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45
제245화. 중앙 귀족
중앙의 작은 황궁이라 여겨지는 하이만 대저택.
공작의 권세가 황족과 비견하여 아쉽지 않다는 걸 은근히 내포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정말 황궁처럼 크고 화려한 저택의 외관을 찬양하는 말이기도 했다.
수천 평에 달하는 잔디밭과 사시사철 아름답게 관리되는 정원, 비와 눈에도 오염되지 않고 희게 유지되는 저택의 벽면 등등.
늙은 정원사는 언제나처럼 본관 정문 쪽을 바라보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음?”
저 멀리 정문을 통해 들어오는 마차 행렬.
전날 주인님께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시더만, 이제 귀가하는 것인가? 뒤에는? 주인님 친우분들이고? 어쩐지 평소보다 저택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던 것 같다.
타닥타닥!
히이잉!
노인은 모자를 벗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하다. 어째서 마차가 끊이질 않고 계속 들어오나? 그 뒤로는 말 탄 자들이 뒤따랐고, 또 그 뒤로는 무장한 병사들이 족적을 맞추어 걷는 중이었다.
노인은 모자를 툭, 떨어트리며 허둥지둥 정원 도구를 수레에 실었다.
“어어, 이보게! 이봐!”
“어딜 가려고?”
그런 그의 손짓은 저 멀리, 정원에서 쉬고 있던 하인들의 시선을 끌었고, 하인들의 호들갑은 집사를 불러들였다.
집사가 다급하게 중앙 계단을 내려올 때, 마차는 이미 멈춰서서 안쪽의 기척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디서 오셨지요? 지금 하이만 공작님께서는 출타 중이십니다만.”
집사는 휘날리는 황궁 깃대를 무시하며 그리 되물었다. 여기서 정문은 몇 분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떤 연락도 없었다니. 이는, 대기 없이 밀고 들어왔거나 혹은 경비들이 제압당한 상태라는 것이라.
시종들이 불안한 낯으로 창문에 다닥다닥 붙었다. 어림잡아도 그 수가 만만치 않으니, 마치 전쟁이라도 난 기분이다.
“나는 황궁친위대 대장 제이럿이다.”
“아, 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에 공작 부인은 계시나?”
“…어쩐 일이신지 먼저 고해주시지요.”
집사가 왼손으로 허리를 받치는 척하며 수신호를 보냈다. 그걸 알아들은 하인들이 재빠르게 계단을 뛰어올라 하이만 공작 부인과 그 자식들에게 사달을 알렸다.
하지만 하나 간과한 게 있었으니, 이 황궁의 사자들은 무언갈 압수하고 수색하는 것보다 작위 박탈 고지를 우선으로 두고 있는 것이었다.
차락.
제이럿은 품에서 명령문을 꺼내 들었다.
“황실에서 내려온 명령문이니, 하이만의 성(姓)을 지닌 자들은 모두 나와 지엄한 황실의 뜻을 따르시오.”
집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퍼레졌다. 스쳐 지나가는 눈으로 보았을 때, 필시 ‘직위 박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는데?
제이럿은 시계를 딸깍거리며 확인했다. 임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거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긴급도가 1급이라. 혹 이행할 자가 없다면 선언하는 것으로 그 효력을 시작하지.”
“무슨 일입니까?”
그때, 저택에 남아있던 하이만 공작 부인과 멜라니아 영애가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며 나왔다. 아들이자 오라비인 장남은 현재 집무실에서 문제 될 만한 자료가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하이만 부인과 그 영애이시군요. 지금부터 을 전달하겠습니다.”
“뭐? 뭐라고?”
살다 살다 난생처음 듣는 단어의 조합이로다. 작위 박탈? 일시적? 명령문? 하지만 제이럿은 설명 대신 전문을 읽어내렸다.
“현 시각 이후로 하이만 가문에 내려졌던 공작 작위와 권한 그리고 특혜 따위를 일시적으로 박탈한다. 이는 황제의 권한 대리인인 수상과 황실 대표 그리고 행정부의 승인으로 인한 명령이다.”
벼락이 구음되면 이런 것일까?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워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제이럿은 아직 안 끝났다는 뜻으로 손짓하여 다음 장을 넘겼다.
“즉시 시행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재산 동결.
원활한 자금 조사를 위해 현 시각 부로 단 한 개의 동화 거래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귀족의 권리였던 ‘경제 활동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사라지면서 엮이게 된 것이다.
