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53
제253화. 소문
“안녕하십니까, 이안 경.”
“어서 오십시오.”
이안은 세르오의 손을 맞잡으며 자연스럽게 그를 훑었다. 겉에 걸친 코트 하며 넥타이핀 그리고 구두 따위가 상당한 상등품으로 변해있었다.
이전에는 그저 귀족의 체면을 유지할 정도의 적당한 차림새였다면, 이제는 재력 과시 목적이 분명하다 할 정도로 최상등품들이다.
임대업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가문에서, 갑자기 돈뭉치가 떨어진 것은 아닐 터고…….
“오늘 상당히 멋지십니다.”
“이안 경에게 그런 말을 들으려니, 면구하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둘 중 하나겠지.
미래에 대한 기대로 수익을 끌어다 썼거나, 혹은 다른 귀족들이 줄타기 명목으로 갖다 바쳤거나.
무엇이 되었든 그리 탐탁지 않은 변화임은 틀림없었다. 무릇 괜찮은 재목이란, 그 무게가 진득하여 상황이 변한다 한들 스스로 중심을 지킬 줄 알아야 하니까.
세르오는 소파에 앉아 있는 진을 보더니 잠시 놀란 눈치를 보였다.
“오, 진 저하. 안녕하십니까. 말론 호프 세르오 인사 올립니다. 함께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잘 계셨나요?”
“덕분에. 앉으시오.”
세르오는 예의 있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소파 맞은편에 자리했다. 이안이 그를 살폈듯, 그 역시 나름대로 이안의 집무실을 살피는 중이었다.
“차를 내오거라.”
“예. 이안 님.”
로만드로라는 보좌관과 그 옆에 쌓인 서류 더미 그리고 제이럿 대장에게 흠씬 터졌던 붉은 머리 호위, 오드아이 사내까지…. 진과 이안의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게 여전하다 싶었다.
황자께서는 아직도 처소를 안 옮기시는 건가? 보호자 없는 진이 이리 나오면, 진실로 이안의 권위를 가늠할 수 없어진다. 세르오는 괜히 손바닥을 비비며 희게 웃었다.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어디서요?”
“예?”
이안이 갑작스레 되묻자, 세르오가 놀라서 반문했다. 귀가 있으면 여기저기서 다 들리는 말인데, 저리 물으면 대체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가? 마법부에서 변절자가 나왔다는 소문이 있다. 혹 그걸 의심하는 건가?
세르오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자, 이안이 싱긋 웃었다.
“좋은 모습이 아니라, 민망하군요. 모두가 고생해 주어 지금은 상당히 나아졌답니다.”
“그, 그렇군요. 마-”
마물과 맞선 것치고는 큰 피해 없어 다행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인지하기도 전, 목구멍이 콱 막히는 고통으로 헛기침을 남발했다.
‘금언 마법인가?’
이안은 세르오의 헛기침을 모른 척해주며 말문을 돌렸다. 굳이 쓸데없는 안부 따위를 나눌 필요가 있나? 그걸 나눌 바에, 업무를 보거나 진과 책을 읽는 게 생산적일 것이라.
“하여 어쩐 일이십니까? 귀족들이 황궁 출입을 꺼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들어만 갔다 하면 허구한 날 일이 터져 봉쇄되니, 아예 중앙을 떠나겠노라 한 자들도 몇 있었다.
“다름 아니라,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와 뜻이 맞는 귀족들이 합심하여 서명을 냈습니다. 그 아랫것들까지 모두요.”
이안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를 보고 있던 진 역시 마찬가지로 따라서 눈썹을 치켜세웠다.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본 세르오가 잠시 멈칫거렸으나, 이내 말을 이었다.
“사법부에서 재판일 잡는 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 그리하였는데…….”
“네.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이만 가문의 멜라니아 영애가 출궁했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우려스러워서요.”
진이 이안을 돌아봤다. 저는 종지부를 찍기 위해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고생하고 있는데, 이안은 어찌하여 멜라니아를 놓아주었는지 묻는 것이라.
“우려하실 것 없습니다. 세르오 경의 도움 덕분에 마침 사법부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재판일이 잡혔답니까? 어허. 몰랐어요.”
“…모르시는 게 당연하지요. 저도 방금 들었는걸요.”
