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81
제281화. 베릭이 간다
제이럿은 난간을 가볍게 넘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수 미터에 이르는 높이였으나, 몸짓이 가볍고 정확하다. 그를 따라 서서히 몰려드는 황궁친위대원들. 개개인으로도 위엄이 대단하지만, 제복까지 갖춰 입은 채 뭉쳐있으니 압도적이다.
자연스럽게 주위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이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장의 흐름이라. 그 누구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시험을 진행하고 있던 자들조차.
“사, 삼대장이지? 저 사람.”
“시험 진행 안 합니까? 실격패 처리합니다.”
“거참, 가만 좀 기다려 주시오. 다들 멈췄지 않소? 저게 어디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건 줄 아십니까? 운 좋으면 마물 전투 때나 볼까 말까인데.”
“운 좋으면 이라니? 나쁘면?”
“나쁘면 참전하자마자 뒤지는 거지.”
수군수군, 술렁이는 속삭임이 점점 거세졌다. 삼대장 직위는 제국에서 제일 강한 자에게 부여되는 명예이지 않나? 일반 마검사들의 전투 역시 눈 돌아갈 정도였거늘, 대체 대장은 어떠할까? 기대감에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베릭.”
“왜 불러. 봐달라고 해도 안 봐줘.”
제이럿은 정복 재킷을 벗으며 팔을 걷었다. 셔츠 단 하나하나 올리는 모습이 정갈하다 못해 경건했다. 망나니 같은 녀석이긴 하다만, 어쨌거나 신분은 외부인 참가자. 예의를 다하는 것이 주최자로서의 행동 지침이었다.
“나는 봐달라고 하면 봐줄 것이다. 치기는 적당히 부리고, 목숨에 지장 없도록 해. 네가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걸 기억하고.”
“우엑. 웬 걱정.”
베릭은 토하는 시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명백한 거절이자 조롱이다. 친위대원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했으나, 제이럿이 손을 들어 막았다.
“시아오시랑 붙인 게 그리 성질나던가?”
“어! 기분 X 같던데?”
“내가, 그리고 네가 왜 그랬는지는 알고?”
“몰라. 알아서 뭐 하게? 이미 일어난 일.”
지이잉! 지잉!
솨아아악!
베릭이 마력을 폭증시키면서 흑검을 치켜들었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붉은 머리칼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작게 보이는 송곳니 탓일까.
마치 불구덩이에서 태어난 악마 같다.
“베릭, 더 뒤로 들어가! 거기는 보호막 없어!”
“젠장, 저거 듣고 있나? 눈탱이 맛 갔는데? 보호막 확장해!”
“이, 이안 님!”
위에서 지켜보던 마법사들이 식겁하며 소리쳤다. 몇몇은 이안에게 베릭 좀 말려달라는 듯, 급히 고개를 돌리곤 하였다.
하지만 늦었다. 베릭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검을 휘두르는 것이다. 다시 한번 다짐을 내지르며.
“내가 대장-!”
퍼엉! 콰아앙!
순식간이었다. 제이럿은 베릭의 얼굴을 붙잡고 마력을 터트림과 동시에 뒤로 던져 버렸다.
폭발에 튕긴 베릭이 데구루루 구르며 보호막 벽에 부딪혔다. 먼지가 작게 일어난다. 제이럿은 천천히 걸어서 그에게 다가갔다.
“이것은 명색이 시험이다. 절차를 따라주면 고맙겠군, 베릭 참가자. 경계를 벗어나서 공격하지 말 것이며, 지금껏 했던 대련과 달리 무기에 제한이 없다. 기권 역시 가능하고, 전투 불능 상태가 되면 내 자의적인 판단으로 시험을 멈추겠다.”
“응. 혼자 중얼중얼. 하나도 안 들리고요.”
베릭이 옷을 털며 일어나자, 뒤에 서 있던 친위대원이 참다못해 일갈했다. 건방지다 못해 방자한 작태 아닌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닥쳐라! 분수도 모르고 어딜 자꾸 기어오르는 것인가? 대장이라는 직함의 위엄도 모르고, 아둔한 것이!”
“아둔? 내가 아둔한 거면 너는 빡대가리야.”
“뭐, 뭐라고? 빠, 빡?”
베릭에게 저런 말을 듣다니! 로만드로와 진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저자는 모를 것이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 모욕을 되돌려 받았는지.
베릭은 황궁친위대 쪽으로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너희는 나를 응원해야지! 생각 좀 해봐라! 여기서 영감탱이 죽으면 대장직이 비지? 그럼 두 명 올라갈 거 세 명 올라갈 수 있잖아! 아이, 등신들, 이런 것도 내가 일러줘야 하네. 쯧쯧.”
기적의 개논리. 친위대원들은 입을 떡 벌린 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고방식 자체가 남다르다. 성적으로 본다면 필히 친위대에 입대할 것 같은데, 정녕 저자를 동료로 삼아야 하는가?
친위대원들은 일제히 제이럿을 쳐다봤다. 질색하는 낯빛이 모두 똑같다.
