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62
제262화. 티모시를 기억하는 이유
“이안아, 좀만 천천히 걷자! 그리고 호옥시나 모르는 걸까 봐 내가 일러줄게. 식당, 그쪽 아니다? 완전 반대쪽이다? 우리 진짜 멀리 왔다?”
이안은 쫄래쫄래 따라오는 베릭을 돌아보며 의아한 미소를 지었다. 황자가 있어도 소파에 널브러졌던 베릭이다. 아직 몸 상태가 엉망이거늘, 저리 무리하는 걸 보면 속내가 따로 있음이라.
이안은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되물었다.
“담당자가 식당 출입 금지라 하던가?”
그러니까 고기 좀 적당히 훔쳐먹지 그랬니, 이안은 굳이 뒷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말하나 안 하나, 베릭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기에.
후회와 반성 따위 할 시간에 식당 다른 출입문을 찾는 게 그의 방식이지 않나.
“헉, 어떻게 알았어?”
“네 얼굴에 쓰여있다.”
“얼굴?! 엥?!”
이안이 식당에 간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평소에는 과중한 업무로 끼니 챙기는 것 자체가 드물었고, 요즘에는 침상 신세라 집무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식당 쪽으로 유인하니, 당연한 의심이었다. 하지만 베릭은 진심으로 당황했는지, 창문을 들여다보며 제 얼굴을 더듬거렸다.
“어디 가는데? 식당이랑 점점 멀어진다!”
“황궁 중앙자료실.”
“그 재미없는 곳을 왜?”
“가본 적 있나? 놀라운데.”
“응? 뭔 소리? 거기잖아. 검은 상자 쌓여있는 곳.”
“거기는 마법부 자료실이고, 지금 가는 곳은 황궁, 정확히 행정부의 자료실이다.”
확인해 볼 것이 있었다. 티모시, 백 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서서 이안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
자료실에 가까워질수록 그를 알아보는 자들이 많아졌다. 가벼운 눈인사를 바삐 주고받으며, 모퉁이를 막 꺾어 들어갈 때였다.
“아.”
이안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익숙한 자를 알아보고 멈추었다. 퀸타나였다. 행정부 직원들과 함께 상자를 손수 옮기는 중인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이안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장관님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이세요?”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이는군. 이안은 문득, 지금껏 퀸타나가 보여줬던 웃음 대부분이 비소(非笑)였다는 걸 깨달았다. 가끔 진에게 보여주는 친절 외에, 그녀는 항상 회의에서 반박하고, 반증하며, 제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힘주고 있었으니까.
“하이만 가를 포함한 일곱 가문의 재산 증서입니다. 대단하지요? 땅문서만 해도 이만하니, 저택을 제2의 황궁이라 불렀던 오만방자함이 근거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주인 잃은 저택과 부지 그리고 각종 보석 및 재화들이 황궁에 귀속되어 새로운 가치를 얻을 것이라. 처분할지, 아니면 황궁에서 소유할지 따위는 행정부와 수상 그리고 진이 의논하여 결정하겠지만.
“그나저나, 어디 가시던 것 같습니다만.”
“황궁 중앙자료실로 가던 중입니다.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오, 그러시군요. 고서(古書)도 곧 들어온다고 하던데요. 시간 나시면 진 저하 모시고 문화부 들려보세요. 예술품이 먼저 도착했을 겁니다. 볼만하더군요.”
일 년에 몇 번 없는 퀸타나의 유한 모습이다.
재판 세수 확보에 이어 중앙 귀족 가문의 재산 몰수, 연이은 수입으로 내란의 피해를 말끔히 메꾸다 못해 잉여금이 생길 판이라. 국고를 관리하는 자로서는 이만한 기쁨이 또 없다.
“아, 그리고 수상께서 내일 중으로 대회의 소집한다 하시네요. 전해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것도 아시나요? 제이럿 대장이 황궁친위대 개편을 행정부에 건의했거든요. 제국방위부에서도 마찬가지고요.”
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는 황궁친위대 삼대장 중 두 명이 죽었다. 한 명은 내란에서, 또 다른 한 명은 마물에 의해서. 아무리 황제가 병상에 누워있다고 한들, 삼대장이라는 직책에 맞게끔 머릿수는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조만간 인재 모집 및 선별을 진행할 것 같아요. 제국에 있는 모든 마검사들에게 기회가 열리겠지요?”
