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96
제296화.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했다
황궁의 출입을 담당하는 문지기들이 육포 하나씩 입에 문 채 카드를 치고 있었다. 교대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들, 평소라면 어림없을 근무 태도다.
하지만 뭐 어떠한가? 바리엘은 축제였고, 성벽 위에서도 그들의 환호성이 들려오는 중이었다. 술과 웃음에 취한 자들이 뛰노는 세상에서, 저들도 문지기이기 전에 한 명의 제국민 아니겠는가?
“아까 클리포포드 봤지?”
“응. 죽여주더군. 사람 몸놀림이 어찌 그리 가벼울 수 있는지 원. 춤이 아니라 곡예 수준이더라고.”
“보여주기식 행진이라 생각했는데, 황궁 들어가면서도 멈추질 않더라. 어우, 흥이 넘쳐.”
무엇보다, 타국의 손님들을 제외하고 다른 자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황궁의 매끄러운 업무 처리를 위해서라나 뭐라나. 한마디로, 한가롭다는 말씀.
“에잇! 카드 누가 섞었어?”
“나는 죽습니다. 개패로는 똥도 못 닦아.”
게임을 포기한 문지기가 성벽 밖으로 몸을 기댄 채 입맛을 다셨다. 개미 떼처럼 움직이는 군중들 사이로 비눗방울과 꽃가루가 가득 내리는 중이었다.
맥주 한잔 시원하게 하면 여한이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따뜻한 풍경이다.
“음?”
그 사이를 헤집는 말 한 마리만 아니라면 말이다. 어느 미친놈이 이런 날에 말을 끌고 나오나? 안 그래도 번잡스러운 도로가 더더욱 엉망으로 뒤엉켰다.
문지기가 지상에 있는 병사에게 전달하려는 순간, 말 머리가 성문 쪽으로 고정되어 있음을 알아챘다.
“문 열어줘어어!”
“베릭?”
이리저리 치이느라 머리칼도 엉망이요, 혹여 말이 사고라도 칠까 봐 신경이 잔뜩 곤두선 모습이다. 베릭은 위쪽을 바라보며 다시금 크게 소리쳤다.
“열라고오오!”
“잠깐만!”
문지기는 바로 내려가서 마법부의 전달 사항이 있는지 확인했다. 제아무리 신변이 확실한 자라 해도, 출입 허가가 없으면 불가했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록지 맨 아래 장에, ‘베릭 복귀 통행 허가’라는 마법부의 언질이 적혀있었다.
“아, 아까 클리포포드 지나가면서 남겼구나. 베릭, 기다려라. 쪽문을 열어주마.”
달칵.
마차같이 큰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사람 한 명과 말 한 마리 정도면 쪽문으로도 충분하지.
베릭은 도망치듯 궁 안으로 들어서서는, 제 옷을 이리저리 털어댔다. 가까이서 보니까 훨씬 더 꼬질꼬질하다.
“왜 이안 님하고 따로 와? 그것도 번잡하게 인도로.”
“심부름. 중앙 길은 황실 사람만 걸을 수 있다며?”
“…축제 기간은 예외다.”
“아. 쉬바.”
사서 고생했다는 걸 깨달은 베릭이 눈을 뒤집어 깠다. 이안의 지시대로 클리포포드의 마차 흔적을 짚어가며 외곽을 돌았으나, 특별한 걸 발견하지 못한 참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복귀까지 험난했으니. 한순간에 배가 고파왔다.
“이안이는?”
“글쎄. 보아하니 클리포포드 마차가 본궁으로 가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 문제가 있나 봐. 임시 거처하는 궁으로 갔으니, 이안 님도 그리 갔을 게다. 마법사님들이 함께 호위했거든.”
“오케. 수고.”
“베릭!”
문지기는 말에 올라타려는 베릭을 붙잡고 속삭였다.
“혹시 말이다, 너. 클리포포드에서 진상품으로 올리는 술 받을 수 있냐?”
“술? 웬 술?”
“그쪽 나라 술이 그렇게 달다고 하는데, 저하께서 드실 리는 없고…. 아무래도 치하 겸 하사하시지 않겠어? 혹 받게 되면 조금만 나눠주라. 값은 넉넉히 쳐주마.”
베릭은 굶주린 배가 반응하는 걸 느꼈다.
고기와 술!
천국으로 가는 길, 특별할 것 없다. 그거면 되지. 베릭은 손을 대충 흔들며 말을 재촉했다. 목적지는 술과 고기 그리고 이안이 있는 클리포포드의 별궁이다.
타닥타닥!
