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56
제256화. 일곱 가문 재판 시작
새벽달이 뜬 시간이었으나, 황궁 앞에는 이례 없이 구름 인파가 몰려들어 있었다. 일곱 가문의 마지막을 가까이서 지켜보고자 하는 자들의 행렬이다. 경비들은 성문 위에서 그걸 내려다보며, 특별한 날의 아침이 시작되는 것을 실감했다.
“슬슬 열 시간입니다.”
“준비하지.”
“귀족들은 옆문으로 받는다 하였나요?”
“그래. 마차 크기만큼 열어두게.”
지금도 끝이 보이지 않는데, 해가 떠오르면 파도가 몰아치듯 밀려들 것이라. 일곱 가문과 함께 문지기들 역시 죽어나갈 예정이다. 시간 내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아마 최대한 성문에 붙어서 마도구의 울림을 훔쳐 듣겠지.
그들이 갑옷을 챙겨입는 그 시각. 황궁 본관을 비롯하여 각 부서의 건물에는 불이 훤하게 들어와 있었다. 특히 사법부, 그리고-
“이안 님.”
마법사는 치장 받는 이안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소파에 널브러진 모습, 단정한 머리칼, 배지, 정복 그리고 가죽 장갑까지. 마력확인식 날 아침에도 저랬던 것 같은데.
‘장관님이 저리 치장하면 꼭 누군가 죽는구먼.’
“왜 그러지?”
“아, 아닙니다. 오늘도 멋지십니다.”
“농담하러 왔을 리는 없고.”
“재판에서 제기될 의문 및 질문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확인해 봤는데 문제없습니다. 이대로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안은 가지 말고 기다리라는 뜻으로 손짓하여 종이를 넘겨댔다.
황궁 모두가 손잡고 가문의 목을 꺾어버리는, 사실상 재판이라기보다 행사에 가까운 행위다. 재판장이 고발장을 접수한 마법부에 무슨 질문을 하고, 답변은 어찌하며,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세밀하게 짜여있는 연극. 시작이 그러하듯 그 끝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락.
“문제없군.”
문제없다 일렀는데도 꼭 저리 마지막까지 확인하신다. 마법사는 체념한 듯 빙긋 웃으며 서류를 건네받았다.
“아, 그리고 멜라니아 영애 말입니다.”
“찾았다고 하던가?”
이안은 능청스럽게 되물었다. 제국방위부에서 경비대에 수배령까지 내렸으나, 그 흔적을 찾지 못해 발칵 뒤집힌 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택 및 대상자의 감시는 황실에서 내려온 명이었으니까. 딱 한 명, 멜라니아의 행방불명으로 인하여, 최악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다.
“아니요. 참 기이한 노릇입니다. 둘째 오라비에게 실담물약을 썼는데, 확실히 모르는 듯합니다. 아무튼, 황궁친위대 쪽으로 담당을 넘기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법부 쪽에도 도움을 요청했고요. 마력을 쓰면 바로 잡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되었다. 어차피 재판 선고가 나면 특별 추격대가 편성될 것인데, 무엇 하러 우리 인력을 내주나?”
“그건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손발 부족한데.”
“거절하겠다 전해. 아마 황궁친위대도 그리할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이안이 진에게 쥐여주는 수많은 고삐 중 하나다. 귀족의 약점을 잡아두면 견제가 되는 것처럼, 부서의 흠을 잡아두면 그들을 부리기가 쉬워질 터이니.
“다른 자들은?”
후, 이안은 살짝 빠져나온 앞머리에 바람을 불어댔다. 시종이 그의 신호를 알아채고 조심스럽게 머리칼을 다시 정리했다.
“쿠웰 가문에서 둘째와 셋째 부부가 밤중 음독자살했다더군요. 그것 외에는 문제없이 모두 저택에서 대기 중입니다. 선고가 떨어지는 즉시 전언하여 집행할 예정이라 합니다.”
일곱 가문의 수장 내외와 후계자들은 황궁에서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다른 가족들은 저택에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희망을 품고 있을까?
아니면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안은 시종이 달아주는 마법부 장관 배지를 손끝으로 매만진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이지.”
“네. 밖에 대기 중입니다.”
마법사의 말대로, 다들 일찍이 준비를 끝낸 모습이었다. 특히 드물게 정장 차림인 아코렐라가 눈에 들어왔다. 드래곤 각린 증언을 직접 하기 위함이라.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보호경과 마스크까지 착용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아코렐라 대장.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하던데.”
