 지옥행 아닌가?
‘지금이라도?’
‘아, 저자까지 찬성하면…….’
‘세 명인데, 세 명…….’
“저, 저도 찬성합니다.”
“그래. 베이즈. 이리 마주하는 건 처음이군. 과반수, 되었나?”
수상이 어림하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남은 자들은 동시에 찬성하여 꼬리를 잘라 버렸다. 의결권을 가진 자 중, 한 명도 빠짐없는 전원 찬성. 수상은 그 모습에 개탄하여 혀를 차버리고 말았다.
“과반수의 찬성으로 접수번호 52398 고발장이 적격함을 인정합니다. 사법부에서는 재판을 준비하시오.”
타앙! 탕탕!
수상이 봉을 내려치자 난간 밖의 귀족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이만과 관련 없는 자들도 그러했고, 있는 자들은 더더욱 크게 반응했다.
“이보시오, 지금은 아르센 사태에 관한 긴급 대회의 중이었지 않소! 이러는 게 어디 있단 말이오?”
“그래! 무효일세!”
“젠장, 아니, 야! 너! 베이즈! 너는 그러면 안 되지!”
“자중하시오, 자중! 어디라고 큰 소리를 내시오!”
“말도 안 됩니다. 이거 완전 날치기 아닙니까?”
다들 분통을 터트렸지만, 난간을 넘지는 못했다. 황궁의 경비들이 창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저택이라면, 하여 사병들만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면 진즉 뒤집어엎었을 기세였다.
수상은 연신 봉을 두드리며 고함쳤다.
“무엄하오! 황자께서 계시거늘, 어찌 그리 모욕적인 언사란 말인가? 즉결처분당하고 싶은가?”
콰앙! 쾅!
하지만 곧 목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런 경고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자, 퀸타나는 시아오시에게 손짓하여 진을 보호하라 일렀다.
“저하. 정리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잠시 마법부에 가 계시지요.”
출궁할 자를 선별하는 것부터 세세하게 정할 거리가 많았으나, 상황이 이러하니 진행될 리 없다. 진은 알겠노라 답하여 마차에 올랐고, 이내 마법부로 잠시 돌아왔다.
타닥타닥!
“저하?”
“저하, 뛰시면 다치십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리는 진. 아이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주위에 시선 하나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하나의 목적지만을 위해 뛰었다. 이안의 집무실.
끼이익!
벌컥!
이안은 나갔을 때와 다름없이 반듯한 자세로 누워있었고, 진은 가까이 다가가 침대 옆에 고개를 묻었다.
어서, 어서 이안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여, 회의장에서 있었던 일을 일러주고 싶다. 칭찬을 받을 것인데, 참으로 잘하였다고 웃어줄 것인데.
아이는 작게 속닥거리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이안 경. 있지. 나 오늘 회의장에서 좀 잘한 것 같소.”
“…….”
“아닐 수도 있는데, 일단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래.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서 가르쳐 주시오. 내가 잘하였는지, 아닌지.”
“…무엇을 어찌하셨습니까?”
“어!?”
이안이 작게 대꾸했다. 눈은 그대로 감고 있었으나, 입매가 살짝 틀려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말한 게 분명하다.
“이안 경! 어찌 깨었소?”
“…베릭, 그것이 계속 시끄럽게…….”
“아아아. 그러고 보니 베릭이 없네!”
“…….”
정신을 차리긴 했으나, 여전히 피로를 이기진 못한 듯하다. 그저 웅얼거리는 정도로만 간신히 대꾸할 뿐이다. 진은 이안의 모습을 가만 지켜보다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이안 경.”
“…….”
문득, 하이만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물어보고 싶다. 혹여 자신이 마법부 별관 건설을 반대하면 어쩔 것인지.
하지만 진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아닐세. 좋은 꿈 꾸시게.”
조금 나중에, 어떤 대답을 들어도 스스로 문제없을 때. 그때 물을 것이라, 아이는 생각을 덮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