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59
제259화. 마력증폭제 부작용
재판의 승리를 만끽하는 자들이 큰 소리로 웃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하나의 큰 고비를 넘겼음이라, 그들은 이안과 진 가까이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안면을 터놓았다.
군중들의 환호성까지 더해져, 더할 나위 없는 축제의 장이다. 삶의 종지부를 앞둔 일곱 가문, 그리고 몇몇을 제외한다면.
“진 저하. 오늘 증언,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역시 영민하시어 이런 감명은 또 처음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다음에 뵐 때는 제국의 후계자시겠군요.”
“임명식 날짜는 정해졌나요? 혹, 저희 가문에서 수입하는 비단을 아시는지요. 감히 저하의 광명에 비하면 빛바래긴 했지만, 금실과 홍실의 조화가 나름 대단하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가문에서 저하의 임명식 정복을 올리고 싶습니다.”
“자네, 먼저 선수를 치는군. 하하! 저하, 저희는 포도주가 주력입니다. 제국의 거대한 축제이니, 온 거리에 포도주를 흘려보내도록 하지요.”
“고맙네. 나는 아직 못 먹지만, 즐기는 자들이 만족해할 것이라.”
어린아이 하나를 중심으로, 중앙 귀족들이 무리를 견고히 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하기 위해, 또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은근한 몸싸움을 해대고 있었다. 이안이 옆에 버티고 서있지 않았더라면, 희미한 질서마저 사라졌으리라.
“이안 님.”
그때, 마법사 한 명이 틈을 겨우겨우 헤집고 들어와 그를 불렀다. 앞으로의 처형 일정을 비롯해, 보고할 거리가 있는 것이라. 귀족들이 눈치 보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죄수들을 처형식장인 중앙 광장으로 호송할 것입니다. 진 저하도 함께 가십니까?”
“저하는…….”
이안의 중얼거림에 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름떼처럼 몰린 인파로 황궁이 포화 상태 아니던가. 여기서 저가 함께한다면, 호위 및 동원 인력이 가중될 터라. 군중들과 맞물려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마리브는 자신의 형제였으니 그 끝을 지켜봤을지언정, 일곱 가문의 마지막은 굳이 그럴 것 없다는 것 또한 이유였다.
“이안 경만 다녀오시오.”
“예. 저하. 현명하신 처사입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스물한 구의 시체가 중앙 광장 높은 곳에 걸려 흔들릴 것이라. 그 무에 보기 좋은 것이라고 고생을 감수하여 보러 간단 말인가? 황궁 밖에 한 번도 나간 적 없는 진이었다. 그 첫나들이를, 누군가의 죽음을 보기 위한 것으로 쓰기 싫었다.
“나만 나갈 것이다. 준비해.”
“예, 그리고 이안 님. 그, 아코렐라 대장 말입니다.”
“아코렐라?”
마법사의 말에 이안이 아코렐라의 자리를 쳐다봤다.
비어있는 의자. 마차 타고 왔을 때부터 재판 시작 전까지,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던데. 시끌벅적한 소란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까 휴정할 때 나가서는 아직도 안 들어옵니다.”
“…내가 찾아볼 터이니, 그대들은 호송과 처형 준비에 몰두하라.”
“네. 알겠습니다.”
“저하, 이만 돌아가시지요.”
“응. 그래. 경들, 모두 만나서 반가웠소. 또 보지.”
이안과 진이 자리를 마무리하자, 귀족들은 동시다발적으로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이내 물결이 갈라지듯 인파가 좌우로 나뉘었고, 진은 노란 꽃을 소중히 품은 채 재판장을 나섰다.
“저녁에 뵙겠습니다.”
“마무리까지 잘 부탁하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시아야, 저하를 잘 모셔라.”
“네. 주인님.”
이안은 손수 마차 문을 열어주어 진을 태웠고, 병사들의 호위를 두른 채 본관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 지켜봤다.
군중들이 천천히 따라붙으며 진을 불러댔다. 살짝 열리는 마차 창문. 손끝이 꼼지락거리며 나오려다, 다시 들어갔다. 시아오시에 의해 저지당한 것이라.
“이안, 이쪽도 정리하지.”
“네. 로만드로 님.”
지이잉. 지잉.
이안은 큰 산을 넘었다는 안도감을 만끽하며 장갑을 벗었다. 그러곤 아주 희미하게 마력을 흘리며 아코렐라의 기척을 감지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의 기운이 느껴졌다.
타닥타닥.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다. 소란이 잦아들수록 아코렐라의 마력이 강하게 느껴졌다.
막 모퉁이를 돌려고 하는데, 벽에 핏자국이 묻어있는 걸 발견했다. 길게 늘어지고, 끝이 날카롭게 끊어져 있다. 힘없이 쓰러지며 벽을 짚은 흔적이다.
“…아코렐라?”
“아, 씨…….”
