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50
제250화. 반대파 귀족 서명
적요한 사무실.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시간이었다.
이안은 올곧은 시선으로 서류를 살펴보다 미간을 짚어댔다. 아까 진과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 떠오른 탓이다. 체력적으로 다시 한계에 봉착해서 그런 걸까, 집중이 쉬이 되질 않았다.
‘저하. 이건 당분간 저희끼리의 비밀로 해주십시오. 어머니는 희소식이 있다면 먼저 일러주실 분입니다. 모르고 계신 것 같으니, 저희도 모른 척하는 게 좋겠습니다.’
‘응. 그리하겠네!’
‘그런데, 어여쁘다 하더이까?’
‘아주, 아주.’
이미 진이 꿈속에서 만나는 로버사이드가 허상이 아님은, 아르센 사태로 증명되었다. 비비안나의 언질도 그러하고, 이번에는 동생이라. 대체 뭐 하는 조상인지 모르겠다만, 언질 하나하나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혹, 필리아가 서자 이안 외 다른 아이를 낳은 적 있는 걸까? 아니라면 데르가 브라츠의 또 다른 서자?
톡톡.
아니지. 이안은 펜촉을 가볍게 털어내며 잉크를 덜어냈다. 데르가에게 서자가 더 있었더라면 진즉 그가 알았으리라.
기회가 좀 많았는가? 한 영지가 몰락하고, 재건되는 사이 주민들 틈에서 말이 돌았을 게 분명했다. 역시 필리아와 네르사른 쪽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축복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이안은 그저 그리 생각하며 서명을 그었다. 필리아가 친모도 아니고, 사실 친모였다 한들 문제 될 것도 없다.
오히려 반길 일. 앞으로 그가 히엘로령으로 내려갈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두 사람의 아이는 문화적 융합을 위한 첫 발걸음이자 굳건한 동맹의 초석이 될 터.
‘무엇보다 필리아에게 참으로 다행이다. 그래.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게 전부이지, 무엇이 또 있겠나?’
황궁의 모두가 치열하게 다투며 갈등하고 합의점을 이끄는 과정이, 바로 그런 것을 위한 것이다.
거대한 역사를 이루는 온전한 한 명의 삶. 가끔 주위가 너무 휘몰아치다 보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이안은 놀랍게도, 언제나 사소한 일상에서 길을 찾아냈다.
“커어억…….”
예컨대, 마법 난로 앞에서 곯아떨어진 베릭의 코골이 따위 같은 것 말이다. 저런 것도 어찌 보면 온전한 한 명의 삶이라 볼 수 있지.
흐음. 이안은 진지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다 서류철을 덮었다.
…….
평화로운 집무실 분위기와 달리, 그가 보고 있는 것들은 하나 같이 파란을 일으킬 제목들이었다.
똑똑.
“실례합니다.”
“들어오거라. 마침 다 되었어.”
“아아.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세르오에서-”
마법사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퀭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서류철을 차곡차곡 품에 안다가, 이안을 보곤 멈칫거렸다. 창백한 피부, 짙어진 눈매 그리고…….
“이안 님. 코피 나는데요.”
“음?”
코 아래 살짝 비치는 붉은 기. 이안은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고, 마법사가 재빨리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드르렁대던 베릭이 소란을 알아채곤 상체를 번쩍 일으켰다. 그의 입가에 침이 쭉 늘어졌다.
“헐, 뭐여? 뭐여!”
“소란스럽구나. 베릭.”
“피 난다, 이안아! 미친! 쌍코피다!”
“다른 사람들 모두 깨울 참인가?”
“깨울까? 깨워?”
“…가서 헤일 대장만 데리고 오거라.”
이안은 가볍게 손짓하여 베릭에게 지시했다.
그는 크게 휘청거리며 곧장 문밖으로 굴러나갔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왜 마법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도는지 알 것 같다. 이안은 손수건으로 코를 받치며 연신 의자에 목을 기대고 있었다.
“그나저나, 세르오가 왜?”
이안은 피로하여 눈을 감고 되물었다. 가만히 그 외모를 바라보던 마법사가 화들짝 놀라며 보고를 이었다.
“하이만을 비롯한 일곱 가문의 저항이 생각보다 심하다 합니다. 아무래도 중앙을 받치고 있던 자들인지라, 사법부와 행정부에서 업무 보는 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 전해왔어요.”
