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83
제283화. 시상식
외곽에서 중앙으로 이어지는 길목. 동이 겨우 터 오는 새벽이었으나, 마차의 행렬은 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나같이 거대한 술통과 마른고기, 치즈 따위를 싣고 있었으니.
주점의 주인들은 밖으로 나와서 마부들을 맞이했다. 아직 거리에는 전날의 축제 여파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여태까지 맥주를 홀짝이는 자들, 곯아떨어져서 나뒹구는 자들 그리고 곳곳에 쌓인 쓰레기가 그러했다.
“이쪽이오. 오시느라 수고했소. 안쪽 창고를 비워두었으니까, 옮겨주시오. 얘들아, 물건 왔다!”
주점 주인의 부름에 직원들이 술통을 나르기 시작했다. 마부는 그가 건네준 수프를 홀짝이며 물어왔다.
“그런데 무슨 발주를 이리 많이 하셨습니까? 평소보다 다섯 배는 많은데요. 말들이 고생했어요.”
“알지, 알아. 그래서 몫도 더 쳐준다고 하였잖아.”
“제가 걱정할 건 아닌데요. 이거 나가기나 하겠습니까? 선발은 어제 끝났고, 오늘이 마무리하는 날이라면서요. 다들 이제 이렇게 안 마셔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죄다 내려가는 분위기더만.”
마부의 참견에 주인장을 혀를 끌끌 차댔다. 술 떼는 사람도, 떼주는 사람도 별말 안 하는데, 옮기는 자가 힘들어서 불평해대다니.
“뭣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오. 소문 못 들었나? 진 황자 저하 임명식 때 3국 지도자들이 죄다 모인다 하여, 다들 난리인데.”
황자의 임명식 자체도 축제 중의 축제인데, 거기에 3국의 지도자가 온다? 사절단 규모를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항간에서 과장한 소문에 따르자면, 작은 나라 하나가 움직일 정도라 하였다.
그뿐인가? 바리엘 전역에서 손님들이 몰려들 것인데, 이번에는 외국인들까지 몰려들거라 예상했다. 선발 시험 따위는 비교할 수 없이 성대한 나날이 이어질 것이라.
“그때 되면 술 떼고 싶어도 못 떼니, 이리 미리 받아두는 것이오. 당분간 매일 이 정도를 주문할 것이라, 고생 좀 하시게.”
“이제 막 선발 끝났는데, 호들갑은. 술 다 쉬겠소!”
“술이 왜 쉬어? 묵힐수록 맛난 건데? 아, 자꾸 토 달면 오지 마시던가! 다른 마부를 보내 달라 이를까?”
참다못한 주인장의 호통에 마부가 슬그머니 일어나 술통을 나르기 시작했다.
한심하기는! 주인장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다가, 주점 문턱에 반쯤 걸쳐 있는 자를 발견했다.
“이보시오! 손님!”
“으에엑…….”
“아이고, 얼굴 개판 났네. 손님! 해 떴어! 오늘 시상식에 참가한다면서?”
베릭은 저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반쯤 뜨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 모습을 본 주인장이 차마 못 볼 걸 보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시상식?”
“어제 매상 많이 올려주어 내 기억하는 것이오. 서둘러 들어가는 게 좋지 않겠어? 주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늦으면 혼낼 거라 했다면서?”
“아! 아아악! 악!”
“왐마.”
어찌나 붙임성이 좋던지, 혼자 주점에 들어와서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 휩쓸고 다니는 게 범상치 않았다.
얼핏 듣기로는, 선발 시험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어 주인이 포상을 내린 것이라 하는데…….
“말! 내 말!”
“얘야, 손님 말 내와라.”
“죽었다. 와씨, 뒤졌다!”
“손님 뒤지겠단다. 어서!”
베릭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세수를 대신했다. 마구간에서 말이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고삐를 그러쥐고 발을 차댔다. 말 역시 잠시 덜 깼는지, 휘청거리며 거리를 내달렸다.
주인장은 직원들과 함께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나, 누군지 모르겠지만 주인이라는 자가 참 고생하겠군.”
“먹는 것도 엄청 드시던데요. 어제 매상 절반은 저분이 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고생하겠다고.”
타닥타닥!
그래도 한적한 새벽이라, 베릭은 막힘없이 말을 몰 수 있었다. 길만 헤매지 않는다면 이안이 알아채기 전에 당도할 수 있으리라!
희망과 기대를 겨우 붙잡고 달리던 베릭은, 저 멀리 길 건너는 노인을 발견했다. 그대로 달리면 얼추 지나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어? 어어?!”
노인은 걷고 있는 게 아니라 땅을 기고 있었다. 한껏 웅크린 채, 묵직한 보따리까지 매고 말이다.
베릭이 놀라서 고삐를 틀어쥐었고, 말이 그 위를 날아 넘었다.
히이잉!
“야, 이씨. 가만있어 봐! 이봐요, 괜찮아요?”
“아이고, 노인네 간 떨어져서 죽겠네.”
“미안해요. 진짜 미안. 내가 너무 급해서.”
