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97
제297화. 검사
응접실을 나서자마자, 메이는 머리칼을 흩트리며 한숨 쉬었다. 본국에서도 쉬쉬하는 왕가의 내력이 타국, 그것도 바리엘 황국에서 나타나다니.
진 황자가 아직 어리고, 성격이 유한 데다 그들이 축제의 손님으로 와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참으로 난감했으리라.
대체 어느 왕국의 사절단이 입궁하여 얼굴도 안 비친단 말인가? 발병이 났다고 한들, 흠을 잡으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부분이다.
‘조심하자. 정신 차리고.’
메이가 제자리에 서서 이마를 짚고 있자, 부하들이 조심스레 걱정했다. 이제 막 바리엘에 도착했는데, 노아 왕자도 그렇고 메이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지도자가 모두 쓰러지면, 낭패 중의 낭패다.
“메이 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진 황자 저하께서 이해해 주셨으니, 한고비 넘긴 것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그러니 서둘러 돌아가서 쉽시다. 지금쯤이면 다들 짐 푸는 것도 끝났을 것입니다.”
클리포포드 왕국의 내력은 일종의 증표였다. 고대, 건국이 여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일러주었으니까 말이다.
왕가에서는 아기가 귀를 올리고, 꼬리를 내면 틀림없는 제 핏줄이라 여겨 깊이 축하했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이어온 신의 선물. 분명 건국 초기에만 해도 그들은 그리 여겼을 것이라.
‘훗날에는 저주라 불리는 것도 모른 채.’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예전에는 필시 수인에 대한 인식 문제가 없었기에 클리포포드라는 왕국이 세워진 것 같은데, 지금으로는 당최 상상할 수가 없다.
“서둘러 가자. 왕자님이 기다리고 계셔.”
“네. 알겠습니다.”
“마부는 황궁에서 따로 내준다지?”
“이쪽 지리에 익숙해지면 언제든지 돌려보내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 저기 오는군요. 이보게! 서둘러 올라타 주게!”
마부라고는 하지만, 황궁의 행정부 산하 시종이었다. 지리는 물론이고 손님들의 전체적인 편의를 위해 내어준 자다. 그는 장갑을 끼며 클리포포드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별궁에 가 계시면 이안 히엘로 장관님께서 서신을 작성하여 보내겠다 하셨습니다. 노아 왕자님의 서명을 필히 부탁한다고 하시더군요.”
황궁에서 왕자에게 의료적 지원을 하려 하였으나, 이쪽에서 거절하였다는 일종의 합의서였다.
저들로서는 참으로 이상하긴 할 것이라. 상태는 입궁 인사를 올리지 못할 정도라 하는데, 의사는 거부하지 않았나. 혹여 이쪽에서 꿍꿍이가 있다 오해할 수도 있다.
“알겠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라 전하시게.”
“예. 오르십시오. 바로 가겠습니다.”
안 그래도 책 잡힌 채 시작된 외교. 괜히 잡음이 생겼다가는 난감해진다.
메이는 마차에 올라 손끝으로 날짜를 계산했다. 하루에서 이틀. 저주가 사라지려면 최소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할 것 같은데, 어찌 잘할 수 있을까?
‘임명식과 아슬아슬하게 겹치는 것은 차치하고, 루스웨나와 버고스의 왕을 못 만나면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다. 당장 저녁 만찬부터가…….’
대사막을 끼고 조금 떨어져 있는 루스웨나와 달리, 버고스는 국경이 인접해 있었다.
접경한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그들은 크고 작은 전쟁으로 역사를 세워왔고, 파헤쳤다. 버고스는 당최 속을 알 수 없는 족속들이다. 특히, 다몬 왕이 즉위한 이후로는 더더욱.
‘3국이 모이는 자리에서 클리포포드가 불참하면, 나머지 두 나라가 어떤 식으로 모의할지 아무도 모른다. 바리엘에 대항하기 위해 먹잇감으로 던질 수도 있어. 어떻게든 자리를…….’
히이잉!
타앗!
메이가 고민하는 동안, 마차는 시원하게 내달려 별궁에 도착했다.
