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64
제264화. 곁가지
어둠이 내려앉을수록 관료들의 어깨 역시 축 처졌다. 대회의가 진행된 지 벌써 다섯 시간 째. 중간중간 발의할 게 없는 자들은 눈치껏 나가 쉬었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나, 수상과 진 그리고 이안을 비롯한 중요 인물들은 꼼짝없이 앉아서 일을 본 참이다.
진은 자신의 몸이 이안 쪽으로 기울어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아이는 지친 것처럼 이마를 짚고서 서류 끄트머리만 만지작거렸다.
“저하. 많이 힘드십니까?”
“아니, 아직 할 만하네.”
이안이 진의 상태를 알아채고 작게 속삭였다. 말이 다섯 시간이지, 그동안 아이의 몸으로 계속 인지하고 판단하며 결정하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부담이었겠나?
이안 저도, 겪어봐서 알고 있다. 처음 황좌에 올랐을 때 그러했으니까.
휘익! 휙휙!
게다가 회의실 뒤쪽, 로만드로와 함께 짝다리 짚고 서 있는 베릭. 이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손으로 엑스를 그리며 무음의 아우성을 질러댔다.
그만 좀 적당히 하고 들어가자는 것이라. 하도 안 와서 데리러 왔더니, 다들 반쯤 죽어가면서 무엇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 먹고 살자 하는 짓인데, 먹지도 못하지 않았나!
“수상님. 이번 건까지만 하고, 마무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안은 그런 베릭을 보며 수상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일순 주위에 앉아있던 관료들의 눈빛에 생기가 깃들었다.
그래! 그만 좀 하자! 오늘만 날도 아닌데, 무슨 회의를 다섯 시간이나 하는 겐가?
“흐음. 그럽시다. 시간이 벌써 이리되었군요. 마지막 안건은 황궁친위대와 제국방위부의 인력 보충에 관한 것입니다. 제이럿 대장?”
수상의 부름에 제이럿이 일어났다. 정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상태였다. 대회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으니, 나름대로 예의를 다한 모습이다.
“황궁친위대 대장, 제이럿입니다. 현재 삼대장에서 두 명의 대장 자리가 불미스러운 일로 공석인 상태입니다. 친위대 안에서 새로운 대장 두 명을 선발하고, 새로운 대원들을 선발하고자 합니다.”
“방식은?”
제이럿이 나서자, 베릭이 짝다리를 풀고 몸을 바짝 붙였다. 로만드로가 목덜미를 잡아끌며 자중하라 일렀지만.
“대련 절반, 동료들의 평가 절반을 총합하여 우수한 자 두 명을 가릴 것입니다.”
“동료들의 평가? 원래 있던 부분인가?”
“아닙니다. 황제 폐하의 신변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그 전에 신의와 도덕 그리고 충성심이 없다면 되려 폐하께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인지했기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흐음. 삼대장이라 하면, 제국의 최고 실력자임을 알리는 명칭 아니던가. 외부적인 평가 요소가 들어간다면, 그 명예가 변질될 수도 있네만.”
“실력,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격조차 없다면 그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 이르는 제이럿은 베릭을 쳐다보고 있었다. 필시 베릭에게 하는 말이자, 경고로다. 가만히 있다 한마디 얻어들은 베릭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저를 가리켰다.
‘나?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인 겨?’
이안이 입 하나 벙긋하지 말라 하였기에, 열과 성을 다해 몸짓으로 이를 뿐이다. 제이럿은 그를 가볍게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친위대의 대장을 선별하는 것이니, 자율성을 보장해 주십시오.”
“음. 그래. 자율성, 그게 중요하긴 하지.”
“저도 이견 없습니다. 찬성합니다.”
“예예. 저도요. 동의합니다.”
심신이 지친 자들이 앞다투어 통과 의견을 냈다. 수상은 안경을 바로 쓰며 되물었다.
“일반 대원 모집은? 마검사를 찾는 겐가?”
“아, 그것은-”
“그것은 저희가 대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누군가 제이럿의 말허리를 자르고 끼어들었다. 제국방위부의 임시 장관, 볼브였다.
이전 장관은 마리브와 함께 내란에 관여한 죄로 정리당했고, 내각에서 임시로 앉혀놓은 자인데 큰 이변이 없다면 정식으로 취임될 것이라.
‘큰 이변이 없다면’을 가정으로 둔 것치고는, 이미 멜라니아 건으로 물을 먹었다만.
“제이럿 대장?”
“예. 괜찮습니다.”
제이럿은 가볍게 손짓하며 순서를 양보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고맙습니다. 황궁친위대는 황제 폐하를 가까이서 모시는 최정예 부대이지요. 일반 병사와 마검사의 차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애초 황궁친위대에서는 마검사를 선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강한 자를 선별하다 보니 마검사가 모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제이럿 대장?”
