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70
제270화. 지하 난투
채앵!
검날이 벽에 부딪히며 나뒹굴었다. 역시 생긴 대로, 범상치 않은 실력이지 않나? 작당들의 시선이 검을 따라 움직였고, 덕분에 이안의 눈이 금빛으로 물드는 걸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티모시는 찢긴 소매를 대충 걷어붙인 다음,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 들려고 했다.
“시, 시벌! 다구리에 장사 없는 거 몰라?”
“앞으로 가! 밀어! 새끼들아, 쟤 검 잡는다!”
“네가 앞장서! 가, 간다!”
“빨리!”
패거리와 함께하는 선빵. 무뢰한들의 세계에서 이것만 한 진리가 또 없다. 그들은 티모시가 제대로 자세를 취하기 전, 다 함께 달려들었다. 긴장을 숨기고, 흥분을 고조시키기 위한 괴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앗!”
“자, 잠깐. 호구 눈이…….”
“조져! 죽여어어!”
좁고 기다란 복도. 창문 하나 없이 밀폐된 공간에, 티모시와 이안은 몰려있었다. 티모시는 검 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격돌을 앞둔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기다려 봐! 호구 눈 이상하다니까?”
“으아아악! 가자아!”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이 고개를 틀어 눈을 크게 떴다. 호구? 순간 잘못 들었나 싶은 게다. 살면서 처음 듣는 지칭이었으니까. 이안은 분노보다 되려 신선하여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타닥타닥!
“흐아앗!”
선봉에 선 자가 검을 크게 휘두르며 티모시에게 달려들었다. 면적이 워낙에 넓어서, 대충 갈겨도 어딘가에는 맞을 터. 그가 안일하게 생각하고 검 끝을 밀어 넣는 순간이었다.
“어?”
채앵!
티모시가 검으로 받아내자, 맞물린 검신으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남자의 팔. 쳐내려 했으나, 무리다.
티모시는 어렵지 않게 힘을 실어 그자를 벽에 밀어붙였다. 검날이 계속해서 목덜미 쪽으로 올라온다. 동료들에게 도와달라 고개를 돌렸으나, 그 때문에 힘이 어긋나 목이 베였다.
촤아아악!
“으아아악!”
제 검에 한 번, 그리고 티모시의 검에 또 한 번. 찰나에 두 번 베인 자는 두 손으로 목을 감싸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티모시는 검을 치켜들며 나지막이 경고했다.
“길 터.”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 치기 어린 허세는 이성적인 판단을 불능으로 만들었으며, 계단 위의 인기척은 거기에 불까지 지펴댔다. 지원해 주기 위해 패거리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는 것이라. 선두에 선 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티모시에게 덤벼들었다.
“죽어어어어!”
촤아악! 챙!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티모시는 뒤로 밀려나는 한이 있더라도, 일격에 집중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 일당들의 기세 역시 솟구쳤다.
“괜찮아! 계속 밀어붙여!”
“X바아아알! 으아아악!”
좁은 복도에서 검 대여섯 개가 동시에 치고 들어오니, 티모시의 호흡이 조금씩 가빠졌다. 이대로라면 저들을 모두 벤다고 하여도 시체가 쌓여서 못 나갈 판이다.
그때, 예상치 못한 공격 하나가 티모시의 귀 쪽으로 치고 들어왔다.
‘아.’
반대쪽 귀도 잘리겠군. 티모시가 그리 생각하는 순간, 이안이 재빠르게 마력을 응축시켰다가 터트렸다. 강한 충격으로 가까이 서 있던 적들이 뒤로 날아가듯 밀렸다.
퍼어엉! 펑!
콰앙!
“으아악!”
“뭐, 뭐야? 방금 그거?”
“왜 그래? 앞에 무슨 일인데? 아오, 안 보여.”
“갑자기 쳐 밀고 지랄.”
“닥쳐! 마, 마, 마법인 것 같다고!”
선두에 선 자들이 일동 정지했다. 사태 파악이 안 된 뒤에서는 아우성을 쳐댔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마법사라니. 가망 없는 것은 둘째치고, 황궁 관계자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티모시가 한껏 낮췄던 자세를 풀고 이안을 돌아봤다.
“…감사합니다만, 건물 무너집니다.”
“살살한다고 했는데, 좀 불안하긴 하네요. 그래도 사절의 귀가 잘리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귀국 시, 국왕께서 궁금해하시지 않겠습니까.”
방금의 충격으로 인해 천장에서 잔해 가루가 떨어졌다. 지상도 아니고, 지하에서 건물이 무너진다면 그만큼 곤란한 게 없지 않나?
쿠웅! 쿵!
아니나 다를까. 복도의 반대쪽 끝, 투기장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딛고 서 있는 바닥과 벽이 강하게 흔들렸다. 작당들은 움찔거리며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콰앙! 쾅! 쨍!
드르륵! 쿵!
투기장 안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진 것이라. 간헐적으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고, 당최 짐작할 수 없는 파열음이 터졌다.
