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46
제246화. 루스웨나를 위한 비밀
루스웨나의 사절단 대표인 엘더트. 그는 곤죽이 된 부하들을 힐끔거리다가, 이내 창가 가까이 붙어 바깥을 살폈다.
시종 몇몇이 다급하게 모여 달려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뿐인가? 의사들은 왕진 가방을 든 채 문턱이 닳도록 오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상적인 황궁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만, 다들 단단히 함구하고 있는 터라 짐작할 수가 없다.
“으윽, 진짜 죽겠습니다. 이거.”
“나는 가루를 씹었다. 씹었어. 아오, 돌아버리겠네.”
“다들 조용히 하거라.”
복통을 일으키는 약을 먹음으로써, 그들은 출궁 대신 의무실 근처의 별채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엘더트는 단단히 닫힌 문을 살피며 부하들을 단속했다. 식은땀과 파리한 안색, 덜덜 떨리는 몸. 언뜻 보아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안 죽는다. 그저 고통만 있을 뿐.”
“그것 때문에 죽겠다고요. 루스웨나로 돌아가면 유급휴가 넉넉히 주셔야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사서 고생입니까? 아오오, 벌어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
“여기 계속 갇혀있는데, 뭐 좀 아시겠어요?”
“역시 한 명만 뽑아서 먹을 걸 그랬죠.”
엘더트는 대답 대신 차를 홀짝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명의 문제로 궁에 남을 수 있었겠는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었을 게 분명하다. 특별한 항의를 하지 않았기에, 황궁에서도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나저나, 정말 이상하군.’
엘더트는 창밖 멀리 보이는 황궁의 정원을 살폈다. 길게 뻗은 가지와 싱그러운 이파리 사이로 기다란 벤치가 보인다.
여기 온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들이 모여 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것만 아니라, 그걸 목적으로 정원에 드는 자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의사 수는 모자라고, 시종과 경비들은 유독 바빠 보이고, 수상을 비롯하여 관료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외교 사절단이다. 문제가 생겼는데도 24시간 상주하는 의사가 붙질 않았다. 되려 보았듯이 이리저리 오가는 모습들만 보였다.
“하이만 공작이 구류되어 있다 하였으니, 그 여파로 인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이만입니다. 하이만.”
“그렇다면 그것 역시 내란으로 구분 가능해.”
“황궁에서 연달아 두 번의 내란이라. 망조가 들었군요. 하핫! 아이고, 배 아파.”
“전서에는 아르센이 마력운용자라 하였습니다. 그것만 놓고 본다면 공작께서 그리 구류될 리가 없는데요.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지요? 진 황자의 세력이 마법부라 하니…….”
똑똑.
“엘더트 사절단 대표님. 진 황자 저하와 이안 히엘로 장관님이 드십니다. 옆방, 응접실로 이동하시지요.”
마치 저들 얘기를 듣고 난입한 것 같이 알맞은 적기였다. 엘더트는 손가락으로 경계하라는 시늉을 보인 다음, 문을 열고 나섰다. 부하들이 누워있는 방에서 대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끼이익.
“오, 어서 오시오. 엘더트 사절대표.”
“안녕하십니까, 진 저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안 히엘로 장관일세.”
“반갑습니다.”
엘더트는 아이의 얼굴을 가르는 상처를 보고 멈칫거렸다. 어린 황자가 전투에 나섰을 리는 없고, 필시 내란의 흔적일 터. 생각보다 그 소용돌이가 거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황궁의 차를 잘못 마셨다고?”
진의 눈썹이 잔뜩 휘었다. 사심 없는 걱정이 그득하게 담겨있었으나, 그 옆의 이안은 냉랭하고 변화없는 표정으로 엘더트를 훑어댔다.
온도가 극심한 두 시선에, 엘더트는 잠시 헛기침하며 정신을 바로 차렸다.
“아닙니다. 차는 훌륭하였으나, 일정이 고되어 몸에서 받질 않았나 봅니다. 베푸신 친절에 다들 감사하고 있답니다.”
“에구, 그랬군. 그랬어.”
“엘더트 사절대표.”
타앗.
이안이 찻잔을 들며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몇 살이지? 아직 성년식 전인 것 같은데, 목소리의 높낮이 하며, 찻잔 드는 손짓 따위에서 숙달된 기품이 물씬 느껴졌다.
‘변경 출신의 귀족이라는 것만 들었는데.’
“예. 히엘로 장관님.”