“네. 입대 조건에는 마검사 항목이 없습니다.”
“몇 차례의 소란으로 인해, 현재 제국방위부의 인력도 많이 부족합니다. 하여, 감히 제안드립니다. 황궁친위대에서 시험을 진행하여 순위를 세우고, 순서대로 나눠 분배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안이 펜 끝으로 서류를 툭툭 두드렸다. 퀸타나가 일러준 것처럼, 현 분위기를 타파하려고 머리 좀 굴린 듯하다. 황궁 내에서 비슷하게 치안을 담당하지만, 마법부와 마찬가지로 입지가 괜찮은 친위대에 묻어가려는 것이라.
“분배라 하면, 어떤 방식을 말씀하십니까?”
“우수한 자부터 황궁친위대로 갈지, 아니면 제국방위부로 갈지를 결정하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친위대 인원이 다 차면, 나머지는 저희 쪽에서 담당하지요. 번거롭게 인력 모집을 두 번 할 바에, 이리 시간도 아끼고 비용도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대외적으로 제국방위부보다는 소수의 황궁친위대의 대우며 인지도가 월등하게 높았다. 그러니 인재를 빼앗길 염려 따위는 애초에 없지 않나. 퀸타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먼저 찬성표를 던졌다.
“저는 강력히 찬성합니다. 본디 행사란, 기간에 따른 비용 절감이 최우선이니까요. 모집 공고 비용 외 선별 기간 황궁의 지출을 최대 3할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황궁친위대에서 허락만 한다 하면, 그리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인원은 저희 쪽이 많으니 진행을 전적으로 부담하겠습니다.”
황궁친위대의 이미지에 비비면서도, 병력 충원에 있어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관료들이 모두 제이럿을 돌아봤다. 그가 허락할까? 손해는 아니더라도, 저리 발을 들이밀면 이득 보는 것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다들 궁금해하며 제이럿의 대답을 기대했다.
“네. 수락합니다. 황궁의 부담을 줄일 수만 있다면.”
“고맙습니다. 제이럿 대장. 편의를 봐준 대가라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만, 성의는 표시하는 게 좋겠지요. 제국방위부로 귀속될 흑갑옷 중 두 기를 넘겨드릴까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저거였구먼.
관료들은 이제 좀 알겠다는 듯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하이만 가에서 압수한 흑갑옷은 두 부서로 공평하게 분배될 것이었는데, 그중 두 기를 대가로 내놓겠다는 것이다. 수상은 문제 될 것 없다는 듯 봉을 두드렸다.
“각 부서가 협의하였으면, 대회의에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지요. 그러면 안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병력 모집 공고에 관해서는 추후 상세 보고하십시오. 이상입니다.”
타앙! 탕탕!
봉소리가 천국의 나팔 소리 같다. 관료들은 앞과 옆으로 쓰러지며 앓는 소리를 흘려댔다. 드디어 끝났다!
어차피 집무실로 돌아가면 할 일이 산더미지만, 일단은 끝났다는 게 중요했다. 진 역시 진이 다 빠졌는지, 엎드려 기지개를 켰다.
“나, 나, 나!”
콰앙! 콰당!
관료들이 자리를 하나둘씩 뜨자, 베릭이 난간을 넘으며 재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제이럿 대장 앞을 가로막으며 씨익 웃었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것일까, 대장은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내려다봤다.
“뭐지?”
“나 지원할게!”
“…….”
“이름은 베릭. 급여는 많이 주면 감사. 안 주면 다시 생각해 볼거고. 무조건 대장 자리로.”
“대장 자리로? 하하하!”
“와씨, 아저씨도 웃네. 내가 뭐 웃긴 말 했냐!?”
이안도 그렇고, 제이럿도 그렇고 어찌 대장 자리만 입에 올렸다 하면 웃음을 터트리나? 베릭이 눈을 부라리며 제이럿에게 한 발 다가왔다.
“장난 아닌디.”
“나도 장난으로 웃는 거 아니다.”
제이럿은 그리 말하며 베릭의 옆구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간지럼을 태우려는 것인가? 잠시 방심한 베릭이 화들짝 놀라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늦었지.
제이럿은 베릭의 상처를 틀어쥐며 낮게 일갈했다.
“몸 상태가 이따위면서 어딜 감히 대장직을 입에 올리나? 제국의 정점이 만만해 보여?”
“으아아악! 아파! 아파! 이 X발롬아!”
“받아주기는 받아줄 것이다. 마검사는 귀하니까. 대신, 친위대에 들어오면 그 천박하고 방자한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놓을 것이니. 각오해.”