아코렐라가 복도 끝, 몸을 웅크리고 쓰러져 있다. 바닥 곳곳에 떨어져 있는 핏물까지. 이안이 놀라서 다가가려 하자, 그녀가 힘없이 저지했다.
“오지 말아보세요.”
“아코렐라. 무슨 일이지? 우선 마력부터 받거라. 임시방편으로…….”
아코렐라가 이마를 바닥에 댄 채 고개를 틀었다. 각혈을 심하게 했는지, 상의가 온통 피범벅이었다. 이안이 놀라서 멈칫거리자, 아코렐라가 키득거렸다.
“아, 이안 님. 저 X 된 것 같은데요.”
“아코렐라.”
“마력증폭제 부작용이라 하기에는 좀 심해서요. 저, 지금 계속…….”
아코렐라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움찔거렸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되돌아온 것처럼.
“…계속 기억이 끊어지거든요.”
기억이 끊어진다니. 대체 마력증폭제 부작용이 어찌 되었기에 그런 증상이 일어난단 말인가? 이안은 우선 아코렐라를 부축하여 일으킨 다음, 있는 힘껏 마력을 흘려보냈다.
지이잉! 지잉!
그 파동이 폭발적인지라, 해당 건물에서 재판장을 정리하던 마법사들이 동시에 멈칫거렸다. 필시 장관님의 마력인 것 같은데, 갑자기 왜?
“방금 뭐지?”
“장관님 어디 계셔?”
“아코렐라 대장 찾으러 가셨는데.”
마법사들이 의아한 얼굴로 마도구를 내려놓았다. 뭔가 일이 일어났음이라. 다들 동시에 문밖으로 뛰쳐나가며 이안의 흔적을 쫓았다.
타닥타닥!
타앗!
“이안 님!”
“아코렐라 대장!”
“저기, 저기서 이안 님 마력이 느껴지는데?”
“이안 니이임! 헉! 피?”
“누구의 것이냐! 혹시 장관님의?”
“아코렐라 대장 것 같은데!”
“으아아악! 아코렐라 대장, 뭐예요? 왜 이래요?”
동료들은 널브러진 아코렐라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력은 다른 대장들에 비해 미흡했으나, 사람 자체로는 누구보다 강한 자 아닌가?
지하실에서 온갖 화학 연기를 들이마시고도 멀쩡했고, 폭발에서도 다치는 곳 하나 없었으며, 사흘 밤낮 비커만 흔들어대도 낄낄 웃어대는 그녀였다. 그런데 저런 모습이라니.
“으아아. 나 뒤지기 일보 직전.”
“업혀요, 대장. 정신 차려요.”
“마차를 준비해! 마차!”
“사람들 통제해서 길 트라고! 어서!”
마법부, 특히 마력석관리부인 아코렐라의 부하들이 기겁하며 그녀를 부축했다.
“야. 미쳤냐?”
“네?”
타앗!
하지만 아코렐라는 그들의 손길을 가볍게 쳐냈다. 영문 모를 행동에 부하들이 되물었고, 이안은 이마를 짚어냈다. 아코렐라의 의지를 알아챈 것이다.
“밖에 사람들 죄다 모여있는데, 마법부 대장이 피 졸라 쏟으면서 실려 가면 참 보기 좋겠다. 응?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초 치고 싶냐고, 새끼들아. 보는 눈이 저렇게 많은데 무슨 말이 나돌 줄 알고? 콱.”
“미, 미쳤어요? 무슨 말이에요?”
“기다리라고. 사람 좀 빠지면 나가게.”
“대장!”
마법사들이 이안을 돌아봤다. 그녀를 좀 말려달라는 듯이. 하지만 아코렐라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황궁이 무사하다는 걸 제국민에게 알리는 자리였는데, 거기서 마법사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다니.
이안은 모두에게 물러나라 손짓했다.
“…로만드로와 헤일만 남는다.”
“이안 님! 이건 아닙니다!”
“맞습니다. 아코렐라 님이 어쩌다 이리되셨는데요!”
“두 번 말하지 않아. 두 사람만 남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단호한 장관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입술을 짓이기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주춤주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그녀를 둔 채 돌아갔다.
이안은 이마를 짚으며 헤일에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헤일, 아코렐라를 업어.”
“어찌하시려고요?”
“이곳 본관에서 소정원 뒤쪽으로 통하는 비밀 지하 통로가 있다. 오른쪽 복도로 꺾어서 두 번째 방, 정물화 그림을 떼어내. 로만드로 님은 마차를 소정원에 대기시키십시오. 분수대를 등진 왼쪽 대각선 아래 수풀입니다. 소정원은 여기보다 사람이 적을 터이니, 거기서 마차에 태워 마법부로 보낼 것입니다.”
본관의 비밀 지하 통로?
그걸 이안이 어찌 아는 것인가?
그런 것은 황족만 아는 것 아닌가? 혹, 진 저하가 일러주었나?
헤일과 로만드로가 의문을 품었지만, 아코렐라의 각혈에 부질없이 흩어졌다. 헤일이 아코렐라를 업는 동안, 로만드로는 마차를 준비하기 위해 밖으로 달려갔다.