퀸타나는 그리 말하며 뒤에 서 있는 베릭을 힐끔거렸다. 거칠고 투박하여 황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였지만, 이안이 두고 진이 두는 사내였다. 의아해서 이리저리 알아보니, 놀랍게도 마검사라 했다. 그것도 제이럿 대장에게서 마력 개방을 끌어낼 만큼 실력자.
“제국방위부도 그리한다고 하던가요?”
“네. 결이 같으니까요. 짐작으로는 황궁친위대 지원자 낙수효과를 제국방위부가 노리는 것 같아요. 제국방위부 전 장관이 1황자 편에서 내란에 가담하지 않았습니까? 임시로 다른 자가 맡고 있긴 하지만, 정리와 병력 보충이 필요한 시점은 맞지요.”
중앙 귀족 숙청까지 이루어냈으니, 지금이 제일 적기임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차기 후계자인 진의 임명식 또한 앞두고 있지 않나. 새 시대의 시발점을 앞둔 지금, 여러모로 알맞다.
‘특히 제국방위부는 진이 공식 후계자가 되기 전에 마무리 지으려 하겠지. 내란부터 시작해서 멜라니아 건까지, 입지가 영 좋지 못해. 진이 내각을 세우기 전에, 자체적으로 결집하려는 것이라.’
“다들 저마다의 임명식을 위해 정신없네요.”
퀸타나 역시 그쪽의 의중을 알아챘는지, 넌지시 말을 덧붙였다. 이안이 동의한다는 뜻으로 웃었다.
“그럼, 내일 대회의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지요. 수고하십시오.”
직원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퀸타나를 따라 사라졌다.
이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행정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정리할 게 산더미다. 각 부서에서 업무를 분담하고 있지만, 마법부, 정확히는 이안이 최종적으로 검토할 게 대부분이다.
그가 진의 보호자였기에. 진의 서명 하나하나 함께 살피고 있으니, 결국에는 이안이 보는 것과 다른 게 없다.
‘우선 마력봉인석 권한 분배를 먼저 발의하자. 황제에게 5할, 그를 제외한 황족 전체에 3할, 마법부에 2할.’
중요한 점은 ‘전체 마력봉인석 양에 관한 권한’이라는 것이다. 이리되면 그 봉인석의 수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더라도 견제의 힘은 비율에 따라 계속 유지된다.
‘문제는 이드갈인데…….’
마력봉인석과 비슷한 능력을 내는, 연금술의 산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드갈을 공식적으로 배제하는 법안 역시 필수 불가결하게 따라올 것이라. 서자 이안이 그것과 관련 있다는 게, 현재로서는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황실과 마법부 그리고 바리엘의 건강한 균형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발 디딜 부분이었으니.
‘그리고 다음에는 하이만 은행 매각 진행, 제국방위부는…….’
“이안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그때, 베릭이 이안의 팔을 잡아끌었다. 생각에 정신이 팔려 복도 끝까지 당도한 것이다. 자료실을 서너 걸음 지나쳐 온 상태였다. 이안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네가 황궁친위대에 잘 들어갈 수 있을지 염려되어. 전국에서 날고 기는 자들이 지원한다면, 제이럿 대장이 너의 입부를 거부할 수도 있겠구나.”
“참나! 그런 걱정일랑 말고, 오늘 뭐 먹을지나 걱정해. 거기 오는 새끼들 내가 다, 앙? 반 죽여 버리고 대장 먹을게.”
“대장? 하하하.”
이안이 진심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조합 아니던가. 베릭과 황궁친위대 대장이라니.
베릭은 그 모습에 잠깐 놀라면서도, 이안이 소리 내 웃는 게 신기한지 따라서 입꼬리를 올렸다.
“웃네. 제이럿 이기면 대장 되는 거 아녀?”
“대장 되어서 무엇 하려고?”
“음. 부하들한테 고기 바치라 그럴까? 내가 대장 되면 너는 어때? 좋지?”
“뭐. 아무래도 그렇겠지. 친위대 대장이면 황제의 측근이니, 여러모로 업무상 협조하기 쉬울 것이라.”
“자리가 두 개나 남아있으니까 할 만하지 않을까?”
“글쎄. 그 전에 제이럿이 너를 죽이려 들것 같은데.”
드르륵!
