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61
제261화. 세 나라 인물 소개
“큼큼.”
로만드로는 괜한 헛기침으로 어색함을 떨쳐냈다. 왜 이리 긴장되고, 부끄러운 것인가? 그는 칠판 앞에 서서는 연신 펜대만 만지작거렸다.
재난 현장에 파견되었을 때는 하루에도 두어 번씩 수십 명 앞에서 보고서를 읊곤 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이상하게 지금이 더 긴장된다.
고작 네 명.
그것도 아는 자들을 앞에 두었거늘.
“로만드로, 잘 부탁하네.”
바리엘의 차기 황제이시고, 현 유일의 황실 후계자이신 진 저하가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며 기대하고 있어서일까?
“로만드로 님. 시작해 보십시오.”
아니면 맨몸으로 제국 서열 4위까지 오른 소년이자, 마법부 장관 앞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이안 앞에서 이리 발표 식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건 처음이지 않나. 영민하고 치밀한 상관이시다. 실수 하나라도 했다간 바로 지적이 들어올 듯하다.
“쫌, 빨리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요!”
“…….”
진과 이안은 책상을 붙이고 나란히 앉아있었지만, 베릭은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고, 시아오시는 문 가까이 서 있었다.
로만드로는 다시금 헛기침하며 분필을 잡았다. 바리엘 제국을 이끄는 두 사람이다. 이들에게 백지상태인 외국 정세를 처음 일러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임무가 막중하나? 사사로운 감정을 제외하고, 담백하니 사실만을 전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다.
그가 미리 준비한 지도를 넘기며 서두를 때였다.
“바-리엘 대제국!”
“왐마, 목청 좋네요. 로만드로 님.”
“가이아(Gaia) 중앙 대륙에 있으며, 최남단 끄트머리 외에는 바다를 보기 힘듭니다. 대신, 드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 그리고 국경을 두르고 있는 산맥들로 인해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지요. 산맥을 보십시오. 마치 신께서 손으로 품은 것 같은 모습이지요? 이는 바리엘이 신의 축복을 받은 증거랍니다.”
“어? 여기! 이안아, 여기 히엘로다. 히엘로.”
베릭이 눈을 찌푸리며 지도를 노려보다, 히엘로령을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가 짚었다. 그 인근에는 루론석을 발견했던 몬느에 산맥이 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로만드로가 저리 가라며 손을 휘적거렸으나, 베릭은 중앙과 히엘로만 번갈아보며 감탄할 뿐이었다.
“와, 여기서 여기까지 진짜 멀구나.”
“마차로 보름이나 걸렸으니까.”
“맞아. 여기는 카렌나! 하샤 만났던 곳이다!”
하샤가 누구지? 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안은 손끝으로 바리엘 북서쪽을 짚으며 일러주었다.
“국경의 북서쪽은 현재 내란과 자연재해 등으로 혼란스럽습니다. 나라가 분열되어 부족에 가까운 공동체 단위가 많고, 아니더라도 그 내면을 보면 각 계파의 대립이 심각하지요. 하샤는 저 중 아스타나라는 나라 출신의 사령술사입니다.”
“들어본 적 있네. 웨슬리 전 장관이 각지의 사령술사를 문화 및 학문 교류 목적으로 초대하였다고. 하지만 그 내면에는 분쟁국들 사이에서 평화의 장을 만들어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다지.”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것이었다. 분쟁을 해결한다는 대의는 차치하고, 그 아래 수많은 의도와 욕심이 숨어 있었지만 말이다. 특히, 웨슬리의 그릇된 사랑이 큰 기반으로 작용했던 프로젝트였다.
“예. 저하. 그렇습니다. 잘 아시시군요.”
“음. 이 정도는.”
진은 쑥스럽다는 듯 미소를 배시시 머금었다.
이안은 노트 끄트머리에 중앙 지도를 간단히 그린 다음, 외곽지를 대략적으로 짚어주었다.
“사령술사는 현재 중앙 외곽에서 학문적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웨슬리가 죽을 때 제 나라로 돌아갔지만, 협의한 유학 기간이 아직 남아있는 터라 소수는 파기하지 않고 이행하는 중입니다.”
시체가 필요한 연구다 보니, 최대한 숨어들어서 할 수밖에. 진은 이안의 말을 새겨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로만드로가 베릭을 제치고 울먹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저가 알려주려 했는데! 망할 베릭 때문에 선수를 빼앗긴 것이라.
“저하, 제발! 그 뒤에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얻는 정보와 지식이 진을 이루고, 훗날의 바리엘을 완성시킨다. 로만드로는 그 영광스러운 시작점을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지도를 격정적으로 짚어댔다.
콰앙!