“안 됩니다. 미쳤습니다. 저건 결격 사유입니다.”
“대장님 저놈에게 본때를 보여주십시오!”
“예, 다른 거 필요 없습니다. 그냥 반 죽여서 입대 못 하게 해주십시오. 저놈 몫까지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봉급도 반납하겠습니다. 진심입니다.”
베릭은 휘파람을 불어대며 대원들에게 윙크했다. 특히, 봉급을 반납하겠다는 자에게는 두세 번 연달아서.
“너는 내가 잘 기억해 둘게. 나 대장 되면 너 공짜로 일해. 그 돈으로 난 고기 사 먹을라니까.”
삐이익!
호각 소리가 찢어지게 울렸다. 마치 베릭의 말을 자르려는 듯 말이다. 지켜보는 자들이 많은데, 더 이상의 언쟁은 서로에게 도움 안 될 것이라 판단한 로만드로의 처치였다.
베릭은 기다렸다며 다시금 검을 다잡고 제이럿에게 달려들었다.
타닥타닥!
“그거 알아?”
“…….”
“나는 배에 구멍 뚫릴수록 세지는 거!?”
콰아아앙! 쾅!
지이잉!
이번에도 베릭의 공격은 허공에서 멈추었다. 제이럿이 자신의 검을 불러낸 탓이다.
체투르 구역에서 보았던 번개가 다시금 사방에서 만개했다. 번쩍이는 빛줄기가 휘몰아치며 그의 손아귀에 쥐어졌고, 그것은 이내 검의 형태로 변하였다.
뚝뚝 흘러내리는 마력.
바닥에 닿은 것들이 산발적으로 튀어 올랐다.
치지직! 치익!
“베릭. 다물어. 혀 깨문다.”
“영감탱이나 조심하세요! 강냉이!”
제이럿은 베릭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실력만이 아니라, 성격 또한 포함이다. 짓밟아도 밟히지 않고, 꺾어도 꺾이지 않는 강단과 도전 정신. 그리고 그를 뒤받쳐주는 재능.
인재는 확실히 인재였으니. 제이럿이 재지 않고 마력을 개방한 것은 간접적으로 베릭을 인정한다는 방증이었다.
콰아앙! 쾅!
채앵! 챙!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힐 때마다 천지가 울리는 것 같았다. 보호막의 투명한 벽이 진동하며 파동을 만들어냈다.
바로 앞에서 구경하던 자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혹여 보호막이 깨지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라.
“괴, 굉장한데.”
“무게가 다르군. 화, 확실히 달라.”
충격음은 저들이 내는데, 어찌 심장 깊은 곳에서 울림이 생기나? 구경꾼들은 눈 하나 깜빡할 생각도 못 한 채 그들의 합을 지켜봤다.
안쪽은 마치 다른 세상 같다. 빛과 화염의 폭발이 피어오르고, 연기로 인해 시야가 흐리다. 간헐적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베릭이 막아내고, 이번에는 제이럿이 막아내고, 베릭이 공격하고, 제이럿이 공격하고…….
“로만드로. 쫓아갈 수가 없군.”
“저, 저도 그렇습니다. 저하.”
시선으로 따라가는 것만 해도 버겁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에 몇 번이나 합을 주고받다니. 군더더기 없는 검과 검의 연결이다. 어찌 보면 하나의 예술 행위라 볼 수 있을 터.
‘아니, 시발. 쟤는 저걸 어떻게 버티는 건데.’
바르사베는 난간에 팔꿈치를 기댄 채 이마를 짚어댔다. 벌써 일 분이 지나가고 있지 않나? 제이럿과 몇 번이나 대련해 보았기에, 저 시간이 얼마나 긴지 알고 있다.
저는 도망치며 간신히 받아내는 것에 그쳤는데, 베릭은 반격까지 유효히 날리는 중이다.
아, 이럴 수가.
“젠장. 저 새끼 대체 뭐야?”
“대장님! 봐주지 마십시오! 안 됩니다!”
“처음 궁에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가볍네. 진짜 배에 구멍 뚫리면 강해지는 타입인가?”
“쟤 다쳤을 때 마법사들이 죄다 붙어서 마력 넣어줬잖아. 그거 때문이지, 무슨 개소리를 정성껏 믿고 있어?”
동료 친위대원들도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맨몸으로 하는 격투는 체급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베릭은 이미 그중에서도 높은 순위를 기록하지 않았나? 10위권이라 방심하고 있던 자들에게 은근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콰아앙! 쾅!
그때였다. 연기 속에서 베릭의 몸이 날아와 보호막에 부딪혔다. 베인 것인지, 피가 울컥 솟는 옆구리를 꽉 움켜쥔 상태다. 핏물이 주르륵 흘러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아오, 씨발.”
“베릭!”
“아이고, 이놈아! 뱃가죽 또 벌어지겠다!”
부상을 알아챈 진과 로만드로가 난간에 붙잡고 소리쳤다. 하지만 베릭은 인상만 찌푸린 채 연기 속을 노려볼 뿐이다.