“놔! 이거 놔아아!”
타앗!
베릭이 쓰러진 채로 옆구리를 쥐었다. 씩씩대는 숨결 하며, 반항적인 눈매가 여전하다. 죽었다 살아난 자답지 않게. 역시 아탄족의 후예인가. 제이럿은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이안에게 고갯짓했다.
“괜찮으시겠지요? 이안 히엘로 장관님. 황궁친위대 격에 맞는 자로 제가 교육해 보겠습니다.”
“그 전에, 상위권에 드는 것이 먼저인데요.”
“이안아! 나 몰라? 나 베릭이라고! 베릭!”
“성질머리 고쳐주시면 제가 감사하다고 해야겠지요.”
“와, 두고 봐! 제이럿 이 X벌탱, 상처 덧났잖아! 아, 또 피나! 이거 고기 졸라 훔쳐 먹어서 겨우 막은 건데! 내가 대장 먹어서 너 죽인다. 진짜!”
“죽여봐라. 네가 대장 되는 걸 볼 바에,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베릭이 열 뻗친다는 신음을 내었으나, 그는 망설임 없이 회의장을 나섰다. 신기한 구경을 하는 것처럼, 멈춰서 지켜보던 자들 역시 가던 길을 계속했다.
금세 주위가 한산해졌다. 이안은 두툼하게 쌓인 서류를 정리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진 저하는요?”
“저하? 잠시 퀸타나와 얘기하는 것 같던데.”
로만드로가 베릭의 옆구리를 봐주며 대답했다.
회의실과 연결된 야외 테라스. 퀸타나가 무릎 한쪽을 꿇은 채 진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 * *
“저하, 괜찮으신 것 맞지요?”
“그럼. 갑자기 왜 그러나?”
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퀸타나가 평소에도 제 걱정을 많이 하긴 하다만, 어쩐지 오늘은 뭔가 달라 보이는 것 같다. 진이 먼저 평소와 달랐던 것은 깨닫지 못하고.
“회의 초반에도 영 집중 못 하시고, 이안 경을 훔쳐보시더라고요. 혹여, 이안 경이 저하께 무례한 행동을 하였나 싶었습니다.”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맞는다면 지금이라도 이르십시오. 진을 바라보는 퀸타나의 시선이 올곧다.
아아. 티가 났나 보구나. 진은 두 손으로 볼을 쥐며 표정을 흩트렸다.
“아니다. 그런 건 절대 아니야. 이안 경은 언제나처럼 내게 잘 해주고 있어.”
“…그럼, 이안 경과 무관하게 따로 걱정이 있으십니까? 저하. 저하의 근심은 바리엘의 근심이고, 곧 저희들의 근심입니다.”
퀸타나의 의도가 순수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진은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약점은 보이는 순간 약점으로 존재하고, 근심은 이르는 순간 무게가 두 배로 늘어나니까. 진은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다.
“아닐세. 아무것도.”
“…그리 말씀하시니 다행입니다. 혹, 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고맙네. 퀸타나.”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로만드로의 말대로라면, 이안이 황족만 아는 비밀통로를 알고 있다는 것인데…. 우선 저는 알려준 적이 없으니, 아니고.
그렇다면 마리브 형님이나 게일 형님인가? 그 두 분이 어째서 이안에게? 당최 합당한 연유가 떠오르질 않아 당황스러웠다.
그에 덧붙여 이안이 황족이라 소리쳤던 아르센과, 하이만의 수작질이 귓가에 맴돌아 이안을 보는 게 곤란했던 것이라.
‘하지만 마력봉인석 권리를 분배해 주었잖아.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저 나를 속이기 위해 치를 만한 대가가 아니라고. 아마 내란 당시 폐하의 비밀통로를 조사하다가 안 것은 아닐까?’
스스로 세운 희망이었고, 기대였다. 이안에게 직접 물어보기에는 두려움이 있었으니, 진은 그저 모래로 성을 쌓는 것처럼 외면을 쌓고 있었다.
끼이익.
“저하. 가시지요.”
이안의 부름에 진이 웃으며 다가갔다. 평소처럼 다정하게 맞이해 주는 손길이 따뜻하다. 이안과 진은 퀸타나에게 눈인사를 남기며 인사했고,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저하, 퀸타나가 무어라 하더이까?”
쓰러진 이안을 보고 결심했던 것처럼, 조금만 더 나중에. 어떤 대답도 진을 흔들지 못할 때, 그때 용기 내 묻겠다.
진은 장난스럽게, 처음으로 이안에게서 곁가지를 뻗었다.
“으응. 비밀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