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98
제298화. 여우 왕자
‘루스웨나를 전면으로 세우고 들어갑시다.’
클리포포드의 궁으로 들어가는 마차 안.
로만드로는 응접실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안이 그리 말하는 순간 흘렀던 침묵을 잊지 못할 것이라. 이어서 로만드로와 진이 동시에 외쳤던 것 또한.
‘드래곤 이상 반응 검사를 진행하자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아까 저하께서 루스웨나에 이를 언질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잘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 검사하라 이르겠습니다. 하면, 클리포포드에서도 거부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황궁에서 의사를 보내겠다 한 것은 제안이었다. 거절할 수 있는 의지의 주체가 클리포포드에 있었으니, 아무도 들이지 않겠노라 해도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검사는?
‘아파서 저하와의 대면도 연기한 자입니다. 궁 밖으로 나올 리 없으니, 우리가 들어가는 게 좋을 터. 이리하면 나름의 구색과 예의는 차린 셈이지요.’
검사를 계속 거부한다면 이상 반응을 의심하여 강제집행이 가능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질질 끌려 나온다면 유례 없는 굴욕이겠지만, 그렇다고 외교적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사안이다.
대제국 바리엘의 황궁에서, 전염병이라는 위험요소를 내재한 채 협조하지 않는 것은 황제를 위협하겠다는 것과 진배없으니.
‘게다가 노아 왕자가 진정 수인이라면, 굉장히 난감한 상황일 것입니다. 하필이면 루스웨나 때문에, 하고 생각해 주면 기특하겠군요. 특히 3국의 동맹이 막 시작되려는 이 지점에서.’
로만드로는 팔짱을 낀 채 연신 감탄사만 중얼거렸다. 그리 이르던 이안의 온화한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다시 한번 바라건대, 비비안나와 저의 아이가 이안을 닮았으면 좋겠다. 배 속에서 자주 보았으니, 가능성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로만드로가 심각하게 고개를 주억거리자, 창밖을 보던 이안이 돌아봤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궁금하다는 미소다.
“아직 걱정되십니까? 혹, 문제가 생길까 봐.”
“응? 아니아니. 자네가 있는데 걱정은 무슨. 임명식 때 우리 비비안나 오면 덕담 좀 많이 건네주시게나. 아기한테도 한마디 붙여주고. 부탁하네.”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리도 새삼스러운 부탁이라니.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베릭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 거는 나도 할 수 있다!”
“…베릭. 넌 괜찮아.”
“엥? 왜요?”
“아니. 그냥 괜찮아.”
베릭이 무어라 한마디 하려는 순간, 마차가 멈췄다. 먼저 도착해서 일 보고 있던 마법사들이 클리포포드인과 웃고 떠드는 게 보였다.
이안은 커튼을 살짝 걷어내고 그것을 지켜봤다. 노아 왕자가 수인이라면, 지금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그런데 저렇게도 여유로운 분위기라?
‘수인이 아니거나, 혹은 최측근만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안은 회중시계를 꺼내 딸깍거렸다. 지금쯤이면 루스웨나의 별궁 검사도 막바지에 다다랐을 것이다. 클리포포드 측에서 진위를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문제없는 시간. 로만드로 역시 주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너무 늦게 왔나? 우리가 괜히 루스웨나를 먼저 들렀나 봐. 처음부터 마법사만 보낼걸.”
“아닙니다. 당위성을 위해 순서가 중요해요. 루스웨나를 먼저, 그리고 확실히 검사하고 넘어가는 게 옳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에리포니 왕이 이 전체적인 계획을 눈치챈다면 어떤 장난질을 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안이 직접 루스웨나 별궁으로 가서 에리포니 왕과 그 측근들의 검사를 끝내고 온 참이다. 나머지 뒷정리는 마법사들에게 맡겼지만.
“그렇긴 하지만, 보아하니 아직 안쪽까지 못 들어간 것 같잖은가. 버티고 시간 끌다 수라도 쓰면 낭패라.”
“그 또한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수를 쓸 수 있는 문제였다면, 진 저하와의 대면을 미루지 않았을 테니까요. 외교 첫 단추를 포기할 만큼,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자, 가시지요.”
끼익.
이안과 로만드로 그리고 베릭은 마차에서 내려 별궁 안쪽으로 들어섰다. 마법사들과 클리포포드 사람들이 꾸벅 인사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조금 걸어가니, 소란이 점점 크게 들려왔다. 메이 사절이 호위들을 앞세워 마법사와 대치하는 소리였다.
