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299
제299화. 변수
죽자.
노아 왕자는 저주스러운 귀를 꾹 움켜쥔 채 그리 생각했다. 왕실의 증표이면서 동시에 저주였으니. 저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걱정스레 바라보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죽자.
꼬리가 저절로 말려들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상대는 대제국 바리엘이었다. 3국 동맹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꿰고자 하였는데, 기회가 가차 없이 날아가 버렸다. 저의 무능함으로 인해.
죽자.
수인이 세간에서 얼마나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한 나라의 왕인 제 아버지조차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평생을 숨기고 사셨으니까. 하여, 국력을 굳건히 할 정략혼인 따위 클리포포드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죽자…….
그래. 차라리 그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길이다. 저의 죽음으로 존재를 지우고, 왕실에 수인이 있다는 치욕스러운 사실을 없애버리자.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저의 마지막에, 노아 왕자는 눈물을 글썽였다. 적어도 국민의 배웅을 받으며 가고 싶었거늘.
“…자세한 것은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우선적인 소견으로는 별 이상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바로 들려오는 이안의 덤덤한 목소리.
노아 왕자가 이불 안에서 눈알을 굴려댔다. 그에 따라 고여있던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지금 저자가 무엇이라 하는 거지?
“저하와의 알현을 연기할 정도라 하셔서 심히 걱정하였는데, 다행입니다. 드래곤 이상 반응과는 거리가 멀어요. 계속 조사 중이긴 하지만, 오한을 동반한 발열 및 각혈이 주된 증상이라.”
이안이 그리 이르자, 노아 왕자가 코를 훌쩍였다.
혹시 못 봤나?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귀를 더 크게 쫑긋거렸다.
“음하하하! 역시 나는 대단해!”
“호, 혹시 그쪽도 수인이십니까? 너무 놀라면 예의가 아닌데, 미안합니다.”
“저는 아니에요! 아니, 저도 아니라고 하는 게 맞지요!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추, 축제 기간이지 않습니까? 클리포포드에서는 흥을 즐기기 위해 분장하곤 합니다. 바리엘도 그러지 않나요?”
마법부 장관의 일행들은 여전히 시끌벅적했고, 메이는 그들을 저지하느라 진땀 빼고 있었다.
노아는 이불 너머로 이안이 계속 앉아있는 것을 느꼈다. 아무런 말 없이, 먼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노아는 달달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조금씩, 천을 걷어냈다.
스윽.
금빛 머리칼에 녹안, 상당한 미소년이 곧은 자세로 앉아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선의 높낮이 때문일까. 찰나, 노아는 저가 진짜 작은 짐승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안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를 따라 그의 머리칼이 우아하게 흐트러졌다.
“반갑습니다. 노아 왕자님.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 올립니다.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입니다.”
“왕자님! 어찌 나오십니까?! 들어가세요!”
“우와, 대박. 귀 뽕!”
“헉,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마법부 장관님 보좌관 로만드로입니다.”
노아의 귀가 축 처져 있었다. 메이가 다급하게 달려와 그를 숨기듯 껴안았고, 왕자는 한숨만 내쉬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이미 늦었다. 정체는 들통났고, 이곳은 바리엘의 황궁이었으며, 상대는 실권자인 이안 히엘로. 무력으로 어찌할 자도 아니고, 호의를 기대하여 넘어가 달라 애원할 수도 없었다.
“왕자님.”
메이가 왕자의 두 볼을 꽉 쥐며 작게 중얼거렸다. 눈가가 촉촉한 것이, 그가 무슨 생각 중인지 알 법했다.
비밀을 들킨 것보다 더한, 노아 내면의 균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기라.
“제발 정신 차리세요.”
짐승의 귀와 꼬리는 단순히 외관만 변하게 하는 게 아니었다. 긍정적이고 기민하며 싱그러운 왕자를, 짐승처럼 생각하고 느끼게 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처진 모습이라니. 그녀는 무엄을 무릅쓰고 볼을 세게 꼬집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돌아옵니다. 그때까지만 이자들을 막아내면 돼요. 귀와 꼬리가 사라졌는데, 어찌 수인이라 우기겠습니까? 모함이다, 불쾌하다, 미쳤구나, 우리는 죽을 듯이 부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된다고요.’
돌아가서 왕실 어른들께 자문하면 될 일이다. 바리엘과의 관계가 이전 같진 않겠지만, 3국 중 중앙에서 제일 먼 나라가 클리포포드 아닌가? 왕국의 존엄과 왕실의 실존을 위해서라면, 단교도 불사할 터.