움찔, 가만 엿듣던 로만드로가 펜을 멈추고 눈을 굴려댔다. 세르오 저자는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걸까? 마치 이안만큼이나 황궁 사안을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태도다. 슬금슬금, 보이지 않는 선을 향하여 발 끄트머리가 들어왔다.
“그리고 멜라니아 영애는 애초부터 조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입궁을 스스로 한 것이라, 출궁 역시 크게 문제 삼지 않았어요. 세르오 경. 알고 계실 텐데요? 일곱 가문의 다른 직계 가족들이 궁 밖에 남아 있다는 것을요.”
“예예. 알고 있지요.”
“무엇 하고 있답니까?”
별것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 질문이었으나, 세르오는 그 속에 숨겨진 가시를 감지했다.
내란과 아르센 사태를 거치며 황궁 전력이 손실된 상태 아니던가. 그러니 응당 세르오에서는 남은 귀족 잔재들을 감시하고 압박하여, 황궁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제 역할이었다. 세력을 결집하여 ‘반대파’ 따위의 이름을 명명할 게 아니라.
세르오는 다시 습관적으로 손바닥을 비벼댔다. 땀이 슬쩍 배어 나왔다.
“저들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서신 따위를 보내며 도움을 요청하더이다. 제가 귀족들을 한데 모아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중간에서 잘 잘라냈습니다.”
모아서 지켜봤다기보다, 모임을 즐기고 있었다는 게 맞았다. 하여, 해당 일곱 가문에서 시종들이 접선하러 오면 전서를 대놓고 읽어대며 조리돌림하곤 했다. 보는 앞에서 찢고, 조롱하여, 거절 의사를 보이며 끈끈하게 유대를 쌓은 것이라.
세르오가 그럴듯하게 꾸며내자, 이안은 눈을 크게 뜨며 질문했다.
“그렇습니까? 접선을 시도하려던 귀족 가문은 어디 어디였습니까? 일곱 가문이 낭떠러지 앞에서 잡아보려는 줄입니다. 주시하는 게 좋겠어요.”
달그락.
찻잔 소리가 심상찮다. 세르오는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일곱 가문이 접선하려 했던 자들은 저의 저택에서 술과 담배를 함께 태웠던 자들이다. 하나의 세력으로 울타리를 짓고, 그 안으로 초대해 앞으로의 영광을 떠들어댔는데, 그 이름을 넘기라고?
그것도 불손함을 의심하기 위해?
‘그건 좀…….’
귀족들끼리 앞으로 잘해보자 해놓고, 뒤에서는 황실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고자질하는 것과 무엇 다른가? 세르오가 이안의 신뢰를 얻기 위해 다른 자들을 팔아넘기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입 다물고 있기에는…….
“세르오 경?”
“아, 예예.”
“왜 그러십니까?”
이안을 대놓고 거스르는 것 아닌가.
갈 곳 없는 시선이 거칠게 흔들렸다. 무슨 언사로 상황을 벗어나면 좋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세르오는 결국 개중 적당한 가문만 골라서 이안에게 고했다.
“…에이제인과 바우크만 경입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세르오 경의 조언을 바탕삼아, 그들을 친히 주시하겠습니다.”
적어도 에이제인과 바우크만에게는 ‘세르오가 이르기를, 일곱 가문이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친밀하다던데?’ 따위의 견제가 효과적으로 먹힐 것이라.
그리고 두 가문의 화살은 세르오를 향하겠지.
‘어허. 이안, 거참.’
로만드로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앉아서 세 가문 굴리는 솜씨가 가히 볼만하다.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아이의 시선이 이안에게서 떨어지질 않으니, 무얼 머릿속에 새기고 있는지 궁금한 참이다.
“…영애의 출궁이 문제없다는 걸 확인하여 참으로 다행입니다. 사실 저는 이안 경을 신뢰하여 상관없었지만, 곳곳에서 우려하는 말이 들려오더군요.”
“아쉽네요. 황궁에 대한 믿음이 그리 없다니.”
“이안 경, 그리고 이건 좀 서두른 말입니다만, 재판 후 하이만 은행 매각이 진행되면 저희가 어느 정도까지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까?”
하이만이 내란으로 멸문하는 것이기에, 막대한 재산 대부분은 황실에 귀속될 것이다.