“…나는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간다.”
“예. 곧 뵙겠습니다.”
“아이구, 이안 님. 안녕-!”
“아코렐라. 정신 놓으면 안 돼.”
타닥타닥!
빠르게 사라지는 헤일의 뒷모습. 이안은 손에 묻은 피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가슴팍에 끼어두었던 장갑을 다시 끼우며, 그걸 숨겨냈다.
복도를 돌아 나오니, 마법사들이 걱정스러운 눈치로 그를 맞이했다.
“…이, 이안 장관님.”
“아코렐라는 헤일이 데리고 나갔으니, 걱정하지 말라. 우리에겐 우리의 할 일이 있어. 험난한 길을 왔지 않나? 목적지를 앞두고 더 돌아갈 수는 없다.”
그걸 알기에, 아코렐라 역시 자신보다 바깥 상황을 먼저 살핀 것이다.
이안의 전언에 마법사들이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참으로 다행이다. 혹 은둔 마법이라도 쓴 것일까?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아코렐라가 지체 없이 나갈 수 있게 되어 참으로 안심되는 순간이었다.
이안은 정복 소매를 탁탁 쳐내며 물었다.
“준비는.”
“네? 아, 네네. 문제없습니다.”
“…중앙 광장으로 간다.”
“네. 알겠습니다!”
타닥타닥!
마법사들이 앞장서서 이안을 호위했다. 그들이 본관 건물 밖으로 나오자, 마법사들을 기다리고 있던 제국민들이 환호했다.
“마법사다! 마법사!”
“세상에, 나 처음 봐! 마법사님!”
“저기 가운데가 이안 히엘로 장관이신가?”
“어허, 진짜 어리네. 생각보다 더 어려.”
타앗!
“와아아아!”
“날았다! 하늘로 날았어!”
맨 앞으로 걷던 자들이 단박에 창공으로 뛰어올랐다. 수많은 인파의 고개가 그들을 따라 하늘로 치켜세워졌다. 이안은 말에 올라탔고, 허공에서 내려오는 길 안내를 따라 천천히 고삐를 잡아끌었다.
히이잉!
“비키시오!”
“길을 트시오! 사형 집행은 중앙 광장에서 시작할 것이니! 모두 출궁하여 돌아가시오!”
“천천히, 한 줄로!”
마법사들의 합류를 기다리던 죄인 호송 마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장장 스물한 명이라.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장관이었다. 이안은 마법으로 그 옆에 빛줄기를 그어냈고, 멀리서도 죄인의 호송을 알게끔 했다.
그들은 거의 걷는 속도로 움직였다. 이런 상태라면 성문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릴 터.
다그락다그락.
이안은 마차 커튼이 살짝 걷힌 걸 알아챘다. 하이만이었다. 양손이 묶여있고, 그와 부인 사이에 병사가 앉아있었지만 마치 나들이를 가는 것처럼 고요한 눈빛이다.
“커튼을 치시오. 그대가 있는 걸 알면 돌이 날아들 것이라.”
“하하하. 돌이라니.”
“…농 같은가?”
하이만은 침묵하며 이안을 쳐다봤다. 마차가 흔들리고, 말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시선이 올곧다.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이안은 그의 입가에 미소가 퍼지는 것을 알아챘다. 하이만이 가까이 와달라는 듯 손짓했다.
“이봐, 병사. 무엇하나? 커튼을 쳐라.”
“넷! 죄송합니다.”
“멜라니아가 행방불명이라 하던데. 사실인가?”
병사가 하이만의 어깨를 잡아끌었으나, 그는 되려 얼굴을 들이밀며 되물었다.
“멜라니아를 찾느라 제국방위부가 애먹는다고.”
“죽어서 살펴보거라. 네 딸이 어디에 있는지.”
“아하, 하하하! 아하하!”
하이만은 실로 오랜만에 소리 내어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멜라니아!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막내딸!
언제나 제 오라비들보다 반짝이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는데, 끝까지 물건이로다. 단 한 명이라도 하이만이라는 이름을 쓰는 자가 살아있다면, 그것은 곧 가문의 존속이 아니던가!
“하이만 공작이다!”
“죽여라! 죽여!”
그럼에도 하이만의 만족스러운 미소는 쉬어 거두어지지 않았다.
목덜미에 굵은 밧줄이 걸리고-
발 디딘 바닥이 꺼졌으며-
군중이 던진 돌과 오물 따위로 온몸이 더러워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끼익!
쿵!
“죽어라! 다른 가문 모두 죽어라!”
“와아아아! 죽여!”
성나고 흥분한 군중의 저주.
이안은 흔들거리는 하이만의 시체를 보며, 손바닥을 꾹 눌러 쥐었다. 가죽 장갑 아래로, 끈적이는 피가 느껴졌다.
일몰이 스며드는 시간. 중앙의 일곱 가문, 스물한 구의 시체가 광장에 내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