지금은 모든 게 최악처럼 느껴지지만, 괜찮다.
왕실은 노아를 사랑하고, 국민들도 노아를 사랑한다.
“그럼, 우선 일어나시겠습니까?”
이안은 뒤로 물러서며 탁자를 가리켰다. 나눌 얘기들이 침대에서 하기에는 적절치 않았으니까.
노아는 고개를 주억거린 다음 이안을 따라 의자에 앉았다. 몽실몽실한 꼬리가 바닥에 끌려 늘어졌다.
“수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 혹 무례를 끼친다 하더라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십시오.”
무례? 무례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수인들은 늘 제 가죽이 벗겨질까 두려워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이안은 메이에게도 앉으라 눈짓했다. 상태를 보아, 지금 노아 왕자에게 대변인인 필요한 것 같았으니까.
“…….”
어디 한번 말해보라.
노아와 메이는 입술을 깨문 채 이안의 발언을 기다렸다. 이걸 빌미로 무엇을 요구할까?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막대한 조공? 아니면 속국의 관계? 왕실의 비밀이라는 걸 알게 되면, 국가 전복까지 노릴 수 있을지도.
가정이 절망에 다다르자, 다시금 노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든 게 저 잘못에서 비롯된 것만 같아서. 하지만 메이가 탁자 아래로 손을 잡아주었기에,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먼저 여쭙겠습니다. 지금부터 나누는 대화는 서로의 신뢰를 위한 초석이므로, 거짓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이르시게.”
“바리엘과 클리포포드 국경 사이, 마력이상반응장치에서 평년보다 높은 수치가 기록되었습니다. 왕자님께서 이리 대단한 비밀을 감추고 계셨으니, 다른 가정을 생각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가만 듣던 베릭은 저게 뭔 말인가 싶어 귀만 후비적거렸다. 지금 이안은 마력이상반응장치에 수인이 관여했는지를 의심하는 것이라.
물론 이안은 수인이 외관만 남다른 인간이라는 걸 알면서, 노아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하는 말이었다.
“혹 클리포포드 국민들 전체가 수인이고 그로 인해 장치에 이상 수치가 기록된 거라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수인은 마력이 없어.”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있긴 하지만, 외관이 변하면 신체적인 감각도 변하지 않습니까? 이미 그것부터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습니다.”
“인종 사이에서도 신체적인 차이는 있는 법. 그 정도로 그치는 수준이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마력이상반응장치와 수인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클리포포드의 국민들은 마력과도, 수인과도 관련이 없다.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본국의 마법사는 십 년 전 죽은 게 마지막이었다.”
왕자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안은 아이의 결정적인 말실수를 포착했다.
‘클리포포드 국민들은 수인과 관련이 없다.’
그러면 노아만 그 피를 이었다는 것이고, 피를 이었다는 건 왕실 전체가 그러하다는 뜻이었다.
이안이 싱긋 웃으며 눈매를 구부리자, 노아의 꼬리가 저도 모르게 바짝 서버렸다. 긴장이 한계치에 달하였다는 듯.
“알겠습니다. 일단은 진 저하와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자님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좋아 보이시니, 대면을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메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부 장관이 목격하는 것과 바리엘의 차기 황제가 목격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 이는 잡아떼어 부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아직 왕자님께서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십니다. 굉장히 아쉽지만, 황자 저하를 뵐 수는 없어요. 종용하실 생각이라면, 그만두십시오. 진상품을 비워 마차가 가벼워졌으니, 되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을 겁니다.”
황자를 만날 바에,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다. 그 먼 길을 달려왔으니 성의는 충분히 보였을 터. 3국의 동맹이고 뭐고, 우선은 국가가 먼저다. 왕실의 기반이 흔들릴 문제인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안은 우선 진정하라는 듯 손짓했다.
“손님이 되돌아갈 때 발걸음이 무거워야 되겠습니까? 당연한 말씀입니다. 상기해 주십시오. 지금은 바리엘에 새로운 역사가 열리는 기간이고, 온 세상의 축복이 집중될 시기입니다. 돌아가실 때 노아 왕자님의 손이 무겁지 않으면, 제가 저하께 혼납니다.”
무슨 꿍꿍이일까. 노아와 메이의 눈매가 동시에 가늘어졌다. 머리카락 색이 비슷하다 보니, 똑 닮아 보이는 모습.
“다만, 저하께 함구할 내용은 아닌지라 보고는 하겠습니다. 언제쯤 알현하시겠습니까?”
“…내일, 혹은 모레 정도.”
“흐음.”