목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가문의 존폐까지 달려있으니까. 게다가 말이 일곱 가문이다.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일원이나 사용인 그리고 지연과 학연 등 사소한 인연까지 모두 묶는다면, 바리엘은 스스로 왼팔을 자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희생을 치르게 되리라. 더 나은 미래를 그리지 않았더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희생이었다.
“그래서?”
“일정이 늦어지니까, 세르오 가문이 대표하여 반대파 중앙 귀족 서명을 모았다고 합니다.”
“반대파 중앙 귀족?”
이것 봐라? 반대파?
이안은 그제야 눈썹을 까딱거리며 마법사를 돌아봤다. 조금 의외라는 듯이 말이다.
아주 이른 시기였다. 중앙 귀족이라는 덩어리에서 하이만을 도려낸 지, 고작 며칠 안 되었건만. 그사이 남은 자들끼리 의미를 명명하여 단체를 구성했다는 게 놀랍지 않나? 특히 그것이 ‘반대파’라는 건 더더욱 의미심장했다. 무엇에 반대한다는 것인지 특정할 수 없었으니.
“네. 현재 사법부에 제출 완료되었고, 거리 곳곳에도 사안이 알려졌습니다. 물론, ‘마력확인식’ 사태는 아니고, 일곱 가문의 반역 사태에 관해서요.”
세르오는 그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하이만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채워주고, 노골적인 황궁의 견제를 희석해 주며, 다른 귀족을 원하는 대로 결속할 방편 말이다.
그런데, 이리 먼저 나서서 반대파 서명을 이끌었다? 이안은 펜 뒤에 달린 깃털을 슬쩍 흔들었다.
‘하이만과 일곱 가문이 서둘러 숙청당해야 저들에게 기회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황실 사람들 못지않게, 하이만의 몰락을 기다리고 있을 터. 하지만 이리 언질 없이 움직이는 것은…….’
뭐랄까. 거슬린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 터다.
중앙 귀족의 절반은 하이만의 세력이요, 나머지 절반은 그걸 규탄하는 자들인데, 거기서 세르오가 ‘예상보다 뛰어나게’ 그들의 중심부를 차지한다면?
일곱 가문이 사라지고, 그 콩고물을 받아먹은 세르오의 몸집이 어디까지 불어날 수 있을까? 제2의 하이만 탄생이 아닐 것이라,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 너무 열의를 보이면, 그건 그것대로 난감하다, 세르오 경.’
이안은 속으로 혀를 쯧쯧 차댔다. 그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진과 이안, 즉 황궁에 충성 쐐기를 박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훗날을 도모하여 귀족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인지.
무엇이 되었든, 그는 지금 아슬아슬하게 이안이 세워둔 선을 밟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밟으라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일단 알겠다.”
우선은 벌어진 일. 의도가 어찌 되었든 받아 먹어두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그때, 헤일 대장이 다급하게 집무실을 열어젖히며 들어섰다.
우탕탕탕!
콰앙!
“장관님! 과다출혈이시라고!”
“어, 헤일 대장. 이리 와서 마력 좀 주게.”
“마, 마력을요?”
이안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자, 헤일은 발걸음을 멈췄다.
뭐라고? 마력을 달라고? 또?
어지간하면 체력적으로 힘든 적이 없었는데, 헤일은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체 이안의 마력통 크기가 얼마 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지 않나. 차라리 마물 전투에 가서 몇 번 구르는 게 깔끔하고 편할 것이라.
뒤따라온 베릭이 헤일의 등을 밀며 재촉했다.
“뭐 해? 주인이가 마력 달라잖아!”
“이봐. 지금 네 일 아니다, 이건가?”
“네 일은 네 일! 내 일은 네 일!”
옆에서 가만 듣고 있던 마법사가 손수건을 바꿔주며 제안했다.
“이안 님. 그러지 말고 좀 주무시지요. 아무리 마법사라고 한들, 외부 마력으로 체력을 회복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차라리 깊게 한숨 주무시는 게 효과가 좋을 것입니다. 고작 하루 주무시고 일어나서 또 계속 업무 보셨잖아요.”
걱정하는 것치고는 새벽부터 결재 서류를 받아가는 것이 모순이지만, 뭐, 이안은 일리 있는 조언이라 여겼다. 그는 침대가 있는 안쪽 방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세르오는 지금 출궁한 것이겠지?”
“예. 금언 마법을 제일 먼저 받고 나갔습니다.”
이안의 세력이 되고자 하여 얻었던 특혜.