부하들 말대로, 짐 푸는 정리가 모두 끝나있었다. 난간 곳곳에 기대어 노래하고, 모여서 춤추며, 술을 홀짝이는 자들이 보였다. 클리포포드인이 오후를 보내는 방법이다.
“메이 님. 오셨습니까?”
“왕자님은?”
“식사를 넣어드리긴 했는데, 그릇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 외에는 문제없었고요.”
“괜찮으실까요? 이곳은 클리포포드와 달라서 먹고 마시는 게 다르지 않습니까. 회복이 더딜 수도 있습니다.”
호위가 조금 걱정스러운 투로 보고했다. 왕실의 저주는 소수의 가문을 제외,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종종 저리 모습을 감출 때면 발작 따위를 일으키는 줄로만 알고 있다.
“물러나라. 다시 부르마.”
메이는 쓸데없는 말이라며, 단호히 일갈했다.
호위가 물러나자, 그녀는 문을 천천히 젖혔다. 훅하고 올라오는 꽃 향. 아무래도 황궁에서 저들을 위해 준비한 듯싶은데…….
“왕자님? 메이입니다.”
후각이 예민해진 왕자가 견딜 리 없다. 메이는 통창 밖, 뜰에 벌러덩 누워있는 노아를 발견했다. 노아 역시 메이를 보고서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메이, 왔어?”
“어찌 맨바닥에 그리 누워 계세요.”
“안은 냄새가 너무 심해.”
그리 말하며 풀 내음을 킁킁거리는 왕자다.
메이는 한숨을 내쉬며 뜰로 내려갔다. 저주가 발현하면, 왕자의 오감은 짐승처럼 예민해지고 이성은 무뎌졌다. 가끔은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무어라 할 수 없는 것이, 저리하여 마음이 편해지면 그만큼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기분 좋으십니까?”
“좋네. 외국에 온 느낌이 나. 클리포포드랑은 흙냄새도 다르고, 나무도 다르고, 심지어는 볕도 다른 것 같아.”
노아는 메이에게 다가와 어깨에 이마를 비벼댔다. 사람 홀리는 여우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쪽 때문에 저는 죽을 지경인데 말이지.
하지만 어쩌겠나? 메이는 여우의 귀를 만져주며 알현한 내용을 일러주었다.
“진상품은 모두 올렸습니다. 진 황자가 배려를 해주긴 하였으나, 생각보다 기세가 날카로웠습니다. 아무래도 첫 외교적 행사이고, 임명식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반응이 즉각적입니다. 오해를 좀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클리포포드가 황자를 기선 제압하기 위해, 일부러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수록 메이는 아니라고,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적극적으로 부정하였지만 말이다. 진 황자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니 나중에 대면하실 때는 유념하여, 책잡히는 것 없이 잘 하셔야 합니다.”
“그래. 납작 엎드리라 이거지.”
“그런 말씀은 아니고요.”
노아는 농담이라는 듯 씨익 웃었다. 그의 송곳니가 유독 뾰족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항상 저걸 기점으로 서서히 되돌아오곤 했는데.
“…저주가 지나가고 있나 봅니다.”
“응. 이도 그렇고 동공도 완전히 변했어. 봐봐.”
메이가 고개를 틀어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여러 명이 무어라 말하는 것 같은데, 언성이 높은 것으로 보아 문제가 생긴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호위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쿵쿵! 쿵!
“메이 님! 노아 왕자님!”
“소란이 심하구나. 무슨 일인가?”
메이가 다급하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노아 역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통창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진득한 냄새 탓에, 바로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끼이익.
“메이 님. 마, 마법부에서 마법사들이 왔습니다. 잠시 나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마법사?”
아까 말한 서신인가? 그렇다면 이리 호들갑 떨 연유가 없을 텐데?
메이는 몸을 돌려 노아에게 눈짓하였고, 노아는 바로 담요를 칭칭 둘러맸다. 눈만 빼꼼 내민 채 깜빡거리는 모습. 꼬리가 삐죽 튀어나오자, 꼼지락거리며 정돈까지 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왕자님.”