“…혹, 저희라서 그러시는 겁니까?”
“소, 송구합니다.”
“송구할 것 없습니다.”
대화 내용을 들으며 다가간 이안. 빠져나갈 명분 없이, 완전히 몰린 게 분명했다. 신의 힘을 받든 마법사 앞에서 신분 운운이라니.
조금씩 수인 가능성에 무게가 더해졌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필사적으로 버틸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게다.
‘그걸 알아내면, 3국 정세에 바리엘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이안은 바로 말을 잘라내며 장갑을 꺼내 들었다.
“제가 직접 검사하겠습니다. 그것은 괜찮겠지요?”
악의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활짝 웃었다.
그와 동시에, 메이의 안색은 어두워졌지만.
“이, 이안 장관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실수를 한 것 같군요. 바리엘에서는 마법사들이 황실을 모시는 터라, 클리포포드 왕실에서 꺼리실 줄 전혀 몰랐습니다. 문화적 차이에서 온 것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작위가 없다 한들 누구보다 귀한 바리엘의 인재들이다. 황실을 받치는 마법사들을 감히, 왕자가 거부한다는 게 놀랍다는 뜻이다.
아코렐라가 막 발병했을 때, 대부분의 전수조사는 행정부 산하의 하급 부서원들이 담당했다. 이처럼 바쁜 와중, 마법사들이 직접 움직인 것 자체가 일종의 존중이었거늘.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오해 말아주십시오. 마법사들의 존귀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미를 알아챈 메이가 강하게 부정하며 손까지 내저었다. 그저, 반사적으로 비집은 틈이었다. 노아 왕자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그 어떤 말을 가리겠는가.
다만, 틈 안에 이안이 기다리고 있는 줄 몰랐다는 게 문제였을 뿐.
“마법사님. 제 뜻은 그저, 왕자님께서 낯선 이를 불편해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어 전달이 잘못되었나 봅니다. 심기가 상하였다면 사과드립니다.”
문화적 차이, 참으로 유용한 단어다. 지금처럼 민감한 사안에서도 관용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나.
마법사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받아줬다.
“아닙니다. 말씀대로,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언짢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상관인 이안이 나서주니 모든 게 상관없어졌다. 이안은 마법사에게 눈짓하여 물러서라 일렀고, 마법사는 신뢰의 미소를 지으며 되돌아 나갔다.
이안은 싱긋 웃으며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클리포포드 사절이 참석해 주시어 저하의 임명식을 도와주셨으니, 저희 또한 그것에 맞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왕자님께 인사를 올리는 겸하여, 제가 직접 검사하도록 하지요.”
아아. 메이는 눈앞에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는 분명 행동거지 똑바로 하라는 경고다. 본인들의 태도에 따라 대접이 달라질 것이니, 지금 비키지 않고 소란을 피우면 합당한 조처를 하겠다는, 강제성을 상정한 발언인 게다.
타국의 병사에게 끌려 나오는 왕자라니.
그것도 수인의 모습으로?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아까 그 마법사를 들일걸.’
노루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났다. 이안을 앞두고 서 있자니, 아까의 마법사가 참으로 쉽게 느껴졌다. 그자라면, 어떻게 해서든 넘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실례하겠습니다. 메이 사절. 제게 노아 왕자님을 소개해 주십시오.”
앞장서라. 스스로 비켜 길을 내어라.
이안의 압박에 메이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호위들도 주춤거리며 물러섰고, 그녀는 마지못해 문손잡이를 잡았다.
‘하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보자. 클리포포드 왕실의 명운이 달린 순간 아닌가? 자포자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녀는 있는 힘껏 기합을 넣으며 문을 두드려댔다.
쾅쾅!
부수려고 저러나? 로만드로가 움찔하여 베릭의 팔을 붙잡을 정도였다.
“노아 왕자님!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께서 오셨습니다. 현재, 현재 루스웨나 근원의 드래곤 이상 반응이 발견되었다 하여 그걸 검사한다고 합니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하였고, 그, 잠시 손을 내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고래고래, 목청이 터지라 외쳐대는 모습. 필시 안에서 준비를 단단히 하라 알려주는 것이다. 그걸 본 로만드로와 베릭이 시선을 마주쳤다.
