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94
제294화. 마차가 멈추다
“저하. 클리포포드의 마차가 보인답니다.”
“그래? 쉴 틈이 없군. 얼마나 걸린다고 하던가?”
처소로 돌아와 쉬고 있던 진에게도 소식이 닿았다. 오찬이 애매하여 식사를 어찌할까 고민하던 참인데, 클리포포드가 도착한다고 하면 에리포니와 함께 자리를 마련해도 될 것 같다.
불편하지만 어찌하겠나. 이것 또한 진이 짊어질 의무였으니. 그런데 의아하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그게,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어째서?”
외곽에서 마차가 보일 정도면 길게 잡아도 두어 시간이다. 혹 클리포포드가 거처하는 궁에 문제가 생겼나? 아이가 어서 언질 하라 이르자, 시종이 난감하게 허리를 숙였다.
“마차의 속도가 심히 느려서요.”
“무어라? 연유는?”
“지금 이안 님이 마법사들과 함게 외곽 성벽으로 나가 확인해 보신다 합니다. 혹 마차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저희 쪽에서 마중을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셔서요. 그런데 듣자 하니, 그런 물리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답니다.”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진은 당최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아를 돌아보았으나, 그 역시 알 턱 없다. 외곽까지 오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터인데…….
“마법사들과 함께 나갔다 하니, 하늘길로 통행했을 것입니다. 저하.”
시아오시가 진의 근심을 알아채고 덧붙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리는 말 한 마리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인산인해였으니까.
아이는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기 위해 맨몸으로 나섰을까?
“이안 경만 갔다 하던가?”
“로만드로 님과 베릭 님도 함께요.”
“두 사람은…….”
하늘을 어찌 날아?
진이 의아함을 품는 순간, 어쩐지 저 먼 곳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연신 펑펑 터지는 폭죽과 사람들의 환호성 그리고 거리의 음악에 지워졌지만.
* * *
한편, 외곽 성벽.
병사들은 뒤로 물러나 마법사 무리를 힐끔거렸다.
온종일 이곳과 황궁을 오가며 전령 역할을 하던 자도 마법사이긴 했으나, 저리 무리지어 있는 것은 처음 보는 터라 신기한 것이다. 게다가 일정한 자세로 망원경까지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병사들은 눈짓으로 속닥거렸다.
‘금발이 마법부 장관? 옆에는?’
‘몰라. 뒤에 널브러진 사람은 보좌관인 것 같아.’
고정형 망원경에 고개를 틀어 들여다보고 있는 이안. 그리고 그 옆, 베릭이 작은 망원경을 거꾸로 든 채 이안을 따라 하고 있었다. 로만드로는 바닥 짚고 쓰러져서는 연신 신음만 흘려대는 중이다.
“뭐가 좀 보여? 이안아, 나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으어어, 으억…….”
“로만드로 님. 그만 숨넘어가고 일어나 봐요.”
“이, 이놈아. 하늘을 대포처럼 날아왔는데, 어윽…….”
“이거 고장 난 듯?”
베릭이 이상하다며 제 것을 들어 보였지만, 마법사들 역시 클리포포드 쪽을 주시하느라 반응하지 않았다. 이안이 망원경에서 얼굴을 떼고 외곽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저기서 멈췄다고?”
“기듯이 빌빌거리더니만 저기 딱 자리 잡았습니다.”
이안이 비키자, 베릭이 재빨리 얼굴을 들이밀어 확인했다. 저 멀리, 선봉에 선 거대한 마차 한 대가 보인다.
아마 능선 뒤쪽으로 루스웨나처럼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겠지. 무슨 연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언덕을 넘지 못한 채 멈춘 것이라.
“보인다! 오! 보여! 사람 한 명 나왔다. 말굽 확인하고 다시 뒤로 돌아가는데?”
“직접 가보는 게 좋겠다.”
“이안! 나는! 나는!”
이안의 말에 로만드로가 벌떡 일어나며 두 손을 모아댔다. 누군가는 비행이 황홀하다 하겠으나, 저는 범인(凡人)이다. 심장이 사방팔방 요동치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로만드로 님은 여기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사절단 마차를 모두 띄울 수도 없고, 어차피 여기까지 당도하면 중앙 옆길을 걸을 것이니 함께 돌아가면 됩니다.”
“그, 그렇지?”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르라.”
“예. 이안 님.”
