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49
제249화. 토닥토닥과 투덕투덕
그날, 황궁의 바람은 유독 시렸다. 나무에는 꽃이 피어올랐고, 구름을 흩트리는 바람은 따뜻하였으나, 시렸다.
그래서 진이 두꺼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다 한들,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딜라이나 님이 돌아가셨다고?”
“아까, 밤중에.”
“쯧쯧. 우리 진 저하, 딱하시기도 하지.”
“폐하께서도 차도가 안 보이는데, 어린 분께서 마음고생이 많을 것이라. 다들 각별히 조심하라 지시가 내려왔으니 섣부른 말 삼가시게.”
“장례식은?”
“아무래도 간소하게 할 것 같아. 사인이 알려지면 안 되니까.”
마물 아르센의 독기에 노출되어 사망.
이것이 딜라이나의 직접적인 사인이었으나, 황궁 모두가 그날의 일을 합심하여 지워내는 중이었다. 아마 그녀의 죽음은 높은 확률로 병환 혹은 내란 중 얻은 부상 악화 따위로 기록될 터.
마법사는 서류철로 이마를 벅벅 긁으며 한숨 쉬었다.
“그나저나, 금언 마법 대기자는 얼마나 남았지?”
“이제 겨우 열다섯 나갔어. 이안 님이 힘을 못 쓰니까 속도가 더디네. 안 그래도 손 모자라는데 몇몇은 조사실 끌려가고. 페트릭 봤어?”
“미친놈. 그러니까 누가 허튼 생각 하래?”
“황궁 들어오고 이렇게 정신없는 나날은 처음이다.”
아르센으로 인한 인력 손실은 그렇다 쳐도, 변절자를 솎아내느라 또 두 번 세 번 손이 들어갔다. 조사받는 사람도 마법사, 조사해야 하는 사람도 마법사였으니까.
그들이 피로를 토로하며 복도를 지나갈 때, 구석에서 은밀히 엿듣는 사람이 있었으니.
“엥? 진 저하님 엄마가?”
베릭이었다. 볼 안쪽은 물론이고 두 손 가득 고기를 쥔 상태였다. 회복을 위해서는 무조건 탱글탱글 쫀득쫀득 고기가 필수인데, 이놈의 황궁 돌팔이는 뭣도 모르고 희멀건 죽만 내어주지 않나.
그는 어쩔 수 없이 시종들의 감시를 피해 고기 찾아 삼만 리로 시시각각 식당 근처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내란이 한창 일어날 때, 기절한 그녀를 둘러매고 뛰었던 게 아직도 생생하건만!
어허, 베릭은 복도 벽에 딱 붙어서는 연신 고기를 우물거렸다.
‘…엄마가 죽었다고.’
베릭은 제 방으로 돌아가려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걷는 게 아니라 휘청이며 구르는 수준에 가까웠지만, 크게 답답하지는 않았다. 육즙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피가 도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베릭 님?”
“헉!”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가 마법사들 몰래 은밀히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법사들이 이를 꽉 깨물고 모른 척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는 고기를 잔뜩 쥔 채 복도를 구르고 다닌다는 제보가 들어갔는지, 비비안나와 로만드로가 직접 등판했다.
“쯧쯧. 저저, 저게 사람이야, 뭐야?”
“로만드로 님 얼굴도 만만치 않은디.”
“나는 자다가 방금 일어났고!”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겨우 깨어난 로만드로. 팅팅 부어서 이목구비가 반쯤 사라진 상태다. 베릭은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섰다.
“그럼 잠이나 계속 자지, 왜 나왔어요?”
“딜라이나 님이 돌아가셨단다. 진 저하 걱정되기도 하고, 이안이 혼자 업무 볼 거 생각하면 좀 그래서. 얼굴만이라도 좀 보고 올까 했지.”
마법사들의 도움 없이 홀로 회복하는 중인지라, 말 몇 마디 붙이고 돌아오는 게 한계일 것 같겠지만 말이다. 로만드로는 하품을 쩌억 해대며 베릭에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진 저하께서 상심이 크실 것이라. 행동거지 조심하여라. 그 어린 나이에 홀로 되셨으니. 에고.”
“형제가 셋인데 뭐가 혼자예요?”
베릭이 코를 긁적거리며 묻자, 로만드로와 비비안나가 시선을 딱 맞추었다. 그러고 보니, 베릭은 내란이 마무리되는 시점부터 앓아누워 있지 않았던가. 아르센이 게일 저하의 처소에서 마력을 썼을 때는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당연했다.
로만드로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 조심이 일렀다.
“마리브가, 그러니까 1황자가 자격 박탈당하고 처형식마저 끝났다.”
“…뭐시라?”
“게일 저하께서도 돌아가셨고.”
“에엥?!”
“아르센은, 그…….”
