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51
제251화. 출궁
사교계의 중심이었던 멜라니아. 하이만 가문의 유일한 딸이자, 막내였고, 아름다운 외모 및 자태로 언제나 주목받았던 여인.
그녀는 숱하게 많은 시선을, 많은 상황 속에서 감당하고 즐겨왔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결코 겪어본 적 없었으니. 목덜미로 식은땀이 슬쩍 배어나왔다.
“…식사 중이신 걸 몰랐습니다.”
네 남자가 제각각의 방식으로 저를 가감 없이 보았기 때문이라. 베릭은 고기를 우걱대며 눈 하나 깜빡 않고 ‘구경’하는 듯하였고, 로만드로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며 그녀를 ‘주시’했다.
뒤편에 서 있는 시아오시는 더더욱 가관이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시각 대신 온 감각을 동원하여 그녀를 ‘경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문제의 이안은-
“괜찮습니다, 영애. 요즘 워낙 바쁜지라, 식사 시간을 따로 두지 않아서요.”
‘관망’이다.
들어오기 전, 이안의 말을 전해 들어서일까? 멜라니아는 이안의 느긋한 칼질이 참으로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죽음을 판돈으로 건 자들이 혈전을 벌이는 동안, 산해진미를 곁들여 눈요깃거리 하는 투기장의 단장이 연상되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하여도, 멜라니아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 신분이었지만 말이다.
“어서 먹거라. 베릭.”
“응.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직접 부른 손님이 들어왔으나, 이안은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 무례하지만, 그들 사이에 무례라는 게 과연 성립되는가?
멜라니아는 이안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챘다. 주제 파악이요, 절대적인 상하 관계의 깨달음 그리고 일종의 기선 제압.
스윽.
멜라니아는 제 발치에서 끝나는 카펫을 내려다봤다. 한 장소에 같이 있지만, 이걸 기점으로 저들과 멜라니아의 위치는 확실히 달랐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투기장에 오른 상태였고, 이안은 내려다보며 즐기는 자였다. 인정할 필요가 있었다.
‘…태양마저 하루를 못 가고 진다. 인간의 권세 또한 마찬가지. 질 때가 있고, 기다리면 다시 올라온다. 기다리면, 다시 올라. 필시, 그것이 진리다.’
그녀는 드레스 소매 아래 숨겨져 있던 주먹을 꾹 쥐었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나 예의 있게 고개를 숙였다. 먼저 저를 부른 건 이안이었으니, 그가 용건을 꺼내기 전까지 기다리는 게 예의였다. 적어도, 상하 관계가 있는 지금의 상태라면.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신경 써주신 덕분에요.”
이안의 녹안이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가벼운 물음과 함께 포크와 나이프가 놓였다. 식사가 마무리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라. 베릭은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그릇을 싹싹 긁어댔지만 말이다.
“멜라니아 영애. 그대가 제안한 것 말입니다.”
하이만 가문을 살려주면 모든 걸 내놓고, 또한 이안의 과거 역시 일깨워주겠다는 제안. 멜라니아는 혹여나 싶은 기대로 마른 침을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타산이 안 맞아요.”
“저기, 이안 경.”
“세부 사항을 조율하는 게 좋을 듯싶은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세부 사항을 조율하면 하이만을 살려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이든 하리라. 못 할 것이 없다.
희망에 취한 그녀가 그리 다짐하는데, 문득 생각의 고리가 끊어졌다. 세르오, 그 이름이 떠오른 것이다. 하이만이 우승자라면 세르오가 도전자라는 그 비유.
그렇다면, 세부 사항 조율에는 필시 세르오에 관한 내용이 들어갈 것 아닌가?
“우선, 그대가 내밀었던 제안 중 제일 큰 것은 은행권 지분 및 과세 감당이라. 하지만 이는 하이만 가문이 몰락하면 자연스럽게 황궁으로 흡수될 부분이지요. 하이만을 살려두는 것보다, 되려 뿌리까지 잡아 태우는 것이 우리에게는 이득입니다.”
하이만이 없으면 모두 귀속될 재산들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일정 부분은 세르오를 비롯하여 남은 귀족들에게 특혜로 돌아갈 터.
하이만이 승부를 걸 부분은 바로 이 조그만 부분에 있었다. 황궁의 몫이 아닌, 다른 귀족의 몫으로 떨어질 이득. 이걸 지켜내면 우승자의 방어전이 성공하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도전자가 새로이 명예를 거머쥐게 된다.
멜라니아는 머리에 열이 오를 정도로 생각에 잠겨있었다. 지금, 그러니까…….
“세르오 가문보다 더한 가치를 증명하라는 말씀이군요.”
