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74
제274화. 선발 시험
황궁훈련장에는 친위대와 제국방위부 소속의 장병들이 가득했다. 인재 선발을 앞두고, 그들 내부적으로도 진급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황궁친위대는 대장직이 두 자리나 공석인 상태. 모두 힘을 끌어올리고, 실력을 가다듬는 것에 열중하였다.
부상이 심한 바르사베는 2층 난간에 기대어 동료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봤다.
“어머, 어금니 씨. 훈련도 못 하면서 출석은 꼬박꼬박하네요?”
“아, 진짜.”
그녀의 룸메이트가 차가운 음료를 볼에 대어주며 어금니의 부재를 애도했다. 바르사베는 거칠게 받아든 다음, 한입에 절반을 마셔 버렸다.
비 오는 날, 그러니까 바르사베가 흑갑옷으로부터 살아온 날부터 다들 이 지랄들이다. 병상에 누워 들었던 첫 농담이 ‘너 진짜 어금니 없네’ 따위였으니까.
“어금니 없는데 왜 자꾸 어금니라 불러?”
“없으니까. 추모하는 거지.”
“가서 마저 뛰세요. 너 한 바퀴 덜 뛰는 거 내가 다 봤다. 대장님한테 걸리면 열 배로 늘어나는 거 알지?”
“우리 어금니 씨는 자율 훈련이라는 단어를 모르나?”
“죽는다, 진짜!”
“아하하하!”
동료들이 땀과 괴성을 내지르며 단련하는 동안, 바르사베는 그걸 무료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근질거렸지만, 별수 없다. 지금 무리하면 평생 검을 잡지 못할 것이라 하였으니.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훈련장 한가운데를 노려봤다. 룸메이트 역시 마찬가지로 시선을 더했다.
“미친놈 같지? 한 시간 째 저러고 있어.”
“같이 얻어 터졌는데, 왜 저놈은 저리 멀쩡한지 모르겠네. 억울하게.”
베릭이다. 그는 모래주머니를 찬 채로 훈련장을 누비고 있었다. 뛰었다가, 굴렀다가, 제이럿 대장에게 혼났다가, 검 들고 덤벼들어 터지기. 이를 한 시간째 쉼 없이 반복하고 있었으나, 지치는 기색이 하나도 없다.
룸메이트는 궐련을 주섬주섬 꺼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다쳤다는 명분이라도 있지, 나는 사지 멀쩡한데 저놈 체력을 당최 못 쫓아가겠다. 배에 구멍 안 뚫렸으면 어쩔 뻔했어?”
바르사베는 부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한탄 그 어딘가의 탄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그걸 본 룸메이트가 어깨를 툭툭 쳐대며 장난스레 위로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속 안 좋으면 상처도 더디게 나아. 쟤 인외족이라는 소문도 있더만.”
제이럿 대장이 베릭의 뒷조사를 했다는 게 와전되어 퍼진 소문이었다. 물론, 그 발화점은 경이로운 회복력과 당최 사람 같지 않은 베릭의 행동거지였지만.
바르사베는 미간을 찌푸리며 비웃었다.
“인외? 웃겨. 개새끼면 인정.”
“나도 거기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보면 볼수록 사람 아닌 것 같긴 해. 하하.”
장기가 터지고, 사지가 너절해진 것을 치료한다고 얼마나 많은 자가 베릭의 맨몸을 보았겠는가? 인외라면 응당 신체에 특이점이 남아있을 터. 뜬구름 같은 소문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말들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제이럿 대장님이 저리 밀어주는 건가?”
“밀어주기는. 종일 두들겨 패는데.”
“…대장님이 쓸데없이 몸 움직이는 거 봤어?”
바르사베의 질문에 룸메이트가 어깨만 으쓱거렸다. 베릭과 시아오시는 친위대와 방위부를 제외한, 거의 유일한 외부인이었다. 그런데도 불구, 제이럿 대장은 그들을 친위대와 함께 지도했고, 이를 숨기지도 않았다.
따악!
“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청명한 타격음과 함께 베릭의 고함이 울렸다. 까불던 녀석이 제이럿 대장에게 얻어맞은 것이었다. 다들 아닌 척, 힐끔거리며 베릭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돌아봤다.
“아프잖아, 아저씨! 봐!”
“…씨바?”
“아니, 보라고! 이거 보라고! 혹! 혹!”
따악!
베릭은 이마를 감싸 쥐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안 그래도 땀에 절어 눅진해진 몸, 이참에 누워서 휴식이나 하자는 수작이었다. 그걸 알아챈 제이럿이 회중시계를 딸깍거리며 경고했다.
“1분 안에 안 일어나면 앞으로 훈련장 출입 금지다.”
“아아아악!”
짜증 섞인 괴성이었지만, 몸만큼은 성실했다. 베릭은 벌떡 일어나서 허공에 주먹질을 휘둘렀다. 안 봐도, 그가 누구를 상상하고 있는 지는 훤했다.
“아오, 진짜. 내가 대장만 되어봐라!”
“…하아, 하아.”