베릭은 말에서 내려 노인에게 다가갔다. 부딪힌 느낌은 안 났는데,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이리저리 살펴보며 다친 곳이 있나 확인해 보는데, 노인은 그런 베릭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 시선을 느낀 베릭이 멈칫거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빈 감각. 다리가 없다.
“헉. 큰일 날 뻔했네! 그래, 괜히 기고 있던 게 아니었어! 할매, 내가 진짜 미안.”
베릭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남은 돈을 헤아렸다. 이안이 분명 용돈 겸 축하금으로 금화 한 닢을 주었는데, 남은 것은 동화 몇 닢 뿐이다.
하지만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놀라게 한 값으로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거 얼마 안 되긴 해도 가서 따순 수프 먹어. 놀란 가슴 진정시키는 데는 제일이거든.”
“이놈아, 나는 돈 같은 거 안 받아!”
“엥? 그러면?”
노인은 로브 아래로 베릭을 훑어보았다. 그러곤 됐다는 듯이 혀를 차며 가던 길을 기어가는 게 아닌가.
“되었다. 네놈은 먹을 것도 없다.”
“…시벌, 뭐여. 할매, 사람 먹어?!”
“됐어! 갈 길 가!”
베릭이 놀라서 로브 끝자락을 붙잡았고, 노인은 치우라며 손을 내저었다. 거리에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있었다면 실로 이목을 끌 만한 소란이었으니.
베릭이 끝까지 매달리며 노인에게 달라붙었다.
“사람 먹는 거 아니면 뭔데? 이대로 갔다가 나중에 나 신고하면? 나 이안이한테 진짜 혼나! 돈이라도 받고 가!”
“돈 안 받는다니까? 노인을, 이놈이!”
“아오, 진짜! 그러면 어쩌라는 건데?”
다리 없는 노인인데 힘은 더럽게 세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베릭은 거의 질질 끌리다시피 휘청거렸다.
“알겠다. 알겠으니까, 이거 놓고 나 좀 가게 해줘.”
“돈 받고 가.”
하아.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번잡해지기 전에 서둘러 모습을 숨기고 싶었다.
“나는 돈 대신 다른 걸 먹고 살아.”
“시발, 역시 인육을!?”
“비밀.”
노인이 입 좀 닥치라며 일갈했다. 살면서 수많은 자를 보았지만, 이렇게 막무가내인 놈은 처음 본 것이라.
그녀는 베릭의 손아귀에서 제 로브를 빼앗은 다음 일러주었다.
“그런데 너는 먹을 게 없어.”
비밀이 없는 자도 처음 본다. 하물며 어린아이도 갖고 있는 게 비밀이건만.
이런 경우는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존재이거나, 비밀이 다 들통나는 존재이거나.
하는 꼴을 보아하니, 둘 다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비밀? 나 비밀 있는데?”
“…네놈 혼자 비밀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와씨,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 네가 보상을 하고 싶으면 다른 자를 데리고 와. 생각이 깊어 보이고, 말수가 적으며, 도무지 속을 모르겠다 싶은 자가 적격일 것이다.”
“희한한 노인네네 진짜.”
“누가 누구보고 희한하다는 게여?”
베릭은 노인의 보따리를 길 건너편에 옮겨주며 하늘을 쳐다봤다. 동이 점차 떠오르다 못해 완연히 밝아졌다. 더 늦어지면 진짜 이안이한테 혼날지도 모른다.
“알겠어. 그러면 어디로 가?”
“달력은 볼 줄 알아?”
“아니.”
“반달이 뜨는 날 밤, 여기서 보자고.”
“알았어. 그사이에 신고하면 진짜 안 돼!”
노인은 제발 좀 가라며 손만 휘휘 내저었다.
베릭이 말에 올라타서 뒤를 도는 그 짧은 순간. 노인의 옷자락이 골목 사이로 쏙 사라졌다. 기어 다니면서 저리 빠르다니. 베릭은 진짜 이상한 노인 다 보겠다며 인상을 찡그렸다.
“가자!”
히이잉!
그리고 다시금 서둘러 발을 차댔다. 지체된 만큼 더 빠르게 달려야 할 것이다.
저 멀리 황궁 정문이 보이자, 베릭이 손을 흔들어댔다. 그의 입궁을 기다리고 있던 문지기들이 바로 움직여 문을 열었다.
“고마워!”
“서둘러 가라, 베릭! 이안 님이 방금 물어보았어! 너 들어왔는지!”
흐익! 베릭은 식겁하며 더더욱 말을 재촉하였다. 눈 깜짝할 사이 마법부에 당도하여, 계단을 기다시피 뛰어 올라갔다. 마법사들이 그런 베릭을 반기며 한마디씩 던져댔다.
“베릭, 설마 이제 들어오는 건가?”
“오호, 미쳤는데?”
“시끄러워! 이안이는?”
“장관님이 어디 계시겠나? 집무실 말고.”
타닥타닥!
타앙!