“나라 동쪽에 히엘로령이 있고요. 그와 인접한 게 하완 왕국입니다. 하완국은 바리엘, 루스웨나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지요. 북서쪽 나라들은 약소하고, 국정이 혼란하여 크게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저하께서는 딱 세 나라. 세 나라만 우선하여 지켜보시면 됩니다. 시계 방향으로 말씀드리지요.”
북동의 루스웨나.
남쪽 클리포포드.
서쪽 버고스.
“오…….”
진이 잘게 중얼거렸다. 황자 교육에서 배운 적 있다만, 이렇게 다시금 전해 들으니 생소한 느낌이다. 이안 역시 오랜만에 듣는 나라 이름에 반갑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루스웨나는 잘 아실 것입니다. 유서가 깊고, 곡창지대가 우수하며, 흑보석이 나는 곳입니다. 현재 에리포니 여왕이 통치 중이고, 그의 사촌이 사절단으로 왔다 갔지요.”
“그 에리포니란 여인은 어떤 자인가?”
촤아아악!
그 질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로만드로는 지도를 넘겨 조악한 초상화를 펼쳐냈다. 청록색 긴 머리에 흰 피부, 그리고 옆으로 시원하게 찢어진 눈매, 특히 삼백안(三白眼)이 시선에 확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이목구비가 호쾌한 여인이다.
“무릇 그 판단은 후손이 하는 것이지만, 현재 안팎으로 평판이 나쁘지 않습니다. 궁에 들어왔던 엘더트 사절단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응. 보았네. 이안 경과 함께. 미남이더군.”
“피는 못 속인다고, 똑 닮았습니다. 거의 뭐, 성별만 다르다고 보면 되지요. 아, 사냥을 즐겨한다고 들었습니다. 활을 정말 기가 막히게 쏜다고는 하는데, 뭐, 어느 나라나 지도자에 대한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인지라. 흠흠.”
“임명식 때 왕이 직접 올까?”
“아직 서신이 간 게 아니기에, 반응을 가늠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엘더트가 다시 오는 게 제일 가능성 있긴 하지만요.”
로만드로의 설명을 가만히 듣던 이안. 팔짱을 낀 채 루스웨나의 왕 초상화를 지그시 쳐다봤다. 아무리 핏줄의 힘이 강하다고 한들, 엘더트 사신과 저리도 닮을 수 있나? 참으로 기이하다.
“다음은 클리포포드입니다. 이쪽은 첫째 왕자가 승계를 확정받았습니다. 대대로 승계자가 외국 사절단 역을 맡아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첫째 왕자, 노아입니다.”
이건 마리브와 비슷하다. 마리브 역시 1황자로서 외국 사신들을 주도하여 접대했었으니까. 성인이 되면서 의도적으로 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호박색 원석의 근원인 러더포드 상단을 만났고.
이안이 초상화를 살펴보고 있는데, 베릭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손을 들었다.
“아, 근데 로만드로 님. 저거 대체 누가 그렸어요?”
“…왜?”
“내가 발로 그려도 저거보단 낫겠다. 눈을 그지처럼 그려놨네. 그냥 선만 그어놓은 거 아님?”
“저건, 그, 웃고 있어서 이렇게 접힌 거…….”
로만드로가 마음에 상처받은 표정으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가 그린 게 분명한 반응이다. 진이 당황해하며 로만드로를 위로했다.
“아주, 아주 잘 그린 것 같아.”
“그, 그렇습니까?”
“그럼. 임명식에서 만나더라도 쉬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네. 고마워. 로만드로.”
노아 왕자는 구릿빛 피부에 주황색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다. 루스웨나 왕과 달리, 생글생글 웃는 상의 실눈이다.
로만드로가 초상화에 저리 그렸을 정도면, 필시 평소에 웃음을 기본으로 달고 다니는 자일 것이라. 성격이 어떨지 대충 감이 왔다.
“클리포포드는 가무를 중시합니다. 노아 왕자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현상이지요. 그쪽 건국 신화와 관련된 것인데, 음. 간단히 말해서, 신께서 붉은 박쥐귀여우가 춤추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아 인간의 몸을 주었다는 이야기지요.”
“저하. 저 신화를 듣고 무엇을 유추하실 수 있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이안의 질문에 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더듬더듬, 손가락을 접으며 생각나는 것을 일렀다.
“가무를 좋아하고, 상징 동물이 여우라는 것? 바리엘과 마찬가지로 신전도 있겠군. 음, 아! 그리고 저들 역시 건국의 역사가 깊을 것이라.”