이안이 손끝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자, 노아의 귀가 거기에 맞춰 쫑긋거렸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려는 게다. 바리엘 황궁을 휘어잡은 자가, 아무런 요구 없이 넘어간다는 게…….
“그러면-”
그래! 저럴 줄 알았다!
노아가 눈을 번뜩이며 몸을 움츠렸다. 메이 역시 마찬가지. 정신을 다잡고 속으로 기합을 내질렀다. 와라! 무엇이 되었든, 뜻대로 되진 않을 터다.
“오늘 만찬은 어찌하십니까?”
“…예?”
예상과 다르게 상당히 맥 빠지는 질문이다. 메이가 저도 모르게 얼떨떨한 투로 대꾸하자, 이안이 부연했다.
“만찬이요. 저하를 모시고 3국이 모두 모이는 첫 자리이지 않습니까. 버고스 사절 또한 곧 있으면 도착입니다. 일몰 전후로 자리가 마련될 터인데.”
“아무래도 저희는 불참을…….”
“임명식 일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합니다.”
그 한 번, 이미 진과 노아의 대면을 연기하면서 쓰지 않았니? 어지간하면 만찬에 나오라는 압박이었다.
노아는 제 귀를 매만지며 난감하다는 듯 침묵할 뿐이다.
“하지만-”
“원하신다면 마법부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하늘을 가르고 불꽃을 영원히 태우는 자들인데, 그깟 귀와 꼬리 숨기는 게 대수란 말인가? 갑작스러운 제안에 노아와 메이가 시선을 나누었다. 대체 왜 저러지?
“꼭 참석하시어, 저하의 임명식 시작을 함께 축하해 주십시오.”
3국과 바리엘.
동맹으로 맺어진 그들과 제국의 열 살 난 어린이.
특히나 에리포니의 성격을 한 번 겪어 보았기에, 만찬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상 가능했다.
“…진 저하의 임명식을 ‘함께’요?”
메이는 이안의 의중을 알아채고 조심스레 되물었다. 바리엘에서 3국의 동맹을 의심할 것이라 짐작하긴 했다만, 이리 확신까지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도 동석하긴 하지만, 식사 자리에 오를 수는 없어서요. 어찌, 지금이라도 준비를 할까요?”
그러면서 이안은 노아의 귀와 꼬리를 찬찬히 살폈다.
클리포포드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기회일 것이다. 노아 왕자의 외관 때문에 불참까지 고려했지 않나.
칼을 쥐고 있는 것은 이쪽이니 거절할 수 없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마법사의 도움을 받으면 3국의 동맹 첫 시작 자리에는 나설 수 있을 터.
메이는 노아에게 눈짓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부탁드립니다.”
“그러지요. 다른 자들에게 맡길 수 없으니, 금방 되돌아오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노아 왕자님. 송구하지만 꼬리털을 조금 잘라서 주시겠습니까?”
일종의 증표다. 시간이 지나면 여우의 모습이 풀어지니, 그 전에 흔적으로 남길 만한 걸 요구하는 것이다. 베릭이 이때다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 단검을 내밀었다.
“빌려줄게요! 아님, 직접 잘라줄까요? 털만 자르는 건 해본 적 없긴 한데.”
“…….”
노아는 마지못해 꼬리털을 잘라냈다. 로만드로는 손수건을 펼쳐 소중히 받았고, 어색해하며 슬쩍 웃었다.
“그럼, 쉬고 계십시오. 베릭. 너는 여기 있어.”
“나? 왜?”
“금방 올 거니까.”
감시 역이자,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을 용도였다. 베릭은 소파에 벌러덩 누우며 어깨를 으쓱거렸고, 노아는 다시 슬금슬금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 세상이 한순간에 뒤집힌 것 같아 어지럽다.
“왕자님. 괜찮으세요?”
“왕자님. 술 잘 먹어요?”
“이봐, 너-”
끼이익.
쿵!
메이와 베릭의 투덕거림을 뒤로 하고, 문을 닫았다. 로만드로는 식은땀을 훔쳐내며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 노아 왕자를 보내도 될까? 아예 불참하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아, 그나저나 심장이 벌렁거리네. 이거, 원.”
로만드로의 말대로 아예 배제하여 가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는 노아가 참석하는 것이 나았다.
왜냐하면-
타닥타닥!
“이안 님. 버고스 왕국의 사절단이 막 중앙에 입성했다 합니다.”
인생을 두 번 사는 자가 있으니까.
변수와 부딪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해야 했다. 노아 왕자의 변수라든지, 아니면…….
‘이안 히엘로라는 낯선 존재에 관하여.’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했다.
“서둘러 손님맞이할 준비 하라.”