“더한 것으로 만족하겠습니까? 그대들은 반역자인데. 가치가 과하게 넘치어 멜라니아 그대 한 명쯤은 살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게끔 만들어보시오.”
한 명. 멜라니아는 그 부분을 곱씹었다. 공작인 아비를 비롯하여 가족들을 살려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더더욱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 끝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으나, 고통보다는 정신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혹, 원하는 바가 따로 있으십니까?”
무언갈 얻어내려면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다름 아닌, 내란죄 아니던가. 멜라니아는 이안이 저에게 기회를 준 것만 하더라도 괄목한 상황이라는 걸 잘 인지하고 있었다. 대외적인 정세 외, 저와 과거의 인연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확신할 수는 없겠다만.
“아니, 내가 하이만에 바라는 게 무엇 있겠습니까? 알아서 하세요.”
“…하면, 출궁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멜라니아. 황궁은 애초부터 그대의 거처에 말 얹은 적이 없습니다. 저택을 떠나온 건 순전히 자발적인 선택 아니었나요?”
나가든 말든, 알게 뭐란 말인가? 어차피 저택에는 그녀의 작은 오라비가 남아 있었다. 황궁 경비들의 감시를 받고 있겠지만, 재판에서 죄가 확정 나기 전까지 나름의 자유를 즐길 수는 있을 터.
‘원하는 바는 없고, 알아서 해보라고?’
멜라니아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상대는 세르오다. 이안을 지지했고, 그 혜택을 톡톡히 받을 가문.
따지자면, 그는 단장의 애정을 듬뿍 받는 투사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를 제치고 가치를 증명하라니.
‘내가 세르오보다 나은 가치를 입증하려면, 무언갈 보여주기보다 그쪽을 끌어 내리는 게 훨씬 수월하고 확실해. 이안 경이 그걸 모를 리는 없고. 견제하려는 것인가?’
사실이라면 참으로 무섭다. 아직 일곱 가문이 꺾이지 않은 시기. 결집해서 마무리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칼을 갈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는 곧 일곱 가문이 문제없이 몰락할 것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상대의 마지막을 확신하기에, 제 옆의 동료를 점검하는 게라. 권력을 쥔 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이안 경. 한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멜라니아는 조심스럽게 로만드로와 다른 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운을 떼었다. 사지를 다 잘라 버리고, 숨통만 겨우 터준 정도의 미미한 거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안은 어찌 호박색 원석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일까?
“어찌 하문하지 않는지요.”
비밀은 소수만 알고 있을 때 힘을 발휘한다. 멜라니아는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은근히 애매하게 돌려 물었다.
로만드로와 베릭이 무슨 말인가 싶어서 이안을 쳐다봤다. 그는 연신 여유롭게 찻잎을 우리고 있었다.
“멜라니아. 그대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
“명예, 재력, 권위 그 어떤 것도. 그러니 과거의 일은 그대가 가진 유일한 협상 카드이자, 공격권이요, 한편으로는 방어권이 되겠지.”
안 알려 줄 것 알고 있어서 안 물어봤다는 대답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파라는 말이 있듯, 완벽하게 우위를 정한 이안이 아쉬워서 먼저 나설 필요가 전혀 없지 않나. 가치를 증명하라는 명령에 이안이 하문을 덧댔다면, 멜라니아는 필시 틈을 노려댔으리라.
“무엇보다, 솔직히 별로 안 궁금해서.”
이안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싱긋 웃었다. 반은 거짓이요, 반은 진실이다. 서자 이안이 이드갈과 연관되어 있다 한들, 상황만 잘 이용한다면 크게 문제없을 부분이다. 문제가 된다면? 멜라니아가 지금 밝힌 것으로 보아 치명적이지 않을 문제에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이만 나가보시지요. 황궁 경비들이 저택까지 안내해 줄 겁니다.”
이안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일방적인 대화의 마무리다.
멜라니아는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드레스 자락을 우아하게 잡아 쥐었다. 무릎을 까딱거리는 인사. 알게 모르게 딱딱하다.
끼이익.
쿵!
멜라니아가 나가자, 베릭은 번들거리는 입가를 닦아내며 신나게 남은 고기를 썰어 먹었다. 나름 손님 있다고 조용히 먹었던 것 같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게 흠이다만.
“이안. 멜라니아를 저리 보내는 게 의미 있을까?”
“루스웨나로 도망갈까 봐 걱정되십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지. 황궁 경비가 감시할 것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루스웨나에서 받아주면 우리는 고마운 일 아닌가?”
내란죄에 가담한 자를 받아주었으니, 외교적으로 문제를 걸어도 할 말이 없다.