히이잉!
별궁 앞에는 마차가 질서 없이 모여있었다. 루스웨나의 마차가 일렬로 정돈되어 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으나, 베릭이 알 리 없다. 그저 짐을 내리고, 옮기는 자들 사이로 걸어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다.
“잠시만 비켜주십시오.”
“비단은 상자를 풀지 말고 바로 옮기면 됩니다.”
“염료통 새지 않게 바닥을 꼭 확인하십시오! 그거 새면 진짜 골치 아픕니다. 이쪽, 이쪽으로 내리세요!”
진상품을 담당하는 황궁 관리들이 오갔으나, 아는 자들이 아니다. 마법사들은 한 명도 안 보이는 모습. 길이 엇갈린 것 같다고, 베릭이 돌아가려 할 때였다.
“그쪽으로는 들어가지 마. 메이 님이 왕자님 쉬신다고 접근하지 말라 하셨어.”
“아아. 여기가 거기군. 그러면 이것들은?”
“갖고 오게. 저기 창고가 비었던데.”
왕자님이라 하면, 그 꼬랑내 나던 왕자님?
베릭이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복도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호위 여럿이 처소 앞을 단단히 지키는 중이었다. 그들은 베릭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황궁 관리이십니까? 무슨 일이시지요?”
“화, 환영합니다요. 예예. 여기가 바리엘이지요!”
“…? 감사합니다.”
뭐지? 덜떨어진 놈인가? 황궁에 있는 것으로 보아, 신분은 확실한 자인 것 같은데.
호위들이 경계하자, 베릭은 어색하게 웃으며 지나갔다.
‘그 냄새. 그거 딱 한 번만 제대로 맡으면 뭔지 알 것 같은데, 신경 쓰여 죽겠네.’
베릭은 슬쩍, 별궁의 담을 힐끗거렸다. 이곳도 다른 곳과 비슷할지는 모르겠는데, 본디 건물 하나에는 크든 작든 정원 하나씩은 끼고 있는 법이라. 그쪽으로 들어가면 우연을 가장해서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쪽도 여기 막 도착했으니까, 구조를 모를 것 아닌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담을 넘었는지 지가 어찌 알겠어?
‘음. 좋다. 졸라 몰래 들어가서 냄새만 맡고 와야지.’
베릭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담으로 뛰어올랐다. 가벼운 몸놀림과 사뿐한 발소리. 모든 게 완벽하다. 그는 몸을 최대한 둥글게 말아, 담벼락을 슬금슬금 기어갔다.
사락.
그렇게 조금 가니, 수풀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채에 딸린 정원이다. 여기는 정원이라기보다, 개인 뒤뜰에 가까웠지만. 침실이 통창인 대신 사생활을 위해 뜰은 폐쇄적으로 만든 듯했다.
‘보자, 포도 왕자님이 어디 계실라나. 엉?’
베릭은 나뭇가지로 얼굴을 가린 채 멈칫거렸다. 잔디밭 한가운데 누군가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것이라.
고급스러운 옷감은 차치하고, 무엇보다 로만드로가 그린 초상화에서 본 그 주황 머리칼이다. 드러난 목덜미는 구릿빛.
저거, 포도 나라 왕자님이 분명하다. 그는 풍성하고 윤기 나는 주황빛 꼬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시발, 뭐여. 취향 특이하네. 짐승 꼬리를 쳐 달고 있어. 동네 꼬맹이들도 저런 분장은 안 하겠다. 쯧쯧.’
축제를 즐기는 자들이 온갖 분장을 해대곤 했지만, 지체 높으신 포도 나라 왕자께서도 저럴 줄은 몰랐다. 이래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하는 건가?
베릭은 코를 킁킁거리며 왕자를 주시했다. 그런데 어쩐지 꼼짝하지 않는 모습이다. 베릭은 별생각 없이 지켜보다가, 문득 이안과 사절단 총괄이 나누던 대화를 떠올렸다.
‘헉! 맞다! 아프다고 하더니, 뒤졌나? 이안이 불러와-’
사락.
그때, 천천히 올라오는 여우 귀.
쫑긋쫑긋, 바람 소리를 읽어내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 아닌가. 동시에 꼬리도 부드러운 반원을 그리며 땅을 탁탁 쳐댔다.
베릭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경악했다.
‘워, 시바…….’
햇빛 아래에서 빛나는 왕자의 눈이, 분명 짐승의 것이었으니.
베릭은 왔던 것처럼 기척없이, 담벼락을 다시 뒤로 기어갔다.
* * *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했다고! 이제 이해가 가?!”