“수상께 전해 들었네. 젊은 나이에 국립대의 교수 이력이 있고, 현재는 에리포니 왕의 자문관 역할을 하고 있다지. 참으로 대단하시어.”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장난하나? 그 나이에 마법부 장관 배지 단 자가 할 말은 아닌데.
이안은 계속 그를 가늠하듯, 시선을 천천히 내리고 올렸다.
“그래. 자문관 일에 교수 경험이 도움 되던가?”
“짧은 지식이지만, 도시 계획이나 재정비, 왕궁 건축, 건설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흐음. 맞아. 루스웨나 왕궁의 건축물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지. 그나저나, 하이만의 전언을 받고 온 게 아니라, 그저 내란으로 인한 황제 폐하의 상심을 걱정하여 온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 아는 거짓말. 급하게 화제가 꺾이는 물음이었으나, 엘더트는 군더더기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때.
‘잠깐만.’
엘더트는 문득, 이안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하이만’이라니? 왜 그 이름 뒤에 붙어야 할 ‘공작’ 호칭이 빠진 걸까? 제아무리 마법부 장관이라 한들, 신분 차이가 엄연하지 않나?
엘더트가 생각을 이으려 하자, 이안이 덧붙였다.
“그거 다행이군. 하이만은 현재 모독 및 소란죄로 구류 중일세. 작위 또한 일시적으로 박탈되어 귀족 신분이 아니니, 아마 내란에 관한 재판이 열릴 때까지 황궁에서 나가지 못할 터.”
구류에 관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위 박탈? 하이만 공작이?
현실성 없는 단어 조합이라 그런지, 인지가 쉽사리 되질 않았다. 그가 그리되는 동안 다른 귀족들은 무얼 하고 있었나?
엘더트는 자연스럽게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중앙 귀족들 역시-’
모두 꺾였겠구나.
작위 박탈은 하이만의 세력이 아니더라도 귀족이라면 모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한데, 하이만을 내릴 수 있는 자가 다른 귀족들은 가만두었겠나? 주축이 모두 꺾였다는 뜻이었다.
‘대체 어떻게? 역시 마법부의 힘인가?’
노쇠한 황제와 장성한 두 황자의 실패로 인해 황궁은 이빨 빠진 짐승과 다를 바 무엇 있겠나? 귀족들이 합심한다면 황제의 성(姓)이 바뀌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황실 상황이 의아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물’이라는 절대적 악(惡)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영원히 의문점으로 남겨둘 부분이긴 하지만.
“그러니 사절단은 하이만의 이름을 거론하지 마시게. 루스웨나 왕께서 부인에게 전할 서신이 있다 들었어. 직접 전달할 수 없음을 이해하겠지. 어찌, 넘겨주겠나? 아니면 도로 가져가겠나?”
“…도로 가져가겠습니다.”
엘더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안의 제안을 거절했다. 구멍 난 배에 올라탈 수는 없는 노릇. 여기서 하이만과 계속 얽히게 되면, 그들은 외교적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
‘예상이 맞았어.’
황궁이 어수선한 연유. 그것은 중앙 귀족들을 제압한 후, 소강상태라 그런 것이라.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터.
이리 하이만에 관한 걸 언급해 주는 의도는, 서로 간의 마찰을 최소화하자는 의도였다. 속된 말로, 이러이러하니 좋게좋게 썩 돌아가라는 게다. 서로 피곤해지지 말자고.
“하이만의 재판이 마무리되면, 황실의 안정을 위하여 진 저하의 후계자 임명식이 진행될 터. 루스웨나에도 사신을 보낼 터이니, 부디 다시금 이리 와서 자리를 빛내주길 바라네.”
“물론 영광이옵니다. 진 저하, 미리 축하의 말씀을 올립니다.”
“…고맙네.”
엘더트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자, 진은 쑥스럽게 웃기만 했다.
4황자 아르센은 어딜 갔나 물어보고 싶었으나, 이는 시의적절하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다. 무엇보다, 후계자 임명에 진이 오른다면, 이는 황궁의 승리자가 확실히 정해졌다는 뜻 아닌가?
정확히는 진보다 그 옆에 앉은 이안이라는 자가 범상치 않다만…….
“혹 원하시는 선물이 있으십니까? 저하. 왕께 전언하여 성심성의껏 골라 올리겠습니다.”
차기 황제이시니, 루스웨나 입장에서는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진은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건 되었고, 왕께서 직접 와 즐겨주었으면 하는데.”
황제의 대관식도 아니고, 후계자 임명식일 뿐이었다. 그런데 일국의 왕보고 직접 오라 하다니.