시아오시가 거친 숨을 내쉬며 베릭을 지나치려 하자, 베릭이 데구루루 굴러 앞을 가로막았다. 그가 검을 휘두르며 멋대로 설쳐대는 동안, 시아오시는 제이럿의 명령대로 기초 훈련을 성실히 이행 중이었다.
베릭이 치근덕대며 검을 다잡았다.
“시아, 다 돌았어?”
“…아직, 두 바퀴, 남았습니다.”
“그거 했다 치고, 나 대련 상대 좀 해주라. 다른 놈들은 척도 안 해.”
시아오시는 땀을 훔쳐내며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건 당연하지 않나? 아무리 대련이라고 해도, 승패가 가려지는 작은 시합이다. 신분 없는 자와 겨루어서 무슨 이득이 있겠나? 이기면 본전, 지면 낭패 중의 낭패라.
대부분이 승급을 앞두고 있었으니 기민하게 상대를 고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아, 하아, 저희는 외부인이잖아요.”
기저에 불만이 깔려있었다. 저놈들은 대체 누구이기에 황궁훈련장을 쓰고, 무엇이기에 제이럿 대장이 직접 봐주는 것인가? 특혜는 명백한 사실이었고, 베릭이 소란을 피울 때마다 주변의 시선이 공격적으로 변해갔다.
뭐, 베릭이 대련을 실전처럼 한다는 것 또한 기피 이유 중 하나겠지만.
“외부인이면 뭐? 어차피 곧 식구 될 건데.”
“…저는 마저 돌겠습니다.”
“안 돼! 재미 없는 달리기 그만하고 나랑 대련해! 대련! 검 좀 제대로 휘둘러 보자! 시아, 진짜 안 아프게 살살 할게. 응?”
베릭이 시아오시의 바짓단을 딱 잡고 매달렸다. 난감한 것도 잠시, 이대로 쉬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시아오시 역시 멈추어 버렸다. 베릭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대련하자고오오!”
“이봐. 주둥이 좀 다물지 그래?”
“앙? 나?”
“그래.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나?”
그때, 제국방위부 소속의 한 장병이 불쾌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시아오시의 발을 딱 붙잡은 채 붙어있던 베릭이 고개를 뒤로 돌려서 상대를 쳐다봤다.
“그러면 네가 대련해 줄래?”
“…너?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네가 먼저 너라고 했잖아, 등신아. 기억력 1초세요? 대련해 줄 거 아니면 신경 끄고 하던 거나 해. 개XXX끼가 시비질.”
신경전이 파바박 치솟자, 주위가 술렁거렸다. 제국방위부 쪽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거슬렸던 심기를 발산하였고, 황궁친위대는 수군덕대며 물러서는 양상이었다.
“제국방위부는 베릭을 잘 모르나?”
“당시 궁 밖에 있었으면 모를 수도 있지.”
“모르면 가만히라도 있든가. 반이라도 가게.”
황궁친위대는 바보라서 가만있는 줄 아는가? 그들은 베릭이 제이럿 대장과 대련했던 것을 보아서 알고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승패에 강한 집착을 보여 그 과정이 상당히 예측 불가라는 것을.
승급 앞두고 괜히 다치기라도 하면 저만 손해다. 그리고 대장인 제이럿이 봐주고 있는데, 저들이 무어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이라.
“…아, 대련? 이런 걸 원해?”
빠아악!
사내는 솟구치는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고, 베릭의 안면을 가격했다. 너무 순식간이었다. 베릭은 계속 쫑알대던 와중이었고, 시아오시는 웃옷을 펄럭이며 땀 식히던 참이었으니. 사내의 공격에 베릭의 고개가 완전히 뒤로 꺾였다.
“X만 한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자꾸 까불어? 며칠 전부터 계속 거슬렸는데, 잘 됐다. 이참에 아예 못 나오게 만들어주마. 대련? 해.”
“…아하하.”
스윽.
고개를 바로 세운 베릭의 코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눈빛은 초롱초롱. 드디어 임자 만났다는 반가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타앗! 베릭이 있는 힘껏 흑검을 다잡고 달려들려는 순간.
“베릭.”
제이럿의 음성이 그를 붙잡았다.
“지금은 대련 시간이 아니다. 소란을 피우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 소속을 대라.”
“…제국방위부 4군 294번대 소속 햄프입니다.”
“햄프 장병, 황궁친위대는 지금 대련을 하고 있지 않으니, 그대도 그만하여 물러나라.”
그는 허공에서 멈춘 검을 슬쩍 본 다음, 고개를 숙였다. 한 방 시원하게 먹였으니 후회는 없다. 오히려 말려주어 고맙지, 뭐. 사내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는 듯 발끝을 끌며 저들 동료 사이로 돌아갔다.
“으…….”
한편, 베릭은 코피를 후두둑 떨구며 검 잡은 손을 부르르 떨어댔다. 참으라 하여 참고는 있는데, 진짜 버겁다. 당장이라도 저자의 살덩이에 검날을 집어넣어 헤집고, 잘라내며, 피를 쏟게 만들고 싶었다.