“이안아아! 가자!”
지이잉. 지잉.
타앗!
마법사들이 마력을 개방하자, 베릭이 제일 먼저 성벽 밖으로 뛰어내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주 단호하고 시원하게.
놀란 병사들이 달려가려는 순간, 마법사들도 일제히 내달려 벽 아래로 몸을 내던졌다.
쉬이익! 쉬익!
그리고 단박에 허공으로 치솟는 모습. 두 명의 마법사가 베릭을 거꾸로 잡은 채 클리포포드 마차 쪽으로 날아갔다.
세상이 뒤집혀 보여도 재미있나 보다. 베릭은 손을 사정없이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와아아아! 죽인다아아!”
“저저, 미친 것. 제 명에 못 살지.”
스윽.
이안은 로만드로에게 대기하라는 눈짓을 보낸 뒤, 가볍게 도약했다.
마법사들이 점으로 사라지자, 병사들은 로만드로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저런 자들 사이에서 용캐 일 보고 있다며.
“어? 저기, 뭐가 옵니다.”
“멈춰라! 우리는 클리포포드-”
“마법사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에요!”
“그런데 가운데 거꾸로 날아오는 사람은 뭐야?”
“클리포포드 사절단이오! 멈추시오!”
“메이 님을 모셔와. 바리엘의 마법사들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거대한 행렬이 모습을 보였다. 사절단들은 신기해하며 마법사들을 올려다봤고, 마법사들 역시 그들을 내려다봤다.
죄다 붉은 기 도는 머리칼들뿐이다. 왕국에서 요직에 있는 자들이니, 정통성 있는 순혈 가문만 선별하여 사절단을 꾸린 것 같다.
이안을 선두로, 마법사들이 지상에 발을 디뎠다.
“책임자는?”
이안이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짧은 머리의 여인이 다급하게 달려와 앞으로 나섰다. 사람들이 찾아댔던 ‘메이’라는 자다. 노아 왕자를 모시고, 사절단을 총괄하는 자.
“아, 반갑습니다. 클리포포드 외교사절의 총책임자이자, 노아 왕자님을 모시는 보좌관 메이입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이안 히엘로, 바리엘 마법부 장관입니다. 마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전언을 받고, 확인차 이리 마중 나왔습니다.”
“그,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이안과 메이는 가볍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난감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거리 한복판에서 이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이 말이다.
“마차 바퀴가 무른 곳에 빠져 지체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건조하게 대꾸하는 이안의 입매에 미소가 감돌았다.
며칠간 비가 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는 중앙으로 들어오기 위해 수많은 자가, 온종일 이용하는 길이었다. 땅의 단단함을 알고 있건만, 어찌하여 무른 곳이 생겼을까?
“그럼 바로 출발하시지요. 저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미리 외곽 성문을 열어두라 지시하겠습니다.”
“저기!”
이안이 몸을 돌리려고 하자, 메이가 다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송구하지만, 혹 입궁하여 여독을 조금 푼 다음 황자 저하를 뵈어도 되겠습니까?”
“합당한 연유가 있으신가요?”
“왕자님께서 긴 일정에 몸병이 나셨습니다.”
“이런. 바로 황궁 담당의를 소집하라 하겠습니다.”
“아니요. 저희도 담당 의사가 있습니다. 그저, 황자 저하를 뵙기 전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참으로 감사할 것 같은데요.”
클리포포드는 손님으로 바리엘에 왔다. 고된 일정으로 여독이 쌓였다 하니, 이는 진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무언가 수상쩍다.
이안은 잠시 고민한 다음, 노아 왕자가 있을 것 같은 마차를 찾아냈다. 이국적인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누가 보아도 클리포포드를 대표하는 마차다. 커튼도 단단히 쳐 있다.
“저하께 아뢰보겠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법사 한 명이 다시 되돌아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사절단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술렁였다. 세상에나, 역시 대제국 바리엘이지 않나.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인간이라니!
“답신은 황궁에서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출발하시지요.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온다고 해놓고 이리 늦어지면, 입성할 때 축제의 분위기를 온전히 누릴 수 없다. 이는 먼 길 온 클리포포드에게도 아쉬울 것이요, 한시의 틈 없이 환호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바리엘에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해가 뜨고, 지고, 모두가 지칠 때까지. 진을 위한 축복의 환호성이 멈춰서는 안 된다.