‘화, 확실히 뭔가 있나 보네.’
‘심각하네, 증말. 어디서 사기당한 적 있어요? 왜 이렇게 못 믿어?’
두 사람이 벙긋거리며 대화하는 동안, 메이는 문에 이마를 댄 채로 안쪽 소리를 가늠했다. 불안하게 조용하고, 빌어먹을 만큼 적막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문을 젖혔다.
끼이익.
“…왕자님?”
노아 왕자는 방 안의 천이란 천은 죄다 뒤집어쓴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두툼한 언덕 하나가 세워져 있는 듯하다.
이안은 메이를 지나쳐 그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노아 왕자님.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 인사 올립니다. 다름 아니라, 루스웨나의 전염병을 경계하여 간단한 검사를 진행하려 합니다. 힘드시겠지만, 잠시 손을 내어주십시오.”
꼼지락. 이불 끄트머리로 손가락 하나가 삐죽 튀어나왔다.
“…더, 부탁합니다.”
그러자 다시 꼬물꼬물. 왕자는 손목까지 보여줬다.
이안은 그걸 물끄러미 보다가 메이를 돌아봤다. 대상이 누구인지는 확인을 해야 검사의 의미가 있을 터인데, 이리 손만 내놓으면 누가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이불을 걷어달라 요청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본디, 허락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게 쉬운 법이니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느낌이 조금 날것인데, 아프지는 않으니 염려 마십시오.”
지이잉. 지잉.
이안이 마력을 개방하자, 밀폐된 공간에 바람결이 불었다.
메이는 손톱 깨물던 것을 멈추고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 이 정도라면 좀 수상하긴 하지만,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으리라. 그녀가 속으로 기도하는 순간.
“아. 맞다.”
이안의 뒤에 바짝 선 베릭이 뭔가 깨닫고 중얼거렸다. 가까이서 맡으니까 확실히 알겠다. 시장에서 오가며 맡았던 짐승 가죽 냄새다. 특히 습한 날, 젖은 털에서 나는 역한 내.
“짐승 냄새.”
움찔. 이안은 맞잡은 노아 왕자가 반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베릭은 귀만 후비적거리며 홀로 중얼거렸다.
“포도 나라는 이런 거에 익숙하나? 다들 모르는 것 같던데. 로만드로 님. 냄새 안 나요?”
“나는 모, 모르겠-”
펄럭!
“포도 나라라니! 클리포포드다!”
침묵하고 있던 노아 왕자가 화를 벌컥 내며 소리치자, 틈을 포착한 이안이 마력을 이불 밑으로 강하게 밀어 넣었다.
지이잉! 지잉!
바람이 잡아끄는 것처럼, 왕자가 뒤집어쓰고 있던 것들이 반쯤 벗겨졌다. 찰나 동안 마주한 것은, 세로로 찢어진 동공과 봉곳한 귀.
“……!”
“……!”
로만드로와 메이가 입을 떡하니 벌리며 굳어버렸다. 베릭은 손을 휘휘 저으며 웃을 뿐.
“아. 미안요. 크림 포도.”
“으아아악!”
노아 왕자는 이안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흐트러진 이불을 끌어안으며 숨어들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등 돌린 상태다.
“저, 저기, 잠시-!”
“예! 예예! 그렇지요! 잠시지요!”
“그러니까, 그게-!”
메이가 극심한 공황을 느끼며 허둥거렸으나, 감응하는 것은 로만드로밖에 없었다. 베릭은 창문을 활짝 열며 환기했고, 제 말이 맞았다며 크게 소리쳤다.
“음하하하! 봐라! 나 안 미쳤다고오!”
“저, 저분은 사실 노아 왕자님이십니다! 아니, 사실, 아니라고요. 그, 그러니까 다들 진정하시고!”
“지, 지, 진정해야지요. 예예! 수, 수인을 본 게 제가 처음이라 이거, 원. 어이구.”
“수인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음하하하! 내 말 맞지? 맞지!”
우당탕탕! 다들 난리 났다.
이안은 달달 떨고 있는 노아 왕자를 내려다보며 넌지시 사과했다.
“왕자님. 송구합니다. 마력 조절이 미흡하여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
대답이 없다. 그저 메이가 서둘러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길 바라는 것 같았다.
이안은 잠시 머뭇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왕자님. 꼬리,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