“…이는 고용인들에게도 급료 한 푼 지급할 수 없음을 포함한다.”
제이럿의 공언에 하인들이 난감하게 시선을 나누었다. 급료가 안 나온다니? 그렇다면 여기서 계속 머물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두 번째. 사병 축소 강제 집행. 기사 혹은 사병, 그것이 말단 호위일지라도 병력 동원 목적으로 고용한 자들은 모두 소집 해제하라.”
귀족이 아닌 자들은, 직계 가족의 세 배에 달하는 수만 사병으로 고용할 수 있었다. 반란의 가능성을 미리 잘라두려는 방침이다. 하여,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자들은 제일 하위인 남작이라도 받으려 그 애를 썼던 것이라.
제이럿은 수를 짐작하며 뒷말을 덧붙였다.
“하이만의 직계는 총 다섯. 열 다섯만 남기고 모두 정리하시면 되겠습니다.”
“이게 무슨! 부군께서는 지금 어디 있어? 말도 안 되는 명령문을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가져와서는!”
“부인.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황실 모독입니다.”
“아니. 기다리시게. 잠깐!”
집행인들이 저택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공작 부인이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막아섰다. 그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과 호위들이 덩달아 엉겨들었다.
“비키십시오. 공무집행방해입니다.”
“기다려! 나는 공작 부인이기 전에 루스웨나의 왕족이다! 부군을 만나기 전에는 그 누구도, 누구도 저택에 들어갈 수 없어! 지금 어디 계시지? 황실에 감금된 것인가?”
“감금이 아니라 구류입니다. 그리고…….”
“비켜라! 이것들이, 무엄하다!”
“마님, 어찌합니까?”
“막아서! 안 된다! 다들 서둘러서-”
촤아아악!
공작 부인이 뭔가를 전언하려는 순간. 제이럿은 망설임 없이 입구를 막아선 시종의 목을 베어버렸다. 흰 대리석 바닥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멜라니아는 계단 아래로 구르는 머리통을 보곤 경악하며 입가를 가렸다. 제이럿이 이를 깨물며 낮게 되물었다.
“…명령이 장난 같습니까? 부인?”
사병을 해제하지 않으면 모조리 제압할 것이라. 황궁친위대 대장이 하이만에 온 연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귀족 중에서는 그들의 규모가 제일 컸으니까.
이대로 저택을 정리한 다음,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병훈련장으로 갈 예정이었다. 제이럿이 검으로 나머지 시종들을 가리켰다.
“어때, 장난 같아 보이나?”
“히익!”
“막아서고 방해하는 자들이 있다면 즉시 벨 것이다. 목숨이 아까운 자들은 물러서서 협조하라.”
공작 부인은 뭔가 확실히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르센 황자의 마력확인식이 실패하였노라고, 혹은 성공하였지만, 진과 이안 쪽의 어떤 술수로 인하여 황궁 정세가 굳혀졌노라고.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멜라니아!”
“오라버니!”
“이게 대체 어찌 된 것인가!”
채앵! 챙!
그때, 위층에서 서재를 정리한 장남과 차남이 검을 빼 들며 달려왔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으나, 제 어미 앞에서 피 묻은 검을 들고 있지 않나. 장남이 앞서 뛰어오자, 멜라니아가 두 팔을 펼치며 막아섰다.
“안 됩니다! 오라버니!”
“멜라니아!”
“정말, 안 돼요. 제발.”
우선 가만히 있자. 그래서 아버지와 결탁한 다른 귀족들의 동태 그리고 황궁의 정세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여기서 오라비들이 황실에 맞선다면, 이는 꼼짝없이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보다 돌아가는 것이 심각하다면, 반역죄까지 끌어올 수 있을 터. 아버지도 없고, 형제들까지 없다면 실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스윽.
제이럿은 시체를 넘어서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두 형제는 당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춤거리며 물러설 뿐이다.
“현명하십니다. 영애.”
“저택을 훼손하지 마세요. 개인 소유에 관한 권한은 귀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이럿은 손짓하여 집행관들이 저택 안으로 들어오게끔 했다. 그들은 이미 구조를 파악했는지, 서두르지 않고 질서 있게 곳곳으로 흩어졌다.
하인들은 질겁하여 벽에 딱 붙은 채 낮은 탄성만 내질러댔다.
“그리고 공작 부인과 장남께서는 함께 황궁으로 가시지요. 조사할 것이 있습니다.”