영지와 저택 그리고 그림과 조각상 따위의 실물 재산은 분배와 안치가 비교적 쉬웠으나, ‘하이만 은행’과 같은 사업체는 상당히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특히 은행의 경우, 바리엘의 경제를 관통하는 거대한 줄기가 아닌가. 소유는 황궁에서 하되, 그 운영을 귀족‘들’에게 위탁하는 식으로 돌리지 않을까 싶다.
“아직 하이만 은행 전체 규모가 다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요. 그쪽과 관련해서는 저도 보고를 받는 입장인지라, 조금 기다리셔야겠습니다.”
“네. 물론입니다. 물론 기다릴 수 있지요.”
“기대되시나 봅니다.”
“예? 아하하!”
아니라는 말은 안 하는군.
이안은 세르오를 따라 방긋 웃으며 대화를 매듭지었다.
“다음에는 제 누이 알레나라도 함께 오겠습니다.”
“아.”
누이라는 말에 진과 로만드로가 고개를 휙 쳐들었다. 온실에서 한번 들이밀었던 혼담을 아직도 품고 있나?
노골적으로 분위기가 바뀌었으나, 세르오는 코트를 정돈하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하하. 사실 오늘도 제가 입궁한다 하니, 누이가 어찌나 따라오려 하던지. 이안 경. 귀족들은 제게 딱 맡겨두십시오. 걱정할 것 하나 없이, 제가 잘 다루겠습니다. 진 저하. 저하께서도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이안은 진을 대신하여 황궁 업무를 보는 오른팔이었다. 그렇다면 저는 귀족 사회를 대신하여 다스리는 왼팔이 되겠노라. 세르오는 그리 다짐하며 모자를 가슴팍에 올렸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진, 저하. 또 뵙겠습니다.”
“…가시오.”
끼이익.
그가 집무실을 나서자, 로만드로와 진이 동시에 펜과 책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봐도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다. 이안은 괜히 신경 쓸 것 없다며 시종에게 그의 찻잔을 치워 버리라 명했다.
“근데 저자 누이가 왜 이안을 봐?”
베릭이 굴라를 입에 와르륵 털어버리곤 씹어댔다. 뭐라고들 했는지, 솔직히 반쯤은 이해 못 했다. 로만드로는 펜촉을 톡톡 찍어 누르며 일러주었다.
“저자가 저번에 이안에게 혼담을 넣었단다. 정중히 거절하였는데, 은근히 또 들이밀어. 쯧쯧.”
“뭐!? 혼담? 내가 아는 그 혼담?”
“네가 아는 혼담이 그것 외 또 있는가?”
“미친. 돈 좀 있대?”
“있으면?”
“나대지 말라 그래.”
나대지 말라, 로만드로는 시원한 베릭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배를 잡고 웃어젖혔다. 혼담에 관한 것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확실히, 조금 아슬아슬한 태도가 많았으니까.
“크흠. 멜라니아 영애가 저자 기세 좀 꺾어주려나?”
“글쎄요. 제가 기대하는 바로는요.”
영애는 영민하고, 기세가 있다. 저가 원하는 대로, 귀족만이 할 수 있는 더러운 진흙탕 싸움에 세르오를 끌어들일 것이다. 온몸은 엉망이 되더라도, 살아남는 걸 목적으로 하는 자이니까.
* * *
한편, 세르오는 출궁하여 제 저택으로 돌아왔다. 저택 앞 길가에는 여전히 마차들이 즐비했다. 황궁으로 들어간 세르오를 기다리는 자들의 흔적이라.
쉽게 만날 수 없는 이안을 만났고, 거기에 황자까지 함께했다. 이 소식을 들려주면 저들의 손님들이 좋아서 까무러칠 터. 세르오는 마차가 정차하자마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끼이익.
“오셨습니까?”
“어, 그래. 손님들은?”
“안쪽에 계십니다만…….”
“허허. 왜들 여기서 기다려? 내 어련히 연락줄 것인데.”
“저기, 작은 주인님.”
집사가 세르오를 붙잡았다. 노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눈가의 주름을 깊게 잡았다.
“제가 지나가다 손님들 대화를 우연히 들은 것입니다만, 혹시 몰라서 여쭙습니다. 하이만 가문과 거래한 것이 있으십니까?”
“하이만과 거래? 무슨 소리인가?”
“저희가 체투르 구역 임대를 하이만에게 해주었다 하던데요. 그, 그쪽 둘째 영식과 알레나라 님이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였다고요. 그, 그래놓고 지금 와서는 하이만과 인연 없는 척한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