망할 영감탱 같으니라고. 늙어서 이 정도였다면 젊었을 때는 대체 얼마나 더 강했을지 모르겠다.
스윽.
연기 속에서 모습을 보이는 제이럿. 그는 뚜벅뚜벅 걸어와 베릭 앞에 섰다.
“……!”
“대장님!”
그의 왼팔, 흰 셔츠가 피로 잔뜩 젖어있었다. 저것은 베릭의 피가 아니다.
“그만 기권해라. 베릭.”
“지랄. 까지 마세요.”
끝까지 가보자는 것인가?
제이럿은 주먹을 꽉 쥐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으나, 힘에 부치는 건 사실이다. 베릭은 가늠할 수 없는 주제에 저돌적이었고, 재빠른 와중 체력까지 좋았으니까.
쉬이익!
제이럿은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검을 쳐들었다.
있는 힘껏 내려찍는 공격. 베릭은 옆으로 구르며 간신히 피했으나, 쉼 없이 쏟아지는 압박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그의 흔적을 따라 바닥에 핏자국이 쓸렸다.
“아오, 시발아!”
“다물어라!”
베릭이 힘을 줄 때마다 옆구리에서 핏물이 주륵 흘러댔다. 이대로 간다면 또 당분간 마법부 복도를 굴러다닐지도 모르겠다. 로만드로가 그만하자고 말리려는 순간.
촤아악!
“크흑!”
베릭이 휘두른 검이 제이럿의 턱과 귀를 제대로 베었다. 상대가 놀라서 뒷걸음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어?”
“쟤 뭐 하냐?”
베릭 역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재빨리 위쪽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리더니, 이안을 발견하고 뛰어올랐다.
다들 저놈이 무엇하려나 싶어, 의아하게 지켜보는 모습이다.
“이안아!”
“…베릭?”
베릭은 난간에 매달려 반대쪽 손을 이안에게 뻗었다. 그리고 아주 당당하게-
“마력 좀 넣어줘.”
마력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친위대원들이 경악하며 단체로 반발했다. 당장이라도 끌어내릴 것처럼 달려드는 것은 덤이었으니.
“반칙이다! 이, 이 비겁한 놈아!”
“내려와! 대련장을 벗어나면 실격이라고!”
“이봐, 어서 실격시켜! 뭣들 해?”
하지만 베릭은 귀만 후비적거리며 듣는 척도 안 했다. 되려 무시하는 것처럼 코만 훌쩍일 뿐이라.
“어이, 빡대가리들.”
“빠, 빠악!? 또 빡? 너 이 새끼!”
“아까 영감탱이 말하는 거 못 들었냐? 대련장 밖에서 공격하지 말라며? 나 졸라 가만히 있는데? 그리고 무기도 제한 없이 쓰고 싶은 거 다 쓰라며?”
“마력 공급이 어째서 무기야?”
“무기가 아니면, 고기세요? 싸울 때 쓰면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도 무기지. 꼬우면 너희도 하든가.”
할 수만 있다면 말이지.
베릭이 이안에게 어서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황궁친위대에 그가 들어가면, 혹여나 대장직으로 들어가면 이안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곧 마법부의 세력 확장과 같은 말.
이 상황에서, 그 어떤 마법사가 황궁친위대에 마력을 불어넣어 주겠나?
“이안아, 어서. 나 옆구리 아프다.”
“베릭.”
“어허. 서둘러라. 뒤지겠다. 영감탱 주제에 졸라 쌩쌩하다.”
근엄한 말투까지 따라하는 모습. 이안은 희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무지 못 말리겠다는 듯.
스윽.
이안이 베릭에게 가까이 다가가 팔을 잡아주었다. 곁에 있던 마법사들도 덩달아 당황하여 따라왔다.
“이안 님. 괘, 괜찮을까요?”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니.”
“아니, 그것이 아니라…….”
황궁친위대에 들어갈 베릭이 이안의 수하라는 걸 만천하에 알리다 못해, 다시금 종지부를 찍는 행위다.
또한, 특혜 논란을 감수하면서 황궁친위대에 세력을 심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안 그래도 요즘 마법부에 이목이 쏠리건만…….
지이잉. 지잉.
이안은 단호하게 마력을 발동시켜 베릭에게 넘겨주었다. 금안이 빛나며 그의 머리칼이 살짝 휘날렸다. 이는 단순히 베릭의 승리만을 위한 게 아니다. 견제를 일으키기 위한 도화선.
“가자. 베릭.”
“오랜만에 먹으니까 좋네!”
타앗!
베릭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피를 닦아내고 있는 제이럿의 정수리가 보였다. 그가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공격을 쳐냈으나, 느낌이 다르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콰지지직! 콰앙!
번개 같았던 제이럿의 마력검이 파훼되어 바스라졌다. 반짝이는 불꽃 사이로 제이럿과 베릭의 시선이 맞물렸다. 베릭은 씨익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영감탱. 나 아까 분명히 말했다. 안 봐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