작당들은 뒤쪽과 앞쪽을 번갈아 보며 어찌할 줄도 모른 채 서 있었다. 이내, 투기장 문이 좌우로 벌컥 젖혀지며 무언가 튀어나왔다.
“이아아아안아!”
“크헉!”
쿠웅!
철창 틈으로 다리를 뺀 채, 내달리는 모습. 두 손을 번쩍 든 채 철창을 받치고 있었다. 직원 한 명이 저지하려다 역부족이었는지, 튕겨서 복도를 뒹굴었다. 베릭은 포효하듯 악을 내질렀다.
“X쉐끼들아아! 너희 때문에 이안이 나 두고 갔잖아아아! 나 혼자 어떻게 가라고오오! 마차비 내놔! 이거 풀라고 내가 몇 번이나-!”
“…베릭?”
“어? 안 갔네?”
이안이 황당하게 그를 쳐다봤다. 안에서 들린 굉음의 정체는 저것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소리였나 보다. 아직 상처도 덜 나았으면서, 저걸 대체 어찌 들고 있는 거지?
베릭은 이안을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한쪽을 놓자마자, 금세 철창이 기울어 바닥에 떨어졌다.
쿠웅!
“아고, 드릅게 무거워.”
“베릭, 어떻게 내려왔어?”
“쾅쾅 뛰면서 흔드니까 천장이랑 같이 뜯기더라. 근데 너 안 간 줄 알았으면 가만히 있을걸. 꼬리뼈 졸라 아파.”
티모시와 얘기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는데, 베릭은 저를 두고 갔다 오인했나 보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다. 성격이 저리 급해서, 원.
“근데 다들 뭐 하는 중? 재밌어 보이네?”
“뭐, 재밌기는 하지.”
“나도 하고 싶다. 검 빌려줄 사람! 거기 너! 비실비실한 게 딱 봐도 깔아주는 역이네. 너한테 검은 사치다! 나한테 넘겨주라! 아니면 내 흑검 가져와!”
베릭에게 지목당한 사내가 당황하여 되받아쳤다. 뒷골목에서 매일 같이 입씨름하던 짓이라, 거의 반사적인 대꾸다.
“누가 누구보고 깔아주는 역이래? 네놈이나 깔려!”
“엥? 이 새끼가?”
“철창에 갇혀있는 주제에! 흐아압!”
퍼억!
사내가 틈으로 검을 찔러 넣었으나, 베릭은 재빠르게 철창을 잡고 틀었다. 검이 부러지며 튕겼고, 동시에 모서리가 남자의 턱을 후려쳤다.
그는 찢어진 입을 틀어막은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피와 함께 우수수 떨어지는 치아. 베릭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난 갇혀있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거다!”
…그게 그거 아닌가? 작당들은 잠시 멈칫거리며 좌우를 둘러봤다. 앞에는 월등한 실력자와 마법사로 추정되는 인물. 그리고 뒤에는 붉은 머리 미친놈.
우선은 도망가는 게 낫겠다. 금발의 소년이 진정 마법사라면, 살아나갈 길이 없다. 물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비켜! 젠장!”
“으아앗! 나와! 나와!”
그들이 등을 보이며 계단 위쪽으로 뛰어가자, 이안이 베릭에게 지시했다.
“베릭. 계단 막아. 아무도 못 나가게.”
“응? 야야야! 이안이가 나가지 말래! 멈춰!”
“빨리 뛰어, 새끼들아!”
“나가지 말라잖아! 귓구멍 막혔냐?!”
베릭은 두 손으로 철창을 번쩍 들고 내달렸다. 그러곤 작당들보다 먼저, 계단 입구에 떡하니 자리 잡았다. 그들이 철창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베릭이 버티는 바람에 꼼짝하지 않았다.
“쑤셔! 이 미친놈 죽여버려!”
“에에? 손 넣어보실 분? 제가 물어드려용.”
“죽여어어!”
까득!
“으아악!”
“오, 검이다! 누구 건지 모르겠는데, 감사! 손 넣어보실 분? 제가 잘라드려요!”
촤아악! 푸욱!
베릭은 검 하나를 채서 그대로 휘둘렀다. 그가 사정없이 쏟아지는 검과 주먹 따위를 이리저리 피하며 상대하는 동안, 티모시 역시 자세를 다잡고 뛰어들었다. 뒷골목 무뢰한들인지라 원래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였거늘. 이제 그들은 등까지 보이고 있었다.
티모시는 수월하게 적들을 베어가며 전진했다. 어둠 속에서도 핏물이 찰박거리고, 곰팡내와 비릿함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촤아아악!
티모시의 일격에 사내가 쓰러졌고, 이내 그는 철창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핏물을 뒤집어쓴 채 티모시를 올려다보는 베릭. 그가 히죽 웃으며 손을 뻗었다.
“오, 아저씨. 가까이서 보니까 실물이 더 더럽네! 여기서 나가면 한판 할래?”
“…이안 님.”
티모시는 베릭을 위아래로 훑으며 이안을 돌아봤다. 이안은 시체를 넘으며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네. 왜 그러십니까? 티모시 사절.”