“예. 뭐, 걸을 만은 합니다. 말도 할 만하고요.”
“오늘 재판 끝나면 휴가라도 다녀오지.”
“그럴까 봐요. 지하실 공기가 탁해서 그런지, 더 죽겠습니다. 우에에엑.”
이안을 위해 맞았던 마력증폭제의 부작용이 꽤 오래가는 듯했다. 가까이 서 있으면 그 열감까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으니. 이안은 그녀를 위해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그, 나중에 보내주신 이드갈 말인데요.”
멜라니아가 전해주었던, 반쪽짜리 호박색 원석. 이안은 서둘러 말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건 없던데요? 그것 역시 결정체 분석했을 때 이드갈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혹, 제가 특별히 분석할 부분이 따로 있나요?”
“…아니. 되었다.”
결정체는 곧 그것을 만든 연금술사의 흔적이라 했다. 멜라니아의 말대로 이안이 직접 만들었다면, 이드갈과 다른 형태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멜라니아가 거짓을 고했을 리는 희박하다. 상단과 서자 이안의 관계를 알고 있고, 무엇보다 서자 이안의 기억이 어떤지 불분명하지. 쉬이 거짓을 꾸며냈을 리 없어. 멸문을 막기 위한 한 수였으니까.’
그렇다면 이안이 직접 연금술을 진행했다기보다 연금술사 이드갈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운 추론일 수 있겠다. 지금으로는 서자 이안 역시 마력운용자라 여겨지지 않나.
연금술과 마력, 어떤 결로 통하여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다만, 둘 다 초월적인 능력인 것은 공통적이니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출발하지. 후발대는 진 저하를 모시고 오거라.”
“네. 이안 님. 곧 뵙겠습니다.”
이안이 아코렐라와 함께 마차에 오르며 뒷일을 지시했다. 아코렐라는 마치 숙취에 시달리는 것처럼 연신 머리를 쥐어 싼 채 창문에 기대었다.
“아오, 골 울려.”
아무리 봐도 심상치 않은데, 여태껏 지하실에 박혀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아코렐라는 보호경을 번득이며 괜히 반발했다.
“저, 술 먹은 거 아닌데요.”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휴가, 유급으로 주십시오. 이거 다 이안 님 살린다고 제 수명 깎은 겁니다.”
이안은 뜻대로 하라는 듯 눈썹만 까딱거렸다.
타닥타닥, 마차가 힘차게 달릴수록 저 멀리 몰려드는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귀족들은 물론이고, 제국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재판장 인근으로 몰려드는 것이라.
“다들 아침부터 열심히들 산다, 증말. 어차피 재판장 안쪽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할 것 아닙니까?”
“귀족이 아니더라도, 입장권을 산 자들은 들어올 수 있다.”
“입장권? 와우. 그거 퀸타나 부장관님 제안이죠? 나도 나지만, 그쪽도 진짜 미쳤어. 돈에 미쳤다고요. 신나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세수 확보에 영혼을 판 사람 같으니. 돈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쯧쯧. 에라이, 부자나 돼라!”
“…내가 제안했는데.”
“…자고로 국력이란, 국고에서 나오는 법이죠. 역시 이안 님이십니다. 이안 님도 부자 되십시오. 아, 이미 부자시지요.”
“입장권을 사지 않았더라도, 바깥에 있는 자들 역시 안쪽을 볼 수 있어. 아코렐라, 우리 분명 같이 회의했던 것 같은데.”
마도구 설치 자리부터 시작하여, 사법부에서 마법부에 협조 요청 건으로 몇 번이나 회의가 열렸다. 그때마다 아코렐라 대장도 함께였는데,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다. 집중 따위 하나도 안 했던 것이라. 그녀는 머쓱한지 억지로 기침해대며 골골댔다.
“…제가 몸이, 콜록, 어으, 대가리에 주사기 꽂은 것 같습니다. 이안 님 살린다고, 제가, 커허억! 콜록!”
히이잉!
끼익!
이안은 어이없이 눈매만 가늘게 뜨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침 마차가 재판장 앞에 도착하였고, 이안은 부하들의 보고를 받으며 계단에 올랐다.
“마도구 설치는?”