공작 부인과 장남. 멜라니아는 이 둘을 선별한 연유를 즉시 알아챘다. 상속 우선권을 지닌 자들이었다.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다음은 어머니가, 어머니 다음은 첫째인 오라비에게 권한이 돌아가지 않나. 재산 동결 운운했던 것이 비단 조사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멜라니아, 그러면 나도.”
“작은 오라버니는 여기 계셔서 저택을 지키셔야지요.”
멜라니아는 작은 오라비를 말리며 작게 속삭였다. 하이만 저택으로 이리 밀고 들어왔다는 것은, 이미 다른 귀족 저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황궁 밖에서 도모하여 세력을 합심할 자가 꼭 필요했다.
“오 분 후, 출발하시지요.”
“이쪽입니다! 이쪽이 서재입니다!”
“문이 잠겨있는데요?”
“도끼를 가져와라!”
“서둘러라! 아예 박살 내버려!”
콰앙! 쾅! 쾅!
빠직-!
제이럿은 가차 없었다. 특별히 긴 준비 시간을 줄 필요가 없지 않나. 그들이 사병훈련소를 봉쇄하는 동안, 다른 자들이 마차를 움직여 하이만 가족을 황궁으로 호송할 것이라.
멜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재빨리 제 침실로 뛰어 올라갔다.
타닥타닥!
“아가씨! 어쩌지요?”
“쉿. 너는 다른 애들 단속 잘 하고 있거라. 혹 저택 물건을 빼돌려 나가려는 자가 있다면 즉시 고발하여 저지해. 흩어지면 우리 모두 죽는다.”
멜라니아는 제 시종에게 그리 이르면서 서랍 제일 밑, 작은 보석 상자를 꺼냈다. 고급 천 위에 먼지와 손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이는, 일전에 게일의 처소에서 돌아온 다음 열어보았던 흔적이다.
딸깍.
그 안에는 반쯤 부서진 호박색 원석과 압화(押花)된 붉은 꽃 책갈피 그리고 낡아 바스러질 것 같은 쪽지 몇 개가 들어있었다. 멜라니아는 입술을 꾹 깨물며 그걸 소중히 품에 안았다.
“가지.”
“아가씨!”
“되었어. 우는 소리 하지 마.”
아버지가 위기라면, 당연히 그 위기는 상대측인 이안으로 인한 것이니. 멜라니아는 제발 자신이 이안을 저지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걸리는 게 많아.’
달빛이 내리던 밤, 게일의 처소 앞에서 이안을 슬쩍 떠보았으나 그는 미동도 없었다. 그리고 이후의 행적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진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리되면,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승부를 걸어볼 수밖에.
“그것이 무엇입니까?”
“잡화가 든 물건입니다. 보여드릴까요?”
“상자는 값비싸 보이는데요.”
“하이만에서 값비싸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원한다면, 그저 천에 싸 가도 좋아요. 책갈피와 친우의 쪽지 따위가 다거든요.”
이미 어머니는 마차에 실려있었고, 큰 오라비가 그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황궁 직원이 잠시 검문하였으나, 별문제 없다는 걸 인지하고 마차 문을 열어주었다.
히이잉!
타닥타닥!
“황궁으로 먼저 가겠습니다.”
“그래. 곧 합류하지.”
마부석 옆에 앉아있던 집행관이 제이럿을 향해 인사했다. 멜라니아는 점점 멀어지는 대저택을 뒤로 바라보며, 참담히 입술을 짓이겼다.
“아아, 이것이 대체…….”
“어머니. 괜찮습니다. 진정하세요.”
큰 오라비가 어미를 다독이며 어깨를 쓰다듬었다.
마차는 이내 하이만의 사유지를 벗어나, 곧 중앙의 도로에 접어들었다. 인파를 헤치고 황궁에 가까워질수록 비슷한 마차들이 흔해졌다.
그런데.
“아.”
멜라니아는 마차 곳곳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보고 창문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전부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중앙 귀족 저택을 찾았던 자들의 귀환이었으니.
반쯤 넋 나간 자가 피투성이 된 채로 앉아있었다. 장난인 것 같냐던 제이럿 대장의 물음이 귓가에 울리는 순간이었다.
“대체 이 무슨…….”
마차 밖으로 보이는 눈에 익은 얼굴들. 중앙의 일곱 귀족 가문 상속자들이 모두 황궁으로 결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