콰앙!
베릭이 저가 겪었던 것을 모두 쏟아내며 벽을 시원하게 때렸다. 주먹을 꽉 쥔 것이, 결연하게 보일 정도다.
하지만 마주한 것은 눈이 옆으로 째진 로만드로와 무표정의 시아오시, 난감하게 웃는 진. 그리고 차만 홀짝이는 이안이었으니.
시아오시가 다시 한번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약 냄새도 안 납니다.”
“다행이로군. 임명식 동안 사고 쳤으면 경고 없이 황궁친위대에서 제명인데. 술도 약도 아니면, 더위를 처먹었나? 아직 그 정도 날씨는 아닌데.”
로만드로가 베릭을 주의 깊게 살피며 중얼거리자, 베릭은 머리를 쥐어 싸며 앞뒤로 흔들어댔다.
“아아악! 아니, 나 진짜 멀쩡하다고! 완전 제정신! 포도 나라 왕자가 귀 뽕, 꼬리 통! 막 이렇게 살랑살랑 꼬리 흔들고!”
넙죽 엎드려 봤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베릭이다. 로만드로는 못볼 꼴 봤다며 눈을 감아버렸고, 시아오시는 몸을 낮춘 뒤 가만히 베릭의 동공을 들여다봤다. 혹시나 싶은 것이다.
“…동공도 멀쩡합니다.”
“시아, 자꾸 나 미친놈 취급할래?”
베릭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자, 이안이 소리 내어 찻잔을 내려놓았다.
타악.
“수인족이라는 말이라, 그 뜻이지?”
“뭔 말이래? 그런 거 모르겠고, 여우 귀랑 꼬리 달고 있었다니까?”
“그걸 수인족이라고 한다.”
수인족.
짐승의 외관적 특성을 가진 종족을 뜻하는데, 살면서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질적인 외관 탓에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혹여 마력도 있다면, 마물로 취급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기 일쑤였다.
“이안, 저 더위 먹은 놈 말 들을 것 없네.”
로만드로는 손을 휘휘 내저어가며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어디 지나가는 행인도 아니고, 무려 노아 왕자였다. 클리포포드 왕국의 후계 서열 1위.
“나 멀쩡하다고!”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노아 왕자가 어렸을 때 바리엘을 방문한 기록이 있네. 아니지. 바리엘만 왔겠나? 후계 1순위다 보니 인근의 외교는 노아 왕자의 담당이라고. 수인의 특성이 있었다면, 당연히 말이 돌지!”
“혹, 수인들을 본 적 있습니까? 로만드로 님?”
“나? 음. 아니, 없는데.”
재건전문가로 접경지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저 알음알음 소문으로만 존재 여부를 확인할 뿐.
하지만 이안은 베릭의 말이 영 허무맹랑한 것이라 치부하지 않았다.
‘지금은 밝혀지지 않았구나.’
박해당해 희미해진 종족.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미래의 연구 결과와 사회적 현상 분석을 통해, 이는 잘못된 믿음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들은 희미해지지 않았다. 그저 존재를 숨긴 채 사회에 녹아들어있었던 것이다.
‘생존하기 위한 종족 진화라 할 수 있지. 인간과 다를 것 없는 자들이지만, 겉모습만으로 생명에 위협을 가져오지 않았나. 특정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쪽으로 진화한 수인들이 있다. 베릭이 본 게 사실이라면…….’
진화의 과정 중에 있는 수인이라 보면 될 터.
클리포포드의 왕실 자체가 수인족일까? 대외적인 외교에서 수인이라는 것은 상당히 불리한 입장을 가져올 수 있기에, 의도적으로 숨겼다면 이해할 수 있다.
“베릭이 술도 안 먹었고-”
“응응. 나 진짜 한 모금도 안 마심.”
“약도 안 했다면-”
“어우, 그게 뭐예요? 저 완전 건전 그 자체인데요?”
“확인해 볼 가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안의 말꼬리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베릭. 자신의 말을 믿어준다는 것에 환호하며 주먹을 불끈 쥔다.
그리고 이내 로만드로와 시아오시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 엉덩이까지 씰룩씰룩. 로만드로는 가만있으라며 세차게 볼기짝을 내려쳤다.
“하지만 어떻게? 몸이 아프다는 왕자를 잡아 끌어낼 수도 없고, 다짜고짜 쳐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않나. 베릭 이놈 말만 듣고 그리하기에는 좀…. 방안이 없을 것 같은데.”
로만드로의 걱정에 이안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방안이 왜 없겠습니까. 이곳은 황궁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