이안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했다. 지금 세르오는 하이만의 뒤를 이을 생각에 아주 신이 나서 흥분한 것 같은데, 그걸 대놓고 나무랐다가는 계산할 변수가 다시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점심이 지나서, 멜라니아 영애를 이쪽으로 데려와라. 함께 식사라도 들자고 하지.”
“여기서요?”
“보시다시피, 나는 바쁘고 영애는 갇힌 몸 아닌가.”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하겠습니다. 푹 주무시어요. 나머지 보고서도 그때 가지러 오겠습니다.”
마법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만 으쓱거리고 집무실을 나섰다. 헤일 대장 역시 슬그머니,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했으나, 베릭이 온 힘을 다하여 그의 팔에 매달렸다.
“어딜 가! 이안이가 마력 달라고 하잖아!”
“나보다 그쪽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오? 그런가? 이안아, 그래?”
“안 그렇다. 헤일 대장. 어서 오시게.”
이안은 야무지게 베개를 정돈했다. 그러곤 정자세로 단정히 누워, 손가락만 까딱거렸다.
헤일 대장은 꺼끌꺼끌한 수염을 매만지며 그 옆으로 의자를 끌었다.
스윽.
“이거, 마력증폭제라도 맞아야겠습니다.”
“아코렐라 대장이 나 때문에 맞았다고 들었는데. 부작용은 괜찮다 하던가? 크게 없다면, 차라리 내가 직접 맞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이만의 죄목 혐의에 ‘드래곤 각린’이 들어가 있었다. 아코렐라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지만, 그녀는 마력증폭제를 맞은 이후 지상으로 두문불출하여 모습을 쉬이 보이지 않았다. 혹자는 부작용 때문이라 하고, 또 혹자는 언제나 그렇듯 연구 중이라 여기는 듯했다.
“예. 뭐. 어제 보니까 땀 좀 흘리는 것 말고는 평소랑 똑같아 보였습니다. 실험 단계다 보니 만든 본인도 부작용이 뭔지 모르더라고요. 저 혼자 열 재다가, 웃다가, 뭐 기록하고…. 미친 줄 알았습니다.”
“아코렐라 대장은 원래 미쳤잖아.”
지이잉. 지잉.
베릭의 대꾸에 이안이 피식 웃었다. 그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베릭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않나.
이안은 인제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침대 옆을 툭툭 두드렸고, 곧이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히이잉!
끼익!
멜라니아는 로브를 완벽하게 뒤집어쓴 채 마차에서 내렸다.
이안이 그리 가고 난 뒤, 얼마나 자책하며 입술을 짓이겼는지 모르겠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걸, 조금만 더 이런 식으로 접근해 볼걸, 그랬더라면 이안이 더 크게 반응했을 터인데, 등등. 원체 주위가 암흑이다 보니, 실낱같은 희망이 더더욱 간절했다.
“이쪽입니다.”
이안이 다시 저를 불렀다. 이는 어떤 식으로든, 이안이 입질을 보여준 것이라. 멜라니아는 침착하게 마법사의 안내를 따라 집무실로 나아갔다.
“아니, 잠깐만! 로만드로 님. 그거 내 건데?”
“이놈아, 여기 네게 어디 있어? 다 이안이 샀잖아.”
“여기서 내가 제일 많이 먹으니까 내 거지요!”
“시아야, 너도 이리 와서 좀 먹어라.”
“아닙니다. 주인님. 괜찮습니다.”
“떼잉. 저저, 같은 심복인데 가성비가 저리 달라서야, 원. 베릭, 너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악! 물었어? 지금 물었어?”
인기척을 내려던 마법사가 멜라니아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무슨 변방 학교 점심시간도 아니고, 마법부 장관 집무실에서 나올 법한 소란의 결이 아니지 않나. 마법사가 목을 가다듬으며 멜라니아의 도착을 알리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안. 하이만 막내딸은 왜 부르는 건데?”
베릭의 물음에 멜라니아가 마법사의 손목을 잽싸게 잡아 쥐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말을 엿듣게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처신에 맞지 않은 행동이기에, 마법사가 당황해서 멈칫거렸다.
“음. 베릭. 혹 격투 경기를 본 적 있나?”
“직접 뛴 적도 있는데? 근데 갑자기 무슨 격투?”
“거기 보면 우승자가 있고, 도전자가 있지. 따지자면 하이만은 우승자요, 세르오는 도전자다.”
“우리는?”
“우리는 경기를 관장하는, 단장?”
이안은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으며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았다. 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엿듣던 멜라니아가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면, 멜라니아 영애. 그만 엿듣고 입장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