“좌측 세 번째 기둥 옆이 생각보다 공간이 안 나와서요. 그쪽만 손보는 중입니다. 나머지는 이상 없습니다.”
아코렐라는 이안이 한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재판은 사법부가 아니라, 신년회가 열렸던 본관의 중앙 연회실을 개조하여 진행될 예정이었다. 홀은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고, 2층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연회의 아름다움을 끌어올리기 위한 채광이 완벽했다.
‘외부 쪽과 통하는 창문을 죄다 뜯어냈구나. 안 그래도 통창에 가까웠는데, 그것마저 없으니 계단 올라가면서도 안쪽이 훤히 보인다.’
여기에 소리 증폭 마도구까지 설치했으니, 구경하고자 하는 자들이라면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아코렐라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곳에 앉으며 관련 서류 자료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멍하니, 이마를 짚은 채 허공을 응시했다.
“…대장.”
“…….”
“아코렐라 대장!”
“어?”
마법사 한 명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흔들 때까지 말이다. 계속 눈 뜨고 앉아있었는데, 시간 감각이 토막 나서 사라진 것 같다.
언제 이렇게 되었지? 아코렐라는 황궁 관계자와 귀족들 그리고 입장객들로 가득 찬 주위를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곧 있으면 시작해요. 불편하신 거 있어요?”
“…시원한 물 좀 가져와. 얼음 동동 띄워서.”
“물수건도 가져다드릴게요. 평소보다 상태가 안 좋아요. 그럼 얼마나 안 좋아 보이는지 아시죠?”
“팍, 씨!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안은 타 부서 장관들과, 그리고 진 황자는 시아오시와 무언가를 속닥거리고 있었다. 로만드로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문제 있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였고, 귀족들은 평소답지 않게 조용하다.
아코렐라는 소란의 대부분이 뻥 뚫린 창밖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헐.’
드넓어서 끝이 안 보이던 정원이건만, 풀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발 디딜 틈 없이 까마득하게 모여든 인파 탓이다.
그들은 처음 보는 황궁의 내부와 마법사들 그리고 황자의 모습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질서를 유지하는 경비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창문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으리라.
‘야야야. 정신 똑바로 차리자.’
중요한 순간이다. 중앙 일곱 가문의 마지막을 장식할,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왜 이리 정신을 놓고 있나? 실수한다고 해서 재판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진 저하께서 처음으로 제국민들 앞에 나선 공식 행사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지, 암.
까득.
아코렐라는 어쩔 수 없이 주머니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깨물었다. 마력증폭제를 완화해 주는 약이었는데, 이 역시 실험 단계이지만 요 며칠 동안 효과가 아주 좋았다. 아코렐라는 혀끝으로 감도는 쓴맛을 느끼며 볼 안쪽을 씹어댔다.
‘젠장. 내가 진짜 유급휴가만 보고 간다. 당분간 표본 채집이나 하면서 쉬어야지. 에효. 루론석 핥고 싶어.’
끼이익.
쿵!
그녀가 얼음물을 막 삼켰을 때였다. 연회장 앞쪽 문이 활짝 열리고, 우렁찬 안내가 들려왔다.
“판사장님 드십니다! 정숙해 주십시오!”
우우웅-! 웅!
동시에 귓가에서 울리는 마도구의 울림. 내란을 지나며 몇 번이나 이안이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최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임은 자명했다.
소란스럽던 군중들이 기이한 감각을 이기지 못하고, 절로 숨을 죽였다.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를 따라 수백 명의 참관자 역시 일어섰다.
이 장엄한 현상에, 앞서 걷던 판사장이 긴장한 듯 입을 꾹 다물며 미소지었다.
“일곱 가문이라 그런가, 사법부 소속 판사들이 모두 나왔지? 1황자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워낙 수가 많으니까.”
“쉬이. 조용.”
흰 가발을 쓴 판사들이 줄지어 착석했다. 판사장은 봉을 묵직하게 두드리며 재판의 시작을 알렸다.
“제52398번, 하이만 가문 포함 일곱 가문의 내란죄 및 열 개 목 재판을 개장합니다. 해당 대상자들은 입장하시오.”
따앙! 땅! 땅!
봉이 두들겨질 때마다, 군중들의 어깨 역시 조금씩 움찔거렸다. 오른쪽 뒷문이 천천히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일곱 가문, 재판에 오를 스물한 명의 죄인들이 결박당한 채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