“예. 옳습니다. 건국 신화가 있다는 것은 기원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 동안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로만드로가 짚어준 세 나라의 공통점이기도 하지요.”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 사이에서 탄생하고 사라지는 세력이 아니라, 바리엘과 함께 긴 시간 동안 대륙의 한 부분을 지켰다는 의미다.
베릭이 귀찮다는 듯 마지막 장까지 넘겨댔다.
차락!
“어?”
마지막, 서쪽의 버고스.
이전에 설명한 루스웨나의 에리포니 여왕과 노아 왕자와 달리, 종이가 꽉 들어차게 그려져 있다. 베릭은 그걸 보자마자 뭔가 깨달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거이거, 다들 그거네.”
“그거 뭐?”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로만드로가 긴장한 태로 손날을 들어 보였다. 여차하면 이대로 이마를 내려 깔 것이라. 하지만 베릭은 눈 하나 꼼짝하지 않고 귀를 후비적거렸다.
“에리포니는 청록뱀이고 노아는 붉은여우, 그리고 얘는 흑곰이잖아.”
아아. 저 무지한 천방지축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로만드로는 가련하게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베릭 이놈아, 너는 신께서 굽어살피고 있는 게 분명하다. 히엘로에서도 그랬지. 그, 행동거지에 비해 주어진 수명이 너무 길어. 빈둥거리지 말고 밖에 나가서 기도라도 올리는 게 좋겠어.”
“엥? 내가 틀린 말 했나? 반박해 봐요.”
“남들 앞에서 그런 얘기 절대 하지 말거라! 진짜 경을 칠 것이라!”
베릭은 억울하다며 왁왁댔고, 로만드로는 조용히 하라며 괄괄댔다. 두 사람이 소란을 피워대는 동안, 진은 가만히 초상화를 올려다봤다.
저급인지라, 손자국으로 인해 여기저기 번져있다.
“…엄청나구나. 그림으로도 기백이 느껴진다.”
안면을 마구잡이로 채운 흉터, 왼쪽 귀는 반쯤 잘려나가 장신구가 형태를 대신했고, 투박하고 각진 턱은 단단하니 굳건해 보였다.
실로 엄청난 사내라.
진이 감탄 어린 탄성을 내뱉는 순간.
“…티모시.”
“이자를 아는가? 이안 경?”
“예. 어디서 흘려들은 것 같습니다. 로만드로 님. 저자의 이름이 티모시 맞습니까?”
“으응! 맞네, 티모시!”
팔짱을 낀 채 정면을 응시하는 이안의 표정이 뭔가 미묘했다. 한참을 침묵하며 뭔가를 떠올리려는 듯, 인상을 찌푸리기까지 한다.
진이 참을성 있게 기다렸으나, 이안은 끝끝내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웃을 뿐이라.
“저하. 저 초상화들을 잘 인지하시어 임명식 때 손님맞이를 훌륭히 하셔야 합니다.”
“걱정 마시게!”
“예.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하라면 필시 잘 해내실 것이니까요.”
이안은 그리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펜촉까지 빼서 내려놓는 걸 보니, 밖으로 나가려는 모양이다.
“로만드로 님. 진 저하께 마저 설명을 진행해 주십시오. 저는 잠시 처리 못 한 일이 생각나서,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이안아아! 어디 가는데?”
“일 보러 간다니까.”
“같이 가! 갔다 오면서 식당 들르자.”
콰앙!
로만드로와 옷깃을 서로 잡고 있던 베릭. 이안이 나가는 걸 바로 뒤쫓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진은 당황하여 반쯤 열린 문만 바라봤다.
끼이익.
시아오시가 문을 완전히 닫을 때까지 말이다. 진은 어깨만 가볍게 까딱이며 이안이 놓은 펜을 다잡았다. 그러곤 로만드로를 바라보며, 어서 일러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크흠. 저하, 그러면 저희끼리 계속하겠습니다.”
“응응. 그러지. 내 질문 많이 할 것이네!”
“환영입니다. 음, 아, 그리고 저하. 저의 우려이긴 합니다만 말씀드려도 될런지요…….”
무엇인데? 진이 웃으며 허락했다.
“타국인들이 와 있을 때는 절대, 절대 황실의 비밀에 대해서 말씀하시면 아니 됩니다. 혹 나중에 친분이 깊어지더라도요. 이안 경은 그래도 믿을 만하지만, 앞으로는 이안 경에게도 이르시면 아니 되옵니다. 진정한 신하라면 황실의 비밀을 듣는 순간, 자진하여 귀를 막는 법이니까요.”
진의 안면에서 미소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당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듯.
“아, 물론 이안 경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서로의 신뢰와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지킬 것은 지키는 게 좋겠다는, 음. 저의 작은 청이옵니다.”
로만드로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분필을 다잡았다.
“그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