“…정녕 이자가 친우 맞습니까?”
아까 안쪽에서 베릭을 친우라 칭하지 않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었다. 격의 문제를 차치하여도, 두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 자체가 완연히 달라 보였으니까.
“아, 왜! 아저씨가 몰라서 그렇지, 나 이래 봬도, 엉? 좀 그래!”
이래 봬도, 무어라 내세우고 싶었으나 말할 게 없다. 밥 잘 먹는 거? 잠 잘 자는 거? 싸움 하나는 기가 막히긴 하는데, 그렇다고 아직 최고는 아니다. 제이럿에게도 졌고, 흑갑옷에도 당했으니까.
말문 막힌 베릭을 대신하여, 이안이 싱긋 웃었다.
“저도 부정하고 싶습니다.”
* * *
“사람이 왜 이리 많지? 아까도 이러했나?”
진과 로만드로 그리고 시아오시는 사뭇 달라진 거리 분위기를 감지했다. 이안과 헤어질 때만 하더라도 이만한 인파는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다들 반쯤 정신 놓은 상태였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어수선하여 무슨 일이 생겼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마차도 많고…….”
“경비대입니다.”
“저쪽은 이안 형님이 들어간 골목 아닙니까?”
“가봅시다. 시아, 단단히 모셔라.”
“예. 알겠습니다.”
“잠시 비켜주시오. 앞으로 가겠소. 어허, 고맙소.”
로만드로가 인파를 헤치자, 시아오시가 진을 안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안쪽으로 가면 갈수록 번잡한 소란이 가득했다.
그 중심은 남루한 건물 하나. 경비대들이 잔뜩 모여 중상자들을 실어 나르는 중이었다. 시아오시의 어깨에 걸쳐 앉은 진이 이안을 발견했다.
“이안 형님!”
이안은 경비대장과 무언가를 얘기하던 중, 진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고개를 돌렸다. 이안의 지시에 경비대들이 사람들을 통제하여 길을 터주었다.
“진, 공원은 잘 둘러 보았니?”
“네. 형님. 시간이 다 되어 데리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대체…….”
“진 님! 빵 남은 거 있어요? 나 배고파!”
“베릭?”
진은 철창에 갇힌 채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베릭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걱정을 알아챘는지, 베릭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괜춘괜춘. 이거 제 피 아니라서.”
“베릭아, 이놈아! 너 배에 구멍 난 거 아직 안 나았어! 무슨 사고를 친 것이야!”
“나 사고 안 쳤는데! 와, 억울하다. 빵 있어요?”
로만드로는 베릭의 말에 어지러운 듯 이마를 짚어댔다. 이안은 경비대장에게 무엇인가를 속삭였고, 그는 절도 있게 경례한 다음 수습 현장으로 돌아갔다. 베릭의 철창 열쇠와 흑검을 회수하기 위해.
“이곳은 눈과 귀가 너무 많으니, 돌아가서 일러주마.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티모시다. 진은 천천히 입을 벌린 채 그를 올려다봤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더욱 기백이 엄청난 자로다.
티모시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진과 시선을 맞췄다. 이안의 일행, 은발에 벽안 아이라 하면 연상되는 자가 딱 한 명이었으니.
“티모시 오비아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참으로 면구스럽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이른 시일 내로 인사를 정식으로 올리겠습니다.”
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간결한 인사였으나, 이목이 집중된 현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였다. 이안이 진의 손을 잡으며 티모시에게 일렀다.
“그럼, 티모시 사절. 다시 보겠습니다.”
“네. 이안 님.”
이안은 서둘러 가보라는 듯 눈짓했다. 경비대에서 조사받지 않게끔 사정을 봐준 것이다.
티모시는 로브를 뒤집어쓴 다음,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이안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살폈고, 진은 이안을 살폈다.
“이안 형님.”
이안이 왜 그러냐는 듯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진의 미묘한 감각이 바스락거렸다. 이안 경이 처음 보는 자에게 저리 웃어 보였던 경우가 있나? 잘 모르겠다.
“티모시를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아니. 왜 그러니?”
이안은 변경에서 나고 자라 중앙에 당도한 지 얼마 안 된 몸이었다. 황자인 진조차 처음 보는데, 어찌 티모시를 만난 적 있겠는가? 이안이 부정했으나, 진은 어쩐지 개운하지 않았다.
“그냥. 익숙한 것 같아서요.”
“초상화를 보아서 그런 것 같다.”
“…그렇군요.”
“우선 돌아가자. 돌아가서 설명해 줄게.”
이안은 진의 어깨를 토닥이며 일어났고, 진 역시 알겠노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이안의 손을 잡아끌었다.
“참!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베릭이 피를 저리 뒤집어썼는데…….”
의뭉스러운 것은 의뭉스러운 것이고, 걱정할 것은 또 걱정해야지. 진의 물음에 이안의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아, 역시 착각이었나? 티모시를 향한 호의가 아니라, 그저 기분이 좋은 것인가? 진은 볼우물을 살짝 패며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