로만드로가 주위를 슬쩍 둘러본 다음 베릭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르센의 정체와 그로 인한 결과. 그리고 뒤처리가 어찌 되어가고 있으며,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된다는 것 등등.
베릭은 너무 놀라서 턱을 떡하니 떨구고 말았다. 안에 씹던 고기가 훤히 보일 정도였다. 비비안나는 조심스레 그것을 닫아주었다.
“에에에에엥?!”
“시끄럽다, 이놈아.”
“미친, 나 없는 사이에 뭔데? 왜 나만 빼는 건데?”
“뭘 너만 빼? 그걸 말이라고.”
“아오, 내가 있었으면!”
“네가 있었으면?”
베릭은 치아를 거칠게 딱딱거리며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저, 역시 사람 아니라며 로만드로는 비비안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베릭을 부축해 주었다.
“그런 거는 아무것도 아니지! 엉? 이렇게 저렇게, 아주 막, 콱! 씹어버리고 딱! 깔끔하게! 어쩐지 난 걔가 영 재수 없더라. 진 저하님이랑 판박이인데, 뭔가 이상했어. 음음. 역시 내 촉은 남다르네. 와. 미친다.”
놀고 있네. 로만드로는 사달이 일어나는 동안 베릭이 누워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정신없고 바빴는데, 저놈이 사고라도 쳤다면 진정 골머리 앓았을 것이라.
그들은 지나가는 마법사들과 눈인사를 하며 진의 처소 가까이 도착했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어머. 부인.”
“안녕하세요. 로만드로 님. 일어나셨네요. 거동이 가능하세요? 괜찮으신가요?”
필리아와 네르사른이었다. 이안의 호출을 받고 마법부에 든 것인데, 입구에서 딱 마주친 것이다. 그녀와 네르사른은 베릭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베릭 님. 굴러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군,”
“구르긴 내가 왜 굴러?”
“그래요? 그러면 다행입니다.”
베릭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걷는 태가 좀 이상하긴 하다만, 두 발로 잘 걸어 다녔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틈에 로만드로는 시종에게 기별을 넣어달라 눈짓하였고, 이내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끼이익.
“이안 님?”
“저하, 저희 들었습니다.”
두 부부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자, 침대 맡에 앉아있는 이안이 입가에 손을 올리며 맞이해 주었다. 조용히, 목소리를 줄여달라는 것이다.
두꺼운 이불에 돌돌 말려 있는 형체 모를 무언가. 진이다.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 하나만 밖으로 꺼낸 채 이안의 왼손을 붙잡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진 저하, 주무시는 건가?”
이안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숨결이 고르기는 한데, 잡은 힘이 풀어지지 않았으니까. 를 두 번이나 읽어주었으나, 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안은 무릎 위에 서류를 올려놓고 오른손 하나로 종이를 넘겨댔다.
“로만드로 님, 몸 상태는요?”
“문제없지. 머리에 베개 대면 바로 잠들 것 같긴 한데. 이안, 그대는 어떠한가? 미안하네. 내가 쉬이 일어나질 못했어.”
“아닙니다. 헤일 대장이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사무직 체질은 아닌 것 같지만요.”
이안이 희미하게 웃자, 로만드로 역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틈으로 머리를 비집어 넣는 베릭. 이안이 놀라며 되물었다.
“베릭. 굴러다닌다더니?”
“이런 젠장. 대체 뭐여?”
“아니면 되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걱정 없구나.”
“주인아. 저번에 나 못 먹었던 고기, 다시 시켜도 될까? 이제는 고기 먹어도 되거든. 진짜! 이것 봐라?”
와구와구, 베릭은 자신이 건강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보는 이안. 호오, 하고 짧은 탄성이 터졌지만 그뿐이다. 그는 서류에 집중하여 펜을 휘갈겼다.
“네르사른 님.”
“네. 이안 님.”
네르사른의 구릿빛 어깨가 움찔거렸다. 아아. 이 어색한 새아버지와 아들의 분위기를 어쩐단 말인가. 존칭조차 애매하다. 로만드로는 슬쩍 눈을 뒤집었고, 비비안나와 필리아는 고기 쇼하는 베릭을 괜히 달래주었다.
“실라스크에 관한 단서를 찾았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제가 갖고 있던 화분, 그걸 주었던 상단이 러더포드입니다. 이번에 마리브가 내란에서 썼던 호박색 원석, ‘이드갈’의 원천이기도 하지요.”
러더포드라. 네르사른은 들어본 적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사막에서 브라츠와만 교류하던 소수민족이지 않나. 이안에게 따로 일러줄 만한 정보는 딱히 없었다.
“부족장 윈첸의 상태는요?”
“이전과 같이 회복했다 할 수는 없지만, 잘 견디고 계십니다.”