베릭이 인기척도 없이 문을 확 젖혔다. 화들짝 놀란 로만드로와 달리, 이안은 째깍거리는 회중시계만 딸깍거렸다.
“느, 늦었나? 저기, 이안아. 그게 아니라, 오다가 사고가 나서-”
“아슬아슬하게. 딱 일 분 남겼구나.”
“와아. 죽는 줄 알았네.”
긴장이 풀리니 숙취가 올라왔다. 베릭은 메슥거리는 속을 부여잡으며 앞으로 고꾸라졌고, 로만드로는 그런 그를 일으키며 재촉했다.
“어우, 술 냄새. 시상식 주인공 꼴이 이래서 되겠어? 머리는 산발에, 얼굴은 팅팅 부었구먼!”
“나 정도 되니까 이만한 거예요.”
“거기에 술까지 덜 깨고. 쯧쯧. 서둘러 준비해!”
로만드로는 베릭 앞에 격식 있는 정장을 들이밀었다. 올해의 우승자이자, 정식으로 친위대에 입대하는 날이었거늘!
시종들은 베릭을 질질 끌고 나가 버렸고, 이안은 보고서를 톡톡 두드렸다.
“저는 먼저 나가겠습니다. 로만드로 님은 베릭 준비가 끝나면 함께 오십시오.”
“알겠네.”
시상식에서 마법 효과가 빠질 수 있겠는가? 이안은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을 데리고 본관을 나섰다.
* * *
선발에 참여하여 우수한 성적을 내었던 오백 여명이 초대받아 자리를 채웠다. 대부분은 제국방위부 입대를 결정하였고, 소수는 참가한 것에만 의의를 둔 채 다음을 기약하였다.
시아오시가 그러했다. 그는 진이 직접 선물해 준 옷을 입고,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우승자가 꽤 어리다는 얘기가 있던데.”
“어. 아직 성인식도 안 했다 하더라. 마검사라 그래.”
“대장 꺾었으니 우승할 만하지. 그러면 최연소 황궁친위대 대장인가?”
“아니. 대장은 다른 사람이 한다 하던데?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뭔가 결격 사유가 있나 보더라고.”
사람들이 웅성대며 베릭을 입에 올렸다.
그날 이후, 검사가 두 명이상 모이면 꼭 베릭의 얘기가 거론되곤 하였다. 무인들 사이를 뒤흔들 만큼 충격적인 일이라.
시아오시는 고개를 들어 진과 이안이 앉아있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진은 위엄 있게 정면을 보고 있었으나, 시아오시는 알고 있다. 슬쩍슬쩍, 아이가 시아오시 쪽을 보며 웃고 있다는 걸.
“아. 시작한다.”
위잉. 윙.
수상이 단상에 올라, 마도구를 잡았다. 그의 인사말이 수백 명의 귓가에서 조용히 퍼져나갔다.
“…대제국 바리엘의 건강한 국력과 미래를 위하여, 참가해 준 모든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지난 날 이어졌던 일정들은 강인하고, 힘 있는…….”
수상의 인사말. 언제나 그러하듯 영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 사람들은 속으로 하품을 삼키며 한 귀로 듣고 흘리기를 시전했다.
“하여, 이번 선발 시험에서 특별히 두각을 보인 자들에게 포상을 내릴 것이니. 호명한 자들은 앞으로 나오라.”
사락.
수상은 종이를 넘기며 잠시 침묵했다.
“베릭.”
“예! 베릭입니다!”
“사이먼, 보니타, 히가…….”
줄줄이 이어지는 호명.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자들이 죄다 일어나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 선봉을 지키고 있는 것은 베릭이다. 오랜만에 정장을 입히니, 볼만하다.
“베릭이 저 붉은 머리지?”
“그럼 대장은 누구래?”
“저기, 사이먼이랑 보니타.”
“아아.”
사이먼은 베릭과 맨몸 격투를 하였을 때 승리한 자였다. 체급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하더니, 실로 대단하다. 거인족의 피가 섞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베릭. 축하하네. 앞으로도 정진하여 바리엘의 기상을 굳건히 하여주시게.”
“걱정 마세요!”
“…바리엘을 위해, 어느 곳에서 일할지는 정했는가?”
수상은 그에게 꽃다발과 트로피를 안겨주며 물었다. 베릭은 당연한 걸 묻냐면서, 마도구에 바짝 붙어 소리쳤다.
“황궁친위대!”
아. 젠장.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친위대원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릭은 우렁차게 덧붙였다.
“다음에는 내가 대장 할 거니까!”
사이먼과 보니타.
이안은 새로운 두 대장을 지켜보며 손을 까딱거렸다. 저들이 앞으로 일어날 마물 전투에서 선봉할 자들이라.
베릭의 우승과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축하하며, 마법부가 꽃가루를 터트렸다.
촤아악!
사악!
꽃잎이 화사하게 내려앉았다. 베릭은 꽃다발을 붕붕 흔들면서 황궁친위대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냉큼 찔러 넣는 윙크. 앞으로 잘 해보자는 무언의 인사였으니.
이안을 선두로 사위에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