이는 루스웨나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인접한 그 어떤 나라라도, 일곱 가문의 망명 및 도망을 도울 수는 없으리라. 이는 곧 바리엘 자체를 적으로 두겠다는 선전포고와 같으니까.
“말 그대로 의미가 있나 싶은 것이라. 재산은 동결되었고, 주축이었던 자들 모두 황궁에 잡혀 들어와 있으니 바깥에 나간다 한들 뭘 할 수 있겠나? 맨몸으로 거리에 던져진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단 말일세.”
“맨몸으로 던져져도 살아남을 자는 살아남습니다.”
“그,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신빙성이 상당하다만.”
천한 서자의 출신으로 사막까지 팔려가서 살아돌아온 자다. 살아 돌아와 단기간에 귀족 작위를 얻고, 이어서 황궁의 중심이 되었다. 신화를 새로 쓰고 있는 자가 저리 말하니, 할 말이 없긴 하다.
로만드로는 괜히 굴라 씨앗만 오도독 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멜라니아 영애를 걱정하는 건 절대 아니네.”
“압니다. 로만드로 님이 어찌 내란죄에 얽힌 자를 걱정하시겠습니까.”
가족과 재산,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해낼 자는 해낸다. 하이만이 백 년 후까지 남게 된 게 그저 우연한 산물일까? 단 한 명의 염원이 죽지 않고 끈덕지게 살아남아, 백 년 후의 하이만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진 치하의 바리엘에서는 잡음이 없어야 했다. 멜라니아를 제외한 하이만 모두, 그리고 어설프게 들떠서 주제 파악하지 못하는 귀족들, 더 나아가 틈새를 노리고 들려는 외세까지.
달그락.
이안은 싱긋 웃으며 찻잔을 가볍게 내저었다.
* * *
“하하핫! 역시 세르오 가문이십니다.”
“예예. 저도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였지요? 1황자의 처형식 날, 온실에서 이안 경과 대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걸 알고 있었나?”
“그럼요. 다들 알음알음 알고 있었지요.”
“진 저하도 그 자리에 함께셨네.”
“오호! 차기 황제이신 진 저하께서 제일 먼저 알현한 가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런 것도 기록으로 남나? 하하하핫!”
좋게 말하면 고즈넉하고, 나쁘게 말하면 적막했던 세르오 가의 저택. 저택은 이제껏 한번도 누리지 못했던 손님들의 발걸음을 맞이하느라 정신 없었다. 노쇠한 집사는 연이어 끊이질 않는 손님들의 외투를 챙기느라 정신이 빠질 참이다.
세르오는 얼큰하게 취해서는 담배 하나를 꺼내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자들이 하나같이 라이터를 들이밀었다.
‘하.’
이게 대체 무슨 호사란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세르오인데.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알랑방귀를 뀌어대고 있었다.
“그러면 하이만 가의 은행업은 세르오께서 이어가시는 겁니까? 입찰할 때 아무래도 그리하시겠지요?”
“크흠. 아직 자세한 건 잘 모르겠는데…….”
세르오가 뒷말을 흘리려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서 분위기를 초칠 수 없지 않나.
“세르오 경. 나중에 시간 되시면 제게 누이를 소개해 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허, 자네. 이제 곧 공작이 되실 분인데! 적어도 이안 경이나 저기, 황실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
“황실?”
“예. 하이만이 귀족과 황족의 사이라. 세르오 가도 그리 되면 전혀 무리인 것도 아니지요.”
누군가의 말에 세르오가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이만이 없어지고, 현재 분위기만 이어간다면 귀족들의 수장 가문은 세르오가 될 것이라. 그러면 이안이 거절했던 혼담도 다시 들이밀 수 있겠지.
“하하핫! 하하!”
세르오가 간질간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어색하게 그걸 지켜보다, 따라 웃었다. 치하하고, 꾸미고, 치켜세우는 거짓된 대화들이 끊임없이 흘러넘쳤다.
그러던 중.
드르륵.
“오오, 다들 여기 계셨군요.”
“어서오시게. 금언 마법은 받았나?”
“순번이 밀려서, 이거. 하하.”
황궁에서 나중에 빠져나온 한 귀족이 합류했다. 그는 외투를 시종에게 벗어주며 전언했다.
“근데 그, 멜라니아 영애도 출궁했다 하던데요. 세르오 경. 혹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응? 멜라니아가?”
“예. 마차 나가는 걸 보았는데요.”
다들 의아하게 세르오를 돌아봤다.
하이만 가의 막내딸이 멀쩡하게 출궁이라니?
하지만 세르오는 의아하게 고개만 갸웃거리며 담배를 태워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