아드득.
이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황궁친위대 기사들은 그걸 보며 다시금 속삭였다. 저 짐승 같은 놈이, 제이럿 대장의 말을 듣는단 말인가? 세상에.
하지만 성질머리는 여전한 듯하다. 베릭은 검을 내던지며 짜증스러운 패악을 질러댔다.
채앵!
“아오, X이이발! 진짜 X 같아서 못 해 먹겠네! 나 한 대 맞았다고! 코피 났다고오!”
“못 해 먹겠으면 관둬. 억지로 하라 한 사람, 아무도 없다. 네놈이 없으면 훈련장이 쾌적해질 터. 오히려 환영이군.”
“제이럿! 젠장! 진짜 두고 봐!”
콰앙! 쾅쾅!
분에 찬 것처럼 발로 바닥을 몇 번이나 차댄다. 시아오시는 그런 베릭에게 물을 건네주었고, 베릭은 마시는 대신 머리에 쏟아부으며 열을 식혔다.
“하, 씨이.”
“…잘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잘하는 거라고?”
시아오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럿은 지금 베릭에게 규율을 일러주었고, 베릭은 그걸 받아들였다. 망나니처럼 살던 자가 제복을 입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필수적이지 않나.
시아오시도 체득하여 알고 있다. 무언가에 복종하기 위해서는, 본능을 꺾어 누르는 게 그 시작이라.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할 때 그런 말 하지 말걸.”
훈련장에 처음 나왔을 때, 제이럿은 오히려 베릭을 달래는 쪽에 가까웠다. 마검사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그는 가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 1등하고 싶어.’
‘모두가 그걸 원한다. 하지만 쟁취하는 자는 결국 남들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자이지. 너는 강함만을 원해. 그 정도가 깊다고 한들, 어쨌거나 네 원동력은 그 하나뿐이다.’
‘그럼? 그것 말고 또 있나?’
‘베릭, 의미를 만들어라. 네가 강해져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걸 정해. 그렇지 않으면 도달하기도 힘들고, 도달한다고 한들 그 기쁨을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
제이럿의 조언은 그날의 베릭을 떠올리게 했다. 아비의 폭력과 강도의 습격 따위를 지나, 얼마 전의 그날. 티모시가 이안과 그가 진정 친우인지를 물을 때, 내세울 것 없어 턱 하고 말문이 막혔던 순간 말이다.
“기껏 말했더니 태도 싹 바뀌고 이렇게 굴려댈 줄 알았나? X발, 사기 당했어, 진짜. 이안이 말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까득!
베릭은 물통을 찌푸리고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분풀이하듯 와다다 달려가는 모습. 졸지에 물병 잃은 시아오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타앗!
그리고 두말하지 않고,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두 사람 다, 원하는 것이 같았다. 선발되어 가치를 증명하는 것.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길이자, 동료를 위하는 길이었으니.
제이럿은 호루라기를 입에 문 채 두 사람을 지켜봤다. 마찬가지로 같이 구경하던 친위대 기사들. 제이럿은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며 소리쳤다.
“검 노는 놈들 몇 보인다. 계속 움직여!”
“네! 알겠습니다!”
“불만 있으면 대장직에 올라라! 아래에서 아무리 외쳐댄들, 들리지 않아!”
“흐아아압!”
삐이이익!
황궁의 훈련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운 나날을 맞이했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도전자들의 기합이 밤낮으로 끊이질 않았다.
* * *
그리고 대망의 그 날.
보름에 걸쳐서 진행되는 인재 선발 시험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가슴팍에 번호표를 부착한 자들이 일렬로 서서 훈련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릭과 시아오시 역시 마찬가지다.
“한 줄로 서서 들어오십시오. 순서, 간격 지키고!”
“앞줄부터 호명하겠습니다. 간단한 신체검사는 저쪽으로 돌아가고, 오시면 기초 체력 시험을 진행합니다. 기준 미달은 바로 출궁하고, 합격자들은 이름표를 가져오세요. 대련표를 짤 것입니다.”
“시끄럽습니다! 소란 떨지 마세요!”
“거기! 무기는 입구에 맡기세요!”
시끌벅적, 아주 소란스럽다. 베릭은 바로 앞에 서 있는 시아오시의 팔을 잡아 흔들며 긴장과 흥분을 풀어댔다.
“와씨, 사람 졸라 많다.”
“…….”
“어? 시아, 저기 봐!”
베릭은 시아오시의 고개를 위쪽으로 틀어주었다. 2층 난간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사람들. 이안과 로만드로 그리고 진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선이 딱 마주치자, 로만드로가 두 손을 붕붕 흔들며 인사했다. 다치지 말고 잘 하라는 응원이라. 진 역시 조심스럽게 한 손을 들어 올렸고, 이안은 턱을 괸 채 웃고만 있었다.
“이안아아아!”
“…….”
“시아 너도 소리쳐 봐. 로만드로오오! 님!”
소란에 묻히는 부름이었으나, 이안에게는 닿았다.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번, 잘 해보이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