문을 열어젖히자, 자료실 관리직원이 일어나서 이안을 맞이했다. 도서관과 그다지 다를 것 없는 분위기다. 퀴퀴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종이 냄새,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
“이안 히엘로 장관님 아니십니까?”
“확인하고 싶은 자료가 있다.”
“네. 말씀해 주십시오.”
“현시점을 기준으로 십 년 전까지, 바리엘이 버고스 왕국과 교류한 자료들을 모두 내어주게.”
“모, 모두요? 양이 좀 많을 터인데요.”
“그러면 오 년, 혹은 삼 년도 괜찮다.”
“잠시만요. 출납 신청 따로 안 왔습니다만, 여기서 직접 확인하고 가시는 거지요?”
“그렇다.”
행정부 자료를 외부로 가져가려면 출납 신청서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절차가 확실했고, 그에 관여하는 직원만 서넛이었으며, 중한 일이 아니라면 시간도 오래 걸린다.
사락.
직원은 두꺼운 서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인근국 목차 0423 분류, 버고스…. 아, 이쪽으로 오십시오.”
두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따라 자료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점점 짙어지는 누런 종이책 냄새. 베릭이 코를 찡그렸고, 이안은 수십 미터에 달하는 천장 끄트머리를 올려다봤다.
십 층 이상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층과 층을 연결하는 나무 계단이 부드럽게 움직여댔다. 저것 또한 마법의 도움이다.
‘백 년 후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습이군.’
“이안 님. 이쪽이 버고스의 경제, 정치 관련 기록 오 년 치 자료입니다. 문화와 사회는 지하에 있어서 지금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보고 계십시오.”
“고맙네.”
“별말씀을요.”
베릭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제 키보다 커다란 책장이 다섯 개다. 거기에 빈 곳 없이 꽉 채워져 있는 종이 뭉텅이들.
이걸 이 자리에서 보겠다고?
거기에 문화, 사회는 더 있어?
“이안아, 너 미쳤어?”
“나는 따라오라고 안 했다.”
“이거 이 자리에서 읽잖아? 또 코피 터져. 무조건.”
“베릭. 글을 읽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시아오시와 함께 공부 좀 하라니까.”
이안은 겉표지를 훑어보며 필요한 것들을 망설임 없이 꺼냈다. 그러곤 의자에 편히 앉아 자료를 넘겨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겨 읽는 게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이기에 힘들일 필요 없다.
“미취겠네.”
끄응. 베릭은 그 옆에 앉아 턱을 괴고 기다렸다.
“뭘 그렇게 찾는데. 아까 티모시인가 그쪽 나라 왕자님 찾는 겨?”
“티모시는 왕족이 아니다. 버고스 왕국의 외교부 소속이지. 후계자 임명식에 왕족이 오는 건, 클리포포드가 예외적인 경우라. 보통은 루스웨나처럼 사절단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고.”
“그래애? 근데 아무튼, 티모시 찾는 건 맞네? 그 떡대하며 몸 선 굵은 게, 좀 칠 거 같던데. 그쪽 나라 외교부는 싸움도 잘하나? 오면 친선경기 어때? 응?”
이안은 베릭의 조잘거림을 무시하며 연신 서류를 넘겨댔다. 티모시, 티모시, 티모시…….
‘아. 찾았다.’
티모시가 공식으로 바리엘에 방문한 건 다섯 번. 그때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반년까지 지내고 간 터라 기록이 확실하게 남아있었다. 이안은 그의 종적을 살피며 제가 아는 것과 다른 게 있는지 비교했다.
‘로랑트 평지 개발 추진, 문화사절단 결성. 음, 이때는 게일의 성인식에 맞춰서 왔었군. 마법협력교류단이 만들어졌고…….’
차락.
-…버고스 왕국의 티모시 외교관은 웨슬리 마법부 장관에게 별채 건설 진행 시 필요한 마력석 25종(이하 생략)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겠다는 뜻을 보였고, 웨슬리 장관은 우수한 마법사 다섯을 선별하여 3년간 파견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협약은 진행되지 않았다.
“역시.”
이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가 아는 바로, 티모시는 외국 사절단 ‘출신’ 이민자였다. 버고스의 티모시가 아니라, 바리엘의 티모시라는 뜻이라.
백 년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있었지만, 이안이 티모시를 기억하는 단 하나의 이유.
‘…나움의 선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