엘더트는 당황하여 잠시 움찔거렸다. 이는 중앙 귀족 숙청으로 인해 어수선한 내부에서, 견고한 외부 지지세력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겠지. 혹은, 훗날 루스웨나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발판이거나.
엘더트는 표정을 관리하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저하의 말씀을 꼭 전언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시게. 불편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시종들에게 이르고.”
“예. 저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대답과 달리, 엘더트는 즉시 루스웨나로 돌아가겠노라 결심했다. 생각보다 하이만의 몰락이 심상치 않았다. 이는 사절단 수준에서 해결할 일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아, 그리고.”
이안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짓했다.
“하이만 재판 내용 중에 드래곤 각린에 관한 혐의도 포함되어 있네. 아무래도 그의 연고지 중에 불법 공급지가 있는 것 같은데, 루스웨나 측에서는 아는 바가 없나?”
“드래곤이요? 루스웨나에는 딱 한 군데, 인증받은 공급지에서만 드래곤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불법과 연루된 것이라면, 저희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렇군. 알겠네. 먼저 일어나지. 만나서 반가웠어.”
“만나서 반가웠어!”
“영광이었습니다. 저하 그리고 히엘로 장관님.”
이안과 진은 엘더트와 짧게 악수한 다음, 응접실을 나가 버렸다.
엘더트는 부하들이 누워있는 방으로 돌아가며, 급히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복통을 없애주는 약이었다.
‘5황자 진과 마법부 장관이 실세라면, 하이만과 연관된 루스웨나 쪽으로 어떻게 해서든 압박이 들어올 것이다. 서둘러 돌아가자.’
끼이익.
한편, 복도로 나온 진이 뒤를 힐끔거렸다. 문이 완전히 닫히는 걸 보고 이안의 손을 꽉 붙잡았다.
“아르센 이야길 꺼내지 않더군.”
“그렇군요. 루스웨나 왕이 사절단 대표를 잘 골랐습니다.”
어찌 흘러가는지 모를 상황에서 상책이란, 그저 귀 열고 입 닫는 것이다. 이미 루스웨나는 하이만 부인의 연관성으로 미미하게나마 곤란한 처지. 거기에 공작의 부름으로 이리 달려왔다는 게 들키면, 내란과 직접 연관되어 크게 불리해진다.
“하지만 본국으로 돌아가 상황을 공유하는 도중에는 필시 거론될 것입니다.”
아르센의 마력확인식은 황궁에서 엄중히 다루어지는 비밀이다. 그런데 그걸 알고 있다? 필시 현장의 누군가와 내통하였다는 의심을 할 수 있고, 이는 높은 확률로 루스웨나와 연관 있는 하이만을 떠오르게 할 것이다.
“비밀이 무거운 이유가 여기 있지요. 무겁고 무거워서, 많이 알수록 숨통을 짓누른답니다.”
바리엘의 역사에서 아르센을 파내겠지만, 인접한 옆 나라에서 알고 있는 사실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업적 없는 어린 황자였기에 인지 자체가 희미하다는 것이다.
반면 루스웨나는? 하이만 측을 통해 아르센이 ‘마력운용자’라는 걸 전해 들었을 터. 바로 그게 문제라.
“아르센을 거론하면, 그걸 빌미로 하이만의 내란죄와 엮어버릴 수 있다는 게지? 그리하여 그쪽 왕실을 압박할 수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문의 재산 몰수로 당분간은 문제없겠지만, 귀족 일곱 가문이 몰락할 것입니다. 그 자리를 다른 귀족이 치고 들어올 때까지, 세수(稅收) 비는 기간이 오겠지요. 왕국을 터놓는 게 좋겠습니다.”
아르센 사태로 인한 어수선함을 귀족 작위 박탈 건으로 포장하여 속여냈다. 또한, 그와 동시에 미끼를 던졌으니. 루스웨나에서 이를 물기만 기다리면 된다.
“으음. 그렇구만.”
진은 이안의 손을 잡지 않은 쪽으로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이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그때, 둘의 뒤를 따르던 시종이 무언갈 전달받고 이안 옆으로 다가왔다.
“이안 님.”
“무슨 일인가?”
“하이만 부인과 그 영식들이 입궁하였다 합니다.”
“그래? 알겠다.”
“그런데…….”
시종은 진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진이 눈살을 조금 찌푸리자, 조심스레 전하였다.
“멜라니아 영애께서 이안 님을 꼭 뵙고자 한다는데요. 브라츠와 관한 것이라 합니다.”
브라츠?
이안은 멜라니아의 단어 선택에 눈썹을 까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