메이는 그리 이른 다음, 호위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복도 입구, 처소와 연결된 통로 끄트머리에서 호위들이 마법사들과 대치 중이었다. 메이는 허겁지겁 달려가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법부에서 나오셨다고요?”
“사절 책임자인 메이 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서신은 따로 받기로 하였는데요.”
마법부라면 이안이 보낸 것 아니겠는가. 메이의 말에 마법사들은 뭔 말인지 모르겠다며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달 받은 바가 없어서요. 무슨 말씀이신지?”
“황궁 의료 지원을 거절하겠다는 서신 말입니다.”
“아아. 그건 다른 것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얼마 전, 바리엘에서 드래곤 항원‧항체 이상 과민 반응이 신고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루스웨나에서 넘어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입궁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자체적인 검사를 진행하려 합니다. 복잡한 것은 아니고요. 마법사들에게 잠시 시간만 내어주시면 됩니다. 결과도 금방 나온답니다.”
마법사들이 바깥을 쳐다보자, 메이의 시선 역시 따라 움직였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클리포포드 사람들이 마법사들에게 손을 내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술에 적당히 취한 자들은 신이 나서 무언가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속도 모르고.
“이는 클리포포드만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입궁한 루스웨나에도 적용한 것입니다. 협조를 요청합니다만, 호위들께서 길을 내어주시질 않네요.”
마법사가 난감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왕자도 예외 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메이는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혹시, 그 이상 반응의 증상이 어찌 됩니까?”
“오한, 발열, 발작, 각혈, 구토, 어지러움 등등. 복합적인 것이라 단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왕자님께서 몸이 안 좋다 하셨지요?”
젠장. 일이 어찌 이렇게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이상 반응이 신고된 지금, 왕자의 검사를 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피하면 피할수록 클리포포드의 입지만 난처해진다.
의사도 안 봐, 검사도 안 해, 그런데 아프다고 알현은 피해? 재수 없으면 외부의 전염병을 황궁으로 들고 들어왔다 공격받을 수도 있는 문제다.
“루스웨나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진정 사실입니까?”
“예. 물론입니다. 저희가 어찌 그런 것으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에리포니 왕께서도 검사를 받으셨습니다.”
루스웨나는 대체 뭐 하는 나라이기에 전염병 따위를 만들어서 퍼트린단 말인가.
아니, 그럴 수는 있지. 저들의 의지는 아니니까.
아닌데, 왜 하필이면 지금!
‘에리포니 왕을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한 것 같은데. 하아.’
메이가 멈칫거리는 와중, 마법사가 한 발 다가왔다.
그러자 호위들이 가슴을 단단히 편 채로 맞섰다. 저들의 왕자께서 숨기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어찌 길을 틀 수 있겠나?
마법사는 심히 불쾌하다는 듯 메이에게 부탁했다.
“호위들을 물려주심이 어떻습니까? 저희도 할 일이 많습니다.”
“지금 왕자님게서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조금 회복하신 다음 검사하면 안 되겠습니까? 모레, 아니, 내일이라도.”
“…….”
“절대로, 지금 검사하려는 드래곤 이상 반응이 아닙니다. 그저-”
몸살기라고 할 수도 없다. 그만한 연유로 황궁의 검사를 피하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마법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몇 분 걸리지도 않고, 힘은 오히려 마력 쓰는 저희가 듭니다. 혹, 저희라서 그러시는 겁니까?”
마법사의 위상이 대단하다고 한들, 작위 없는 평민 출신들이다. 왕족이라 평민이 몸에 손대는 걸 거부한다 여기는 게다.
대단한 오해였지만, 메이로서는 단비처럼 느껴지는 틈이었다.
“소, 송구합니다.”
“송구하실 것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럴 수도 있지요.”
이안이다.
마법부의 수장이자, 제국의 자작.
이안의 뒤로 베릭과 로만드로가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검사하겠습니다. 그것은 괜찮겠지요? 메이 사절.”
이안은 장갑을 끼며 환하게 웃었다.
어서 길을 트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