집시의 지병 증세도 그러했으나, 당시에는 데르가 백작과 결탁했던 천려의 배신자 부마트 때문에 더더욱 위기였을 것이라. 그는 식량 관리 총책임자였고, 부족을 차지하기 위해 윈첸의 건강을 악화시켰으니까.
“러더포드가 바리엘로 들어오는 것은 가을쯤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나 그것이 하완국을 통할지, 아니면 다른 쪽을 통할지는 모르겠어요.”
“가을…….”
“바리엘로 들어오면 필시 접촉할 수 있으니, 그것에 관한 걱정은 없어도 됩니다.”
괜찮을까? 앙상한 가지처럼 말라 버린 윈첸이, 그때까지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문득 앞섰으나 방도가 없었다. 네르사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칸께는 전서구를 쓰시지요. 여행을 겸하여 천천히 내려가신다 하니, 시일이 오래 걸릴 것 아닙니까?”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응?”
작게 손뼉 치며 베릭의 고기 먹는 모습을 구경하던 필리아. 이안의 부름에 고개를 휙 돌렸다.
“그때 제가 상단에서 칭찬받았다고 하셨던 것, 자세히 기억하십니까?”
“자세히?”
“아니면 그날 이후로 제가 뭔가 이상했다거나, 평소와 다르다거나, 등등이요.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글쎄…….”
필리아는 희미한 기억을 열심히 더듬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이상한 건 그날의 이안이 아니라 지금의 이안이다.
죽을 뻔한 위기를 몇 번 겪었다고, 저렇게 의젓하고 영민해질 수 있나. 필리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칼을 매만졌다.
“별로 도움 안 되는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며칠 열꽃을 앓았어.”
“열꽃이요? 어찌하여서요?”
이안이 원인을 묻자 필리아가 당황해했다. 빈민가의 어린이였다. 열꽃이 난다 한들, 그 연유를 아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환경은 열악하고, 그들을 봐줄 의사는 없었지 않나.
“미안해. 그건 잘 모르겠어.”
“이안. 그, 원래 외국 상단 오가면 원인 모를 병이 막 돌고 그래. 열꽃 같은 거는 어릴 때 흔하지. 암.”
“맞아요. 어지간하면 바로 폈다가 지고 그래요.”
로만드로가 필리아의 안색을 살피며 거들어주자, 비비안나 역시 말을 덧붙였다.
혹시 원망한다 오해하나? 이안은 저를 바라보는 어미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단박에 필리아의 낯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안 경.”
그때, 진이 이불을 슬쩍 걷어내며 눈을 보였다. 희고 여린 눈가가 퉁퉁 부어있었다. 이안은 전등 빛을 손으로 가려주며 다정하게 물었다.
“저하. 깨셨습니까? 베릭 나가라 할까요?”
“아니, 내가 뭐? 나 한마디도 안 하고 고기만 먹었다! 진 저하님. 지금까지 떠든 거 다 이안이에요! 나는 억울하옵니다요!”
“어허, 이놈아. 시끄럽다. 말투도 이상하고.”
“뭐래. 로만드로 님이 더 시끄럽거든요?”
왁왁 싸워대는 로만드로와 베릭. 팔을 걷어붙인 비비안나의 미소 아래에서 강제로 평화를 되찾았다. 진은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업무가 바쁘면 그만 가보아.”
“시끄러우셨군요.”
“그런 건 절대 아닌데.”
“그러시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다들 일 때문인 것도 있지만, 저하가 걱정되어 이리 온 것입니다. 그렇지? 베릭?”
“응? 나? 암암! 그러치! 여기 고기!”
이안의 부름에 베릭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 고기가 없다. 진에게 좀 나눠주려고 들고 왔는데, 그사이 저가 다 먹어버린 것이다.
진은 저도 모르게 슬쩍 웃어버렸다.
“베릭. 일어나서 반갑다. 그때 못 먹었던 고기, 우리 나중에 먹자. 아주 맛있는 소고기더군.”
“헉. 언제요? 제가 밥 약속만큼은 딱 정하고 넘어가는 성격이라. 아침으로 같이 드실래요?”
“이놈이 어딜 저하랑 겸상을!”
“아악! 시아도 진 저하님이랑 밥 먹었다고!”
따악!
로만드로와 베릭이 다시금 투덕대자 비비안나까지 큰소리를 내었고, 필리아는 이도 저도 못하며 그들 사이를 말려댔다.
“시끄럽지요?”
“아니. 좋아.”
이안의 물음에 진이 중얼거렸다. 홀로 훌쩍이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오히려 이것이 좋았다. 진은 이불 속에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물었다.
“그런데 이안 경.”
“예. 저하.”
“혹 자네, 동생이 있어?”
“예?”
동생이라니? 자신한테?
이안이 눈썹을 치켜들자, 진 역시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로버사이드 님이 일러주던데. 동생이 아주 어여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