“우선 하늘길에서 인도하겠습니다. 성벽 안에서는 호위병들이 좌우로 붙을 것이니, 최대한 간격을 좁혀서 이동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베릭.”
“앙?”
베릭은 마차의 낯선 장식물을 쿡쿡 찌르다가 이안의 부름에 고개를 틀었다. 허공을 나느라 머리가 산발이다. 이안이 손을 까딱거리자, 후다닥 달려와 코를 훌쩍였다.
이안은 아무도 들을 수 없게 지시했다. 혹 모를 일이니까, 조사는 철저할수록 좋다.
“마차들을 호위하면서 진흙에 젖은 바퀴가 있는지를 확인하여라. 혹 수상한 점이 있다면 살피고, 행렬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무른 땅이 있는지도.”
“오케오케. 근데 돌아갈 때는?”
“뛰는 거 좋아하잖아?”
“와씨, 너어는 진짜!”
“농이다. 로만드로 님에게 기병을 보내라 하마.”
말이 없으면, 저 아득한 성벽까지 홀로 뛰고, 다시 황궁까지 걸어갈 판 아니던가? 베릭이 질겁하며 입을 떡 벌렸다가, 농담이라는 말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자. 서두르자.”
“메이 님! 출발 준비합니까?”
“…그래. 가자. 최대한 천천히!”
“마차의 간격을 넓혀라. 출발한다!”
“짐을 다시 올려! 쉬던 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
메이의 명령에 사절단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출발을 준비했다. 확실히 특별하게 문제 되는 것은 없는지, 마법사들이 도울 것도 없다. 괜히 발걸음 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클리포포드 일행들의 인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닙니다. 귀한 손님이니 이 정도는 당연하지요. 혹 문제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예예. 고맙습니다! 마법사님들 멋지네요!”
아마 중앙을 기준으로 제일 먼 나라라서 그럴 것이다. 루스웨나처럼 정치적으로 얽혀있는 것도 없고, 교류 자체가 3국 중 제일 드문 편이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호의가 기본으로 녹아들어 있었다.
타앗!
끼이익.
마법사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곤, 메이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 담요를 뒤집어쓴 채, 간이침대에 웅크려 있는 노아 왕자. 메이가 커튼을 단단히 친 다음 그를 살폈다.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황궁 마법사던가?”
“예. 마차가 멈춰서 무슨 일인가 보러 왔습니다.”
“아, 정말 곤란한데.”
사락, 담요가 흘러내리자 주황빛 머리칼 사이로 봉긋 솟은 짐승의 귀가 움찔거렸다. 어디까지가 머리칼이고, 어디까지가 털 뭉치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노아는 제 귀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런 모습을 타국에 보일 수 없잖아.”
“여독으로 인한 몸병이라 일러두었습니다. 진 황자의 수족, 마법부 장관이 호의적이에요. 미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공마저 가운데가 갈라져 완연한 여우의 눈동자였다. 메이는 그에게 담요를 다시 건네주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독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꼬리까지는 아직 안 나오지 않았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귀쯤은 어찌 숨길 수 있을 터.
“클리포포드로 돌아가면 주술사를 죽여 버려야겠다. 발현 날짜 계산도 못 하는 놈이, 평소에는 그리 빳빳하게 굴어대.”
“클리포포드와 바리엘은 다른 나라지 않습니까. 아마 국경을 넘으면서 주기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베에, 노아 왕자는 짐승처럼 길어진 제 혀를 툭툭 치며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메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늘어지게 하품했다.
그때, 바깥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호위병과 낯선 자의 목소리.
“멈추십시오. 왕자님의 마차입니다.”
“아, 그려? 실수!”
노아의 귀가 쫑긋거렸으나 그뿐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필시 호위병들에게 저지당했을 테니까.
“흐음.”
뒤로 물러서던 베릭은, 노아 왕자의 마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출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걸리적거린다며 더 비켜주길 원했지만, 베릭은 떡하니 버티고 서서 마차만 노려봤다. 킁킁, 깊이 숨 들이쉬는 것도 멈추지 않고.
‘이상하다. 왕자님 마차치고는 냄새가 X나 구린데? 짐승 냄새인가?’
왠지 익숙한데, 어디서 맡았는지 모르겠다.
베릭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차 바퀴를 살폈다. 흙먼지는 한가득했지만, 진흙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